秘密の心 [ひみつのこころ] by. 불협화음 - 上 - 삶은 언제나 무의미했다. 무료하게 다가오는 봄은 나에게는 별 다른 감흥을 주지 못했다. 「호모를 어떻게 생각해?」 찌는 듯한 여름의 열기.... 윙- 윙- 거리며 오래 써서 굉음을 내는 선풍기 소리.. 그리고 모니터에서 떠오른 그의 글귀를 떠올릴 때면 묘하게 가슴이 서늘해진다. 『역겨워- 』 서늘해진 가슴으로.땀으로 젖어있던 축축한 손가락을 모니터에 데고 역겹다고 떠오른 글귀를 쓰다듬어본다. 미적지근한 모니터 유리의 감촉에 나는 눈을 감아 버렸다. 「하루살이」란 찻집에 앉아 봄비로 젖어든 거리를 유리창 사이로 바라보며 녹차로 까끌해진 입술을 축였다. 목이 마르다. 나는 녀석에게 목이 마르다. 기억. 그 한없는 욕망의 기억들. " 사랑-?? 그런 게 있어?? 다 좆같은 소리지 " 녀석의 입술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붉다. 입을 맞추고 싶다. 갈증이 생긴다. 시리도록 하얀 셔츠 앞 단추가 끌러져 있고 하얀 녀석의 목이 살짝 봄바람이 불 때면 보였다. 교복 넥타이를 교복 주머니에 쑤셔 넣으며 녀석은 하얀 손가락으로 담배 한 개비를 찾아내 붉은 입술에 맞물렸다. 나는 추악한 녀석이야. 더러운 호모야?? 그거 알아??? 나는 눈빛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녀석을 바라보며. 너의 단짝 친구이자 말없는 병신이 바로 네가 이 세상에서 가장 혐오 하는 그 호모란 말이다. 붉은 입술 사이로 매캐한 담배연기를 내품으며 녀석이 껄렁한 자세로 나를 한번 훑어본다. 내가 커밍아웃이라도 해버리면 그 눈빛이 어떻게 바뀔까??? 나를 야금야금 갉아 먹는 용기란 녀석 따윈 나에게 없다. " 그따위로 쳐다보지 마 가끔 네 눈깔을 볼 때면 역겨워 질 때가 있어 " 느껴버린 거야?? 내가 너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는지. 녹차를 다시 한 입 꿀꺽 들여 마시니 쓰다. 녀석은 없.다.. 내가 사랑했던 풍경들. 비 오는 밤거리를 뒷자리 버스에 앉아 차 창밖으로 들여다보는 것, 새카만 유화를 칠해 놓은 듯한 거리에는 빗물이 달빛에 받아 유화의 기름처럼 번질번질 거리고 있다. 그리고 내 옆에 녀석이 거만한 자세로 앉아 비에 맞은 새카만 머리카락의 물기를 털며 담배를 찾아내고 있다. " 버스 안에서 담배는 안돼 " 내가 조용히 말하자 녀석은 방금 내가 바라본 밤거리를 떠올리는 그 새까만 눈동자로 나를 묘하게 쳐다본다. 담배를 찾던 움직임을 멈추고 붉은 입술 끝을 살짝 들어 올려 피식 웃어 버린다.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창 밖 풍경을 바라본다. 사실은, 창에 비치는 녀석의 옆얼굴을 타는 듯한 갈망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더러운 녀석이었다. 녀석이 처음으로 내 옆에 여자를 소개 시켜 줬을 때 느낀 살인 욕구란 것을 너는 믿겠니??? 나는 녀석의 옆에 콧소리 섞인 비음으로 녀석의 팔짱을 낀 체 들러붙어 있는 그녀의 하얀 목덜미를 잡아 비틀어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녀석은 그런 그녀가 귀엽다는 듯 쳐다보고 있다. 네 녀석의 눈깔을 파내서 다시는 그 여자를 쳐다보지 못하게 내가 먹어 버리고 싶어... 나는 미친놈이니깐... 녀석이 화장실을 간다고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그녀가 나를 바라보며 웃는다. " 이름이 민영씨 라고 하셨죠?? 이민영.. 마치 여자 같은 이름이시네요. " 그녀가 생긋거리며 묻는다. 나는 입술을 비틀어 한번 픽 웃어주었다. " 말씀은 많이 들었어요... 말씀이 참 없으시다 고요- 우리 민준씨도 말이 없는데 어떻게 두 분이 그렇게 단짝이 될 수 있었죠? " 우리 민준씨라... 나의 머릿속은 온통 그녀의 혓바닥을 뽑아 녀석의 이름을 부른 그 여운까지 삼켜 먹어 버리고 싶었다. " 글쎄요- 훗... 둘 다 미친놈이니깐 " 나는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토끼 같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본다. " 유머 감각이 있으시네요- " 어색하게 웃음 지으며 그녀가 말한다. 예쁘다... 길거리에 지나가다 한눈에 들어 올 정도로 아름답게 생겼다. 녀석이 고른 여자다웠다. 한 없이 잘라 기만 한 녀석이 고른 여자답게 아름다웠지만 욕지거리가 올라 올 정도로 나에게는 비극적 이였다. 나는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녀석이 먹던 물 컵을 잡고 녀석이 마셨던 부위에 입술을 댔다. 그리고 물을 마신다. 갈증을 가시기 위해서... 녀석을 향한 나의 감정... 타는 듯한 마음.. 내 난데없는 행동에 여자는 놀란 듯 말이 없다. 녀석이 돌아오고 내가 마시고 있는 물 잔을 그 까만 눈으로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 눈빛은 마치 더러운 벌레 보는 듯 차갑다. 여자가 녀석의 옷소매를 꽈악- 잡으며 나를 빤히 쳐다봤다. 나는 물 컵을 내려놓으며 피식 웃었다. " 아까 마시고 있는 모습이 참 시원해 보여서- 정말 시원한가 한번 마셔 봤다 " 그제 서야 여자가 싱긋 웃는다. 녀석은 그냥 굳은 얼굴로 나를 훑어본다. 예전에 그렇게 나를 훑어보며 토할 것 같다고 말했던 때가 생각났다. 지금 역시 그런 건가.. 미안해서.. 어쩌지.?. 이게 조그마하게 가지고 있던 너에 대한 내 소유욕의 한 방편 이였는데 말이야-. 나는 미친놈이거든.. 남자가 남자를 사랑한다. 죽어도 용서 될 수 없는 사회 악 같은 금기어 아닌가?? 특히 너 같은 인간 에게는 말이야. " 꺼져라- " 녀석이 말했다. 나는 피식 웃었다. 녀석은 항상 저렇다. 모든 사람에게 다 저렇게 거칠게 말하기 때문에 놀랄 일도 아니지만 그 녀석의 여자는 놀란 듯 녀석을 바라본다. 그녀에게는 그렇게 말하지 않나 보지?? 가슴이 순간 욱신거리지만 피식 웃었다. " 그래 - 꺼지지- 재미있게 데이트해라 " 녹차를 다시 한 모금 마시고 그녀에 대한 기억도 떨구어 낸다. 녀석은 며칠을 못 버티고 새로운 여자로 갈아 챘다. 모델 쪽에 종사하는 키도 크고 훤칠한 미인 이였다. 녀석과 그 미녀는 어딜 봐도 어울렸다. 나는 녀석이 여자를 소개 시키는 자리에 나가지도 않았고 그 후로 녀석도 부르지 않았다. 바뀌는 여자 하나하나를 소개 하는 자체가 의미 없는 만남이라는 것을 깨달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녀석은 한달도 지나지 않아 녀석의 옆에 있는 여자도 바뀌었다.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모두 다 빼어난 미모를 소유하고 있는 여자들이라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 내가 남과 다른 성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초등학교 때 녀석이 전학을 오면서부터였다. 마치 운명의 끌림처럼 나는 녀석을 사랑했다. * * * " 선물이야- " 녀석과 친한 다른 친구 수영이 불쑥 내민 다이어리를 바라보며 나는 물끄러미 수영의 선물을 가지고 있는 손을 바라 봤다. " 민준 이랑 너꺼랑 똑같은 걸로 한번 사봤다- " " ........... " 물끄러미 다이어리를 바라보다가 받는다. 녀석과 같은 다이어리... 심장이 두근거린다. 타는 듯한 짝사랑의 열기에 미쳐 버릴 것 같다. " 이제 고3이긴 하지만- 뭐 공부에만 신경 쓰기보다 너도 다이어리에 일기도 쓰고 공부할 시간표도 만들어서 써 놓고.뭐- 아무튼 필요 할 거라고 생각해서 말야- 특히 민준 이는 네꺼랑 똑같은 거 선물한 거 모르니깐 몰래 숨겨 가지고 다녀라!! 불같이 화낼 놈 이잖냐 그 새끼... 너랑 똑같은 다이어리를 선물한걸 알면 아주 개 지랄을 떨게 뻔하다 뻔해-. " 수영이 오만상을 찌푸리며 말하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은 그런 것을 싫어한다. 수영이 밝게 웃으며 앞 자리로 가서 앉는다. 곧 수업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고 밖에서 불량한 녀석들과 어울려 담배를 피우고 온 녀석이 내 옆 자리에 와서 앉는다. 나는 얼른 책가방에 받은 다이어리를 숨겨 놓는다. 녀석의 책상 위로 나와 똑같은 다이어리가 올려져 있다. 인상을 찌푸리며 다이어리를 살펴보는 녀석을 몰래 훔쳐보았다. 그리고 앞 자리에 앉아 있는 수영에게 다이어리의 존재를 추궁하며 인상을 찌푸린다. 나는 그냥 웃음 짓는다. 너와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는 소유감은 은밀하면서도 즐겁다. 나는 단숨에 녹차를 비우고 티백만이 남아 있는 잔을 바라봤다. 어느 날 이였던가… 녀석이 자취하고 있는 원룸에 들어가 푸른색의 침대 시트에 얼굴을 묻고 나는 녀석에게 말했었다. 녀석의 향기가 난다. "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 담배를 나른하게 피우던 녀석이 비웃으며 묻는다. " 너도 그런 거 키우냐? 사랑하는 사람이라- " 담배 연기를 내 품으며 녀석은 긴 속눈썹을 내리깐다. 그 모습 하나 하나가 아름다워 내 심장을 무겁게 만든다. " 그래... 아주 오래됐다 사랑한지.. " " ........... " 희뿌연 담배 연기 사이로 녀석의 까만 눈이 나를 바라보고 있음을 느낀다. " 아주 난해한 여자야... 그렇게 가까우면서도 감히 바라 볼 수조차 없이 먼 여자다 " " 여자라 다행이군- " " 남자는 내 취향이 아니야 너처럼- 굉장히 그런 류는 경멸 한다 " 짙푸른 거짓말.... 사랑한다... 이 감정이 죄일 지라도... 나는 죽어도 못 말하겠지.. 이 개 같은 심장이 뜀박질을 멈추는 그 날 까지도 말이다... 빈 잔에 물기를 머금은 녹차 티백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내 시선이 밖의 풍경으로 다시 쏠린다. 봄이다. 녀석이 그다지도 싫어하던 봄... 같은 대학 같은 과에 쫓아 들어가다시피 한 나와 녀석이 서로 같은 다이어리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사건은 녀석과 사귀던 같은 과의 퀸카 희진 이라는 여자에 의해서 였다.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는 내 옆에 맴돌던 그녀를 신경도 쓰지 않고 가방에서 책을 꺼내다 실수로 다이어리를 바닥에 떨어 뜨렸다. " 어- 그것!!! 민준이 거랑 같네 " 나는 황급히 다이어리를 주워 가방 안에 쑤셔 놓았다. 그녀는 베시시 웃으며 말한다. " 민준 이랑 맞춘 거야?? 둘이 친하니깐- " " 아니야- " 나는 차갑게 그녀를 훑어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짜증이 밀려들어 왔다. 화가 치민다. 다음날 역시나 도서관에 앉아 공부를 하고 있던 내 앞에 녀석을 끌고 온 희진이 보였다. 녀석의 표정이 차갑게 굳어있다. 같은 다이어리를 가지고 있다는 자체 하나만으로도 그렇게 짜증이 나는 거야? 라는 생각에 화가 치밀었다. 그래도 나는 녀석의 가장 친한 녀석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녀석의 옆을 미친 듯이 지켜왔었다. " 봐- 민준이 네 거랑 똑같아 " 하얀 손으로 허락 없이 내 가방을 뒤적거려 다이어리를 꺼내 보인다. 그리고 녀석의 가방에 있는 다이어리를 빼내 책상에 올려놓았다. 녀석의 인상이 확실히 구겨져 있다. 희고 반듯한 이마를 찌푸리며 녀석이 그녀를 쳐다본다. 책상위에 아무리 보아도 똑같은 다이어리 두개가 놓여져 있다. " 그치 ?? 그치 ?? " " 그래서 ?? " 녀석이 차갑게 묻는다. 짙은 눈썹이 치켜 올라가고 묘하게도 매력적인 녀석의 새카만 눈동자에 는 조금의 짜증이 베어 나온다. 나에게 화를 내지는 않는다. 같은 다이어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화가 나지 않는 거야? 자신과 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녀석인데.. " 아니- 그렇다는 거야 그냥- 신기해서- " 하며 녀석의 손을 잡으려는 그녀의 하얀 손을 녀석이 짝- 소리 나게 쳐냈다. 순간 조용하던 도서관의 분위기는 긴장감이 흐른다. 공부하던 녀석들이 머리를 들고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녀석은 차가운 눈길로 그녀를 한번 바라보고 소름이 돋을 정도로 차가운 어투로 말했다. " 귀찮은 여자군.. " " 귀...귀찮은 여자라니!? " 그녀는 울먹이며 묻자 녀석의 까만 눈이 순간 나를 바라본 듯한 착각을 느낀다. 녀석은 그녀가 울며 계속 말을 이으려 하자 책상에 올려져 있던 자기 다이어리를 들고 싸늘하게 나가 버린다. 그 모양을 울면서 따라가고 있는 그녀의 뒷모습이 보였다. 다음날 대기업 사장에 딸이기도 한 미모의 소유자 희진이 녀석에게 차였다는 소문이 돌았다. 나는 그 날 기쁨의 축배를 들었다. 녀석은 별 다른 이유 없이 귀찮다고 느껴지면 그렇게 이별을 통고하는 짜증나게도 차가운 녀석 이였다. 무엇이 녀석을 귀찮게 만들었는지는 아직도 의문이지만 말이다. 담배 한 개비를 찾아 입에 물었다. 찻집에서는 Rainbow의 「Rainbow Eyes」가 흐른다. 녀석이 좋아하던 곡... She's been gone since yesterday. Oh, I didn't care 어제 그녀가 떠났지만 난 신경 쓰지 않았어요 Never care for yesterdays fancies in the air 지난날에 대해서도 무신경했고 공상만이 허공에 떠돌 뿐 이죠 No sights or mysteries. 후회도 더 이상의 신비로움도 없어요 She lay golden in the sun. No broken harmonies. 그녀는 태양아래 편안히 누워있으니 헤어짐으로 상처받을 일도 없을 거에요 But I've lost my way. 하지만 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She had rainbow eyes. 그녀의 눈은 마치 무지개 같았죠. Rainbow eyes. Rainbow eyes 무지개 같았어요.... 녀석의 눈은... 질척하게 비가 내린 밤하늘 같았다. 숨막히도록 새카만 밤하늘.... 녀석이 이 곡을 들으며 무지개 같은 눈을 한 녀석을 알고 있다고 했었다. 나는 그 무지개 같은 눈을 한 녀석에 관한 심한 질투를 느꼈었다. 녀석을 바라보며 몇 번 이나 녀석의 향한 탐욕에 목이 탔었다. 하지만 만질 수도 없을 정도로 녀석은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멀었다. 나는 항상 녀석에게 목이 말라 있었다. 문득 그녀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녀석의 마지막 여자 윤진... 유난히 녀석과 사귄 여자 중 평범했던 여자.. 유난히 녀석이 아끼던 여자... 너무나도 속까지 나를 닮았던 여자.. 울먹이며 술에 취해 걸려온 윤진의 전화에 잠에 들지 못해 뒤척이던 그날도 나는 그녀의 하소연을 들어주고 있었다. " 내가 버려진 거지?? 그렇지?? " 울먹이며 묻는 그녀에게 나는 차갑게 대답해 준다. " 그래 - " " 어떻게 하면 그를 다시 되돌릴 수 있지?? 응?? 어떻게 하면 내 옆에 붙들어 둘 수 있을까?? " " ............... "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한번 뒤돌아선 녀석이 다시 되돌아 그녀를 바라볼 리는 없었다. 나는 그녀가 싫었다. 녀석이 유난히 그녀를 괜찮게 여겼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의 목을 졸라 땅속에 과광을 떨 파내고 녀석이 다시는 그녀를 보지 않게 하고 싶었다. 그 까만 눈이 나만을 봐주길.. 나는 역시 추악한 놈이니깐...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가 말한다.. " 역시 그 수밖에 없나봐... " " ....무슨 수?? " 달칵 소리와 함께 뚜- 뚜- 거리는 소음과 함께 그녀가 전화를 끊어 버린 것을 알았다. 알 수 없는 그녀의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었다. 정상이 아닌 것 같은 목소리... 설마.. 아니겠지... 항상 내가 꿈꿔 왔던 그 것은.. 나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멍하니 앉아 담배를 피웠다. 푸른 새벽의 밤하늘을 쾡 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으려니 녀석이 떠오른다. 몇 분도 흐르지 않아 그녀에게 전화가 걸려 온다. " 여보세요- " " 그를 가졌어... " 그녀는 기괴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정말로 녀석을 가졌다.. 내가 하지 못했던 일.. 녀석을 죽임으로써 그녀는 비로써 녀석을 가질 수 있었다. 푸른 밤을 지새우며 꿈꾸던 것.. 죽여서라도 그 시체라도 끌어안고 가지고 싶었다. 죽여서라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 나는 숨이 막혔다. 녀석의 하얀 목덜미를 바라 볼 때마다 그 목을 가득 조르고 마지막 내 뱉는 그 숨결을 마시고 싶었다.... 마지막 녀석의 그 새카만 눈동자에 담는 모습이 나이길 바랬다. 뉴스에서 엽기적 살인 사건이 보도 되며 그녀의 얼굴이 모자이크 처리 되어 흥분된 앵커의 목소리와 함께 헛구역질이 치밀었다. 나는 곧장 화장실로 달려가 뱃속에 담아둔 음식들을 토해냈다. 녀석이 그렇게 간지 어느새 4년이 흘렀다.... 이제는 너무도 옛 이야기 같아 뿌예져 버린 기억 들이다. 녀석을 기억해 내는 것 마져 너무나도 오래 되어 기억이 나지 않았다. 십여 년의 나의 사랑은 녀석의 퇴장으로 내 심장이 차갑게 식어 내려 가 며 끝을 내렸다. 담배연기를 내 품으며 기억들을 끄집어내며 희뿌연 담배연기 속에 공허 하게 흔들리는 눈으로 멀거니 테이블에 놓여져 있는 다이어리를 바라 보 았다. 그 날 도서실 일 이후 녀석이 다이어리를 가지고 도서관을 나가버리고, 책상에 남겨진 다이어리를 아무런 확인 없이 책가방에 집어넣고 그 이후로 한번도 쳐다 본 적이 없었다. 그 다이어리만 보면 내 맘속 욕망의 치부가 들어 나는 기분 이였다. 그리고 4년이 지난 이제 서야 나는 그 다이어리를 꺼내 볼 용기가 났다. 담배를 깊숙이 빨아들이며 폐부를 가득 채우는 역겨운 담배연기... 그리고 내 더러운 욕망 덩어리들.. 고급스러운 모양의 갈색 다이어리... 조심스럽게 다이어리를 연다. 새하얗다... 한번도 그 곳에 글을 쓴 적은 없다. 단지 녀석과 같은 다이어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즐기며 가지고 다녔을 뿐.. 후--- 폐부에 가득 찼던 욕망덩어리들을 내뱉어 내듯 담배연기를 내품었다. 그리고 녀석의 글씨를 발견한다. 이건..... 녀석의 다이어리였던 건가??? 마치 파노라마처럼 예전의 기억이 스치고 지나간다. 두개 나란히 놓여져 있던 다이어리.. 그 중 하나를 집어간 녀석.. 그때.... 바뀌었던 건가??녀석이 죽고 나서 다시 한번 찾아오지 못할 것 같은 심장박동이 거세졌다. 마치 녀석을 바라보며 느꼈던 그 때처럼... 가슴이 뛰고 있다. 나는 급작스럽게 녀석의 글을 읽기 시작했다. 다이어리에 일기를 쓰고 있었다니.. 상상도 못할 일이다.. 천하의 채민준이가 말이야... 일기를 썼다니... "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조용한 피아노 음악이 흐르던 찻집은 미친 듯이 웃고 있는 내 웃음소리와 섞여 불협화음을 이루고, 찻집의 손님들은 인상을 찌푸리며 나를 쳐 다 본다. 하지만 굴하지 않고 미친 듯이 웃었다. 이렇게 골 때릴 때가... 웃으며 나는 녀석의 일기를 바라본다. 녀석답게 날짜와 몇 문장 없는 글이 전부인 일기... - 1999년 7월 30일 - 『호모는 역겹다.... .』 웃고 있던 나의 인상은 경직 되었다. 그래... 나는 역겨운 놈이다.. - 1999년 9월 23일 - 『 녀석의 눈은 마치 무지개 같다... 미친 듯한 소유욕... 미쳐 가는 건가?? 그것도 역겹디 역겨운 남자새끼에게 품는 감정이라니... 』 비릿한 웃음이 흘렀다. - 1999년 11월 16일 - 『 그 입술을 물어뜯어 버리고 싶다....이제성... 』 개새끼.... 크게 부라려 뜬 눈에 가득 눈물이 차올랐다. 나의 목마름... 녀석을 향한 목마름... 항상 비밀로 감춰 두어야 했던 내 마음... 왜... 나는 안돼는 거였냐??? .... - 1999년 12월 17일 - 『 아냐??? 네 눈은 마치 무지개 같다... 호모는 역겹다...그러니 나 자신도 역겨운 건가?? 엿 같군.. 엿 같아.... 이제성을 사랑하기라도 한건가??? 』 눈물이 녀석이 써 논 글자로 뚝 떨어진다. 녀석의 글자가 시커멓게 내 눈물로 번져간다. 입술을 미친 듯이 이빨로 깨물었다. 입술이 찢기는 아픔보다 심장의 아픔 때문에 돌아 버릴 것 같았다. 녀석이 남자를 사랑했다니... 그것도 이제성이라는 알지도 못하는 녀석을 말이다. 어째서 너는 끝까지 나의 가슴을 이렇게 찢어 놓는 거냐... 내가 너를 그리며 몽정하던 그 새벽 날.. 나 자신에 대한 혐오로 밤새 눈물짓던 그 날 동안.. 너 역서 다른 놈을 향해.. 그랬다는 것에 대한 배신감에 나의 몸은 떨렸다. 우리 둘 다 미치고 역겨운 새끼들 이였는데... 너를 품고 있는 내 심장을 태워 버리고 싶을 정도로 나는 괴로워했었다. 왜 나는 안돼는 거냐??어째서!!! 왜!!!! 너는 죽고 없다.... 어차피 죽고 없는 녀석이다.. 이제성이 누구인지... 누군가를 사랑했든..어차피.. 녀석은 죽어버렸다. 미친 듯이 뜀박질해대는 심장의 박동... 터져 버릴 듯한 아픔.... 벌떡 자리에 일어나 지갑에서 대충 돈을 꺼내 계산을 했다. 귓가로 아련히 녀석이 좋아하는「Rainbow Eyes」가 흐른다. 저주스럽게 내 심장은 타들어 가는 듯 하다.. 개새끼.... 벌컥 가게 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다이어리를 쥐어 잡고 있는 내손이 미친 듯이 떨려왔다. 시커먼 도로를 씽- 씽- 거리며 달려가는 차들... 그리고 나는 미친놈처럼 비실비실 웃음을 흘렸다. 씨발새끼.... 돌아 갈수만 있다면 어떤 수를 쓰더라도... 어떠한 대가를 받더라도 나는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미친놈이다. 그래서 녀석의 죽어라고 쥐어 패고... 미친 듯이 왜 나는 안돼 느냐고... 어째서 끝까지 나는 아니었냐고.. 그렇게 미친놈처럼 퍼붓고 싶었다. 비틀 비틀 걸어가며 온 세상이 눈물 때문에 뿌옇다. 숨이 막혀 오듯 누군가가 내 목을 비틀어 잡고 있다. 녀석이다.... 너무나도 쉽게 죽어버린 그 새끼의 하얀 손이 내 목을 비틀어 잡고 내 심장을 쥐어 잡아 지옥의 나락 끝으로 인도하고 있다.. 손가락 사이로 끼어져 있던 하얀 담배가 타들어 가며 희뿌연 연기가 공중으로 산산이 분산 된다. 뺨을 적시는 뜨거운 눈물에 얼굴이 데어 버린 듯 고통스럽다. 빌어먹을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화창한 봄 날씨.. 경쾌한 발걸음으로 내 옆을 스치고 지나가는 사람들.. 수많은 사람들의 스쳐지나갈 때마다 나는 마치 정지화면처럼 서있다. " 후후후후... " 미친 듯한 자괴감에 웃음이 흘렀다. 4년이나 나 역시 녀석을 따라 땅속 깊이 묻혀 있었다. 녀석이 없는 삶은 죽은 것과도 같았으니깐... 누군가를... 그것도 남자를 사랑한 심장을 품고 녀석은 땅에 묻혔다. 나는 죽어도 끝나지 않을 외사랑의 고통을 안은 체 어두침침한 땅속 깊은 나락에서 고립되어 가고 있었다.. 제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미친놈처럼 나는 도로로 뛰어 들어갔다. 운명의 끌림과도 같이.. 「끼익--」 맹렬하게 달려오는 트럭에 나는 미친놈처럼 웃으며 뛰어든다. 트럭의 헤드라인 불빛에 눈이 부셔 눈물로 뿌연 시야로 웃는다. 사요나라... 너 없는 역겨운 세상아... 사요나라... 이 엿 같은 현실아... 「쿵- !! 」 몸이 충격으로 붕 떠오른다.. 헤드라인 불빛에 삼켜 지는 듯 한 기분... 그리고 도로로 곤두박질치는 몸..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어떠한 대가라도 달게 받으리.... 시간을 되돌려 예전으로 간다면.. 이제성을 밀치고 녀석의 심장을 단 한번이라도 머물고 싶다고.. 그럴 수만 있다면 어떠한 대가라도 받겠다고... 흐릿해지는 의식사이로 나는 그렇게 되뇌인다. ***** " 괜찮냐?? " 살아 버린 건가???제길... 인상을 찌푸리며 눈을 떴다. 그리고 수영이 인상을 찌푸리며 나를 바라보며 욕설을 내뱉는다. 여느 때보다 훨씬 앳되어 보이는 얼굴이다. 마치 고등학교 때 녀석을 보는 듯하다. 노랗게 탈색한 머리카락을 연신 쓸어 올리는 수영의 모습에서 왠지 이상 한 기분이 섬뜩하게 스쳐 지나간다. 녀석이 노랗게 머리를 탈색 했던 때는 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 학교를 그렇게 탈색 한 머리로 당당하게 다녀 학생과에게 찍히고 아무리 맞고 벌을 받아도 바꾸지 않고 고수 했던 금발 머리.. 지금의 녀석은 말끔한 검은 머리였다. 갑자기 녀석이 고등학교 때의 향수라도 일어나 헤어스타일을 바꾼 건가? 바꿨다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기분 나쁘게 어린 모습이다. 녀석의 이상한 모습에 기분이 이상하지만 입안이 타들어 갈 듯한 갈증에 나는 신음하며 녀석에게 물을 요구한다. " 물 좀 줘.. " " 조회시간에 그렇게 픽- 쓰러지면 어떻하냐?? " " 조회시간??? " 생소하게 들린다. 조회시간이라는 단어를 들어 본지가 언제였던가... 수영이 피식 웃으며 거울을 들이민다. " 봐라- 네 몰골을- 요즘 잘 안 쳐먹냐?? 볼따구가 쑥- 들어 간 게 미라가 다됐다 이 새끼야!! 그러니깐 조회시간에 일사병 먹고 병자처럼 픽- 픽- 쓰러지지!! " 녀석이 내민 손거울을 받아 들고 나는 내 얼굴을 비쳐 본다. 검지도 그렇다고 까맣지도 않은 누렇게 뜬 얼굴 눈두덩이에 지방이 많아 답답해 보이는 작은 눈 푸르티티하게 질린 입술 쑥 들어간 뺨.. 나도 모르게 거울을 떨어 트렸다.... 거울 속의 나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모습이다. 유일한 자랑인 새카맣고 윤기 있는 머리카락을 앞이마에 늘어 뜨려 더더욱 음침한 느낌을 주던 그 때 그 모습... 평범이 아닌 못생겼다 할 얼굴... 나는 거울을 보며 나 자신의 추함에 얼마나 괴로워했던가... 주위를 둘러보니 고등학교 때의 양호실, 지금 내가 누워 있던 곳은 양호실 침대라는 것이 확인 되어가고 있다. 머리에 두통이 밀려와 인상을 찌푸리며 나는 피식 웃었다. 마치 소설이나 영화처럼 시간을 되돌리기라도 했단 말인가??? 신이 나에게 기회란 것을 주기라도 했단 말인가?? 나는 분명 차에 뛰어 들었고 사고를 당해 죽어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아니라면 어느 병원에 실려 가서 불구가 되어있든... 아니면 지금 이 웃기지도 않은 상황은 무어란 말인가?? " 지금이 몇 년도냐? " 걱정 어린 표정으로 물 잔을 건네주는 수영을 바라보며 묻는다. " 99년도지 뭐냐?? 너 바보냐?? " 물 잔을 받아지고 목을 축이며 나는 힐끔 수영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한 모금 갈증을 해소한다... 99년도로 되돌아 왔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현실적으로 다가와서.. 당황조차 되지 않았다.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한다. 녀석이 죽고 나서 큰 심박수로 뛰지 않던 심장의 속도가 빨라진다.. 녀석이 살아 있다... 녀석을 볼 수 있다.. 녀석의 숨결을 느끼고.. 그 칠흑처럼 새카만 눈동자를 다시 한번 볼 수 있다는 것 하나 만으로도 나의 심장은 미칠 듯이 뛰고 있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수영을 밀치고 양호실을 뛰쳐나온다. 복도를 뛰고 녀석이 자리하던 교실로 뛰어 들어간다. 껄렁한 자세로 자리에 앉아 있는 녀석이 보인다. 교실 창가로 쏟아지는 햇살을 받아 탐스럽게 윤이 나는 까만 머리카락이 반쯤 열린 창 사이로 흘러 들어오는 바람에 따라 흔들린다. 날카로운 턱선 쭉 뻗은 콧날 긴 속눈썹 항상 갈증을 느끼게 하던 그 불은 핏빛 입술도 예전 모습 그대로이다... 조각 같은 옆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가슴 속에 불길이 몰아친다. 나의 심장을 끝까지 조각 낸 자식... 나는 성큼 성큼 다가가 녀석 앞에 섰다. 껄렁한 자세로 앉아 있던 녀석이 거만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철렁- 녀석의 질척한 까만 눈과 마주침과 동시에 심장이 저 바닥 밑으로 추락한다. 눈물이 뜨겁게 내 뺨을 타고 흐르고 나는 냅다 녀석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 으윽- " 주먹을 녀석이 어느새 막아 버리고 팔목을 비틀어 버리는 바람에 나의 입에서는 고통의 신음이 흘러나왔다. " 드디어 돌으셨나?? 이.민.영?? " " 흐윽- 놔!!! 씹새끼야!! " 눈물이 계속 줄줄 흘렀다. 녀석에게 비틀린 팔목이 타는 듯이 뜨겁다. 만나자 마자 녀석의 면상을 힘껏 후려 쳐 주려 했는데.. 망할 새끼... 내 말이 끝나자마자 비틀린 팔을 쓰레기통이 있는 쪽으로 밀어 내 버린다. 녀석의 힘 때문에 나는 쓰레기통과 함께 쓰러지며 나뒹군다. 눈물이 계속 흘렀다. 갑작스런 내 행동에 놀라 뒤 따라오던 수영이 이 모습을 발견하고 황급히 나를 일으키며 녀석을 향해 화를 낸다. " 너 아까 민영이 쓰러지는 것 보고도 이렇게 막 대해도 되냐?? 단짝이라는 것들이 왜 지랄이야- " 건조한 표정으로 나를 한번 휙 바라본 녀석은 다시 시선을 돌려 버린다. 수영은 나를 부축하여 녀석의 옆자리에 앉힌다... 우린 짝 이였으니깐.. 그랬지.. 너는 언제나 나에게 이런 식이였지.. 힘이 쭈욱- 빠져 버린다.... 어차피 외사랑 이였고.. 어차피 녀석은 나를 바라보지 않는다... 남자든 여자든... 하하하하... 왜 못 깨달은 거냐 이민영... 어차피 나는 녀석과 안 된다는 것을... 눈물은 쉴 새 없이 계속 흘렀다... 녀석의 시선이 창밖으로 머무른다. 그리고 그 차창 밖으로 한 없이 아름다운 사내 녀석이 생기발랄하게 웃으며 걸어가고 있다. 한 눈에 그 사내 녀석의 눈에서 무지개를 발견해 버린다... 단 한번.. 단... 한번이라도.. 네 심장에 머물고 싶다... 저 녀석을 1000번 담는 그 심장에 단 한번만 나를 담아주면 안되겠니?? 녀석이 죽었던 4년간의 세월이나... 지금이나 변한 것은 없었다.. 단지 녀석이 살아 있다는 것 밖에는.. 입술을 비틀어 웃으며 나는 그렇게 녀석의 옆모습을 타는 듯한 갈증어린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한번만 담아줘.... 단 한번만.. 나를.. **** " 아깐 왜 그랬었냐?? " 하교 길 수영이 묻는다. 이 하교라는 것을 몇 년 만에 해보는 것일까?? 피식 웃음이 흘렀다. " 갑자기 발작 할 때가 있다 " 나는 그냥 그렇게 말했다. " 미친놈 표시를 꼭 내고 다니지... 민준이 성격 그런 거 훤히 알면서 발작을 해도 나한테 하던지 왜 민준이 한테 했냐? " " 글쎄.... " 봄바람에 앞 머리카락이 흔들거린다. 땅 바닥에 굴러다니는 벚꽃 잎을 지려 밟았다. 짓밟힌 벚꽃 잎이 황색물이 들며 더러워지는 것을 피식 웃으며 바라보았다. 세게 짓누르면 꽃잎은 싶게 더러워지고 찢겨진다.... 나는 그것을 즐긴다. " 가끔 너란 녀석을 민준이 보다 더 알기 힘들다- 그러니깐 너희가 단짝인지도 모르겠고... 너희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였다고 했지?? 이상하단 말야 너네 분위기 보면 꼭 친구가 아닌 왠수 같은데 말야.. " “ 친구가 아니야 ” 입술을 비틀어 웃었다. 우린 친구가 아니야... “ 그럼 뭐냐?? ” 대답하지 않고 나는 그저 수영을 바라보며 웃어 주었다. 내 특유의 비웃음을 흘리며... 내 발에 짓밟힌 꽃잎이 다시 부는 바람에 휘날려간다. 저 꽃잎이 이제성이였다면 나는 그것을 짓밟고 절대로 바람에 휘날려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 너 이제성이라고 아냐? ” “ 사람 궁금하게 해놓고 이상 한 것만 물어 보네 이자식이... 우리 반 이제성 말하는 거냐? ” “ 우리 반에 이제성이란 놈이 있었냐?? ” 수영이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곧 한숨을 내쉬며 나의 앞이마에 음침하게 늘어진 머리카락을 쓸어 올려 준다. “ 너란 놈이 세상만사에 뭐가 그렇게 관심이 많겠냐만... 그런 놈이 우리 반에 존재 하고 계신다-- ” “ 흐음... 뭐하는 어떤 놈이냐?? ” 수영이 자신이 턱에 손을 괴며 한참을 고민하더니 나를 바라보고 묻는다. “ 갑자기 걔에 대해 궁금해진 이유는?? ” “ 그냥- ” 수영은 한참을 그렇게 나를 들여다보더니 말한다. “ 우리 반 반장이잖아- 아무튼 너란 녀석은... 얼굴도 그 정도면 반듯하게 생겼지... 무언가 민준 이랑 상반 데는 면이 많지... 성격도 밝고, 착하고, 왠지 너나 민준 이나 어두운 녀석들 아니냐- 그런데 그 녀석은 좀 다르지... 뭐 민준 이한테 데들기도 하고- 통 크게 나가기도 하더만- 민준 이도 그런 녀석이 싫지 않아 보이던데... 민준이 까지 그럴 정도면 성격도 괜찮고 뭐 괜찮은 녀석이다 이정도면 너의 궁금증을 조금이나마 풀어 준거냐? ” “ ................. ” 나는 대답 대신 수영을 앞질러 걸어갔다. 이제성이라......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뒤에서 그런 나를 쫓아 다가온 수영이 내 목을 팔로 휘감는다. 플레이 버튼을 누르고 나는 그런 수영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시간을 되돌려왔지만... 신이 기회를 준건지.. 아니면 다시 한번 지옥의 나락으로 나를 떨어뜨린 건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귓가에 어느새 「Rainbow Eyes」가 흘렀다. 눈을 감고 가사를 음미해본다. “ 야 전화 왔어- ” 내 한쪽에 꽂힌 이어폰을 빼내고 내 귀에 수영이 버럭 소리 지른다. 교복 주머니에 들어 있는 핸드폰에서 울려 퍼지는 핸드폰 소리에 왠지 등골이 오싹했다. 고등학교 때 썼던 그 핸드폰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요즘 나온 신형모델이 아닌 구형의 그 핸드폰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니 이상한 기분이다. 옆에서 닦달하는 수영의 목소리를 깨닫고 그제 서야 핸드폰을 꺼내 플립을 열었다. “ 여보세요- ” “ 나다- ” 민준의 낮은 저음의 목소리... 살아 있는 민준의 목소리... 그렇다 녀석은 살아 있다.... “ .............. ” “ 하루살이로 와- ” “ 알았어.. ” 플립을 닫고 나는 수영을 쳐다봤다. “ 나 민준이 만나러 가볼게 ” “ 민준이 새끼냐?? 거참- 수업도 다 안 듣고 사라지더니- 너는 또 왜 불러들이는 거냐? 쳇- 가봐라 ” 금발머리를 쓸어 넘기며 툴툴거리는 수영을 바라보고 히끗 웃었다. 변함이 없는 녀석이다. 고등학교 때도 이랬지만 지금까지도 녀석은 항상 저런 모습이니 말이다. 한쪽 귀에 이어폰을 다시 꽂고 나는 녀석과 항상 자주 가던... 그리고 그 다이어리를 열어 보기도 했던 그 장소로 향해 걸어간다. **** “ 안녕 하세요- ” 하하하하하하... 웃음이 흘렀다. 마치 리플레이 한 것처럼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대사로 인사를 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처음으로 여자를 나에게 인사시켰던 그 일이 다시 벌어지고 있다. 코믹하게도 나는 다시 그런 그녀를 죽일듯한 살인 욕구를 느꼈다. 녀석의 옆에 콧소리 섞인 비음으로 녀석의 팔짱을 낀 체 들러붙어 있는 그녀의 하얀 목덜미를 잡아 비틀어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다시 해본다... 그때와 똑같은 생각들이다.. 녀석은 그런 그녀가 귀엽다는 듯 쳐다보고 있다. 네 녀석의 눈깔을 파내서 다시는 그 여자를 쳐다보지 못하게 내가 먹어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다시 해버린다. 그랬었다... 앞 내용은 다르지만... 녀석이 어느 날 불쑥 이 카페에 나를 불러들이고 그곳에 도착 했을 때는 녀석의 옆에 끈적하게 달라붙은 이 여자와 녀석은 거만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다. 왜 예상하지 못했을까?? 나는 과거로 돌아갔다... 장점이 있다면 앞으로 생길일 모두를 알 고 있다는 것이다.. 녀석이 어떻게 죽는 것 까지 나는 알고 있었다.. 미래를 바꾸겠다.... 녀석이 화장실을 간다고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그녀가 나를 바라보며 웃는다. " 이름이 민영 씨라고 하셨죠?? 이민영.. 마치 여자 같은 이름이시네요.. " 그녀가 생긋거리며 묻는다. 나는 입술을 비틀어 한번 픽 웃어주었다. 그때도 그녀의 아름다음에 절망하며 이렇게 웃었더랬지... 똑같은 말을 내뱉는 그녀의 입술을 가소롭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다. " 말씀은 많이 들었어요... 말씀이 참 없으시다 고요- 우리 민준씨도 말이 없는데 어떻게 두 분이 그렇게 단짝이 될 수 있었죠? " 어차피 너도 이민성의 대용이겠지... 녀석은 너를 사랑하지 않아... 바보 같은 여자... " 그거 알아- 당신?? " 그녀는 토끼 같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다 묻는다. " 뭘 알아요?? " 예쁘다... 예전 기억 그대로 그녀는 아름답고 인형 같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묻고 있다. 틀리다면 예전과 다른 대사를 그녀가 내뱉고 있는 것이랄까?? “ 너는 대용 이라는 걸 말이야- 녀석이 너 따윌 사랑한다고 믿어? ” 그녀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셔 새하얗게 질린 얼굴을 바라보며 묘한 즐거움으로 쾌감이 밀려온다. “ ... 마... 말이 심하시네요... ” “ 너는 일주일도 안돼서 차일거야... 내 장담하지 ” 나는 예전처럼 녀석에 마시던 컵을 들어 녀석이 입술을 데고 마신 부위에 입술을 데고 물을 마신다. 멀리서 녀석이 걸어오는 것을 바라보며 나는 물을 마시며 녀석의 그 까만 눈을 마주 본다. 녀석의 얼굴이 차갑게 굳는 것을 느꼈다. 자리로 돌아온 녀석을 바라보며 밀납처럼 굳은 얼굴로 앉아 있던 그녀가 눈물을 뚝뚝 흘린다. 나는 물 컵을 내려놓으며 피식 웃었다. “ 몇 마디 조언 좀 해줬더니 울어버리네- 훗... ” “ 이. 민. 영!! 아까부터 네가 좀 돌은 모양인데- 까불지 마라- ” 그녀를 바라보던 녀석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한다. 녀석의 눈빛이 혐오스럽다는 듯이... 더러운 벌레라도 바라보듯이 쳐다보고 있다. 내가 무엇 때문에 되돌아 왔는데.. 무엇 때문에 시간에 거슬러 왔는데.. 채민준... 단한번이면 되.... 나를 단 한번만 품어준다면... 그걸로 만족해.. 어떠한 대가라도 받아 낼 수 있다.. “ 왜 혐오스러워?? 너는 항상 내 눈만 바라보면 토할 것 같다는 눈으로 그렇게 쳐다봤었지.. ” 민준은 차갑게 나를 바라본다. “ 채민준... 이제성은 안 된다-- ” “ 뭐라고 했냐-? ” 차갑고 냉정하던 녀석의 얼굴이 순간 당황스럽게 변하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벌써 인가?? 벌써 녀석을 마음속에 담고 있는 건가?? 네가 그토록 혐오하던 남자를 사랑한다는 그것을 네가 하고 있냐 이 말이다.. 나는 의미심장하게 녀석을 바라보며 웃는다. “ 병신 같은 짓은 더 이상 안 해... 16년 동안이나 해왔으니깐.. ” 나는 벌떡 자리에 일어났다. 뚜벅 뚜벅 걸어 나가는 나의 팔목의 휘어잡는 녀석의 손길에 굳어 버린다. 녀석은 내 팔목을 휘어잡아 세게 나를 돌려 세우고 내 목을 쥐어 잡는다. 녀석의 질척한 까만 눈이 나를 담는다. 그래... 그렇게 나를 담아라.. 그 눈 속에 나를 담아라.. 긴 속눈썹을 둘러싸고 있는 그 질척하고도 질척한 까만 눈 속에 비치는 내 모습을 재확인한다. 답답한 작은 눈 속에서 탐욕스럽게 녀석을 바라보고 있는 내 눈이 비친다. 내 자신에 나도 모르게 구역질이 올라온다. 내목을 세게 움켜잡은 녀석이 나를 물어뜯을 듯 차갑게 묻는다. “ 다시 한번 지껄여봐 ” “ 이제성은 안된다고... 내 단짝 친구가 그것도 남자를 말이야... 호모의 길을 걷는 걸 기쁘게 보아줄 순 없는 거잖아 안 그래?? ” “ 훗- 지금 네가 뭐라고 까대는 줄 자각 하고 있는 거냐? ” “ 왜 하필 이제성이냐?? ” 어느새 나의 눈에서는 눈물이 맺혀온다. 눈에 힘을 주며 녀석의 눈을 마주 보았다. 나는.. 안돼는 거냐.... “ 너 설마 이제성을.... ” 녀석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다. 말을 끝맺지 못한 녀석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 있다. 항상 거만하고도 차가운 포커페이스... 그러나 녀석의 눈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 그래- 나는 호모라서 말이야... 너랑 연적이 되고 싶진 않다.. ” 죽어도 입 밖에서 꺼내지 못한 말.. 그래 나는 호모지... 너를 사랑하는 미친 녀석이야... 알고 있다.. 감히 내 주제에 너를 품는다는 것... 아름다운 사람이나 너를 가질 수 있지... 내가 얼마나 추한지.. 겉도.. 속도... 짙푸른 거짓말을 다시 하고 있었다. 아직은 너를 향한 내 마음을 밝히지 않겠어... 이제성을 사랑하는 것으로 해두지.. 나의 목을 움켜잡은 녀석의 힘이 더더욱 조여 오는 것을 느꼈다. 숨이 막혀서 나는 켁켁 거리기 시작했다. “ 허...억... 허...ㄱ... ” 마치 내 목을 비틀어 버리고 싶다는 표정으로 녀석은 한참을 내 목을 그렇게 움켜잡고 힘을 가했다. 눈에서는 눈물이... 입에서는 침이 흐른다.... 숨이 막히고... 동공이 팽창되어 눈앞이 뿌옇다. 주위에서 사람들이 놀래서 소리치는 소리가 웅웅- 거리며 들려오고, 녀석의 여자는 당황하여 녀석의 뒤에 서서 꺅꺅- 거린다. “ 역겨운 새끼- 호모라 이 말이지?? ” 움켜잡은 목을 풀며 녀석이 중얼 거렸다. 다리에 힘이 풀려나는 막힌 목을 잡고 숨을 헐떡였다. 주저앉아 헐떡이는 나의 가슴을 녀석이 구둣발로 차버렸다. 나는 가슴에 오는 충격에 몸을 쓰러뜨리며 아픔에 신음을 했다... 아프다... 녀석의 구두가 쓰러진 나의 가슴을 밟는다. 녀석은 내 가슴에 발을 올려 논 체 몸을 숙여 나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잘생긴 녀석의 얼굴이 한눈에 보인다. 시니컬한 음성으로 녀석이 붉은 입술을 열어 말한다. “ 내가 여태 더러운 호모 새끼를 친구라고 끼고 다녔다 이 말 이군-? ” “ 흐윽- ” 가슴의 통증.... “ 세상에 - 그토록 고결한척 깨끗한 척은 다해 오고 호모였다-?? 십여 년을 나를 속여 오면서 추악한 가면을 쓰고 있었다 이 말 인가?? ” “ 으윽.... ” 눈물이 줄줄 흘렀다. 턱이 덜덜 떨렸다. 가슴이 짓이겨 온다. “ 네가 사랑에 마지않는 이제성에게 네가 호모라고 말하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 글쎄.... 눈물을 줄줄 흘리며 나는 녀석을 바라보았다. “ 비밀...로.. 해..줘... ” 겨우 겨우 숨을 몰아쉬며 그렇게 말했다. 녀석의 표정이 더더욱 굳는다. 그리고 혐오스럽다는 듯 그렇게 바라보고 있다. “ 이제부터 너는 내 친구가 아니다- 이제부터 너는 내 개야- 알겠어?? 그동안 내가 속아온 세월을 내 애견이 되서 갚아- 더러운 새끼- 내가 호모를 얼마나 혐오 하는지 알고 있잖아-??안 그래??? 네가 호모였다면 평생 비밀로 담아뒀어야지- 내 개가 되는 대신 네 마음은 이제성에게 비밀로 해주지- ” 내 얼굴에 침을 뱉으며 녀석이 말을 마친다. 눈물이 계속 흘렀다. 녀석이 밖으로 나가는 소리가 들리고 카페 안은 계속 해서 웅성거린다. 녀석의 여자가 녀석의 뒤를 쫓아가면서 나를 힐끗 바라 본 다. 혐오어린 표정... 제기랄... 얼마나 혐오 하는지 알고 있다... 혐오라도 해서 나를 그 머릿속에 생각해줘... 너 역시 그런 자신이 혐오스럽겠지.... 이제성을 향한 네 마음이 말이야..그 분노를 나에게 푸는 건가?? 거기다 그 이제성을 좋아한다고 까지 하니..... 좋아... 너의 개가 되어주지.. 네 맘속에 나만 담아 준다면... 더 이상 내 마음은 비밀이 아니야.... 비밀의 봉인을 풀기 위해.. 다시 되돌아 온 거다.. 채 민 준... **** “ 너 목이 왜 그러냐-? ” 모든 것이 낯설다... 고등학교 시절 살던 집 그대로.. 고등학교 시절 방 그대로의 모습... 거기다 아침이면 같이 학교를 간다고 찾아오는 수영도 그대로... 6년 전과 똑같다.. 집 앞에서 내 목에 난 시퍼렇게 멍이 든 손자국을 바라보며 묻는 녀석을 향해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수영이 내가 호모라는 사실을 알게 되도 이렇게 다시 찾아올까..?? “ 왜 그러냐고 묻잖아 새끼야- 누가 이 지경으로 만들었어?? 어?? ” 내 목의 상처를 바라보며 화난 듯 묻는 수영을 바라보며 애매모호하게 웃으며 그제 서야 대답을 했다. “ 어제 그런 일이 좀 있었어.. ” “ 민준이냐-?? ” 나는 그냥 피식 웃어준다. “ 웃지마 새끼야- ” 화난 듯 수영의 인상이 구겨진다. 수영이 녀석의 어깨에 팔을 걸치며 나는 다시 싱긋 웃었다. 이렇게 싱긋거리며 웃어 본지가 언제였던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래... 아마 민성이 녀석을 만나기 전 까지만 해도 나는 항상 이렇게 웃던 녀석 이였던 것 같다. 내 웃음에 수영이 녀석이 눈을 휘둥그렇게 뜬다. “ 너 맨날 그렇게 웃고 다녀라- 야- 사람 인상부터 달라 보인다- ” 나는 그냥 싱긋 다시 웃어 보였다. 수영도 피식 웃어 버린다. **** 내가 민준이 녀석이 개가 되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낀 것은 2교시쯤 수업 시간에 앞문을 열고 당당히 들어오는 민성이 녀석에 의해 서였다. 선생은 예전도 그랬듯이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는다. 하긴... 녀석의 집안에... 불똥 튀기지 않게 알아서 못 본 척 처신 하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민준은 수업중인 교실에 당당하게 앞문을 열고 들어와 거만하게 걸어온다. 내 옆자리였기 때문에 내 옆에 앉을 것이라 생각한 나의 생각은 녀석의 발길질로 깨졌다. 녀석이 발로 내가 앉은 의자를 차버리자 나는 쿵- 소리와 함께 의자와 함께 엉켜 쓰러진다. 그제 서야 못 본 척 넘어가던 선생도 놀라서 민준을 향해 소리친다. “ 채.민.준 무슨 짓이냐?? ” “ 개새끼랑 같이 수업을 못하겠어서 말입니다- ” 녀석이 핏빛 입술 끝을 말아 올리며 차갑게 비웃듯이 거만하게 말한다. 순간 교실 안 분위기는 조용하고 빨갛게 상기된 수영의 표정이 보였다. “ 네가 감히 의자에 앉아 수업을 받아-?? 개새끼 주제에?? ” 그제 서야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내 몸을 깔아뭉갠 의자를 바로 세우고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 훗- 아무런 반항도 없네- 순순히 복종이라... ” 녀석이 싸늘하게 웃는다. 다급한 선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이민영 일어나서 앉아 ” “ 그냥 이렇게 수업 받겠습니다. ” 나는 무릎을 꿇고 앉아서 그렇게 말했다. 복종해 주지... 너의 개가 되어 주기로 결정했으니깐... 민준의 차가운 비웃음.. 그 질척한 까만 눈이 역겹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다. 화가 난 선생이 민준을 향해 말한다. “ 너 잠깐 나랑 교무실 좀 따라와라-!! 이민영 너는 일어 나 앉아 있어-!! ” 앞서 교실 문을 열고 나가는 선생을 힐끗 본 녀석이 담배를 교복 주머니에서 찾아내 핏빛 입술에 베어 문다... 녀석이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나는 그 녀석을 그리며 담배를 피우게 되었었지... 지포라이터에 담배 불을 붙이고 붉은 불덩이가 보이는 담배 끝을 바라보았다. 녀석이 내 머리카락을 우악스럽게 잡아채며 말한다. “ 이 새끼 내 애완견이다- 그러니깐 앞으로 이 새끼한테 인간대우 하는 새끼들은 다 아작 날 줄 알아 - 알겠어?? ” 담배연기를 내 얼굴에 후 내뱉으며 녀석이 말한다. 아이들의 긴 침묵에 나는 피식 웃어 버린다. 담배 연기를 다시 내 얼굴에 내뱉고는 얼음처럼 딱딱한 목소리로 묻는다. “ 웃지마- 역겨워- ” 그리고 잠시 나른하게 나를 바라보던 녀석의 눈빛이 검게 일렁인다. 곧 손가락에 끼워져 하나의 그림 같은 모습의 녀석이 쥐고 있던 담배가 내 이마에 지진다. 이마가 타들어 가는 듯한 아픔에 눈물이 흐른다. 살이 타는 냄새와 아이들은 놀란 눈으로 그런 우리를 바라 볼 뿐 말리는 사람은 한명도 없다. 수영 역시 경악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담배 불을 이마로 지져 끄며 녀석은 피식 웃는다. 그리고 앞문을 열고 선생을 따라 밖으로 나간다. 나는 쾡 한 눈으로 멍하니 아이들을 둘러본다. “ 그래- 앞으로 인간 대우 해주지 마라- 난 채민준의 애완견이니깐..” 그렇게 중얼거리며 피식 웃는다. 수영은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을 뿐이다... 공식적인 채민준의 애완견임을 내 입으로 말한다. 그거 알아??? 이렇게 애완견이 되었다는 게 치욕스럽지 않아... 살아 있는 네 옆에 더 오래 붙어 있어서 가슴이 다 두근거린다... 나는 너에게 미친놈이니깐...... **** 수업이 끝난 오후... 녀석은 책상에 걸터앉아 담배를 피운다. 잿빛 담배연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며 녀석의 붉은 입술을 통해 품어지는 연기가 되고 싶다. 교복 타이를 헐렁하게 끌어 내리고 까만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는 녀석의 희고 기다란 손가락을 하나하나 지켜본다. 날카로운 눈매의 녀석의 긴 속눈썹이 지는 저녁노을을 받아 갈색 빛을 띄운다. 조각 같은 녀석의 콧대를 바라보며 피식 웃는다. 아름답다.... 지는 저녁노을에 물든 까만 머리카락이 너무나도 환상 같아서... 싸늘한 녀석의 시체를 떠올려 보면 너무나도 꿈만 같아서 눈물이 흐를 것 같다. “ 눈깔아- ” 녀석의 싸늘한 목소리에 나는 무릎 꿇은 체 고개를 숙여 교실 바닥을 쳐다봤다. “ 반항 없이 너무 순종 적이니 재미가 없군- ” “ ............................. ” 담배연기를 내뱉으며 녀석이 말 한다 “ 역겹지 않나?? 자기 자신이 말이야- ” “ .............. ” 따갑다... 담배로 지져진 이마에는 아주 오랜 세월 자국이 남겠지... 녀석이 머리카락을 움켜잡고 고개를 들린다. “ 대답해- ” “ ...역겨워... ” “ 역겨운 줄은 알고 있는 건가-? 그런데 그렇게 당당히 말 한 이유는 이제성을 그만큼 좋아하고 있다 이 말이냐 ? ” “ 그래- ” 그래... 너를 ... 그만큼 사랑하고 있다.. 채민준... 녀석의 붉은 입술이 위로 치켜 올려가며 싸늘하게 나를 비웃고 있음을 느낀다. “ 내 개 노릇을 할 만큼 사랑 한다- 그거냐? ” “ 그래.. ” 사랑한다.. 채민준... “ 내 개면 개답게 봉사해라- ” “ 어떻게... ” “ 훗- 남자들끼리 하는 섹스는 어떤 느낌일까?? 여자와는 다른 느낌인가-? ”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다. 눈은 계속 교실 바닥의 나뭇결 모양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 걱정하지마- 개와 섹스 할 만큼 비위가 좋지 않아- ” “ ............. ” “ 빨아- 이 정도 봉사는 해줘야지 개 기르는 맛이 나지 ” 녀석은 내 머리카락을 한손으로 움켜잡고 녀석의 것이 있는 쪽으로 끌어 들인다. 나는 녀석의 바지 후크를 내리고 녀석의 것을 잡아들었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른다. 나는 항상 녀석에게 겁탈 당하는 꿈을 꾸고는 했었지... 그거 알아-?? 그래서 나 자신이 역겹다고.... 네 녀석 것을 펠라 해 준 다는 게 이렇게 황홀한데.... 녀석은 한손으로 내 머리카락을 움켜잡은 체 다른 한손으로 담배를 피우며 별 감흥 없이 앉아 있다. 나는 녀석의 것을 입안 깊숙이 밀어 넣고 다시 뺐다 다시 입에 문다. 그리고 천천히 혀로 녀석의 것을 잡고 빨아들인다. 녀석의 것이 입안에서 첨첨 크게 부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표정은 그러나 녀석의 것과 다르게 무표정 하다. 희뿌연 담배연기를 내품으며 녀석은 나의 펠라를 받는다. 능숙하지 않은 솜씨로 어색하게 펠라 하며 식은땀을 흘렸다. 녀석의 것이 점점 커지고 녀석의 정액을 내 입안에 쏟을 때까지 계속해서 펠라를 멈추지 않았다. “ 재미없군- ” 녀석이 나의 머리카락을 잡아끌어 다시 녀석의 것에서 떼어낸다. 담배 연기를 내품으며 녀석은 그렇게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나는 흥분으로 빨갛게 물든 얼굴로 녀석을 올려다보았다. 녀석의 정액이 뭍은 내 입술을 들여다보며 녀석이 차갑게 말한다. “ 역겨워- ” 정말로 역겨운 듯 나를 바라보며 그렇게 말한다. 녀석이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들쳐 메고 교실을 빠져나가는 동안 나는 멍하니 무릎 꿇고 앉아 있었다.. 역겨워... 그래... 나 자신도 내가 역겨워... 눈물이 다시 한 방울 흐른다. 한참을 그렇게 눈물을 흘리고 있다. 어느새 붉은 노을은 지고 창문 사이로 바깥은 어두컴컴하다. 누군가가 나의 어깨를 쥐어 잡는다. 나는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고개를 돌려 내 어깨를 잡는 녀석을 쳐다본다. 이제성이 인상을 찌푸린 체 내 어깨를 잡고 쳐다보고 있다. 우윳빛 살결의 뽀얀 얼굴에 수정같이 맑은 느낌을 주는 눈동자에 내 모습이 담겨 있다. 그렇다고 여자 같이 예쁘다는 인상이 아닌 잘생긴 얼굴의 제성이 찌푸려진 흰 이마를 바라보며 나는 피식 웃었다. 네 눈에도 내가 역겹냐?? 나는 네가 얼마나 부러운 줄 모르겠다... 너처럼 맑은 녀석 이였으면... 이렇게 음침하고 역겨운 녀석이 아닌... 녀석의 마음속에 자연스럽게 담길 수 있는.. 시간을 걸쳐 올라와서도 채울 수 없을 그 녀석의 심장의 주인이 너라는 게... “ 채민준 같은 녀석에게 왜 이렇게 당하고 있어-?? ” “ 무슨 상관인데- ” 내 말에 놀란 눈으로 녀석이 한참을 나를 바라보다 다시 말한다. “ 이 반에 반장으로써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잖아- 너 우리 반 애들한테 무슨 소리 듣는 줄 알고나 있어?? 너보고 병신 호로 새끼라더라... 평소에도 음침해서 기분 나빴다면서- 열 받지 않아?? ” 굉장히 분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제차 묻는 제성을 싸늘하게 쳐다봤다. “ 그게 어때서- ” “ 하아- ” 제성이 하얀 이마에 자신의 손을 가져다 대며 한숨을 푹 내쉰다. “ 포기다- 포기- 너란 녀석은... ” 나 역시 한숨을 내쉬었다.. 녀석이 참 맑은 녀석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그 눈은 마치 비 온 날의 아름다운 무지개처럼 색색 깔의 아름다운 색을 내 품고 눈부시다. 녀석과는 너무나도 다른 맑은 그 눈에서 나 역시 무지개를 발견하며 자괴감에 웃음이 흘렀다. “ 근데 아까 이마 상처는 괜찮아-? ” 제성이 걱정 어린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나는 인상을 찌푸린 채 대결도 하기 전에 져버린 기분에 맥없이 제성을 바라본다. “ 두렵지 않아?? 지금 너는 나를 인간 대우 해주고 있잖아- 아까 채민준 말 못 들었어? ” “ 나는 예외야- ” 제성이 싱긋 웃는다. 아름답다.... 예외라..... 제성의 하얀 목을 비틀어버리고 싶었다. 예외라고 자신 만만하게 외치는 녀석의 그 목을 비틀어 다시는 그 말을 꺼낼 수조차 없게 이 세상에서 녀석의 목소리 따윈 더 이상 들리지 않게... “ 예외?? ” “ 한 달 전에 인가? 민성이가 그랬거든 무슨 짓을 하던 나는 예외라고- ” 숨이 막혀 왔다. 입안에는 아직도 녀석의 정액 맛이 느껴졌다... 역겨워 졌다... 나는 제성을 밀치고 교실 뒷문을 열어 제친다. 쿵- 쿵- 쿵.... 내가 복도를 뛰어 나가는 소리가 귓가에 웅웅- 거린다. 제일 끝 교실 옆에 자리 한 화장실이 보였다. 나는 화장실 제일 끝 칸에 들어가 변기를 잡고 위에 있는 모든 음식물과 아까 삼켜버린 녀석의 정액을 토해 낸다. 눈물도 계속 흐른다. 위액이 계속 입 밖으로 분출되고 시큼한 향기가 코를 찌른다. 가슴이 아프다.... 어떻게 하든.... 나는 녀석에게 예외가 될 수 없는 거냐?? 입술을 비틀어 피식 웃는다..... 안된다면 이번엔 내가 죽여서라도 차지할 거다.... 이번에는... 미친 듯이 토악질을 해 데고 세면대에서 입술을 닦아내고 나오니 이제성이 내 가방을 들고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이제성의 커다랗고 아름다운 눈동자를 바라봤다. 아름답다. 숨이 막힐 정도로... “ 속이 많이 안 좋았나봐? 괜찮아?? ” “ 꺼져-!!!!!! ” 꺼지란 말이다!! 내 눈앞에서... 누구나가 보면 사랑해 줄 수밖에 없는 그 아름다운 눈동자로 나를 걱정 하는 가식적인 말 따위는 지껄이지 말란 말이야.. 입을 닦은 탓에 뚝뚝 떨어져 내리는 물기를 손등으로 닦아내며 다시 한 번 외쳤다. “ 꺼져라고 했지- 씨발새끼야- ” 제성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내 앞에 가방을 내밀더니 조근 조근한 목소리로 말한다. “ 속 안 좋다고 밥 굶지 말고 죽이라도 끓여 먹어라.. 여기 가방.. ” 가방을 낚아채 잡고 이제성에게서 등을 돌려 출구 쪽으로 내려가는 계단 쪽으로 걸어갔다. 저렇게 순수한 눈빛이 싫다. 짓밟아 버리고 싶다. 나란 인간은 따라 갈 수 없을 정도의 그 순수가 나를 더 더욱 더럽고 추하다고 알려 주는 것만 같았다. 마치 악마가 속삭이듯... 너는 추하다...더럽다.. 빛과 어둠과도 같은 대비가 확연히 나 버린다. 채민준은... 그 새끼는.. 저런 이제성의 때 타지 않는 모습에 끌렸던 것 일까? 그렇다면 더더욱 나에게 승산이 없다. 그렇다면... 몸을 돌려 멍하니 내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이제성을 바라본다. “ 같이 돌아갈래? ” 그렇다면 네 심장을 뺏어 주겠어.. 네가 마음에 품고 있는 이 자식을 내가 갖겠다고..!!. 그래서 네 심장이 찢어지는 걸 바라 볼 거야.. 그리고 그 너덜너덜 찢어진 그 심장을 나에게 줘... 그 찢어지고 고름이 나는 그 심장 속에서라도 나를 담아줘.. 그 찢어진 심장 속에 한번 나를 품어 줄 수만 있다면... 어떤 미친 짓이라도 할 수 있을 정도로 나는 너에게 반해 있으니깐.. 아니, 돌아 있으니깐!! 어차피 나는 미래를 알고 있다. 채민준과 이제성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잠시라도 네 눈이 이제성을 바라보고... 이 새끼를 가슴에 품는 것을 참아줄 수 없다. 내가 미치도록 너를 탐하는 동안 너는 이 새끼를 생각하고 가슴에 품었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소름이 돋아. 십 수 년을 눈물로 지새웠던 내 미친 시간들에 대한 보복이기도 했다. 어차피 나는 더럽게도 추한 녀석이니깐... 겉도 속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썩어 들어 간 인간이니깐.. 제성은 갑자기 달라진 나의 태도에 놀란 듯 움찔 하다가 쾌활하게 웃으며 대꾸 한다. “ 무슨 심경의 변화인지 모르겠지만- 그럼 그러지-뭐- ” 입술을 비틀어 웃으며 이제성을 바라본다. 그 눈깔이 싫어. 그 모든 행복과 사랑스러움을 담고 있는 네 눈깔이 싫다구... 이럴 참으로 채민준의 개가 되기로 한 거였지? 이럴 참으로....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온 제성이 웃는다. 절대로 여성적인 느낌이 아닌 지극히 쾌활한 남자 느낌이다. 하지만 빛이 난다. 그 빛이 미치도록 호모라고 하면 하면 거친 욕설을 내뱉으며 혐오하던 그 녀석을 끌어 버린 것 일 수도 있다. 자신도 미쳐 버릴 정도로 거부하고 싶을 정도로, 하지만 미치도록 거부하면 거부 할수록 빨려 들어 갈 수밖에 없었을 지도 모른다. 처음 채민준 그 녀석을 보고 몇 년간 미치도록 내가 그러 했듯이.. 나란히 어깨를 맞대고 학교를 빠져 나오며 고개를 돌리자 뭐가 그리 불만인지 쾌활하게 웃고 있던 얼굴을 구기며 나를 한번 쳐다보고 다시 고개를 푹 숙인다. 그 모양을 아무감정 없이 그저 시기와 질투로 미쳐 버린 눈으로 바라 볼 뿐이다. “ 대체 이해 할 수가 없어... ” 고개를 푹 숙인 채 중얼거리는 이제성을 바라보며 피식 비웃음을 머금는다. 무엇을?? 친구에게 그것도 남자에게 욕정을 느끼는 나를?? 알고 봤더니 그 친구도 남자에게 욕정이나 느끼고 가슴에 품었다는 사실을 알고 미쳐 버린 나를?? 죽어도 나는 안 된다는 이 씨발 같은 상황을?? 무엇이 이해가 안 간다는 거지?? “ 네가 이해가 안가- 어떻게 자기를 그렇게 밑으로 깎아 내릴 수 있어?? 개가 된다니... 그게 말이 돼??? ” 이해가 안 된 다라... 나 역시 이해가 가지 않아.. 목을 비틀어 죽여 버리고 싶은 상대 사랑한다고 거짓이나 지껄이는 내 자신이.. 그렇게 해서라도 가지고 싶은 마음이라는 것.. 그래.. 네 말처럼... 이런 나 에게 나 자신도 이해가 가지 않아.. 하지만... 이 미친 심장은 녀석 없이는 안 된다고 알리고 있다구. 죽어버렸던 심장이 과거로 되돌아오면서 미친 듯이 뛰고 있어.. 개가 되든 뭐가되든 살아 있는 녀석을 바라 본 다는 자체만으로도 숨이 막히도록 가슴이 벅차올라. 나 자신을 통제 할 수가 없다. “ ..................... ” “ 뭐라고 대꾸라도 좀 해봐!! 너 정말 왜 그러는 거냐?? 어?? ” 이마에 녀석이 담배로 지진 상처가 후끈거린다. 비밀이였다구... 죽는 그 순간까지 아무도 모를....무덤에 그 미친 듯이 외사랑에 지친 심장을 묻어 버리고 말 한낮 비밀.. 그런데 너 때문에 돌아 버렸거든.. 어째서 나는 안 되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들었어.. 어째서 이 감정을 비밀로 묻고 죽어버려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구. 여태까지는 그래야 하는 게 당연한 줄 알았는데.. 씨발 그 다이어리를 보고 나서 알겠더라구.. 어째서..?? 비밀로 해야 하지?? 이렇게 미치도록 사랑하는데?? “ 지켜 줄 거지?? ” “ 응?? ” 입 꼬리를 치켜 올리며 묻는다. “ 내가 개 노릇을 해도 너는 예외니깐 내 곁을 지켜 줄 거지? ” “ 아- 그럼- 당연하지!! ” 환하게 웃으며 갑자기 덜컥 내 손을 두 손으로 부여잡으며 눈을 빛낸다. 한없는 순진한 눈동자에는 굳은 다짐이 일렁거린다. 병신새끼.. “ 절대로... 내 곁에만 있어... ” 그래,, 절대로 내 옆에만 붙어서 미친 듯이 네 녀석을 찾는 그 시선이 잠깐이라도 한번 내게 머물게만 해줘. 그 시선이 역겨움이든. 혐오스러움이든... 그 까만 눈에 나를 한번이라도 담아 준다면 그걸로 지.금.은 만족 하니깐... 이마의 상처가 내심 걱정스러웠던 듯 어느새 내 어깨에 어깨동무까지 서슴없이 하고 걷던 제성이 고개를 돌린다. 그 시선은 곧 초록빛으로 밤거리를 빛내는 네온사인의 간판에 고정 된다. 약국이라... 약국 안이 훤히 보이는 유리문을 열고 갑자기 기다려 보라는 말과 함께 달려 들어가는 제성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헛웃음이 흐른다. 대체 무슨 수작인건데?? 유리문 속 약국 안에서 약사에게 손짓 발짓을 해가며 무언가를 설명하고 있는 이제성의 넓은 등을 바라본다. 아무리 봐도 엄연한 사내새끼. 어림잡아 178-80정도는 되어 보이는 제법 큰 키의 제성이 약사와 대화를 나누다 고개를 돌린다. 한참을 그 등만 뚫어지게 바라보던 나는 그저 무감정한 눈빛으로 제성을 마주 볼 뿐이다. 어쩌면 이 무감정한 눈빛을 포장한 내면 안에는 추악한 질투가 숨어 꿈틀거리고 있을 지도 모른다. 나를 바라보며 쾌활하게 웃음 짓는 제성이 손가락으로 브이 자를 그리며 다시 약사를 바라본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친한 척 끈적이는 스타일이라는 것이 한 눈에 보이는 군. 나와 너무나도 반대라 오는 거부반응인지 머리가 돌아 버릴 정도로 짜증이 치민다. 급하게 주머니를 뒤져서 가끔 이민유가 그리워 질 때면 피웠던 담배를 찾아 입에 문다. 라이터를 꺼내 담배 끝에 담배 불을 붙이며 녀석이 담배를 나른한 표정으로 입에 물고 있던 모습을 떠올린다. 온 몸 구석구석 흥분으로 소름이 돋을 정도다. 붉은 입술이 벌어져 희뿌연 담배 연기를 길게 내 품어서 아지랑이처럼 녀석의 얼굴사이로 피어오를 때면 간질간질 할 정도로 몸이 달아 담배 연기 속에 가려진 녀석이 보고 싶어서 애가 탔었다. 눈을 감고 녀석을 떠올리며 길게 담배 연기를 내 품었다. 감은 두 눈 앞에 긴 속눈썹을 내리감고 담배연기를 나른하게 내품던 녀석을 떠올린다. 입가에 흐릿하게 웃음이 떠오르지만 곧 두 눈을 뜨고 가게 안의 제성을 바라보자 아까 전 이제성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부유한다. - 나는 예외야... 예외야.. 예외야...예외야..예외야..예외야... 씨발!! 이마의 상처가 계속 후끈거린다. 약사에게 하얀 약 봉지를 받아 나를 바라보며 싱긋 웃는 제성이 유리문을 당긴다. 딸랑- 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눈을 부릅뜨고 이제성을 바라본다. 어째서... 어째서.. 같은 남자인데.. .... 어째서.. 미친 듯이 십 여 년을 바라보기만 해왔는데.. 이 미친 듯 한 감정을 말하면 영원히 보는 기회 까지도 사라져 버릴까봐.. 친구라는 미명 아래... 죽을 때 까지 녀석의 옆에라도 붙어 있어도 좋다고.. 그걸로 만족 한다고 비밀로 걸어 잠그고 꼭꼭 숨겨두며 엿같이 살아왔던 나는 그 세월 동안 뭐였던 거지?? 어째서... 같은 남자인 이제성은... 이제성은....... 예외인 거지?? 나를 향해 다가오며 약봉지를 흔드는 제성을 흘긋 보고는 다시 이 미친 듯한 감정을 억누른다.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미친 듯이 이제성을 짓밟아 버리고 싶었다. 어째서 같은 남자인 너인 거냐고... 제성을 눈을 파내서 내 눈에 옮겨 심고 싶었다. 그렇게라도 한 다면 이제성의 눈을 한 나를 바라 봐 줄까? 마음과는 달리 나는 거짓으로 웃음 짓는다. “ 약 사왔다-약사 누님이 나한테 반했나봐-자꾸 말을 걸어오는 통에- 좀 늦게 나왔다-히힛- ” 밝게 웃음 짓는 제성. 비참해 지는 나란 인간 이민영. “ .................. ” “ 역시 무반응 이구나- 뭐라고 하든, 만사 귀찮다는 그 표정- 정말 질린다~ 사실 그래서 더 너란 사람이 궁금했었어- 친해지고 싶다고 생각했다면 믿어 줄 거야? ” “ ............ ” “ 민준이랑 친해지기 꽤 힘들었는데- 그 녀석 꽤 괜찮은 녀석이더라구- 꽤 사는 집 놈이라고 들어서 굉장히 편견을 가지고 그 녀석을 대했었는데 꽤 속이 깊은 거 같아- 그런 녀석이 너한테 그럴 줄은..생각도 못했어.. 그것도 너희 단짝 이였잖아.. ” 사람을 죽이고 싶다는 생각은 많이 했다. 채민준이 지금까지 만나 온 수 많은 여자들로 시작해서...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한 그 여자 까지. 하지만. 지금 채민준 이라는 인간에 대해 모든 것을 꽤 뚫고 있다는 듯 떠들어 데는 이제성에게 느꼈던 것만큼 강한 살심(殺心)을 느낀 적은 없다. “ 기분 나쁜 표정인거 같다- 대충 너의 얼굴 표정을 이해하기 시작한거 같아- 눈치 천단이거든!! 하핫- 이리 와봐- 연고 바르자- ” 칠흑같이 어두운 밤, 가로등 아래로 나의 팔을 잡고 끈다. 어쩔 수 없이 끌려가 가로등 아래 나와 키와 엇비슷한 이제성을 마주본다. 약봉지에서 연고를 꺼낸 제성이 길게 연고를 짜내자 멀건한 약물이 나와 가로등 불빛에 윤이 난다. 인상을 찌푸리며 약물을 바라보고 있자 어느새 민준이 녀석이 담배로 지진 상처로 약을 슬며시 바르기 시작한다. 친절 따윈 기대 하지 않았다. 삶을 살아가면서 나에게 친절했던 사람은 유일하게 친구라고 불리는 수영 정도였다. 죽이고 싶을 정도로 싫은 상대에게서 받은 친절 따위는 썩 유쾌하지 못했다. “ 되도록 상처 안 건드리게 살살 발랐는데- 아프지는 않았지?? ” 나는 묵묵히 한번 고개를 끄덕여 줬다. “ 자- 짜잔- 이번에는 키티 밴드다!! ” 키티 캐릭터가 그려져 있는 분홍빛 대일 밴드를 꺼내어 이마에 붙이는 동안 나는 그저 무표정으로 서 있다가 인상을 조금 찌푸렸다. 취향도 정말 병신 같다. 키티라니... 이런 건 계집애 같네.. “ 별로 싫어하지 않네?? 민준이 저번에 어디서 싸우다 돌아 온 건지 피투성이가 되어 왔을 때도 이 밴드 붙이려다가 팔을 비틀어버리는 바람에 팔 병신으로 좀 살았었어- 너도 봤었나? 꽤 오랫동안 학교에서 기브스하고 다녔는데.. ” 이마의 상처가 후끈거린다. 그저 다급히 담배를 폐 속 깊이 빨아들일 뿐 이였다. “ 가자- ” 더 이상 지껄이는 소리가 듣고 싶지 않아 몸을 급히 움직이며 걸어가자 그 뒤를 따르는 제성의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앞서 걷는 내 뒤를 어느새 추격해 다시 내 어깨에 팔을 두르는 제성의 팔이 싫지만 그냥 앞만 바라본다. 버스정류장 앞에 서 있는 내 옆에 들러붙어 있는 제성의 체온이 어깨에 느껴져 기분이 색다르다. 내가 사랑하는 녀석이 사랑하는 사람과 어깨를 맞대고 서 있다...?? 웃기는 군.. “ 너.. 꽤 나에 대해 관심이 없었지?? 솔직히 말하면 나에 대해 그동안 내 존재나 알고 있었는지 궁금했었거든- 가끔 네 앞에서 말도 걸고 했는데- 못 들었는지 그냥 지나가고 하더라구- 이 놈 참 기분 나쁜 녀석이다 했는데 그래도 그게 너란 아이가 아닐까 라고 생각 했어- ” 길게 늘어진 머리카락이 이마에 붙여져 있는 밴드를 가린다. 제법 서늘하게 불어오는 바람과 땅바닥에 짓이겨진 벚꽃 잎들이 쓰레기처럼 뒹군다. 듣고 싶지 않다. 내 옆에서 무엇이 그렇게 행복한지 연신 조잘거리는 제성의 목소리가, 가끔 옆에서 느껴지는 제성의 향기가.. 피하고 외면하려고 해도 느껴지는 맑은 느낌의 순수와 천진함이.. 담배를 깊게 빨아들이며 고개를 돌려 이제성의 얼굴 앞으로 후- 하고 담배연기를 내 품는다. 갑작스런 담배연기가 코앞에서 불어오자 숨이 막히는 듯 콜록거리며 몸을 숙이는 제성의 하얀 목덜미를 바라본다. “ 케켁- 아웃- 난 담배연기는 질색 이라구~ ” “ 그래-? ” 그렇다면 담배를 이진성 앞에서는 자주 피워줘야겠다고 생각했다. “ 담배는 별로 몸에 안 좋아- 내가 범생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극구 반대라구!! 너는 지금 독가스를 마시는 거나 마찬가지인 거야- 무섭지 않아??? ” 아아- 그러셔? 정말 미치겠군. 미쳐 버리겠어... 자조적인 웃음을 흘리며 담배 연기를 더 깊이 빨아들인다. 독가스라고? 아무렴 어때? 지금 나는 이 담배를 진정으로 원한다. 담배를 피우는 그 순간만큼은 녀석을 느낄 수 있으니깐.. “ 아- 버스 온다!! 너도 저거 타지?? 나 자주 너랑 같은 버스 탔었어- 거기다 우리 같은 동네인거 모르지? ” 저런 식으로 채민준 그 녀석에게도 굴었을까? 나도 모르게 떠오르는 생각을 애써 억 누른다. 버스가 서고 후다닥 버스 위로 소란스럽게 올라가는 제성의 뒤를 바라보며 역시 버스에 올라타려다 문득 내 입술에 맞물려 있는 담배를 바라보는 버스 기사의 날카로운 눈과 마주본다. 「 버스 안에서 담배는 안돼 」 아- 예전에 내가 그 녀석에게 그렇게 말했었다. 버스 안에서 담배는 안된다고... 그러자 그녀석이 그 까맣고 묘한 눈빛으로 한참을 나를 바라보다가 붉은 입술 끝을 살짝 올리며 웃음 짓고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었지... 자조적인 웃음을 흘리며 담배를 입에서 떼어내 길 바닥에 던진다. 기사가 신경질 적인 표정으로 버려진 담배를 바라보지만 나는 잠시 바닥에 떨어진 담배를 바라보다 버스에 올라타 버스 안을 둘러본다. 맨 뒷자리에 앉아 창가 옆 공간을 비워둔 제성이 빈 공간을 손바닥으로 탁탁 치며 나의 이름을 부른다. “ 이민영~!! 이민영~!! 여기야- 여기!! 네 자리 내가 맡았어 ” 생긋 웃는 눈매가 초승달처럼 휘어진다. 갈색 빛이 도는 눈동자인데도 웃으면 항상 무지개를 연상 시킨다. 아름다운 눈이다. 느리적 뒤쪽으로 걸어가 제성이 맡아 놓은 빈 자리에 걸터앉아 의자에 등을 덴다. 숨이 막혀 온다. 머리를 의자 등받이에 데고 깊게 한숨을 내 품는다. “ 하-- ” “ 마음이 답답한가 보구나- 그래도 아무것도 아닌 척 해도 속으로는 많이 힘든 거지?? 네 표정은 항상 무언가에 절박해 보이거든- ” 절박해 보인다라.. 그럴지도.. 항상 이런 식으로 남에 대해 뭐든 알고 있다는 식으로 사람에게 지껄이며 녀석에게도 그랬을까?? 채민준은 이런 스타일이 좋았던 건가?? 복잡한 머릿속 가득 나 자신에 대한 회의가 치밀어 오른다. “ 어-?? 방금 밖에 빗물 떨어진 것 같은데?? ”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본다. 칠흑 같이 어두운 하늘과 화려한 네온사인...그리고 간간히 떨어지는 빗물.. 비는 사람을 감상적으로 만든다. 지이이이잉- “ 어- 핸드폰 진동 소리 같은데- 네 거 아니냐? ” 제성이 동그란 눈매를 더욱 동그랗게 만들어 뜨며 나를 바라본다.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 보자 손바닥 위에서 핸드폰이 진동으로 흔들린다. 마냥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는 내가 답답했던지 옆에서 제성이 채근한다. “ 빨리 받아봐- 뭘 그렇게 바라만 보고 있어?? ” “ ................ ” 계속 손바닥 위에서 흔들리는 핸드폰 플립을 열어 핸드폰을 귀에 그냥 가져다 대자 전화건 상대방에 시끄러운 곳에 있는 듯 크게 소리를 지른다. “ 야- 이 미친 새끼야-!! ” “ 수영이?? ” 걸걸한 수영의 목소리가 핸드폰에서 세어 나와 조용한 버스 안 가득 울릴 정도다. “ 너 돌았지?? 그렇지?? 이 미친 새끼야- 나 지금 민준이 새끼 술집으로 불러냈으니깐 너도 빨리 와- 와서 화해를 하든 오해를 풀든 아무튼 오늘 그 좆같은 상황에 대해 설명 좀 듣자!! ” “ 어딘데? ” “ 어디긴 매일 가는 데지- 빨리 튀어와 새끼야- ” 자기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어 버리는 수영의 태도가 굉장히 화가 나 보인다. 나도 모르게 그런 수영 때문에 웃음이 흐른다. “ 어-?? ” 고개를 돌려 어어 거리는 이제성을 바라보자 이제성이 환하게 웃는다. “ 너... 웃는 얼굴이.. 굉장히 멋지구나~ 무언가 굉장한 걸 발견한 기분이야 - 매번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이 웃는 얼굴에 전부인줄 알았는데 진짜배기 웃음을 이렇게 숨겨 두고 있었다니- 놀라운데?? ” 웃고 있던 나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정말 하나하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점점 내 자신이 흉물스럽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으니깐. 지독하게도 너란 인간과 어느 사이엔가 나 자신을 저울질 하며 비교하게 만들 지마. 이제성... 그 하얀 목을 잡고 비틀어 버렸으면. 그 눈을 파내서 내 눈에 박고, 그 녀석에 대해 얘기 하는 그 혀를 뽑아 버렸으면... 그래버렸으면 좋겠다... 그 투명한 눈으로 나를 바라볼 때면 역력한 패배의 쓴 맛을 느껴버린다. 아무리 내가 발버둥 처도 나를 바라 봐 주지 않는 사실이 숨이 막혔다. 녀석의 눈을 한 나를 사랑해줘도 좋다고... 그래도 바라만 봐 줘도 좋다고 생각했다. 나의 긴 침묵에 어색한 미소를 흘리며 머리를 긁적이며 제성이 고개를 돌린다. 마침 버스가 수영과 만나기로 한 술집이 있는 정거장에 서자 벌떡 일어서 제성을 향해 웃어 보인다. “ 내 웃는 얼굴이 마음에 들었다면 네 앞에서는 항상 웃어 줄 수도 있어- ” 그래.. 웃어 줄 수 있지...그 대신 채민준이 너에게로 향했던 마음을 내게 줘... 제성이 내 말에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지만 제성에게서 등을 돌려 버스에서 내렸다. 치이잉- 버스 문이 닫히고 곧 버스가 출발을 한다. 교복 바지에 손을 집어넣고 출발하는 버스를 바라보고 있는 찰나 내 옆을 지나가는 버스 사이로 뒷문을 열었는지 제성이 목을 빼고 소리를 지른다. “ 이민영- 약속한거다-!!! 매일 웃어 줘야 돼!!! 그 대신 항상 나는 옆에 있을게- 우리 좋은 친구가 돼자~” 버스가 지나침과 동시에 메아리처럼 들려오는 이제성의 목소리가 길게 여운을 준다. 가슴이 지끈거린다. 내가 이제성을 향해 웃을 수 있을까?? 내 모든 질투의 대상이 되어 버린 저 녀석에게...?? 한참을 버스의 모습이 점점 희미해 질 때까지 서 있던 내가 몸을 돌린다. 숙였던 고개를 들어올려 주위를 둘러본다. 화려한 네온사인.. 어느새 밤거리는 술로 찌든 젊은 사람들로 넘쳐나는 거리에... 그리고 그 속에 오렌지 빛 가로등 아래로 희뿌연 담배연기를 길게 내품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는 채민준.. 툭- 드문드문 내리던 빗물이 굵은 방울이 되어 내 뺨 위로 떨어져 내린다. 비를 맞은 뺨이 묘하게 차갑게 느껴진다. 그 칠흑 같은 까만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나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은 터져 버릴 것처럼 쿵쾅거린다. “ 헤어짐이 아쉽나-? ” 붉은 입술이 비꼬듯 묻는다. 저음의 시니컬한 음성.. “ .............. ” “ 연애를 하고 싶으면 주인 허락을 받아야지- 안 그래? ” - 14 - 다시 한번 담배 연기를 내 품으며 나른한 표정의 민준이 가로등에 등을 기대어 나를 바라본다. “ ............................. ” 마치 나는 녀석의 인간의 모습을 한 ‘개’처럼 녀석을 향해 걸어간다. 한걸음.. 두걸음... 다가가는 발걸음 하나하나에 심장은 미친 듯이 뛴다. 점점 가깝게 보이는 녀석은 살.아.있.다... 그래... 몇 시간 전 만해도 나는 녀석에게 펠라를 해주었잖아!? 점점 굵어지는 빗물이 거리를 적신다. 손을 뻗으면 닿을 정도의 거리 까지 다가가 녀석을 바라본다. 오렌지 빛 가로등 불빛을 받아 손으로 만지면 검은 물이 들을 정도로 까만 머리카락이 붉은 빛을 머금는다. 칼로 베일 듯한 날카로운 턱 선이 불빛을 받아 유난히 도드라진다. 나도 모르게 손을 녀석에게 뻗으려다 다시 교복 주머니에 집어넣는다. 만지고 싶어도... 만질 수 없다. 녀석은 항상 만질 수 없는 사막의 신기루와도 같았다. 결코 볼 수는 있어도 머무를 수도 만질 수도 느낄 수도 없는 환상.. “ 주인 허락 없이 발정 난 암캐처럼 굴면 곤란하지- ” 나른한 저음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귓속을 파고든다. 발정난 암캐라... 질투라도 하는 건가?? 누구를 향한 질투?? “ 내가 사랑하는 놈도 네 허락이 있어야 만날 수 있는 거냐? ” 매캐한 담배 연기를 훅 내품으며 녀석의 눈동자가 순간 살기가 치민다. 빠각- 골이 다 흔들릴 정도의 충격에 고개는 돌아가고 입안의 살이 터져 피가 입술 끝으로 흐른다. 우악스러운 손길로 앞 머리카락을 쥐어 잡고 들어 올리자 뒷목이 꺾이며 어느새 녀석의 숨결이 고스란히 닿을 정도로의 가까운 거리에서 차갑게 굳은 표정의 그 까맣고 질척이는 눈동자와 마주친다. 마치 금방이라도 내 목을 꺾어 버릴 것만 같다. 입 안의 살이 꽤 많이 뭉그러진 듯 핏물이 계속 입 끝에 스며들어 흘러내린다. “ 하- 이마에 이건 이제성이 붙여 라도 준건가? ” “ ....................... ” “ 주인 말을 못 알아먹는 새끼는 맞아야 알아먹지- ” 빠각- 다시 한번 내 머리카락을 잡은 상태에서 날아 온 주먹이 다른 한쪽을 갈긴다. 골이 뒤흔들리는 느낌과 다시 입안 한 쪽이 얼얼해 진 것이 다른 한쪽처럼 뭉그러져 핏물이 흐른다. 다리에 힘이 풀려 늘어지자 휘어잡고 있던 머리카락을 다시 뒤로 꺾는다. 빗물이 툭 하고 피가 흐르는 턱 위에 떨어져 물과 피가 섞여 흐른다. 몇 방울씩 떨어지던 빗물이 수가 많아진다. 떨어지는 빗방울에 머리카락이 촉촉이 젖어와 나도 녀석도 젖어 간다. “ 네 개가 되기로 한 것도 그 녀석 때문 이였어... 이렇게 맞을 이유 없다. ” 풀린 눈에 애써 힘을 주며 녀석을 바라본다. 무표정한 녀석의 붉은 입술 끝이 위로 치켜 올라간다. 비웃듯 냉소를 흘리며 무표정한 녀석이 담배 연기를 내품으며 속삭인다. “ 훗- 단지 비밀로 해주기로 했을 뿐인데- 그 밖에 무슨 약속을 했다는 거지? ” 없다... 그러고 보니 단지 비밀이라는 한 단어와의 거래였다. 자조적인 웃음이 흘러 나도 모르게 피식거리자 다시 한번 주먹이 강타한다. 우득.. 어금니 몇 개가 부러지는 소리가 난다. 이런.. 이러다 정말 병신이 되겠는걸? 후두둑- 거리는 온통 비가 쏟아지는 소리로 가득하다. 부러진 어금니를 입 밖으로 뱉어 내자 피와 침이 섞인 줄기가 턱을 타고 흐른다. 손등으로 닦아내며 다시 피식 웃어 버린다. 나는 매저키스트 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친히 폭력을 행사하는 녀석이 살아 있다는 감각에 온몸이 흥분이 되는 걸 보면.. 계속 날아오는 주먹과 발길질에 그저 아무런 대응 없이 맞고만 있다. 소나기가 내리듯 굵은 빗방울이 온 거리를 적시고, 갑작스런 비에 사람들은 상가에 들어가 있는 상태인지 어둡고 빗물로 가득 채워진 이 거리에는 나를 때리고 있는 녀석과 맞고 있는 나뿐이다. 빗물로 옷 속에 침투해 피부까지 젖어 들고 머리카락은 빗물이 가득 젖어 맞을 때 마다 뺨과 이마를 감싸는 머리카락의 감촉이 그리 좋지 않다. 퉤- 핏물을 뱉어 내며 나는 맞아서 쓰러진 몸을 일으킨다. 다시 한번 복부를 가격하는 주먹에 억지로 일으켰던 몸이 쓰러진다. 더 이상은 하체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일어나려고 힘을 주지만 몸이 마음대로 일어나 지지가 않는다. 핏물이 질척하게 늘어진 턱이 덜덜 떨려오고, 빗물에 젖어 든 몸은 끔찍할 만큼 무겁다. 힘들게 고개를 들어 녀석을 바라본다. 빗물에 젖어 묘하게 섹시한 느낌의 녀석은 그 까만 밤하늘처럼 음습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하얀 목덜미에서 쇄골로 흘러 들어가는 빗방울이 묘하게 색스러워서 나의 눈은 녀석의 목덜미에 고정 되어 있다. 심장이 묵직하게 아래로 내려앉는다. 잔뜩 얻어 터져 온 몸 구석구석 아프고 아리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걸레가 되어버린 내 몸으로, 나를 이렇게 만든 녀석을 애타게 쳐다보고 있다. 항상 목마른 시선으로 애타게 쳐다보고 있다... 나에게 어떻게 하든지 나는 그렇게 녀석만 바라보았다. 녀석을 처음 보게 된 순간부터 지금까지.. 12살 어느 여름.. 찌는 듯한 열기에 숨이 턱턱 막혀 올 정도로 온난화 현상이 극성이던 어느 날. 녀석을 만났다... 날 낳은 여자는 소위 말하는 ‘미친년’ 이였다. 제법 부잣집의 딸의 가정으로 태어나 성장하기는 했지만, 우연히 학교수업이 끝난 오후 밤늦게 친구들과 밤거리를 서성이던 그녀는 한 사내에게 겁탈당하여 나를 몸에 밴 이후 미쳐 버렸다고 한다. 한 마디로 내 아버지라는 사람은 강간범 이였다. 나는 거의 외할머니의 손에서 키워졌다. 내 어머니라는 여자는 미친 이후 동네 이곳저곳을 잠옷 차림으로 서성이며 생활 했다. 12살의 나에게 항상 부르튼 입술에 더럽혀지고 찢어진 잠옷을 입고, 알 수 없는 웃음을 흘리며 동네에 돌아다니는 그 여자는 혐오의 대상 이였다. 당시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도 그녀는 자주 학교 운동장에 출몰 했다. 기괴한 웃음소리를 흘리며 그네를 타고 시소를 탔으며, 가끔 동네 아저씨들에게 끌려가 범해지기도 했다. 어느 놈의 씨앗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녀의 배가 점점 불어 오르는 것을 안 이후, 동네 사람들의 수군거림 속에서, 나는 강간범의 자식이라는 이름표를 단체 생활했지만, 아이들에게는 그 미친 여자가 어미인 사실을 숨긴 채 가식적으로 웃으며 아이들과 어울려 다니던 시절 이였다. 찌는 듯이 더운 어느 날 손바닥에 스며드는 끈적이는 땀의 느낌에 이맛살을 찌푸리며 학교 수업을 끝마치고 학교 운동장을 걸어 나가던 중이였던 걸로 기억 한다. - 끼아아아아아아악- 기괴한 비명 소리.. 고개를 돌리자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움켜잡고 우악스러운 손길로 그네에 올라타 있던 내 어미란 여자를 끌어 내리는 놈은 우리 집 앞집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김씨 아저씨였다. 어릴 적부터 온화한 눈빛으로 가끔 사탕 하나를 건네주시던 그런 포근한 아버지 같은 느낌의 아저씨. 그런 김씨 아저씨가 그 여자의 머리채를 잡고 그네에서 끌어 내린다. 미친 듯이 질질 끌려가는 그 여자의 눈은 허옇게 뒤집어 지고 있다. 나는 마치 그 자리에서 못 박힌 채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식은땀이 이마에서 뺨을 타고 주욱 흘러내리지만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학교 골목 어두운 체육과목에 필요한 비품이 들어있는 창고 쪽으로 끌고 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아무 행동도 하지 못하고 바라보고만 있다. 추악한 이기심으로 그 여자는 어차피 이 놈 저 놈에게 강간을 당했고 뱃속에 그 강간한 놈의 씨앗을 품고 있다는 사실이 뚜렷이 보이는데 뭐 하러 김씨아저씨가 다시 한번 그 여자를 강간하는 것을 제지해야 하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는 이기적이고 추악한 놈 이였지만 곧 창고 안으로 던져지듯 끌려 간 그 여자의 마지막 비명 소리를 듣는 순간 머릿속에 있던 무언가의 핀트가 나가 버렸다. 미친 듯이 뛰어가 창고의 낡은 철문을 열었다. 어두컴컴한 창고 안에 내가 문을 열자마자 밝은 빛이 들어가 창고 안의 모습이 환하게 보인다. 내 어미란 여자위에 올라타 헉헉거리는 김씨 놈의 뒤통수가 곧 밝은 빛에 돌아가 나를 바라본다. ‘죽여 버리겠어.’ 오직 내 머릿속 가득 그 새끼를 죽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랫입술을 깨물며 그 새끼를 대갈통에 어깨에 메고 있던 책가방으로 냅다 후려쳤다. 허나 12살 고작 어린 녀석의 힘으로 내리친 효과가 그닥 아프지 않았던지 김씨 놈은 인상을 조금 찌푸린 채 가방을 뺏어 낸 후 두툼하고 커다란 손바닥으로 내 뺨을 내리친다. 뺨에서 불이 나는 느낌과 함께 눈에서도 불똥이 튄다. 돌아간 뺨을 돌려 김씨 놈을 노려보며 소리를 질렀다. 「 우...우리 엄마 그냥 놔둬-!!!!! 」 김씨 놈이 피식 웃으며 다시 한번 손을 들어 올릴 때였다. 「 아- 씹!!! 아까부터 졸라 시끄럽네- 」 언제부터 있었는지 몰라도, 낡은 매트 위에 담배를 물고 불량한 자세로 앉아 있는 녀석은 오늘 우리 반으로 전학 온 그 녀석이다. 정치가할아버지에 미국에서 꽤 알아주는 사업을 하고 있다는 아버지를 둔 채.민.준... 12살치고 굉장히 큰 키에 하얀 얼굴, 부티 나는 옷차림, 다가갈 수 없을 정도로 차갑고 무표정한 얼굴의 녀석은 고작 어린 12살의 나이에도 감히 함부로 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풀풀 풍겨서 처음 전학을 온 그날부터 내 뇌리에 강하게 박혔던 녀석 이였다. 녀석은 담배를 입에 문채 짜증으로 하얀 이맛살을 찌푸린 채 담배 연기를 후- 내품으며 매트에서 일어 나며 천천히 이쪽을 향해 다가오며 말한다. 「 좆질은 다른데 가서 하라구-」 갑작스런 녀석의 등장에 놀랐는지 김씨가 벌떡 일어난다. 허옇게 눈을 뜨고 침을 질질 흘리며 낑낑거리고 있는 내 어미란 여자를 한참이나 나는 바라본다. 눈에서 불길이 인다. 있는 힘껏 김씨 놈한테 달려들어 주먹을 날리자 김씨 놈은 내 주먹을 잡아채 버럭 소리를 지른다. 「 아니- 어린 새끼들이 쌍으로!!! 」 주먹으로 냅다 내 안면을 강타하려던 김씨 놈을 바라보며 눈을 감았다. 눈을 꼭 감고 부들부들 떨고 있지만 아무런 타격도 없다. 이상해서 눈을 슬며시 뜨니 김씨 놈의 목에 나이프를 겨누고 히죽거리며 웃고 있는 채민준이 보인다. 「 아무대서나 좆질하고 다니다 고자 되는 수가 있다구- 」 붉은 입술이 비틀어 올라가며 차가운 목소리로 이 상황을 즐기듯 말하는 채민준과 벌벌 떨며 잡혀있는 김씨 놈이 떨리는 목소리로 사정한다. 「 미... 미안하다- 그.. 그.. 칼 좀 치워라!!」 입꼬리를 치켜 올리며 채민준이 나를 한번 바라보더니 말한다. 「 야- 꼬맹이- 」 「 ...어...?? 」 「 이 새끼- 고자를 만들든 네 맘데로 해-!!」 그제 서야 나는 전신을 벌벌 떨고 있는 내 어미라는 여자를 흘긋 바라보고 김씨 놈을 향해 다가가 주먹으로 있는 힘껏 그 놈의 면상을 갈긴다. 김씨 놈은 목에 겨눠진 나이프 덕택에 꼼짝 없이 계속 내가 때리는 데로 얻어맞는다. 얼굴이 피 떡이 되도록 두들겨 맞아 정신을 잃은 김씨를 바라보고 나는 헉헉거리며 채민준을 올려다본다. 무표정한 얼굴로 그런 나를 바라보던 녀석이 담배를 다시 입에 물고 지포 라이터를 여는 철컥 소리와 함께 불을 붙이며 나와 눈을 마주 본다. 「 고마워- 」 나는 헉헉거리며 그렇게 말한다. 녀석은 그저 무표정하게 나를 바라보더니 창고 밖으로 나간다. 아까만 해도 밝았던 바깥은 어두컴컴한 것이 곧 비라도 뿌릴 것 만 같다. 날씨가 변덕스럽게 바뀌는 그런 날이다. 빗방울이 뚝 하고 녀석의 뺨에 떨어져 날카로운 턱 선을 타고 희디흰 목으로 그리고 쇄골 속으로 흘러들어 간다. 그 모양을 나는 멍하니 바라본다. 그리고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는다. 녀석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한번 바라보더니 다시 나를 바라본다. 까만 눈동자가 마치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빨아들일 것 같이 깊고 어둡다. 나는 그 눈 속에 빨려 들어가 빠져 나올 수가 없다. 마치 블랙홀처럼... 나도 모르게 녀석을 바라보며 웃는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타인을 향해 진짜 웃음을 흘렸다. 그 후부터.. 나는 녀석의 옆에서 친구라는 미명아래 살아왔다. 처음 보는 순간 녀석에게 빠지고 그 이후 한번도 나의 심장이 녀석의 향해 뛰지 않은 적이 없었다. 빗물에 젖은 머리카락의 희고 기다란 손가락으로 쓸어 넘기며 묘하게 붉은 입술이 차갑게 비틀린다. “ 더러운 새끼- ” 나를 향해 침을 뱉으며 녀석이 피우고 있던 담배를 쓰러져 있는 내 옆에 떨어뜨린 채 사라진다. 빗물과 핏물에 엉켜서 바닥에 쓰러져있는 나의 시선은 오직 녀석의 사라져 가는 뒷모습에 고정 된다. 더럽다고?? 미친 듯이 너만 바라본 내가 더럽다고?? 남자인 너를 남자인 이 내가 사랑한 게... 그렇게 더러운 거였다면.. 너는 어째서.. 이제성을 사랑하는 거지?? * * * 하늘에서 구멍이 뚫린 듯 미친 듯이 쏟아져 내리는 빗물 속에서 정신없이 누워 있는 내 앞에 하얀 운동화가 보인다. 감긴 눈을 억지로 부여 뜨며 그 흰 운동화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누구 운동화였더라...?? “ 이민영!!!!!! 너 이 새끼!! 이게 어떻게 된 거야?? ” 아.. 수영이 자식... 저 운동화를 사러 같이 갔었지... 몇 년 전 이였더라.. 하지만 지금 이 운동화는 몇 년 전이 아닌 희고 때 한점 없는 것이 몇 일전에 산 티가 역력한 새 운동화다. 과거로 돌아 온 다는 것은 참 희귀한 기분이다. 장점이라면 미래를 알 수 있고 소중 한 것을 다시 한번 쟁취할 수 있는 기회? 아니면 전에는 모르고 지나쳤던 중요한 순간들을 실수들을 돌이킬 수도.. 그래 여러 가지가 있다.., 단점이라면 이미 겪은 일을 또 한번 다시 겪어야 하고 알고 있는 것을 해야 한다는 무료함과 귀찮음이다. “ 쿨럭- ” 입에서 핏물이 기침과 함께 울컥 흘러나온다. 수영이 녀석이 쓰고 있던 빨간 우산을 어깨에 걸친 채 쓰러져 축 늘어져 있는 나의 팔을 자신의 목에 얹히고 부축해 일으키며 소리를 지른다. “ 누구야?? 어떤 새끼가 너를 이 지경으로 만든 거야?? 씨발- 너도 안 오고 민준이 새끼도 안 와서 그 안에서 몇 시간을 기다리면서 폰 때려도 전화 안 받고!!!그래서 나와 봤더니 너는 왜 이 지경이냐구!! 누가 너를 이렇게 팬거야?? ” “ 쿨럭- 으..ㄱ..... 주인님이... 흣... ” 자조적인 웃음이 흐른다. 그래 나의 주인님이.. 어쩌면 내 영혼의 주인 일지도 모르지.. “ 주인님?? ” 눈썹을 치켜 올리며 내가 한 말을 되물으며 수영의 얼굴이 잠시 굳는다. “ 설마 민준이 새끼는 아니지?? ” “ 딩동댕~ 흣.. ” 장난스럽게 딩동댕을 외치지만 곧 나를 향해 주먹을 날리는 수영이 녀석 때문에 신음을 흘린다. “ 병신!!! 너 돌았어 이 새끼야!! 돌았다구!!! 왜 맞냐 이 병신아!! 너흰 친구라고!!! ” 수영의 목소리가 친구가 아니라고 대꾸 하고 싶었지만 몸이 으슬으슬 떨리는 것이 제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덜덜 떨리는 내 몸을 감지했는지 녀석은 더는 소리를 치지 못하고 나를 부축해 걸어가며 투덜거린다. 비틀... 비틀.. 눈앞이 뿌옇다. 온통 까만 풍경에 어지러운 네온사인이 정신을 혼미하게 만든다. 빨간 우산이 유난히 눈에 띈다. 독특한 취향의 수영이 자식은 계집 같은 취향을 딱 좋아 하는 게 이제성 새끼랑 놀면 아주 잘 어울릴 것도 같다. 투둑- 투둑- 빗물이 우산에 맞아 떨어지는 소리가 감미롭다. 손등으로 턱에 흐른 핏물을 닦아 낸다. 가끔 우산을 쓰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향하지만 눈살을 찌푸리며 시선을 돌린다. “ 대체 뭐야..... 나는 이 상황에서 너희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냐?? 너 이렇게 맞아서 이 모양인데 나는 어떻게 해줘야 하는 거냐구.... ” 수영의 중얼거림에 고개를 들어 올려 수영을 바라본다. 빗물에 젖어든 금발머리카락과 어린 수영의 얼굴. “ 나한테.. 신경 꺼-그러면 돼는 거니깐.. ” 차갑게 말했다. 수영이 나를 도우려 한다면 녀석은 친구 하나를 잃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가 택한 길이기에 수영이 녀석 까지 끌고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수영의 얼굴의 얼굴이 굳어지지만 나를 밀쳐 내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저 굳어진 얼굴로 피가 뭍은 나의 손을 억세게 잡아채고 나를 부축할 따름이다. 투둑- 투둑- 우산가득 빗물이 떨어지는 소리에 눈이 감겨 온다. 점점 혼미해져 가는 정신 속에서 나의 머릿속 가득 떠오르는 얼굴은 채민준 그 자식 뿐 이다. 분명 나는 내 어미란 여자의 피를 이어 받아 미친놈인게 분명하다. 온 몸 가득 내 몸은 열병처럼 녀석을 그리워한다. 힘없이 축 쳐지는 내 몸을 끌어 올리며 수영이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나는 희미해진 기억 속으로 얼핏 들은 것만도 같다.. * * * 『 역겨워- 』 긴 입맞춤으로 숨을 헐떡이는 내 앞에서 차갑게 내 뱉는 채민준의 얼굴을 바라보며 쓰게 웃는다. 이게 꿈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대체적으로 항상 나는 채민준과 키스를 나누는 꿈을 꾸기도 녀석이 내 몸을 더듬기도 혹은 섹스를 나누는 꿈을 꾸며 몽정을 하기도 했었으니깐... 하지만 항상 녀석의 마지막 대사는 ‘역겨워’로 끝이 난다. 녀석의 그 까만 머리카락에 손을 뻗어 휘감는다. 손끝이 까맣게 물이 들 것만 같다. 그 까만 머리카락의 보드라운 듯 하다. 꿈이라는 것을 아는 만큼 감촉 따윈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느낌일 뿐.. ‘역겨워’라고 말하면서도 내가 만지자 나른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녀석의 표정을 보면 더더욱 이게 꿈이 아니 였으면 한다. 녀석의 목에 얼굴을 묻고, 그 향기를 흠뻑 들여 마신다. 하지만 향기는 느껴지지 않는다. 확실히 이것은 꿈이다. 타는 듯한 욕망으로 녀석을 만지고 또 만진다. 짙은 눈썹에서 눈꺼풀, 숱 많고 기다란 속눈썹, 조각 같은 콧날, 붉은 입술... 만지고 또 만지는데도 이 욕망은 사라지지 않는다. 마치 만지면 만질수록 부풀어 오르는 풍선처럼 가지고 싶다는 욕심만 커질 뿐이다. 만지고 만져도 녀석을 만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녀석의 허상만을 끌어안은 채 꿈속에서도 내 자신은 그렇게 눈물짓고 있다. 천천히 무겁게 느껴지는 눈꺼풀을 들어 올린다. 뜨여진 두 눈 앞에 어둠만이 공존 할 뿐이다. 눅눅한 곰팡내 나는 이 방은 내 방이 분명하다. 아마도 내가 꿈을 꾸는 내내 수영이 녀석은 낑낑거리며 나를 집으로 옮겼을 것이다. 욕설을 툴툴거리며 나를 옮겼을 녀석을 떠올리니 괜히 헛웃음이 흐른다. 손목에 채워진 시계를 대강 훑어보니 작은 시계 바늘이 5를 가리키고 있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자 온 몸이 쑤시지 않는 곳이 없다. 비명을 내지르고 싶을 만큼 깊은 통증에 아랫입술을 깨물고는 비틀거리며 일어나 화장실로 들어갔다. 화장실 유리 속에 핏물로 얼룩진 내 얼굴이 비친다. 심각하게 부어오른 두 뺨과, 멍 자국이 난 광대뼈 주위를 살펴보며 주머니에 대충 구겨져 있는 담배 한 개비를 찾아내 입에 문다. 라이터 불을 담배 끝에 붙이고 눈살을 찌푸린다. 부어오른 두 볼이 흡사 양 볼에 가득 사탕을 물고 있는 것 같다. 인상을 찌푸리며 한참 담배 연기를 깊이 빨아들이고 내 품는다. 눈앞을 부유하는 뿌연 담배연기 속에 추악한 내 얼굴이 비춘다. 나는 내 어미란 여자를 닮았다. 이 눈만 빼고 모든 것이 어미와 판박이였다. 마치 거울 속에 미쳐 버린 내 어미의 모습을 발견하며 샤워기에 물을 틀었다. 쏟아지는 물줄기에 입고 있던 교복이 젖어 든다. 타이를 끄르고 단추를 하나하나 풀며 젖어 들어 온몸에 달라붙는 셔츠를 벗어 낸다. 바지 버클을 내리고 교복 바지와 팬티까지 벋어 다 벋은 맨 몸으로 피멍이 가득한 몸을 닦아 낸다. 물에 젖어 꺼진 담배를 대충 바닥에 떨어뜨리고 낄낄거리며 웃어 버린다. 거울 속에 벌거숭이에 사랑에 미친놈 얼굴이 비춘다. 이마에 붙여진 분홍빛 키티 밴드를 띄어내자 흉찍하게 지져진 동그란 흉터가 보인다. 채민준이 나에게 만들어 준 자국. 녀석의 ‘개’라는 증명인 샘이다. 또한 사랑에 미친 이민영의 나 자신에 대한 증명인 샘이기도 하다. 대충 샤워를 마치고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 낸 후 예전 기억을 더듬어 옷장에 남아 있는 한 벌의 교복을 갈아 입는다. 터진 입술 끝에 대충 약상자를 뒤져서 연고를 바르고 그 위에 밴드를 덧붙이고 집 안을 빠져 나온다. 구형의 예전에 내가 쓰던 핸드폰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수영에게 먼저 학교에 가 보겠다고 문자를 보낸 후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는 새벽, 학교를 향해 가는 버스에 올라탄다. 남색빛이 도는 새벽하늘을 버스 유리창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방금 올라탄 버스 정류장에 소란스럽게 버스에 올라타는 녀석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이맛살을 찌푸린다. 새벽부터 펄펄 나는 인간이군 이제성. 방금 머리를 감았는지 물기에 촉촉이 젖은 갈색 빛이 도는 머리카락을 대충 쓸어 넘기며 버스에 올라타는 이제성이 곧 뒷자리에 앉아 인상을 찌푸리며 앉아 있는 나를 발견한다. 동그란 눈매를 더욱 크게 뜨며 이제성이 놀란 얼굴로 나를 향해 쿵쾅거리며 뛰어와 내 옆에 털썩 앉으며 걱정스러운 듯 말을 건다. “ 너..... 얼굴이 왜 이래?? ” 그저 뚱한 얼굴로 무표정하게 이제성을 훑어본다. 어느 점이 채민준을 끌어 들이는지 어떤 것일까 하는 생각에 녀석의 행동 하나하나에 신경이 곤두선다. 하얀 손가락이 어느새 내 턱을 잡고 이쪽저쪽 돌려 보며 심각하게 쳐다본다. 마치 자기가 다친 사람 마냥 인상을 찌푸리며 손을 덜덜 떨어 데는 이제성 때문에 잡흰 내 턱까지 동시에 덜덜 떨려 와서 기분이 그리 좋지 못하다. 이런 녀석 따위의 걱정은 필요 없다. 목 위까지 치밀어 오르는 화를 식히며 얼른 손으로 턱을 잡고 있던 제성의 손을 떨구어 낸다. 눈썹을 찌푸리며 심각한 얼굴의 제성이 꼴에 화가 났는지 나를 향해 채근한다. “ 누가 널 이지경으로 팬거야?? 어?? ” “ 알아서 뭐하게? 복수라도 해줄려구? ” 차갑게 이제성을 죽일 듯 노려보며 차갑게 묻는다. “ 그래!!! 내가 너 팬 녀석 잡아다가 죽도록 조져 놓을 테니깐 누군지 불어봐!! ” “ 지금 한 말 잊지 말라구....!! ” 희미하게 입가에 웃음을 머금으며 이제성을 바라본다. 터진 입술 끝이 다시 터진 듯 따끔거린다. “ 누군지나 말해!! ” 화가 난 듯 외치는 제성의 얼굴을 무심히 바라본다. 나와 말 튼지 하루된 사이에 웃기는 군.. 나한테 너무 지대하게 관심을 가져 주는 거 아닌가? “ 누구긴... 당연히 난폭한 내 주인님이지- ” 자조적인 웃음을 흘리며 나는 제성을 향해 그렇게 말한다. 제성의 하얀 얼굴이 더 하얗게 물들어 가는 것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치밀었다. 예외의 특권으로 한번 녀석을 향해 으르렁 거려 보라구. 달려들어서 그 녀석의 목을 물어뜯어 보라구. 아랫입술이 찢어지도록 깨무는 제성을 바라보며 눈썹을 위로 치켜 올리며 녀석의 다음 말을 기다린다. “ .. 채민준...!? . ” 피식 웃으며 제성을 바라본다. 다시 터진 입술 끝에 핏물이 약간 베어 나온다. 혀끝으로 베어 나온 핏물을 핥으며 제성을 치켜 올려 본다. “ 내가 잡아다 채민준 그 자식 도륙을 내 줄게!!!" 한참을 망설이는 표정으로 앉아 있던 제성이 꽤나 진심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제성이 말한다. 히죽거리던 인상을 찌푸리며 그런 제성을 바라본다. 대체.... 이 불쾌한 감정은 뭐지?? 내 발 밑부터 스며 올라가 머리끝까지 터져 버릴 것만 같은 이 기분 나쁜 더러운 불쾌함과 역겨움은 뭐냐구!!! 진심 어린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며 나를 위해 채민준을 패준다는 이제성의 말 한마디에 혐오감이 치민다. 난 진실해 질 수가 없다. 항상 진실한 그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며 구역질이 치밀 정도로 다정하게 말을 지껄일 때면 온 몸 가득 치밀어 오르는 자기혐오는 숨이 막힐 정도다. 한 없이 나에 대한 친절함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기분이 나빠진다. 나와 이제성은 정반대. 극과 극이다. 미친 듯이 마음 가득 거짓으로 무장한 한 녀석과 두 눈이 시릴 정도로 맑게 자기 자신을 보이는 한 녀석... “ 나는 말이야... ” 제성의 맑은 두 눈이 나를 바라본다. “ 나란 놈은 보기와 다르게 꽤... 충견이거든- ” 불쾌한 듯 이맛살을 찌푸리며 나를 바라보는 제성을 향해 씨익 웃어주며 다시 말한다. “ 충견이 자기 주인 무는 거 봤어? ” “ 무슨.. 뜻이야?? ” “ 필요 없어- 아까 말은 장난이니깐- 복수니 뭐니 그 따위 거 필요 없고, 그냥 너는 내 옆에만 있기만 하면 돼는 문제니깐- 신경 꺼 ” 제성의 찌푸려진 이맛살을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며 나는 피식 웃는다. 생각보다 웃음이 잘 흐른다. 가식 적인 웃음이야 항상 12살 전의 나는 소외당하지 않기 위해 웃음 지으며 살아 왔었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몸부터 알아서 기계처럼 자동으로 짓게 만든다. 웃음이 필요하면 언제든 거짓 웃음으로 사람을 대할 수 있다. 그게 바로 나란 인간 이민영이니깐... 이맛살을 짓누르는 나의 손가락을 잡아 떨쳐내며 제성이 화가 나서 뾰로퉁해진 얼굴로 나를 지긋이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버리며 말한다. “ 몰라- 아무튼 난 따질거니깐... 신경 끄라고 해도 나는 신경 쓰인다구... ” 다른 쪽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제성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그저 물끄러미 바라 볼 뿐이다. 몇 분의 시간이 흐르고 덜컹거리며 도로를 달리는 버스 안에서 이른 새벽 푸르스름한 새벽빛을 받으며 나와 이제성 단 둘 뿐이다. 책가방을 뒤적거려 CD플레이어를 꺼내 플레이 버튼을 누르고 이어폰을 꽂으며 고개를 돌려 창가에 비추는 풍경들을 바라본다. 푸르스름해진 하늘이 점점 밝아 온다. 그리고 귓가에 흐르는 「 Rainbow Eyes 」... 귓가에 느껴지는 손길에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뚱한 표정의 제성이 한쪽 귀의 이어폰을 빼서 자신의 귀에 꽂는다. 무표정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정말 웃기게도 사랑의 라이벌과 나는 같은 음악을 듣고 있다. 아무도 타지 않는 버스 뒷자리에 단 둘이 앉아.. 정말 로맨틱한걸?? 자조적인 웃음이 흘러 큭큭 거리고 있자 그런 나를 바라보며 제성이 뚱한 표정으로 한 마디 한다. “ 왜 웃어- 음악 좀 나눠 듣자는데- ” 어깨를 들썩이며 큭큭 거리던 나는 그런 제성을 한번 바라보고 다시 창 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귓가에 나직히 이제성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 음악... 좋다- ” 눈앞을 스쳐지나가는 수많은 풍경들을 하염없이 그저 바라본다. “ Rainbow Eyes 지?? 채민준과 너는 같은 음악을 좋아하는 구나?? 역시 취향도 같네.. ” 좋아하는 음악까지 안다.. 라?? 눈앞을 스치고 지나가는 풍경들만 바라보며 나는 무표정하게 생각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 그들은 그렇게 가깝게 있었던 건가? 내가 녀석과 함께인 세월 동안 그렇게 마음에 품으며 비밀로 쌓아놓던 동안 이 두 놈은 같은 음악을 듣고 서로의 시간을 공유 했다 이거군?? 내가 살아왔던 세월들이 웃음이 흐른다. 정말 나는 병신 같이 살아 온 놈이다. 시간을 되돌려 보니 확연히 내가 얼마나 병신처럼 살아왔는지 들어나고 있잖아?? “ 어떻게... 그녀석이 이 음악을 좋아하는지 아는 건데?? ” “ 아- Rainbow Eyes듣고 있는 민준이 녀석 이어폰을 아까처럼 뺏어서 같이 들었지- 제일 좋아한다고 한거 같아서.. 우리 가끔 나란히 이 음악을 듣곤 했었어- ” 웃음 밖에 흐르지 않는다. 심장은 미친 듯이 조각이 나고, 입가에서는 웃음만 흐른다. 귓가에 흐르는 Rainbow Eyes의 애절한 가사가 누군가를 향한 절절한 마음인가에 대해 알고 보니 이 노래가 그다지 감미롭게 들려오지 않는다. 귀가 썩어 버릴 것만 같아서 거칠게 이어폰을 빼내고 그런 나의 행동을 동그란 눈으로 바라보는 제성의 향해 웃으며 말한다. “ 뭘 봐? 역겨우니깐 그 눈깔 돌려- ” 웃으며 거침없이 쏟아진 나의 말에 놀란 듯 제성이 이어폰을 자신의 귀에서 빼내며 바라본다. 역겨움에 나는 시선을 돌려 창밖을 바라본다. 빌어먹을... “ 난... 너와 친하게 지내고 싶어.. ” 나는 싫어... “ 너와 정말 친하게 지내고 싶어... 나에게 채민준은 소중한 녀석이니깐.. 그 녀석의 가장 친한 친구인 너와도 친하게 지내고 싶어.. 그러고 싶어.. ” 소중한 녀석이란 한마디에 몸이 굳는다. 소중하다... 소중하다라?? 심장이 멎는다... “ 너... 호모냐?? ” 심장이 미친 듯이 쿵쿵 뛰고 나는 제성의 향해 차갑게 말한다. 호모냐?? 씨발 진짜 호모냐?? 소중하다라면 아니면 다른 의미인거냐?? 친구로서 소중한 거겠지... 남자가 남자를 좋아하는 경우는 소수라고.. 내가 그런 놈이니깐 저런 말을 해도 내가 이상하게 받아들이는 것 일 수도 있다. “ 글쎄- ” 애잔한 눈빛으로 대답하는 제성의 목일 비틀어 버리고 싶다. 글쎄 라니!!! 씨발 화를 내며 아니라고 하란 말이야!! “ 글쎄란 말은 호모란 거잖아 병신아- ” 제성의 입술이 예쁜 모양으로 짓는다. 초승달처럼 휘어지는 그 예쁜 눈을 바라보며 나는 심한 역겨움에 몸을 떤다. 어째서... 뭐 이런 엿 같은 경우가 다 있냐구... “ 뭐- 여자랑도 사귀고 그랬어.. 호모라기보다 어쩌다 소중해진 사람이 채민준일 뿐이야.. ” 어쩌다 소중해진 사람?? 좆까네.. 머릿속 가득 어지럽다. 쿵 내려앉은 심장의 차갑고 서늘한 느낌과 어떤 미친놈이 내 심장을 쥐어 잡고 놓아 주지 않는다. 아파서 너무 아파서 미친놈처럼 비명을 지르고 싶다. 이거 뭐야?? 씨발 그러면 서로 좋아하고 있었는데 표현 한 번 못해보고 채민준은 죽었다 뭐 그따위라 이거지?? 웃음이 난다. 대체 나는 왜 되돌아 온 거지? 신은 역시 내 편이 아니잖아... “ 채민준이 호모를 얼마나 역겨워 하는지 알고나 있는 거냐?? ” 그렇게 혐오 하던 새끼가 너를 가슴에 품었지... 남자인 널... 나 아닌 널... 너란 새끼를.. “ 알고 있어.. 좋아하고 그런 게 아니라 소중한거야... 나도 내 감정 잘 모르겠어.. 혼란스럽다고.. 그냥.. 어느 날부턴가 그 녀석을 보면 갑자기 심장이 뛰거든- 왜 그러지?? 나 정말 그런 쪽은 아닌데.. 그저 평범한 놈인데 말이야- ” 어떤 놈이 미친 듯이 칼로 심장을 긁어대는 느낌이다. 그 섬뜩한 기분에 싸늘한 웃음으로 나는 역겹다는 듯이 제성을 바라보며 말한다. “ 내가 채민준한테 게이라고 꼰지르면 어떻게 되는 줄 알고 그런 말을 고백성사 하듯이 술술 부는 건데?? ” “ 너는 그럴 녀석이 아니란 걸 믿으니깐- ” 환하게 웃는 제성의 얼굴을 바라보며 웃는다. 믿어?? 미안한데 난 그런 놈이야. 하지만 절대로 말 하지 않을 거다. 네 입에서 채민준을 향한 네 마음이 나오지 못하게 할 거야. 절대 너희 둘을 엮이게 만들지 않을 테니깐.. 어쩌면 고마운 거잖아. 사전에 네 그 마음을 알고 막아 설 수 있을 테니깐. 갑자기 뒤통수 맞지는 않겠지.. 정말 예상치 못한 전개이지만 말이다. “ 믿든 말든 네 자유지만. 한 가지 말해 두겠는데 절대로 그 녀석한테 지금 네 마음 말하지 마- ” 말하지마 .. 절대로 말하지마... 이제 그만 내 심장에 난도질 하란 말이야... 참기 힘들만큼 너를 죽여 버리고 싶으니깐. 제성이 웃음을 흘린다. “ 그래- ” 여유로운 웃음을 머금으며 나를 바라보는 이제성이 증오스럽다. “ 절.대.로 말.하.지.마!!! ” “ 알았어- 말했잖아 아직 내 감정 모르겠다고- ” 제성이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말한다. 떼어낸 이어폰에서 Rainbow Eyes가 흘러나온다. 음악과 함께 내 심장이 썩어 내린다. 언제나 그랬다. 신은 내 편 따윈 들어 준 적이 없었잖아... 이민영.. 그랬잖아... 나란 놈은..내 어미란 여자의 악의 근원 이였다. 내 어미란 여자를 미치게 만든 놈의 씨를 가지고 태어난 그 여자에게 있어서 최악의 원죄적 인물 이였다. 한번도 그 여자 눈에 자식으로 비추어진 적이 없다. 그 여자에게 강간범이 자신에게 준 또 하나의 고통이자 악몽 이였다. 그리고 지금 어쩌면 채민준에게 그다지 필요치 않은 쓰레기만도 못한 존재겠지...!? 나는... 두려웠었다. 그 여자가 나를 바라보듯 채민준이 내가 호모인 사실을 알면 그렇게 바라볼 거라는 두려움. 마치 더럽고 혐오스러운 벌레를 바라보듯이 쳐다보는 그 시선으로 나를 바라 볼 것이라는 두려움. 미친 그 여자가 나를 바라볼 때면 느꼈던 그 심장이 뭉개지는 아픔을 녀석에게서 느끼고 싶지 않았다. 아니 그렇게 쳐다보더라도 옆에만 붙어 있을 수 있다면 좋다고, 그렇게 생각해 왔었다. 단지 그것이 꿈 이였던 놈이 나란 놈 이였다. 그저 옆에만 있으면 좋겠다는 작은 꿈. 그 작은 꿈이 ‘다이어리’ 하나로 뭉개졌다. 녀석이 죽고 내 심장도 같이 죽어 버렸지만 그걸로 족했다. 녀석의 마음속을 그 누구도 차지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오히려 녀석을 죽여준 그녀가 고마울 정도였다. 하지만 아니였잖아?? 녀석은 죽으며 이제성을 마음에 품고 죽었었다니.. 거기다 지금 이제성이 말하고 있지 않은가? 녀석이.... 채민준이... 소중하다고.... 현기증이 치민다. 어지러운 시선으로 버스 안의 풍경을 바라본다. 다음 정거장에 멈춰 스는 버스 안으로 학생 몇 명이 올라탄다. 헛웃음이 흘러 참을 수가 없다. 킥킥거리며 고개를 숙인다. 웃음을 참지 못해 들썩이는 내 어깨를 바라보고 있는 제성의 묘한 시선이 느껴진다. “ 왜 그...래?? ” 내 어깨를 잡는 따스한 제성의 체온에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입술 끝을 치켜 올리며 숙인 고개를 약간 돌려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제성을 바라본다. 안쓰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제성의 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최악의 질투를 느낀다. 죽어도 너와 채민준은 안돼!!! 늘어져서 시선을 가리는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나는 몸을 숙인 자세에서 고개만 돌린 채 말한다. “ 크큭... 아- 미안... 너무 슬프면 웃음이 다 나오더라고 나란 놈은... ” “ 슬프...다니?? ” 무지개를 연상 시키는 갈색 눈동자의 동공이 커다래지고 짙은 눈썹을 치켜 올리며 제성이 묻는다. “ 슬플 수밖에... 지금 내가 좋아하는 상대 앞에서 다른 놈이 소중하다느니 어쩌니 하는 고백을 들었는데 안 슬프겠어?? 설마 내가 어떤 마음으로 널 바라보고 있었는지 몰랐다고 하진 않겠지?? ” 경악으로 가득 찬 제성의 표정을 바라보며 웃는다. 절대로... 뺏기지 않아... 나는 녀석에게 미친놈이니깐... 그 녀석이 나를 단 한번이라도 마음에 담아준다면 그렇다면 기꺼이 누구라도 죽일 수도 있거든. 원한다면 죽어 줄 수도 있어. 평생 거짓을 지껄이며 살라면 그럴 수도 있어. 바로 지금처럼. 아무 말 없이 그저 입만 꿈벅거리던 이제성이 길게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머리를 두 손으로 움켜잡으며 괴롭게 묻는다. “ 너... 나 모르고 살았잖아... ” “ 모른 척 했을 뿐이야.. ” “ 하- 너... 남자가 남자를... 그러니깐.. 그.. 뭐라고 해야 하지... 아무튼 그런 거 싫어한다고 들었는데... ” “ 싫어하는 척 했을 뿐이야- ” “ 그... 그런.. ” 귀가 붉게 달아오른 제성을 바라보며 나는 웃는다. “ 설마- 내가 널 좋아한다고 사람들에게 떠들고 다니지는 않겠지?? 특히 채.민.준에게.. ”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쳐들고 아랫입술을 악물며 눈을 동그랗게 뜬 제성이 소리친다. “ 그런 말 하고 다닐 리가 없잖아!! ”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식은땀을 줄줄 흘리는 제성이 무표정하게 그저 입만 웃고 있는 나를 바라보며 머리를 긁적거리며 다시 고개를 푹 숙인다. “ 내가 널 좋아하고 있었다니깐 역겹냐? ” “ 아니야.. 그런거... ” 고개를 숙이며 작게 말하는 제성의 하얀 목까지 붉다. “ 그러면 고개를 들고 나를 봐- 채민준이 아닌 나를 봐줘-!! ” 긴 침묵.. 버스 안의 그 긴 침묵 속에서 버스는 달리고 나는 이제성을 바라본다. 정작 이 말을 하고 싶은 녀석에게는 하지 못한다. 나를 봐달라고.. 고개를 돌려 나를 한번만 봐달라고 이렇게 사랑에 미쳐버린 나를 바라봐 달라고... 질투심에 일그러진 나를 봐달라고... 죽이고 싶은 녀석을 향해 거짓 사랑 고백을 절절히 늘어놓고 있는 나를 봐달라고.. 이렇게 찢어진 내 심장을 한번만 봐달라고.. 나는 이제성을 앞에 두고 마치 녀석에게 고백하는 듯한 착각을 느끼며 말한다. 각 정거장에 버스가 멈출 때 마다 몇 명의 학생들이 버스를 올라타고 곧 내려야 할 정거장을 향해 달리는 버스 안에서 고개를 숙인 채 붉은 목을 들어내며 앉아 있던 제성이 고개를 드는 동시에 버스가 멈춘다. 우르르 내리는 학생들 속에서 고개를 든 여전히 붉은 얼굴의 제성이 황급히 벌떡 일어난다. 채민준은 좋지만 내 고백은 혐오스럽다 이건가? 너희 둘은 언제나 예외의 대상이라 이거군... 몇 걸음 앞으로 걷자 곧 우르르 내리는 사람들과 섞인다. 나는 가만히 앉아 두 손을 깍지 낀 채 허리를 숙이고 고개를 들어 올려 사람들 속에 섞인 제성의 뒤통수를 노려본다. 마치 저 사람들 속에 섞여 걸어가는 뒷모습이 녀석과 겹쳐 보인다. 서늘하게 가라앉은 내 심장은 느리게 쿵- 쿵- 뛴다. 두 눈 앞이 뿌옇게 가려져서 내 시야를 가리는 이 액체가 떨어지지 않도록 눈을 부릅뜬다. 뿌연 시야 사이로 갈색 머리카락이 흩날림과 동시에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는 이제성의 눈과 마주친다. 붉게 상기된 얼굴로 해맑게 웃으며 제성이 나를 향해 다가와 깍지 낀 내 손을 푸르고 한손으로 내손을 쥐어 잡은 채 말한다. “ 같이 내리자- ” 같이 내리자.... 마치 제성의 그 목소리에서 녀석의 목소리가 겹쳐 들려온다. 허스키한 저음의 목소리. “ 좀 쑥스러웠어... 네가 그런 말해서.....이거.. 남자에게 그런 고백이 그렇게 기분 나쁜 것도 아니네?? 역시.. 나 그런 쪽인가?? ” 붉게 물든 얼굴에 어색하게 예쁜 입술 모양을 일그러뜨리며 웃는 제성. 제성이 잡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가며 일으켜 주자 나는 그저 물끄러미 내 손을 잡고 있는 제성의 하얀 손등을 바라본다. 싫지... 않다... 라...?? 훗.. 애써 부릅뜨고 있던 두 눈에 힘을 풀자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간다. 내려가는 눈꺼풀을 무게와 상반되는 가벼운 소금기 가득한 액체가 뺨 한쪽을 타고 흐른다. 그 알수 없는 액체의 감촉에 다시 눈을 뜨고 눈앞의 녀석을 바라본다. 그 녀석이 아니다. 채민준이 아니다. 이제성이다... 붉게 물든 얼굴로 어색한 웃음을 머금으며 내가 싫지 않다고 말하는 녀석은.. 어쩌면 나와 같은 심정으로 그 녀석을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르는 이제성이다. 그래서 더더욱 내 심장을 쪼개버리는 내 사랑이라는 것의 연적인 이제성이다. “ 병신- 지금 내 손을 잡은 이 순간을 후회하는 날이 올 거다- ” 차갑게 쏟아지는 내 목소리는 지금 이제성에게 경고를 한다. “ 응??? 뭐라고 했어?? 아무튼 빨리 내리자 버스 문 닫히겠어- ”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는지 되묻는 제성이 다시 내 손을 잡고 끈다. 나는 녀석의 손에 잡힌 채 버스에서 내린다. 앞서 걸어가는 제성의 뒷모습을 공허하게 들여다본다. 뺨을 타고 흐른 한 줄기 물기가 그다지 기분 좋은 느낌이 아니라 나직이 욕설을 내뱉으며 나는 그렇게 제성의 등만 바라본다. 나는 경고했어. 너는 나에게 죄를 진거야. 그녀석 옆에 항상 내가 있었는데... 몇십년을 그렇게 지키고만 서 있었는데... 내가 모르는 사이에 그 녀석의 심장을 뺏어 갔으니깐, 그게 바로 나에게 지은 죄야. 그 대가로 단지 너에게서 그 녀석을 뺏어 올 거야. 그럴 수 있다면 어떤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그런데... 왜..... 이렇게 심장이 절이는 거지? 정말 엿 같게도 심장이 조각조각 떨어져나가 걸레처럼 잘려난 일부분으로 뜀박질 하는 것처럼 아프다. 이제성이 잡고 있는 손 쪽이 저려온다. 제성의 손에 이끌려 교문 쪽으로 걸어 나가는 우리를 놀랍다는 눈으로 바라보는 같은 반 녀석들 몇몇이 수군거리는 것이 보인다. 사람들의 시선 따윈 모르는 건지 아니면 아랑곳하지 않는 것인지 제성은 그저 유유히 내 손을 잡고 걸어 나갈 뿐이다. 건조하게 불어오는 봄바람이 벚꽃과 함께 불어와 갈색 빛의 제성의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리며 스쳐 지나간다. 음울하게 늘어뜨린 나의 앞 머리카락도 바람 따라 흔들린다. 흔들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나의 시선은 마치 본능처럼 녀석을 찾아낸다. 옥상 난간에 느긋이 팔을 걸치고 느긋한 몸짓으로 담배연기를 길게 내품고 있는 채민준의 모습. 멀리서도 알아 볼 수 있는 녀석의 모습에 입술 끝이 슬며시 올라간다. 네가 어디에 있어도 나는 알 수 있어.. 난간에 걸친 팔을 들고 유연한 몸짓으로 입에 물고 있던 희디흰 담배 한가치를 빼어내며 입술에 담배연기를 후- 불어 내는 모습을 그저 올려다보고만 있다. 바람이 불어 녀석의 검은 머리카락을 흐트러트린다. 바람 따라 흐트러지는 머리카락이 희고 반듯한 이마를 간지리 듯 흔들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잡히지 않은 손으로 녀석을 향해 손을 뻗으려다 멈춘다. 멀다... 너무 멀다... 교문 앞에 서 있는 학생주임은 옥상위에서 여유롭게 담배연기를 내품고 있는 녀석의 존재를 알면서도 애써 모른 척 하며 다른 녀석들을 향해 불같이 화를 내고 있을 뿐이다. 권력의 힘이란 것은 대단한 것이니깐.. 한 녀석을 잡고 지휘봉을 흔들며 개처럼 날뛰는 학생주임 옆을 스쳐지나 교문 문턱을 넘어 걸어가는 나와 이제성을 언제부터 보고 있었는지 알수 없지만 그저 한가롭게 담배연기를 내품으며 느긋하게 난간에 기대있던 녀석의 시선이 나에게서 이제성으로 향하는 것을 놓치지 않는다. 그 먼 거리에서 조차 나는 녀석이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는지 알수 있는 그런 놈 이였다. 어째서... 과거에는 눈치 채지 못했을까? 이렇게 이제성을 바라보고 있는 녀석을..... 미칠 듯한 질투로 나는 녀석을 바라본다. 나를 봐... 나를 봐... 녀석의 시선은 줄곧 이제성만을 향하고 곧 나와 이제성이 마주 잡은 두 손으로 꽂힌다. 너무 멀어서 알수 없는 녀석의 표정이 흐릿하게 일그러지고 있는 것만 같지만 그것이 나의 착각이기를 바랬다. 옥상 위 하늘로 뭉개 뭉개 피어오르는 담배연기를 바라보며 학교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계단을 올라가며 나를 잡고 있는 손을 놓지 않는 제성의 등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내 고백에 아무런 혐오 없이 선뜻 내 손을 잡고 걸어가고 있는 이 녀석 때문에 내 심장은 병신이 되어 버렸는데... 마주 잡고 있는 이 손은 따뜻하기만 하다. 혼란스러운 머릿속 가득 나는 애써 그 따뜻함을 밀어 낸다. 한걸음... 두걸음.. 계단을 오르던 제성이 멈칫 선다. 숙인 고개를 들어 제성의 등에서 그리고 그 어깨 너머 위쪽에 서 있는 녀석을 발견한다. “ 민....준... 아?? ” 조금은 떨리는 듯한 제성의 음성에서 역시나 하는 웃음이 흐른다. 채민준 너는 사람 여럿 게이 만드는 구나... 이 개새끼야... “ 손 떼. ” 무표정한 얼굴과 건조한 눈빛으로 나와 제성이 마주잡고 있는 손을 바라보며 녀석이 말한다. 나른하고도 허스키한 저음으로... 내 손을 잡고 있던 제성의 손이 스르르 풀리는듯 싶더니 다시 억세게 쥐어 잡는다. 그런 움직임을 그저 건조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녀석이 붉은 입술 끝을 비틀며 머리카락을 위로 쓸어 올린다. 옥상에서 계단까지 내려오는 내내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지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는 희고 유려하게 뻗은 손가락 사이로 끼어진 담배 한 가치와 새카만 머리카락이 이마에 쏟아져 내리며 담배연기가 주위를 맴돈다. 그저 그러한 동작 하나하나가 마치 영화 속 필름 한 컷 한 컷처럼 눈앞에 새겨진다. “ 내 개새끼한테서 손떼라고 말한 것 같은데?? ” 건조하게 울리는 저음의 목소리가 차갑다. 눈썹 끝을 치켜 올리며 그 까맣고 까만 눈동자가 제성을 향한다. “ 못...놔!!! ” 피식 입술 끝을 비틀어 올리는 녀석의 눈빛이 차갑게 빛난다. “ 지금 민영의 꼴을 봐!!! 너... 너... 너 정말.. 너무 했어- 너흰 친구잖아!!! 오랜 세월 함께한 친구라고 네 입으로 말했잖아!! ” 점점 제성 쪽으로 가깝게 다가 온 녀석이 제성의 코앞으로 얼굴을 가져다 대며 담배연기를 제성의 얼굴에 후- 하고 내품으며 묻는다. “ 친.....구??? 너는 동물 따위와 친구를 하나?? ” “ 켁- 콜록.. 콜록...채...민...준...... 동..물이라니!! 너... 너... ” 연신 기침을 하는 제성의 얼굴을 묘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녀석의 눈빛이 차다. “ 내 친구란 놈은 예전에 죽었다- 지금 네 손을 잡고 있는 놈은 내 소유의 개새끼일 뿐이지... ” 죽을 듯이 민준을 바라보지만 녀석의 시선은 오직 제성으로만 향한다. 그래... 개새끼일 뿐이지... 그러니깐 고개를 돌려 한번만 나를 바라봐.... 애절하게 숨이 멎을 정도로.... 애절하게 녀석을 바라본다. 녀석만 보면 미칠 듯이 뜀박질 하는 이 심장이 고장이 나서 철철 피가 흐르는 듯 하다. “ 그러지 말아라... 서로 상처 받는 거야.. 그런 말 하지마라....... ” 제성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그런 그 눈동자를 쫓는 그 까만 녀석의 눈동자를 본 순간 숨이 막힌다. 미친 듯한 질투로 심장이 터질 것만 같다. 나를 감싸고 있는 제성을 향한 미친 듯한 질투로 거칠게 숨결을 토해내며 내 손을 쥐어 잡고 있는 제성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거칠게 손을 쳐내자 갑작스런 나의 행동에 제성의 몸이 기우뚱 뒤로 넘어 간다. 그리고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뒤로 기우뚱하며 뒤로 넘어가는 제성의 허리를 한손으로 휘어잡고 자신 쪽으로 끄는 녀석을 바라보며 나는 멍하니 서 있는다. 허리를 감은 녀석의 팔을 바라보고 곧 녀석의 어깨에 이마를 댄 채 쭈뼛하게 서 있는 제성의 등을 바라보며 주먹을 움켜쥔다. 떨어져.... 떨어져....!!! 미칠 것만 같다. 미친 듯한 질투란 감정에 심장이 타들어가고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내 목 줄기를 움켜쥔다. 제성을 거칠게 밀치듯 떼어내며 녀석의 얼굴이 굳어 있다. 마치 남자를 좋아하고 있다는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감이라도 치민 듯이... 그 날이 선 검은 눈동자가 제성이 아니 나를 바라본다. 붉은 입술이 열리고 차가운 저음이 고막을 파고들어 내 심장까지 도달해 비수가 된다. “ 이제성이 다쳤으면 아마 너를 죽였겠지.... ” 아파... 심장이 너무 아파서 가슴 주위가 뻐근하다. 손으로 가슴 부위를 움켜잡으며 녀석을 바라본다. 그 잔인한 붉은 입술로 내 심장을 찢어 놓는다. “ 그래도... 벌은 받아야 겠지?? ” 시니컬하게 묻는 녀석의 목소리가 차갑다. “ 그러지마-!!!! ” 제성의 목소리가 급박하게 들려오지만 발로 가슴을 가격하는 녀석의 발길질에 휘청 하고 몸이 기운다. 가슴을 철퇴로 두들겨 맞은 듯한 큰 충격과 심장이 멎을 듯한 아픔으로 숨이 멈춘다. 발밑에 닿는 시멘트 계단에서 몸이 떠오르며 계단 밑 나락으로 떨어지듯 몸이 떨어져 내린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나를 부둥켜안는 누군가의 체온을 느끼며 밑으로 곤두박질 칠 뻔했던 몸은 계단을 구른다. 데굴데굴 구르는 몸을 느끼지만 누군가가 나를 감싸고 있어서 충격은 나를 감싼 사람에게 오는 듯 했다. 계단 아래 바닥에 떨어져서야 구르던 몸이 멈추고 나는 비틀거리며 나를 감싸고 있는 팔을 떼어 낸다. 그리고 아픈 듯 신음을 흘리며 나를 감싸 안고 있는 제성의 얼굴을 발견한다. 일그러져 가는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린다. 구역질이 치밀 정도로 역겹다. 어째서... 나를 위해 몸을 던진 거지?? 어째서??? 나는 네가 죽어 버리길 바래... 정말 내 두 손으로 네 피를 묻히며 너를 죽였다는 기쁨에 웃을 놈이 나란 놈이야.. 그런 놈을 위해서.. 왜??? 눈물이라는 역겨운 액체가 두 눈을 채우고 두 뺨을 타고 흐른다. 턱 끝에 매달려 있는 눈물이 곧 쓰러져 있는 제성의 하얀 손등위로 떨어진다. 그리고 곧이어 허공에 떠오르는 제성의 하얀 손등을 바라보며 고개를 든다. 제성을 안아든 녀석의 얼굴이 눈물로 가리워져 잘 보이지 않는다. 희뿌연 시야 앞으로 녀석을 안아 든 녀석을 바라보며 심장은 미칠 듯 아파온다. 이미 찢어지고 찢어져서 더 이상 찢길 것도 없을 것만 같은 내 심장이 또 아프게 찢긴다. 누군가가 그 현장을 보고 교무실에 꼰지른건지 선생들이 들이닥치고 제성을 안아든 녀석이 그런 선생들을 밀치며 걸어 나간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웃는다. 날 감싸다 다친 나의 연적. 병신처럼 연적의 도움이나 받는 나란 놈. 공허하고 씁쓸한 웃음을 머금은 채 몸을 일으킨다. 예상했었다. 이렇게 아플 거라고 예상했었다. 그래도 가지고 싶었다. 단지 녀석이 가지고 싶었다. 무기력감에 가슴이 무겁다. 완전 패야 이민영.. 이제성에게 넌 완전 패한 거라고...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제성을 안아든 녀석을 바라보며 눈물로 젖어든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누른다. 얼굴을 감싸 쥔 채 뜨겁게 쏟아지는 역겨운 눈물에 얼굴이 뜨겁다. 가슴이 뜨겁다. 나를 감싸 안았던 제성의 체온을 떠올리며 몸을 부르르 떨린다. 차라리 거기서 떨어져 머리가 터져 죽는 한이 있어도 네 도움 따윈 원치 않았어.... 원치.. 않았어... * * * 교실 문을 열려는 찰나에 누군가 내 손을 움켜잡는다. 고개는 내 손을 아프게 움켜잡고 있는 녀석을 향해 들어 올려 진다. 앞이마를 덮고 시야를 가리는 노랗게 염색된 머리카락을 입으로 후- 불며 화가 난 듯 내 손을 잡고 서 있는 수영의 모습이 보인다. 길게 앞이마에 늘어진 머리카락을 쓸어 넘긴다. 이 앞머리를 잘라 버려야겠다.. “ 너 며칠 학교 오지 마라-!!지금 당장 돌아가..어제 일 때문에 지금 너 들어갈 분위기 아니니깐.. ” 어제... 계단에 떨어지는 나를 감싸다 다친 이제성이 떠오른다. 가슴이 무겁게 가라앉는다. “ ......................... ” 인상을 찌푸리며 수영이 채근한다. “ 이제성 병원 실려 간 이유가 너 때문 이였다면서... ” 무표정하게 그저 수영을 쳐다보자 수영이 깊게 한숨을 내쉰다. “ 이제성이 다친 거로 지금 반 애새끼들 뒤숭숭하니깐 그냥 집에 돌아가라- 모두들 네 탓으로 그렇게 다쳤다고 아는 모양이야.. 물론 네가 그렇게 만들리는 없지만 말이야.. ” “ 내가 왜 돌아가야 하지?? ” 무표정한 얼굴로 수영을 바라보며 물었다. 돌아가야 할 이유 따위는 없다. 교실에는 어쩌면 녀석이 있을 지도 모른다. 뒷문을 다시 열려고 팔을 뻗으려 하자 다시 내 손을 움켜잡은 손에 힘을 가하는 수영을 바라보며 잡히지 않은 다른 한쪽 손으로 수영의 얼굴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갑작스런 나의 공격에 안면을 강타당한 수영이 얼굴을 움켜잡으며 뒤로 물러선다. 그제 서야 나는 속박되지 않은 손으로 교실 뒷문을 열어 제친다. 같은 반 녀석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몰린다. 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도 일제히 몰려드는 이 시선들은 그닥 반갑지가 않다. 뚜벅- 뚜벅- 가방을 한 쪽 어깨에 걸친 채 무겁게 가슴을 짓누르는 어색한 침묵 속에서 오직 내 발걸음 소리만 들려온다. 의자는 언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고 책상하나만이 덩그러니 놓여져 있다. 책상으로 다가가 가방을 올려놓으며 주위를 둘러본다. 일그러진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반 녀석들의 표정이 마치 예전 나를 가끔 바라보던 외할아버지라는 사람과 닮아 있다. 혐오스러운 괴물 바라보듯이... 내가 그렇게도 싫을까??? 비웃듯 입술 끝을 끌어 올려 웃어주며 책상 위로 앉아 한 녀석 한 녀석 씩 눈을 맞춰 주며 비웃어 준다. 너희 따위 어떤 눈으로 바라봐도 상관없어. 한낮 내 눈에는 벌레들보다도 못한 신경 쓰이지 않는 살점과 피를 가지고 있는 인간이라는 동물로 밖에 보이지 않으니깐.. 그런 내 마음이 내 눈빛에 묻어 라도 났는지 덩치가 크고 꽤 노는 걸로 유명한 한 놈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내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와 선다. 떡 벌어진 어깨와 거만한 자세로 교복 바지 주머니에 꽂아 둔 채 비꼬듯 말을 한다. “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어- 그 눈빛 말이야- 알고있냐 이민영?? 우리 반 새끼들 중 누구 한명도 너를 반갑게 여긴 놈은 없었다고!! 단지 친절하게 말해주자면 네가 채민준 단짝이라는 이유로 감히 건드리지 못했지 ” “ ...................... ” “ 너라는 호칭조차 하기 짜증나네- 씹!! 너는 개였지 아마?? 어디 개답게 개 소리 좀 내보지 그러냐? 멍멍멍- 해보라구 씨발 새끼야- ” 웃기다. 이 웃긴 상황에 그저 웃음밖에 흐르지 않는다. 웃고 있는 내 얼굴을 본 놈이 정확히 주먹으로 가뜩이나 부어오른 뺨을 갈긴다. 찢어졌던 입안이 벌어지며 피가 쏟아진다. 입안에 맴도는 핏물을 교실 바닥에 퉤- 뱉어 내고 돌아간 고개를 들어 놈을 올려다보며 말한다. “ ........쳤냐?? ” 음산하게 깔리는 내 목소리에 흠칫 놀라 보이던 녀석이 다시 화난 얼굴로 돌아와 소리친다. “ 어쭈- 드디어 입을 여네- 그래 쳤다 이 개새끼야-!! ” “ 미친개한테 한번 물려 보고 싶냐?? ” 지금 굉장히 좋은 기분이 아니거든. 이제 나도 참을 만큼 참았어. 나 지금 제대로 미쳤다 이 말이야-!!! “ 뭐-?? 이 씹 새끼가-!!! 아주 내가 아작을 내줘야 건방진 주둥이 못 놀리지!! ” 거칠게 내뻗는 놈의 주먹을 피하며 주먹으로 놈의 복부를 가격하자 나의 갑작스런 공격에 방어도 하지 못한 놈이 복부의 충격으로 몸을 웅크린다. 심장이 미칠 듯한 이 고통을 무언가에 풀어야 한다. 아니면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아니 어쩌면 벌써 미쳐있을지도 모른다. 몸을 웅크렸던 녀석이 번쩍 몸을 일으키자 녀석의 목을 물었다. 갑작스럽게 내가 목을 물어오자 주변 녀석들이 술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물린 멀컹한 살의 감촉에 나는 턱에 힘을 주어 더더욱 세게 문다. 마치 정말로 미친개처럼.. “ 으아아아아아아악- ” 놈이 비명을 내지르자 물고 있던 목이 부들부들 떨린다. 있는 힘껏 살덩이를 물고 늘어지자 역겨운 핏물이 입술을 적셔 입안으로 흘러 목구멍으로 쏟아진다. 미친 듯이 놈의 목을 물으며 히죽히죽 웃었다. 그런 나를 바라보며 소름끼친다는 듯 바라보고 있는 반 녀석들이 다시 너무나도 처절하게 소리치는 놈의 비명에 정신을 차린 듯 내 쪽으로 몰려와서 한쪽 팔씩 부여잡고 떼어 내려 한다. 등 뒤로 수영이 녀석이 경악에 가까운 소리치며 역시 내 허리를 잡고 늘어지는 것이 느껴진다. “ 미쳤어?? 너 미쳤어 이민영-!!!! 떨어져 이민영-!! 떨어져!!!! ” 퍽-!!! 뒤통수가 아릿하다. 둔탁하게 무언가가 내려쳐지는 소리와 함께 뒷머리가 쪼개지는 아픔과 함께 뇌가 흔들리는 듯 하다. 이빨로 단단히 박아 넣은 놈의 목살을 물고 늘어지던 턱에 힘이 쭉- 빠진다. 하체에 힘을 잃고 손으로 뒤통수를 얹고 교실 바닥으로 흘러내리듯 쓰러지며 내 등 뒤로 씩씩거리며 책상의자를 잡고 서 있는 짧은 스포츠머리의 놈이 보인다. 내가 물고 늘어진 놈과 자주 어울려 다니던 다른 한 놈인 것 같다. 아마 저 의자로 내 뒤통수를 내리친 건가?? 씨발.... 정말 두개골이 쪼개지는 것처럼 아프다. 수영이 욕설을 내뱉으며 의자를 잡고 있는 스포츠머리의 녀석을 향해 달려들며 주먹을 날린다. 한대 엉켜 주먹다짐을 하고 있는 수영과 스포츠머리의 녀석을 바라보며 나는 피식 웃는다. 입 꼬리를 타고 내가 방금 물고 있던 놈의 피가 흘러나온다. 입술에 붉게 피 칠을 하고 고개를 올려 물린 놈을 바라보고는 웃으며 말해 준다. “ 미친개한테 물려본 소감이 어때?? 기분 죽이지?? 큭...크큭... ” 웃기다. 모든 것이 웃기다. 정말 나는 미쳐가고 있는 것만 같다. 웃음가스를 들여 마신 놈처럼 미친 듯이 웃음이 흐른다. 어깨를 들썩이며 낄낄거리는 나를 바라보는 반 녀석들의 인상이 하얗게 질린다. 피를 철철 흘리며 목을 잡고 있던 녀석이 어느새 그런 나를 내려다보고 미친놈처럼 달려들며 소리친다. “ 씨발-!!!! 미친새끼!!!!! ” 내 위를 올라타고 주먹으로 연신 얼굴을 가격하지만 아까 얻어맞은 뒤통수의 아픔 때문에 피할 수조차 없다. 퍽-!! 퍽-!! 멈추지 않는 웃음 때문에 계속 연타로 얻어맞으면서도 웃음만 난다. 계속 쏟아지는 주먹에 웃으며 누워 있는 나를 오랜 시간동안 흠씬 두들겨 패더니 결국 힘이 빠진 듯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는 다시 한번 생각해도 분에 겨운지 발길질로 옆구리를 차버린다. “ 헉- 으......ㄱ.......크....크큭.... ” 웃기다. 웃겨서 눈물이 난다. 맞고 있는데도 가만히 있는 것 보다 마음이 편하다. 이민영. 필요 없는 자책은 때려쳐!!! 이민영. 이제성은 너의 적이야. 이민영... 이 병신아... 너는 패 한거야. 이민영. 너는 결코 가지지 못해... 녀석에게 맞아 아물지도 못한 입안 살은 뭉글어져 핏물이 흐르고, 아까 물은 놈의 피 인지 나의 피 인지 모를 핏물은 누워 있는 입술 끝에서 뺨으로 흘러넘친다. “ 정말 저 새끼 미쳤나봐- 아까 오명이 물고 늘어지는 거 봤냐?? 씨발 소름 돋아!! ” 한 녀석의 지껄임을 시작으로 수근거리는 반 녀석들의 목소리가 귓가를 윙윙 맴돈다. 그래... 나 미친놈이지... 날 낳은 여자의 피를 받은 미친놈이라구.. “ 야- 저 새끼 저렇게 놔둬도 돼?? ” “ 글쎄- 어떻게 하지?? 양호실에라도 데러가야 하는 거 아니야?? ” “ 저 돌은 새끼한테 무슨 양호실이야 양호실은...저 저 정도로 맞았다고 죽지는 않으니깐 그냥 어디다 박아 놓자 ” “ 어디다?? ” “ 어디긴 어디야 저 씨발 새끼랑 딱 어울리는 데지!!! ” 피가 흐르는 목을 대충 손수건으로 꼭 쥐어 잡고 나에게 물린 오명이란 놈이 차갑게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두 명이 누워 있는 나를 향해 다가오더니 대충 한 놈이 발을 잡고 다른 한 놈이 두 팔을 잡고 교실 뒷문을 열고 옮긴다. 붕 떠오른 몸으로 저 멀리 뒤엉켜 싸우는 수영이 깔려 맞는 모습이 보인다. 병신 새끼.... 내 일에 괜히 말려 들어가 저렇게 터지고 있는 놈의 모습에 입이 쓰다. 복도를 뛰어다니며 장난을 치던 다른 반 놈들이 입가에서 핏물을 줄줄 흘리며 짐 덩이 옮기듯 들려가는 나를 놀람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게 느껴진다. 정말 엿 같은 상황이 아닐 수가 없다. 몸을 비틀어 떨어져 나가고 싶지만 머리의 충격과 온몸을 아릿한 아픔 때문에 몸이 내 맘대로 움직여지지 않는다. 복도 끝까지 나를 옮겨 가던 놈들이 화장실로 들어가 화장실 제일 끝 칸 문을 발로 찬다. 쾅-!!! 던지다 시피 끝 칸에 나를 밀어 넣은 녀석들이 손을 털며 문을 닫아버린다. 닫히는 문 사이로 미약하게 들어오는 빛이 차단된다. 닫혀 지는 문사이로 징그러운 무언가를 바라보는 놈들의 시선이 닫히는 문 사이로 빛과 함께 가려지던 모습이 떠오른다. “ 큭... 크크큭...... 하...하하하하하하하-!!! ” 웃음이 난다. 웃을 때 마다 입안과 온몸이 얼얼하다. 죽도록 얻어맞았으니 그럴 만도 하다. 정말 웃기게도 나에게 가장 어울리는 곳은 더러운 화장실이라 이거군. 입에서는 웃음이, 눈에서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눈물이라는 액체가 흐른다. 변기 옆의 빈 공간에 처박혀서 팔 한쪽은 변기통 위에 올려놓고 다른 한 쪽 손은 더러운 화장실 바닥에 늘어져 닿는다. 변기에 머리를 기댄 채 힘이 빠져 다리에 힘도 들어오지 않는다. 제법 끝 칸 치고 크다 생각했더니 변기 다른 옆쪽에 가득 빽빽하게 채워져 있는 마포걸래 라든지 고무장갑들로 보아하니 용무를 보는 것에 쓰이지 않고 화장실 청소 때 사용하는 비품들을 모아 놓는 곳으로 사용되는 공간인 것 같다. 철컥- 자물쇠 잠그는 소리까지 친절하게 들려온다. 가두시겠다-?? 웃음이 난다. 뺨을 타고 흐르는 뜨거운 액체가 턱 끝에 매달려 툭- 하고 더럽게 얼룩진 화장실 타일로 떨어진다. 눈을 감아 버린다. 감은 두 눈 앞으로 녀석의 얼굴이 떠오른다. 가슴이 아릿하다. 녀석의 얼굴 하나하나를 떠올리며 내 가슴은 다시 뛴다. 눈을 감아도 떠오르는 녀석의 얼굴에 가슴이 탄다. 감은 속눈썹을 적시며 뜨거운 액체가 흐른다. 화장실 고유의 비릿한 냄새와 마포걸래의 쾌쾌한 냄새, 고무장갑의 고무냄새.. 그리고 피 떡이 되어 걸레처럼 박혀 있는 나란 인간역시 이렇게 역한 냄새를 풍기고 있을까? 온몸 구석구석 쑤시는 통증에 인상을 찌푸리며 그냥 눈을 감는다. 수업 종소리가 들리자, 애들 몇 명이 담배를 피우고 사라지는 소리와 시끄럽게 떠들어데던 소란스러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눈을 감고 그저 역한 곳에 박혀 있는 내 자신에 대한 혐오가 치민다. 모든 사람들이 이제성을 좋아한다. 당연한 거다. 그는 가만히 있어도 빛나는 존재이니깐. 나와 다르게 항상 맑게 빛나는 녀석이다. 아마도 자상한 아버지와 상냥한 어머니 품에서 자랐겠지?? 나처럼 미친 여자의 자식에 아버지도 강간범이 아닌... 나를 유일하게 사람대접한 외할머니 역시 나를 사랑하지는 않았다. 13살 때 쯤 이였을까? 내 어미란 여자를 정신병원에 보냈다. 매달 드는 엄청난 병원비를 감수하고서라도 보낼 수밖에 없었던 이유 역시 누가 아비인지 알 수 없는 강간범의 자식이 그 여자의 배 속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아이는 태어 난지 일주일 만에 죽었다. 죽음의 사인이라면 미친 그 여자가 아이를 강물에 던져 버렸다. 한 가지 의문인 것은 왜 나는 그렇게 강물에 던져 버리지 않은 걸까? 하는 생각이다. 아마 그랬다면 녀석을 보지 못했을 텐데... 그랬다면 이렇게 심장이 찢어져 나가는 고통을 알 수 없었겠지. 숨을 쉬는 공기가 너무 무거워서 숨을 쉴 수조차 없을 만큼 아프지도 않았겠지.. 그리고 정말 이런 엿 같은 상황을 안 겪어도 될 텐데 말이다. 하지만.... 어쩌면 누군가를 이렇게 절실히 생각하는 마음은 결코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누군가를 미치도록 ‘사랑’하는 감정을 말이야... “ 웃...... ” 아릿하게 저려오는 심장과 찢어져서 걸레처럼 헤진 입 안의 살 속으로 흐르는 핏물을 삼키며 역한 피 맛에 인상을 찌푸린다. 광대뼈 쪽으로 후끈거리는 것이 얻어터질 때 찢어진 듯 하다. 교복 주머니에서 구겨져 있는 담배 한 가치를 빼내어 입에 문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일회용 라이터로 켜 담배에 불을 붙이며 힘없이 떨어뜨리고는 깊게 담배연기를 빨아들인다. 폐 속 깊이 들어와 경유하는 담배연기를 입으로 내품는다. 입술에 맞닿는 담배의 감촉 때문에 입가가 쓰리다. 눈을 감고 그저 깊게 담배를 빨아들이며 녀석을 그린다... 담배 한가치를 다 피우고 수업의 끝을 알리는 종소리와 다시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몇 번을 울렸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온 몸의 통증으로 눈을 감고 더러운 화장실 끝 칸에 박혀 걸레처럼 구겨져 있었을 뿐이다. 아마도 긴 시간을 이 곳에 박혀 보냈다는 것만은 알 수 있다. 드르르륵- 주머니에 들어 있던 핸드폰이 진동에 힘겹게 핸드폰을 꺼내 폴더를 연다. 액정에 뜨는 번호를 바라보며 떨리는 손으로 통화 버튼을 누른다. “ 어디야?? ” 수영의 다급한 목소리에 나는 피식 웃으며 대꾸한다. “ 나에게 가장 잘 맞는 곳이라더군.. ” “ 병신아 지금 농담 따먹기 하자는게 아니야!!! 어디냐구!!!" 다급하게 들려오는 수영의 목소리에 나는 그저 웃으며 대꾸한다. “ 맞춰봐- ” 한손으로 폴더를 닫아 버리고 핸드폰을 화장실 바닥에 떨어뜨리며 피식 웃는다. 맞춰봐... 이 곳이 가장 나에게 어울리는 곳이란다. 다시 눈을 감으며 피식거리고 있는데 수업시간이라 아무도 없는 한적한 화장실에 발걸음 소리가 울린다. 정말 잘 맞추는 거 아닌가?? 고작 몇 분도 흐르지 않아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에 그저 나는 피식거리며 웃을 뿐이다. 나와 화장실이 그렇게 잘 어울렸다니 놀라운 발견이다. 발걸음 소리가 곧 멈추고 한참을 내가 박혀 있는 화장실 칸 앞에 서 있는 듯 하다. 성격 급한 수영이 새끼가 웬일로 저런 여유일까?? 자물쇠로 단단히 채워져 있는 이 문을 어떻게 열고 날 구해줄지 궁금할 따름이다. 콰쾅-!! 무언가로 자물쇠를 내려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부셔지는 듯한 둔탁한 파열음이 들린다. 문짝이 떨어질 듯 열리고 갑작스럽게 몰려들어오는 빛에 눈살을 찌푸리며 감았던 눈을 뜨던 나는 다시 감아 버린다. “ 이민영..... ” 얼음처럼 차갑게 몰아치는 허스키한 저음의 목소리에 나는 눈을 번쩍 뜬다. 바로 옆 창가로 쏟아지는 햇빛 속에서 쇠파이프를 한손에 들고 교복차림으로 서 있는 녀석이 보인다. 햇빛 속에서 유난히 푸르른 빛을 머금는 그 까만 머리카락과 까만 눈동자에 오직 나만이 비추고 있다. 오직 나만이... 녀석의 눈에 오직 나만이 비추고 있다. 그 붉은 입술로 내 이름을 불러 준다... 나만을 바라보며... 내 이름을.... 덜덜 떨리는 입술을 열어 나직이 녀석의 이름을 속삭인다. “ .......채민준....... ” 한 걸음 두 걸음 느긋하게 다가와 한손으로 내 멱살을 움켜쥐고 들어 올린다. 나는 그저 그 모습을 미친 듯이 바라 볼 뿐이다. 채민준... 채민준.... 불러도 불러도 가슴이 떨리는 이름.. 멱살 때문에 들어올려진 고개로 내 얼굴 가까이 가져다 대며 녀석이 묻는다. “ 누가 이랬어?? ” 나른한 저음의 목소리로 속사포처럼 속삭이지만 그 속에 가득한 살기가 느껴진다. 내 멱살을 움켜잡고 물어 오는 녀석을 오직 나는 바라보고 있는데 정신이 팔려 있을 뿐이다. 가깝게 들여다 본 녀석의 까만 눈이 너무 아름다워서.... 마치 네온사인 하나 없는 오직 빗물만 가득한 거리의 까만 풍경을 바라보는 듯한 그 눈이 아름다워서... 숨이 막힌다. 눈을 한번 감고 다시 뜬다. 마치 환영이라도 목격한 것처럼.. 다시 뜬 두 눈 앞에 녀석의 차갑게 굳은 얼굴이 보인다. 그 까만 눈에 피투성이로 부어오른 내 얼굴이 비춘다. 녀석에게 참 추해 보일거야... 아픈 와중에도 그런 생각이 든다. “ 누가 이랬냐고 물었다. ” 멱살을 잡고 내 얼굴 쪽으로 가깝게 들이밀어 숙여진 얼굴 각도 때문에 머리카락이 눈을 가린다. 손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 그 눈을 다시 바라보고 싶다. 내 멱살을 잡고 흔들 때 마다 머리카락이 찰랑이며 푸른빛을 띤다. 손으로 베일 듯한 날카로운 턱 선에 손을 가져가려다 멈칫한다. 차갑게 빛나는 그 눈동자에 숨이 막혀 나는 벌어지지 않는 입을 겨우 열어 쉰 목소리로 대꾸한다. “ 알아서... 뭐하게?? ” 붉은 입술 끝이 올라간다. “ 죽여 버리게 ” 정말 살인이라도 저지를 것처럼 차갑고 음산하게 공간을 울리는 녀석의 저음에 소름이 돋는다. 하지만 왠지 기쁘다. 심장이 쿵쾅거리며 떨리는 가슴으로 녀석을 바라본다. “ ......우리 반......녀석들....... ” 마치 고자질 하는 어린애 같은 기분이 되어 나도 모르게 흥분이 된다. 녀석이 나를 바라본다는 것에, 나를 이렇게 만든 놈들을 죽여 버린다는 한마디에 미친 듯이 심장이 뛴다. 나의 대답에 나른한 표정을 지으며 녀석의 입술 끝이 잔인하게 올라간다. 마치 금방이라도 즐거운 일을 저지를 사람처럼. 멱살을 잡은 손을 밀어내자 그 반동으로 화장실 벽으로 등을 부딪친다. 잡고 있던 쇠파이프를 직- 소리 나게 끌며 느릿하게 걸어가는 녀석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힘없이 비틀거리며 나 역시 몸을 일으킨다. 비틀거리며 화장실 벽에 손을 대어 몸에 중심을 잡으며 녀석의 뒤를 쫓는다. 느릿하게 걸어가던 녀석의 걸음이 빨라진다. 직- 직- 복도를 긁으며 지나가는 쇠파이프 소리가 들려오고, 그 뒤를 비틀거리며 쫓는 내가 있다. 교실 반마다 유리 창 너머로 수업을 듣다가 쇠파이프를 끌며 지나가는 녀석의 모습에 당혹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는 다른 반 녀석들의 시선이 다시 나에게로 향한다. 터진 입술을 혀로 핥자 말라비틀어진 피가 버석거린다. 멀찍이 걸어가는 녀석이 드디어 반 교실 뒷문을 발로 차고 들어가고 곧 교실은 소란스러워 진다. 어째서.....왜??? 나라면 혐오에 치를 떨던 녀석인데. 녀석이 나를 찾아냈다. 그리고 나를 이 지경으로 만든 녀석들을 죽인다고 한다. 묘한 기분으로 교실 복도를 비틀거리며 걷는다. 그리고 반 앞에 서서 복도로 유리창 너머의 모습을 바라본다. 교실 안은 아수라장 이였다. 쇠파이프로 한명씩 앉아 있는 녀석들의 머리에 쇠파이프로 내려치고 머리에 핏물을 흘리며 쓰러지는 반 녀석들과 그런 채민준을 막으려고 소리를 지르는 선생의 모습. 하지만 결코 다가서지는 못하고 소리만 지르고 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다. 비틀거리며 나는 교실로 들어가 채민준의 허리를 껴안는다. “ 그만해!!!!! ” 쉴 대로 쉬어 버린 목소리로 절박하게 소리친다.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반 녀석들과 그런 녀석들을 바라보며 대경실색한 선생의 모습. 으득- 잡고 있는 손목을 비틀며 녀석이 나를 밀친다. 녀석이 밀치는 힘으로 뒤에 있는 사물함에 등을 부딪치며 힘없이 쓰러진다. 목에 밴드를 붙이고 있는 오명이라는 놈을 향해 걸어가는 녀석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소름이 돋는다. 직- 직 끌리는 쇠파이프에 반 녀석들의 피가 묻어 교실 바닥을 적신다. 부들부들 떨고 있던 오명이란 놈이 벌떡 일어나 녀석의 향해 공격하지만 아주 가볍게 주먹을 피한 녀석이 쇠파이프로 놈의 머리를 내리치고는 팔을 꺾어 벽으로 몰아붙인다. 히죽거리며 웃는 녀석의 얼굴이 문득 12살 때의 그날로 돌아간 듯 하다. 피를 흘리며 덜덜 떨고 있는 오명이란 놈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다. “ 나는 말이야... ” 소름 돋을 정도로 차가운 저음의 목소리에 오명이란 놈이 긴장한 얼굴로 침을 꿀꺽 삼키며 녀석을 바라본다. “ 헉... 헉... 살려줘... 채민준...!! ” “ 내 껄 건드리는 걸 제일 싫어하는 놈이야 ” “ 자... 잘...못..했다.....!!! ” 절박하게 외치는 오명이란 놈을 바라보며 녀석이 히죽 웃는다. “ 특히 저 개 새끼는 말이야- ” “ 윽... 미... 미안해...!!! ” “ 나 이외에는 못 건드리거든-!!! ” 퍽-!! 오명이란 놈의 머리카락을 움켜잡고 벽에 내리찍는 소리가 교실 안을 울리고 하얗게 물든 얼굴로 벌벌 떨고 있는 반 녀석들과 어느새 사라졌는지 선생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두세 번 벽에 머리를 내리 찢던 녀석이 정신없이 피를 줄줄 흘리는 놈의 머리카락에 손을 푸르고 주머니를 뒤져 담배 한 가치를 찾아내 입에 문다. 오명이란 놈의 피가 튀겨 녀석의 하얀 얼굴에 방울방울 맺혀 있다. 새 하얀 셔츠에 묻어 있는 핏 자국이 녀석의 잔인한 폭력의 증거처럼 남아 있다. 철컥- 지포라이터를 열고 담배 끝을 가져다 댄다. 붉게 타들어가는 담배 끝과 함께 흰 얼굴에 대비 되는 붉은 핏 방울이 유난히 눈에 띈다. 담배연기를 길게 내 품으며 고개를 젖히며 까만 눈을 내리깔고 주저앉아 있는 나를 바라보는 녀석의 시선이 서늘하다. 기다란 속눈썹에 사이로 서늘하게 빛나는 까만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 미칠 듯이 온 몸이 흥분된다. 너와 나는 미친놈이다. 미친놈끼리 어울린다구. 이제성은 아니야, 너는 나여야만 해.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이 토록 나는 너를 원한다. 한참을 그렇게 지켜보던 녀석이 나를 향해 다가와 내 머리카락을 움켜잡고 올린다. 턱이 위를 향해 들어 올려지고 나는 녀석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애타게 바라본다. “ 아무 새끼한테나 맞고 다니지마- 병신아-!! 내 애완견이면 쪽팔리게 주인 망신은 시키고 다니지 말아야지- 안그래?? ” 으르렁거리듯 속삭이는 녀석의 목소리가 차갑다. 그저 고개를 끄덕인다. 눈물이 흐를 것 만 같다. 녀석이 내가 맞은 것에 분노했다는 자체에 온 몸이 희열로 감싸인다. 스르륵- 머리카락을 움켜잡은 손을 풀고 녀석이 숙인 몸을 일으키자 나 역시 비틀거리며 사물함에 한 손을 집고 일어선다. 쇠파이프를 교실 바닥에 쓰레기 버리듯 떨어뜨리고 다시 담배를 붉은 입술에 물고 깊게 빨아들이며 녀석이 교실을 빠져 나간다. 그 뒤를 나 역시 비틀거리며 따른다. 녀석이 학교에 잘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안한 마음에 뒤를 돌아 쓰러져 있는 반 녀석들을 쳐다본다. 나 때문에 녀석의 미래가 틀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이 든다. 어째서 나 따위를 위해서 이런 짓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나도 모르게 드는 희망은 어쩔 수 없다. 나를 봐주는 걸까?? 한낮 가치 없는 그런 존재는 아니라는 걸까?? 가슴이 벅차오른다. 미친 듯이 뛰는 심장 박동에 맞춰 한 걸음 한 걸음 녀석의 뒤를 따른다. 잔인했던 어제의 모습이 마치 꿈만 같다.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이제성을 품에 안고 사라지던 녀석의 모습이 그저 꿈인 것처럼 느껴져서 미칠 만큼 행복해 진다. 복도를 지나 계단을 내려서는 녀석의 뒤를 힘겹게 쫓지만 내가 쫓아오는 것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녀석은 유유히 담배연기를 내품으며 걸어가고 있다. 그 등을 바라보며 미친 듯이 뛰는 이 심장 소리가 녀석에게 들릴까 걱정이 된다. 학교를 빠져나와 운동장 한가운데 떡하니 세워져 있는 할리데이비슨 제품의 나이트 트레인을 바라보며 예전 기억을 떠올린다. 예전에 사서 몇 번 몰고 다녔었던 바이크... 멈칫 서서 녀석이 한가운데 서 있는 요란한 나이트 트레인 위에 올라타는 모습이 보인다. 절뚝이며 나는 녀석이 올라타 있는 나이트 트레인 옆으로 걸어간다. 시동을 걸고 있는 녀석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쉰 목소리로 소리친다. “ .....채민준.....!!!!! ” 시동을 걸던 손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는 녀석의 표정은 그저 무표정하다. 무포정한 녀석의 얼굴에 핏 자국이 오히려 소름이 돋을 정도로 녀석과 잘 어울린다. 담배를 입에 문 녀석의 붉은 입술 끝이 묘하게 올라가고 서늘한 검은 눈이 나를 바라본다. 심장이 터질 것만 같다. 바이크에서 요란한 굉음이 울리고 곧 까만 배기가스가 나오자 나는 녀석의 뒤에 올라타 녀석의 허리를 부여 잡았다. “ 주인님이라고 불러- ” 바이크가 출발하며 바람에 실려 녀석의 서늘한 저음이 마치 바람결처럼 들려온다. 눈을 감고 녀석의 허리를 부여잡는다. 내가 녀석에게 손을 대는 데도 거부의 몸짓조차 없다. 쿵쿵거리는 나의 심장 박동이 녀석의 등에 닿아 느껴지겠지?? 그렇다면 내 감정을 눈치 체지 않을까?? 빌어먹을.. 모르겠다. 그저 나는 녀석의 허리를 부여잡은 채 콧속 가득 녀석의 향취를 들이 마쉰다. 비릿한 피 냄새와 섞여진 녀석과 어울리지 않은 달큰한 향기... 항상 꿈속에서 더듬던 허상의 녀석이 아닌 현실의 녀석의 몸을 껴안고 그 향기를 들이 마쉰다. 미칠 것만 같다. 심장이 터져 버려 미칠 것만 같았다. 엄청난 속도로 달리는 바이크.. 바람 따라 미친 듯이 춤을 추듯 휘날리는 녀석의 머리카락.. 그리고 녀석의 향기.. 사랑해... 채민준.....사랑해......사랑해.....사랑해... 희망이란 놈이 내 발목을 부여잡고 놓아주지를 않는다.... 지금 나 때문에 날뛰던 녀석의 모습이 희망이 되어 나를 옥죄어온다. 사랑해... 채민준... 사랑해.... 너는...?? 그럼 너는??? 귓가를 스치는 거친 바람소리에 눈을 감는다. 너는.................................... ........... ..... 이제성이냐??? ... 한참을 달렸다. 거칠게 녀석과 나를 때리듯이 느껴지는 바람에 몸을 맡기고.. 마치 녀석의 허리가 내가 붙들고 있는 썩은 동아줄이라도 된 듯.. 썩어버려 끊어질 듯 조마조마하게 붙들고 있는 그런 엿 같은 기분으로, 하지만 그 썩어버린 동아줄이라도 잡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만족하며.. 나 이렇게 욕심이 없던 놈 이였던가?? 녀석의 허리를 부여잡고 녀석의 향취를 맡고 그 등에 얼굴을 뭍을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에 미칠 것만 같다. 나는 녀석을 차지하려고 과거로 돌아 온 것인데... 고작 성취한 것이라고는 녀석을 가질 수 없는 절망과 비밀로 봉쇄해 버린 나의 마음뿐이다.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미칠 듯이 행복하다. 어둑해진 하늘과 빠른 속력으로 달려 마치 춤을 추며 움직이는 듯한 가로수의 나무들의 모습에.. 얼굴을 할퀴듯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결에 따라 미친 듯이 휘날리는 나의 머리카락과 녀석의 머리카락.. 그리고 녀석의 향취.. 녀석의 허리를 잡고 있는 그 감촉... 그 활홀함.. 그 두근거림.. 너무 행복해서 웃음이 난다. 녀석의 등에 얼굴을 묻고 웃는다. 그 순간만큼은 시간을 멈춰 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의 시간도 나에게는 필요치 않았다. 정말 그 순간만큼은 그랬다. 시간을 잡아 두고 놓아주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시간을 꽁꽁 묶어 두고 풀어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나의 바램 따위는.. 그런 소원 따위는 이루어지지 않는 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영원히 달릴 것만 같았던 나이트 트레인은 멈추었고, 녀석은 유연하게 나이트 트레인에서 내려 눈앞에 크게 버티고 있는 호텔 지하에 위치하고 있는 꽤 유명한 나이트 입구 쪽으로 걸어간다. 아니 녀석 아버지란 사람의 소유의 그 호텔 지하에 있으니 분명 이 나이트도 녀석의 아버지 소유일 것이다. 나는 급하게 녀석의 뒤를 쫓는다. 젠장!!! 기다려!! 내 시야에서 벗어나지마.. 습관처럼 시도 때도 없이 담배를 피워 대는 녀석은 또 다시 담배 한 가치를 꺼내 붉은 입술에 베어 문다. 지포라이터를 꺼내는 날렵한 손을 어느새 녀석의 등 뒤로 다가간 내가 잡아챈다. 서늘한 검은 눈동자가 지포라이터에서 자신의 손을 잡아챈 나의 손으로 그리고, 나의 얼굴로 옮겨진다. 이리저리 피 떡이 되었을 이 흉한 얼굴을 보고 있을 녀석을 생각하니 괜히 부끄러워지는 내 자신이 병신 같다. 그 까만 눈동자가 현란한 조명을 받아 다채로운 색깔을 띤다. 초록 조명에 초록빛.. 붉은빛... 예쁘다.. 쭉 길게 치켜 올라간 차가운 눈매의 녀석이 뭐가 그렇게 멋지고 예쁜 건지.. 가슴이 다 떨린다. 어째서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나는 녀석만 보면 심장이 미친 듯이 뛰어댔는데도 지금까지 지치지도 않은지 변함없이 미치도록 뜀박질 하고 있을 뿐이다. 저 곳에 들어가기 전에 녀석의 얼굴에 반 녀석들의 핏자국을 닦아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먼저....피 닦고... .. 담배를 피든지... 들어가든지 해라.. ” 주머니를 대충 뒤적거리자 손수건이 잡힌다. 얼른 손수건을 꺼내 녀석의 얼굴에 묻어 있는 핏자국을 닦아 낸다. 이미 피가 말라버려 잘 지워지지 않아 눈썹을 끌어 모으며 핏자국을 지우는데 여념이 없다. 짙고 기다란 속눈썹에 둘러싼 새카만 눈동자로 그런 나를 내려다보던 녀석의 붉은 입술 끝이 묘하게 올라간다. “ 핥아서 닦아- ” 나직하게 명령조로 내뱉는 저음이 묘하게 섹시하고 허스키하게 들려온다. 침을 꿀꺽 넘기며 나는 녀석을 조심스럽게 올려 본다. 핥아서 닦으라고?? 기꺼이... 나이트 출입구 앞에서 몇 명의 사람들이 단체로 나이트 안을 들어가고 있다. 나보다 두세 뼘은 큰 키의 녀석을 향해 발을 올려 혀로 녀석의 하얀 뺨에 묻어 있는 피를 핥는다. 할짝- 할짝- 묘하게 색스러운 소리에 피 떡이 되어 엉망진창인 얼굴에 피가 몰려 뜨겁다. 아마 엉망인 모습이라 붉게 달아올랐을지 아무도 눈치 챌 수는 없지만, 나는 녀석의 얼굴에 묻어 있는 피를 핥아 낸다. 사람들의 거부감 어린 시선이 등 주변으로 뜨겁게 몰리지만 상관없다. 내 심장은 지금 터져 버리기 일보직전이니깐... 내 아랫도리 하나도 간수 못해 흥분으로 서버렸는데 사람들의 시선 따위에 신경이 갈리 없다. “ 쿡- 간지럽군- ” 피식- 아주 잠깐 예쁜 모양으로 웃음 짓는 녀석의 입술 선을 바라보며 숨이 막혀 온다. 입 안에서 비릿한 피 향이 돈다. 역하면서도 녀석의 얼굴에 묻어 있다는 자체 하나 만으로도 더럽지 않다. 오히려 달콤한 과즙과도 같이 느껴질 따름이다. “ 주인 말을 아주 잘 따르니깐 키우는 보람이 남 다른데? 킥- ” 비꼬는 투로 말하는 녀석의 저음의 목소리에 미칠 것만 같았던 내 심장은 쿵- 하고 내려앉는다. 왜 나에게 조금의 희망이란 놈을 보여주었을까? 방금까지 너의 바이크 뒤에 올라타 같이 거리를 달리며 나는 한낮 분에 겨운 꿈을 꾸고 있었지.. 하지만 알고 있다. 그것은 단지 나 혼자 억지로 쥐어 잡은 티끌만큼의 희망이라는 놈 이였다. 그 썩은 동아줄을 잡고 얼마만큼 버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씁쓸한 웃음을 흘리며 나는 녀석을 올려다보며 계속 핥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목마르다.. 항상 그렇듯 나는 항상 녀석에게 목이 말랐었다. 지금도... 지금의 모습 이였을 그 과거도, 그리고 미래에서도... 이렇게 바라 볼 때면 항상 역겹다고 말하고 하던 녀석은 그저 그런 내 눈동자를 쫓고 있다. 그 까만 눈동자가 나의 눈동자를 쫓고 있다는 사실에 다시 가라앉은 심장은 미친 듯이 뛰어오르고 있다. 녀석의 얼굴에 묻어 있는 피를 혀로 핥고 있는 지금 온통 내 신경을 쏟는 것은 혀로 닿는 녀석의 놀라 우리 만큼의 부드러운 느낌과 녀석의 살을 내 혀로 느꼈다는 것이다. 원래 나는 이렇게 더러운 놈이잖아... 변태라구.. 킥. 유연한 손동작으로 내 턱을 그러잡는 녀석의 희고 기다란 손가락을 내려다보며 나는 핥는 것을 멈춘다. 턱을 타고 녀석이 잡고 있는 부드러운 살의 감촉에 몸이 떨린다. 내리 깔은 길게 드리워진 속눈썹 사이로 그 까맣고 까만 눈동자가 나의 망가진 얼굴로 고정 되어있다는 자체에 숨이 막혀 버릴 것만 같다. 그래. 그렇게 나를 바라봐줘. 그 눈에 나를 담아줘.. “ 정말 다 죽여버릴 걸 그랬나? ” 녀석의 나직한 저음에 내 심장은 미친 듯이 뛴다. 이리저리 턱을 잡고 망가져 피떡이 되어 버린 얼굴을 돌려보며 녀석의 짙은 눈썹 끝이 위로 치켜 올라간다. 번쩍거리는 화려한 네온사인에 녀석의 모습을 비춘다. “ 죽여버릴 걸 그랬어...... 그렇지?? ” 녀석이 입술 끝을 치켜 올리며 묻는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마냥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피식 웃는다. “ 왜 날 위해서 살인을 하는데? ” 그래... 너 지금 나한테 희망이란 놈을 너무 많이 투여하고 있어. 이건 마치 마약과도 같다구. 희망이란 놈에게 중독 되서 벗어나지 못할지도 몰라. 그렇다면 나는 절대로 너를 벗어날 수도. 아니 나는 너에게 벗어 날수도 없는 놈이지. 뺏기지 않아!!! 이제성에게 줄거라면 차라리 내가 널 죽이겠어!!! “ 내꺼니깐- ” 저음의 음성이 마치 당연한 논리라도 되는 듯이 말한다. 붉은 입술 끝이 묘하게 올라가며 곧 벌어진 입술 사이에서 희부연 담배연기가 흘러나온다. “ 몸은 네 것 이라 불리는 개새끼 구실을 하고 있을지 모르지... 과연.....큭... ” 나는 웃으며 손가락으로 내 가슴을 친다. “ 마음은... 누구 쪽 일까?? ” 그래... 마음은... 너는 모르겠지.. 마음은 어느 쪽인지...이제성이라는 포장지로 잘 감싸둔 내 마음을 말이야. 그 포장지를 열면 아주 희한하게도 그 안에는 온통 너란 놈으로 갈기갈기 찢어져 걸레가 된 내 심장이 있겠지만. 아직까지는 열수 없는 그런 포장이 잘된 선물이라구.... 녀석은 눈을 가늘게 뜨며 나를 내려다본다. 매캐하게 주위를 부유하는 담배연기를 다시 깊게 빨아들이며 녀석은 한 발짝 두 발짝 나를 향해 다가온다. 숨결이 닿을 정도로 가깝게 선 녀석이 담배연기를 얼굴에 후- 내품으며 시니컬하게 말한다. “ 네 맘 따위 알게 뭐야- ” 담배연기와 함께 흩어지는 녀석의 시니컬한 저음의 음성이 내 가슴을 할퀸다. 붉은 입술 끝을 차갑게 올리며 입가에 띈 차가운 조소에 온 몸이 소름이 돋는다. 삐딱한 자세로 나를 그 까만 눈이 나를 내려다 보다 몸을 돌려 버리는 동시에 다른 곳을 향한다. 그저 녀석의 등을 바라본다. 웃음이 난다. 그래.. 너에게 그저 내 맘 따윈 관심 밖의 이야기겠지. 그렇겠지....젠장..!! 거만하게 걸어가는 녀석을 향해 웨이터 한명이 뛰어 올라와 급하게 허리 굽혀 인사를 한다. 하긴 호텔 회장 아들이니 당연한 대우이다. 교복을 입고 당당하게 걸어 들어가는 녀석의 등을 바라보며 나 역시 따라 걸어간다. 바지 주머니 가득 구겨진 담배갑에서 역시 구겨져 있는 담배 한 가치를 꺼내 입에 문다. 구겨져 옆이 터진 담배 끝에 불을 붙이려고 주머니를 뒤지지만 예전부터 가지고 다니던 일회용 라이터는 잡히지 않는다. 한참을 그렇게 부스럭거리는 내 앞에 다가온 아까 그 웨이터가 라이터를 켜 담배 끝에 불을 붙이며 싱긋 웃는다. 그저 무표정하게 그런 웨이터를 훑어본다. 제법 연륜이 묻어나는 얼굴과 영업용 웃음이 노련하다. 거기다 꽤 고급의 정장차림이 웨이터라기보다는 지배인 정도로 보인다. 녀석의 친구로 보인 듯 예의 있게 구는 웨이터를 바라보며 기묘한 기분이 든다. 내가 이 녀석의 애완견 따위의 존재라는 걸 안다면 이렇게 굴까? 비틀린 웃음을 흘리며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멀찍이 나이트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녀석의 뒤를 따르며 지배인이 빠른 걸음 거리로 안내를 한다. 계단 밑을 내려갈 때 비추는 푸른 조명에 머릿속이 몽롱하다. 희뿌연 담배 연기를 내품으며 더더욱 머릿속은 어지럽다. 목을 갑갑하게 옳아 매는 넥타이를 헐렁하게 잡아끌며 내 눈은 녀석의 등을 향한다. 푸른 조명을 받아 유난히 푸른빛으로 시리게 빛나는 간간히 핏방울이 틔어 있는 교복 셔츠와 푸른빛이 도는 까만 머리카락... 담배를 끼고 있는 유려하고 기다란 손가락, 그리고 어김없이 피어오르는 뿌연 담배연기. 그 뒷모습이라도 잃어 버릴까봐 나는 내 눈 속에 녀석을 담는다.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이렇게 막연하게 뒷모습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마주 보겠지?? 그리고 저 기다란 손가락 사이에 내 손가락을 끼어 마주잡고, 녀석의 향기를 마음껏 맡고 녀석을 입술을 맛 보고 녀석을 부둥켜안을 수도 있을까?? 이렇게 타는 듯한 시선으로 해바라기처럼 바라만 보는 것이 아니라... 녀석의 그 까만 눈 안에 오직 나만을 담아줄까?? 알 수 없다. 나란 놈은 사랑 따윈 받은 기억이 없다. 그 누구에게도... 나이트 안을 가득 매운 수많은 사람들의 미친 듯이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며 담배연기를 후- 하고 내 뱉는다. 희뿌연 담배연기 속에서 고막을 찢을 듯 울려 퍼지는 음악소리와 현란하게 돌아가는 색색깔의 조명에 머릿속이 어지럽다. 온 세상이 비틀거리는 느낌이다. 한손으로 거칠게 머리카락을 헝클어트리며 녀석의 뒤를 쫓는다. 나이트 모습을 내려다 볼 수 있도록 위에 위치한 룸 쪽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오르고 있는 녀석과 비틀거리며 녀석을 쫓는 나. 그리고 교복 차림으로 아무렇지 않게 나이트를 그것도 룸으로 들어가는 모습에 몇 명이 황당한 시선으로 올려다보는 것이 보인다. 마치 환각제라도 들이마신 것처럼 담배연기와 폐 속 깊이 빨아들인 담배의 안 좋은 성분들이 모두 내 뇌 속으로 들어간 듯 어지럽다. 가장 커 보이는 룸 문을 열며 지배인이 굽신거리자 그 앞에 선 녀석이 무표정한 얼굴로 룸 안을 들여다본다. 룸 안은 온통 난장판이다. 벌써 술파티를 벌인 듯 빈 양주병들이 테이블 위를 굴러다니고, 허리까지 오는 기다란 머리카락의 거의 다 벗은 것이나 마찬가지의 차림의 여자가 다리를 꼬고 앉아 담배를 피우며 도발적으로 녀석을 바라보고 있다. 붉은 빛이 도는 입술이 멀건 젤리처럼 반짝인다. 그 입술과 맞물려 하얀 담배가 묘하게 눈에 띈다. 꽤 잡지에 실리는 유명한 모델 출신의 그녀는 내가 알고 있는 여자이기도 하다. 녀석과 잠깐 사귄 여자의 모습을 잊을리 없다. 꽤 도도했던 저 여자가 녀석의 다리에 매달리며 비참하게 깨지는 순간을 보며 나는 입가에 저절로 흐르는 웃음을 가리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 과거를 회상하니 또 웃음이 난다. 매캐한 담배연기가 룸 안을 가득 채우고 여자의 붉은 입술이 열려 꽤 끌리는 나른한 말투의 음성이 들려온다. “ 늦었어. ” 녀석은 그저 무표정하게 어깨를 한번 올리고는 담배를 입에 문다. 나는 녀석의 담배가 되고 싶다. 녀석의 그 기다란 손가락에 애무를 받는, 그 입술에 맞물린 담배가... 비틀거리는 몸을 어찌하지 못하고 문턱에 머리를 기대며 그 여자를 바라본다. 예쁘다. 너무도. 정말 죽여 버리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여자다. 여자의 동그랗지만 눈 꼬리가 올라가 고양이를 연상시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담배연기를 내품으며 묻는다. “ 뭐야-?? 쟤 얼굴이 왜 저래? ” 녀석의 시선이 다시 나를 향한다. 나릇한 표정의 녀석이 붉은 입 꼬리를 치켜 올리며 피식 웃는다. 질척거리는 까만 눈동자에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부어오른 내 모습이 비친다. “ 신경꺼- ” 나를 계속 바라보며 녀석이 말한다. 나는 녀석의 시선에 미친 듯이 두근거리는 심장 녀석을 진정시키며 애써 녀석에게서 시선을 돌려 여자를 바라본다. 잘 그려진 눈썹을 들어올리며 여자의 입술이 비쭉인다. 담배 끝을 잘근 잘근 씹으며 여자가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끄며 기다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툴툴거린다. “ 좋아- 신경 끌게. 그런데 이거 하나는 물어 봐도 돼? 너 그 차림은 뭐야? 누구라도 죽이고 온 거야? ” 여자의 물음에 녀석은 대답 대신 담배연기만 내품으며 여자의 옆 자리에 앉는다. 거만한 자세로 앉아 나른한 시선으로 녀석이 여자를 바라보자 여자가 투정부리듯 녀석의 팔을 잡고 흔든다. 녀석의 시선이 다시 나를 향한다. 그 까만 눈동자가 너무 아름다워서 그리고 너무나도 잔인해서 가슴이 욱신거린다. 녀석의 팔을 잡고 있는 여자의 손목을 잘라버리고 싶다. 나의 시선이 오직 그 여자의 손으로 가있다. “ 앉아- ” 녀석의 저음에 얼굴을 들어 다시 녀석을 바라보고는 비틀거리며 빈 자리에 앉는 나는 정말 잘 훈련된 강아지와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 네 자린 거기가 아니잖아- ” 녀석의 시선이 차갑게 빛나고, 나른한 저음의 목소리가 나를 옭아맨다. 나는 녀석의 옆으로 비틀거리며 걸어가 양주병이 굴러다니는 바닥에 무릎 꿇는다. 녀석이 손만 뻗으면 내가 닿을 거리에 무릎 꿇고 앉아 버린 나란 놈에게 나 자신이 비웃는다. 그래. 나는 개야. 녀석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 무슨 일이든 하는 녀석의 개라고. 녀석의 처음 본 그 날 이후.... 그리고 역시나 지금도 예전의 나도, 미래도... 녀석의 개라도 되어서 녀석의 손길에 닿고 싶은 그런 미친놈이라고. 거짓으로 모든 걸 짓거리고 포장해서라도 옆에 머물고 싶은 그런 놈이라고.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비벼 끄며 나는 녀석을 올려다본다. 네 말처럼 내 자린 거기가 아니야 네 옆자리라고 네가 지금 말했어. 새끼야!!! 그러니깐 절대로 떨어지지 않아. 너의 옆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죽여서라도 옆에 있을 거야. 아니면 너를 죽여서 너의 시체라도 끌어안을 거다. “ 쟨 왜 저기에 앉혀?? ” “ 내 소유의 개새끼가 내 옆에 있는 게 당연하잖아-? ” 여자가 묻자 녀석이 시니컬한 목소리로 되묻듯 말한다. “ 사람을 개 취급이나 하고- 내가 반한 남자라는 놈 생각을 알 수가 있어야지- ” 여자의 말에 녀석의 붉은 입술이 비틀린다. 담배를 입에 무는 나른한 동작과 함께 녀석의 손가락이 내 머리카락을 휘감는다. 그 감촉에 온 몸을 경직한 채 굳은 얼굴로 녀석을 올려다본다.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나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휘감으며 쓰다듬는 그 손길에 가슴이 저릿하다. 그 나른한 동작하나 하나에, 기다란 손가락의 감촉 하나하나에 심장이 뛴다. 미친 듯이 뛰는 심장 덕택에 가파른 숨결을 내 뱉으며 나는 녀석을 탐욕스럽게 바라본다. “ 다른 애들은 너 오기 기다리다 못 참고 춤추러 나갔어- ” 여자가 도발적으로 녀석을 바라보며 녀석 위로 올라앉는다. 나를 어루만지던 손길이 끊김과 동시에 여자의 젤리 같이 붉게 반짝이던 입술이 녀석의 붉은 입술을 빨아들인다. 혀를 들이밀며 깊게 입을 맞추는 그년의 머리카락을 당장이라도 잡아 끌어버리고 싶지만 나의 머리카락에서 떨어지지 않은 녀석의 손이 내 머리카락을 다시 어루만짐과 동시에 여자의 키스를 묵묵히 받으며 담배 끝에 위험스럽게 매달린 재까지 재떨이에 털어내는 무감각한 모습에 나는 비릿한 웃음을 흘린다. 그래. 너는 저 따위 여자를 사랑하지 않지. 즐기기 위한 도구라도 되는 거겠지.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그저 키스를 받아내던 녀석의 입술 위를 헐떡거리며 떨어진 여자가 색정적인 목소리로 녀석의 목을 끌어안고 속삭인다. “ 하자- 너랑 하고 싶어 미치겠어- ” 무표정하게 그런 여자를 쳐다보는 그 까만 눈동자에는 아무런 감정도 담아 있지 않는다. 여자는 다시 녀석의 입술 위로 자신의 입술을 포개며 녀석의 바지 버클을 풀고 자크를 내린다. 급박한 손길로 녀석의 것을 잡으려 하자 느릿한 손길로 그런 여자의 손목을 잡는다. 갑작스럽게 자신의 행위를 막아선 녀석에게 놀란 듯 입술을 떼고 여자가 녀석을 올려다본다. “ 떨어져- ” 낮게 울려 퍼지는 목소리가 무미건조하다. “ 뭐?? ” 날카롭게 묻는 여자의 목소리가 룸 안을 째지듯이 울린다. “ 떨어지라고- 이 년아 ” 녀석의 욕설에 여자는 후다닥 녀석 위에서 내려와 선다. “ 너 지금 나보고 년이라고 했냐? ” 째지듯 울려 퍼지는 여자의 목소리에 인상을 찌푸리며 그런 여자를 올려다본다. “ 꺼져- 꼴리지도 않는 년이랑 좆질 할 생각 없으니깐- ” “ 나쁜 새끼!!! ” 여자의 큰 눈에서 눈물 같은 것이 흐를 것처럼 괴어 있지만 나는 이 상황에서 그저 나오려는 웃음을 참고 있을 뿐이다. 여자에게 일말의 동정도 생기지 않는다. 그저 부들부들 떨며 서 있는 여자가 빨리 여기서 꺼져주길 바랄 뿐이다. 내 바람이 하늘에 닿았는지 여자가 꺼져주려는 듯 문 쪽으로 걸아 나간다. 그리고는 분에 겨웠던지 다시 되돌아선 여자가 걸어와 테이블에 늘어져 있는 잔을 들어 녀석의 얼굴에 끼얹으며 소리친다. “ 개새끼!!! 양주로 샤워하니깐 좋지?? 이 정돈 해줘야 내가 분이 풀릴 것 같았으니깐 이 정도 엿 먹이고 네 말대로 꺼져주긴 할게- 이 미친놈아!!” 꽤 고가의 양주였던 깊은 양주의 향이 녀석에게서 풍겨 난다. 머리카락에 이어 녀석의 희고 긴 목을 타고 녀석의 쇠골로 흐르는 액체를 바라보며 나의 심장은 미친 듯이 뛴다. 묘하게 술이 끼얹혀져 젖어 있는 모습이 섹시해 보여서 내 시선은 녀석을 태워 버릴 듯 바라보고 있다. 여자가 휭 하니 뒤를 돌아서며 문 쪽으로 다시 걸어 나가자 가만히 술에 젖은 녀석이 빈 잔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여자 쪽으로 던진다. 정확히 유리잔이 여자의 뒷머리에 맞아 깨지는 소리와 함께 여자의 비명소리가 울린다. 유연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느릿하게 걸어 간 놈이 쓰러진 여자 쪽으로 다가가 여자의 피로 젖어든 머리카락을 휘어잡아 올린 채 시니컬한 목소리로 여자의 귓가에 붉은 입술을 댄 채 말한다. “ 샤워 시켜줘서 고맙군- " “ 으....윽..... 아.. 파..!! ” 녀석의 짙은 눈썹이 위로 치켜 붉은 입술 끝이 비틀린다. 피를 흘리며 덜덜 떨고 있는 여자를 바라보던 녀석이 핸드폰을 들어 누군가에 전화를 걸자 곧 룸으로 웨이터들이 들어와 여자를 업고 나간다. 축 늘어져 피를 줄줄 흘리고 있는 여자의 모습이 조금은 안쓰러워 보이기까지 할 정도로 나는 녀석의 잔인한 행동에 치가 떨린다. 하지만.... 녀석을 보면 먼저 반응하는 이 심장은 어쩔 수가 없다. 치가 떨릴 정도로 잔인하고 미친 이 녀석만을 보면 반응하는 이 심장을... 어디에 있어도 녀석을 찾는 내 눈은 타는 듯이 힘겹게 녀석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다시 자리에 돌아가 앉아 굴러다니는 양주잔을 찾아 양주를 들이 붓는 녀석의 옆 쪽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자리에 뒷머리를 기댄다. 쿵쿵거리며 울려 퍼지는 음악소리가 들려 와서 그 비트에 맞추어 내 심장도 쿵쿵거린다. 아까 흘린 여자의 비릿한 피 내음과 양주 향이 가득한 룸 안에서 녀석과 나 둘 만이다. 무겁게 내리감은 눈이 어느새 다시 다가온 녀석의 손길에 떠진다. 마치 자신의 애완견을 쓰다듬듯이 내 머리카락을 휘저으며 손가락으로 휘감듯이 쓰다듬는 그 손길에 온 몸이 녹아내릴 것만 같다. 심장은 욱신거리며 아프게 뛰고 있다. “ 희망 따위 주지마... 새끼야... ” 내 입속으로 흘러나오는 쉬어 버린 목소리가 룸 안을 울려 퍼진다. 양주잔에 입을 가져다 대던 녀석의 행동이 멈칫하다가 잔을 꺾어 들이킨다. 목울대를 타고 양주가 타는 듯이 넘어가는 모양을 바라보며 나는 아프게 녀석을 바라보며 입을 연다. “ 역겹다는 놈 따위의 머리카락이나 어루만지면서 나한테 희망 따위 주지 말란 말이야!!! ” “ 희망이라- ” 양주를 잔에 채우며 녀석이 중얼거리듯 속삭인다. 저음의 목소리가 묘하게 서늘해서 내 가슴 역시 서늘해진다. 나의 머리카락의 휘감던 손길이 아까의 부드러움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강하게 휘어잡는다. 머리카락이 뽑힐 듯한 아픔에 입안에서 새어나오는 신음을 참아내며 외쳤다. “ 너와 다시 친구로 돌아 갈수 있다는 희망 따위 주지 말라고. ” 나도 모르게 튀어 나오는 진실을 거짓으로 급하게 포장하며 소리친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아직은. 내 마음을 알려줄 수 없다. 머리카락을 뒤로 잡아채자 고개가 꺾여 턱이 높이 치켜 올려진다. 잔에 입술을 대며 녀석이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한다. “ 희망 따위 준 기억이 없는데-? ” 주먹을 움켜쥐고 녀석을 바라보며 나는 숨을 헐떡인다. 나를 건드리는 것 하나만으로도 나에게는 희망 따위의 의미로 다가온다는 것을 네 녀석이 알 필요는 없지. “ ................... ” “ 이제성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하지? ” 시니컬하게 묻는 녀석의 목소리에 나는 웃는다. 그 까만 눈동자가 웃고 있는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도, 그 나른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내 마음에 대해 묻는 녀석의 모습에 왠지 기분이 좋다. 내 머리카락을 움켜잡고 두피가 찢어질 듯 잡아당기고 있는 우악스러운 녀석의 손길조차도 사랑스럽다. “ 그 녀석을 먹어 버리고 싶어... 항상 녀석에게 목이 말라 있지... 킥... 호모의 심리가 궁금해? 아니면 남자새끼만 보면 발딱 서는 나란 놈의 녀석을 향한 욕망을 보여줘야 하나? ” 술에 젖어 푸른 조명 아래 앉아 있는 푸른빛이 도는 까만 머리카락이 촉촉이 젖어 있는 옆모습을 바라보며 미칠 듯이 녀석을 만지고 싶다. “ .........이리 와서......보여 봐.. ” 무심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던 녀석이 나직하게 명령한다. 무엇을?? 무엇을 보여 보란 말이지??이제성을 향한 거짓 욕망을?? 아니면 너를 향한 이 미칠듯한 욕망을? 그리고 곧 나를 바라보는 녀석의 시선에 끌리기라도 한 듯 일어나 녀석 앞에 선다. 잔을 빙글빙글 돌리며 녀석이 거만한 자세로 앉아 나를 올려다본다. 항상 내려다보던 녀석이 나를 올려다보니 그것 또한 이상한 기분이다. 녀석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자 녀석의 입술 끝이 비틀린다. 차갑게 나를 비웃는 녀석의 표정에 심장이 얼어붙는 듯 하다. “ 어떻게 보여줄까? ” 내가 묻자 녀석은 그저 말없이 빙글 빙글 잔을 돌리다 동작을 멈추고 한쪽 눈썹 끝을 치켜 올리며 저음의 목소리로 나른하게 속삭인다. “ 이제성을 생각하며 내 앞에서 자위를 해봐. ” 자위라는 두 글자에 나는 녀석을 바라본다. 자위가 필요 없을 정도로 나의 아랫도리는 벌써 서버려서 녀석을 향한 나의 욕망이 여실히 들어나고 있었다. 녀석을 바라보며 싱긋 웃어 보이는 여유까지 보이며 나는 바지 버클을 풀고 자크를 내렸다. 부끄러움 따위는 없다. 원래 나는 이런 놈이니깐. 녀석을 생각하며 항상 자위를 하던 그런 놈이니깐 녀석 앞에 내 것을 보이고 자위를 한다고 하여 얼굴을 붉힐 정도로 수줍은 얼간이도 아니다. 불룩하게 솟아오른 나의 것을 나른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녀석을 향해 나는 다시 싱긋 웃으며 브리프를 내리고 서 있는 내 것을 잡는다. 눈을 뜨고 녀석을 바라보며 바닥에 무릎 꿇고 천천히 비비며 녀석의 붉은 입술, 곧게 뻗은 조각 같은 콧날, 그 새까맣고 질척한 눈동자를 향한다. 마치 그 모습을 머릿속에 담듯이 하나하나 쳐다보고 눈을 감는다. 달칵- 하고 지포라이터를 여는 소리와 함께 매캐한 담배연기가 룸 안을 가득 매우지만 나는 눈을 감은 채 내 것을 잡고 서서히 속도를 가해 내 것을 잡은 손을 움직이며 녀석을 생각한다. 꿈속에서나 항상 보는 녀석의 벗은 몸을 그리고 내 몸 위로 올라타 나를 범하는 녀석을 생각하자 머릿속이 새하얗게 퇴색되어 버린다. “ 하...앗... 으.....윽..... 흡.....하....앗... ” 입 밖으로 미칠 듯이 흘러나오는 신음소리에 녀석의 몸에 깔려 뒹구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자 미칠 것만 같다. 더군다나 이런 나의 모습을 녀석이 보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나를 흥분 시키고 있었다. 쿵쿵거리며 뛰는 심장박동소리와 점점 핀치를 가하며 자위를 행하고 있다. “ .........그만해.....!! ” 날카롭게 날이 선 저음의 목소리가 나를 향해 경고한다. “ 흐...읍.. 하...핫....핫.... 아...앗...흡... ” 녀석을 생각하며 자위를 하는 손을 멈출 수가 없다. 정말 내 자신이 동물 같다는 생각을 한다. 녀석의 품에 안겨 헐떡이는 상상 속에서 쾌락을 달린다. 쨍그랑- 자위를 하던 손길을 멈추고 나는 눈을 뜬다. 아슬아슬하게 나의 관자놀이를 유리잔이 스치고 벽과 부딪혀 유리가 조각나는 소리와 함께 잔에 들어있던 술과 유리파편이 흩어진다. “ 그만하라고 했잖아 씹새끼야-!!! ” 벽을 타고 주륵 흐르는 술과 유리 잔해물을 고개를 돌려 바라보다가 다시 녀석을 올려다본다. 벌떡 일어나 나를 향해 다가와 내 목을 움켜잡는 녀석의 입술 끝이 차갑게 비틀린다. 한쪽 손으로 움켜잡은 목에 힘을 가하며 녀석의 다른 한 쪽 주먹이 얼굴을 갈긴다. 빠각- 엉첨난 타격음과 함께 돌아간 고개에서 헤져서 걸래가 된 입안에서 핏물이 흐른다. 다시 연달아 주먹으로 내 얼굴을 갈기던 녀석이 내 위에 올라타 한쪽 손으로 목을 짓누른다. 목구멍이 점점 조여드는 느낌과 함께 숨을 헐떡이며 나는 녀석을 바라본다. 그래. 차라리 나를 죽여. 아니면 내가 널 죽일지도 모르니깐. 채민준. 목구멍이 막혀 입 안으로 더 이상의 공기는 들어오지 않았고 오로지 목을 조여 오는 고통에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핏물이 섞인 침을 줄줄 흘리며 입을 크게 벌린다. 눈을 부릅뜨고 녀석을 바라본다. 녀석의 검은 눈동자가 알 수 없는 빛으로 일렁거리며 광기에 번뜩이고 있다. 그 광기가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다. 단지 내 행동이 녀석의 화가 나게 했다는 것 외에는. 역겨워서?? 남자를 생각하며 역겹게 자위를 하는 내가 역겨워서?? 숨통을 조여 오는 고통 속에서 나는 녀석을 슬프게 바라본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내 목을 조여 오는 힘이 점점 풀려오는 것을 느끼며 나는 힘겹게 눈을 감아 버린다. 내 위에 올라탄 채 녀석은 그런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심장은 미친 것처럼 뛰고 있다. “ 큭- 콜록... 콜록- 핫... 윽... ” 핏물과 섞인 침을 줄줄 흘리며 트여진 숨을 들이 마쉰다. 가슴을 들썩이며 괴롭게 기침을 하면서도 내 몸 위에 올라타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녀석을 느끼자 죽어버렸던 나의 그것이 다시 일어선다. 심장은 가속력을 내듯 뛰고 있다. 녀석의 손이 나의 머리카락 속으로 들어가 두피를 어루만진다. 그 서늘한 감촉이 좋아서 나도 모르게 신음을 흘린다. 얼굴 가까이 느껴지는 녀석의 향취와 그리고 녀석의 숨결이 느껴져서 무겁게 내려앉은 눈꺼풀을 뜬다. 고개만 잠깐 움직여도 입술이 맞닿을 정도로 가깝게 다가온 녀석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그 까만 눈동자가 너무나도 가깝게 다가와 나의 모습을 채우고 있어서 미칠 것만 같다. 긴 속눈썹에 감싸여진 그 검은 눈동자에 내 모습이 비추고, 터질 듯이 붉은 입술 끝은 차갑게 비틀린다. 머릿속 나의 두피를 어루만지며 녀석이 눈을 가늘게 뜬다. 긴 속눈썹 사이로 검은 눈동자가 차갑게 빛난다. “ 주인 앞에서 발정내면 이제성과 교미라도 시켜 줄줄 알았나? ” 어루만지는 손길이 차가워서 온 몸에 소름이 돋는다. 나른하지만 시니컬한 목소리로 녀석이 묻자 나는 녀석을 어루만지고 싶은 손을 억지로 참아내며 비웃듯 녀석을 바라보았다. “ 왜? 발정내는 모습을 보니 역겹냐? 아니면 꼴리기라도 해? ”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리며 두피를 어루만지던 녀석의 손길이 멈춘다. 붉은 입술가득 묘하게 웃는 표정으로 녀석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가깝게 다가온 녀석의 숨결에서 녀석의 향취가 같이 느껴진다. 긴 속눈썹에 가리어진 검은 눈동자에서 묘한 빛이 일렁거린다. 녀석의 붉은 입술이 달싹거리지만 뭐라고 하는지 들리지 않는다. 눈을 크게 뜨고 녀석의 입 모양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달싹이던 입술이 멈추고 알 수 없는 답답함에 화가 나서 그런 녀석을 멱살을 쥐어 잡자 녀석의 붉은 입술이 차갑게 비틀린다. “ 뭐라고- 중- ” 덜컹- “ 내가 일을 방해 한건가?? ” 유난히 크게 들려오는 음악 소리와 문 앞에 몇 명의 녀석들이 여자들과 땀에 젖어 있는 채 룸의 문을 열고 웃음을 흘리며 서 있다. 명품 옷을 차려입고 부티가 흐르는 한 놈은 예전부터 녀석과 어울려 다니던 ‘진연준’ 이라는 놈이라는 것을 과거속의 기억에서 떠올려 낸다. 진연준의 염색한 회색빛이 도는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간교한 웃음을 흘린다. 같은 배경을 가지고 있는 재벌 2세라고 알려진 진연준 놈을 중심으로 노는 녀석들 모두 꽤 사는 놈들이지만 그 들과 그다지 어울리기를 싫어하던 녀석이 왜 이 녀석들과 나이트에서 만나기로 했는지 알 길이 없다. 아랫도리를 들어 낸 채 누워 있는 나와 내 위로 올라서 고개만 움직여도 입술이 스칠 정도로 거리를 유지한 채 얼굴을 가까이 대고 있는 녀석과의 자세가 어떠한 상상을 불러일으킬지 떠올리며 나도 모르게 피식 웃어 버린다. 꽤나 유쾌한 상상 아닌가? 녀석이 나를 범하려고 하는 모습이라... 진연준의 비꼬는 듯한 목소리가 다시 울린다. “ 이런- 이런- 채민준이 남자와 뒹군다라- 이거 참- 웃긴데?? 호모라면 치를 떨던 새끼가 말이야- 그것도 저 새끼 너와 단짝이라고 붙어 다니던 녀석 아닌가?? 얼굴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 알아보기 힘든데-? 킥- 이렇게 보니 맞는 것도 같고- ” 어느새 다가선 녀석이 몸을 숙여 내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며 턱을 어루만진다. 큰 눈을 가늘게 뜨며 웃는 녀석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고 싶지만 내 위로 올라타 있는 녀석 탓에 몸을 움직일 수가 없다. 내 몸 위에 올라타 있던 녀석의 시선이 나에게서 진연준으로 향한다. 날렵한 동작으로 주머니에서 나이프를 꺼내 진연준의 목 위로 겨누며 진연준을 바라보는 녀석의 표정은 그저 무미건조할 뿐이다. 검은 눈동자에 무료함이 가득하다. 속눈썹을 내리깔고 턱을 치켜 올리며 녀석의 붉은 입술이 열려 싸늘하면서도 허스키한 저음이 들려온다. “ 더 이상 지껄이면 그어주지- ” 진연준의 눈이 가늘어 진다. 자신의 목 위로 겨누어진 칼끝을 바라보며 피식 웃어 버리는 진연준이 대꾸한다. “ 이러면 곤란하지 않나?? 그저 너의 성적 취향이 그 쪽으로 바뀐 게 아닌가 하고 한 마...ㄹ....읏-!!!! ” 목 깊숙이 칼날이 들이미는 녀석의 표정은 그저 무표정했다. 마치 귀찮은 일 처리 하듯 칼끝으로 목을 찌르는 녀석의 동작은 단호하다. 깊이 들어가진 않았는지 미약하게 박힌 칼끝에 찔린 피가 찔린 부위를 시작으로 흘러 바닥 아래로 떨어진다. 입 꼬리를 치켜 올리며 녀석의 검은 눈동자가 진연준에게서 흐르는 피에서 고통으로 가득한 녀석의 표정으로 향한다. “ 아픈가-? 킥- 계속 지껄여봐- ” 붉은 입 꼬리가 잔인하게 치켜 올라가며 녀석의 눈 꼬리가 휜다. 그런 녀석을 바라보는 진연준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찔린 목에서 피가 흐르는데도 웃음을 잃지 않으며 거의 아픔으로 일그러진 웃음을 흘리는 진연준의 눈빛에서 살기가 스친다. “ ....... 채민준... 큭- 칼 치우라고- 알았으니깐- ” 무표정한 얼굴로 그런 진연준을 바라보던 녀석이 나이프를 거둠과 동시에 진연준의 턱을 움켜잡고 피가 묻은 나이프를 진연준의 하얀 뺨에 대고 피를 닦는다. 자신의 뺨에 자신의 피를 뭍이고 일그러진 얼굴로 어정쩡하게 턱을 잡힌 채 서 있는 진연준의 얼굴이 어느새 굳어 있다. 피처럼 붉은 입술 끝을 비틀어 웃으며 잡고 있던 진연준의 턱을 놓으며 내 몸 위에서 날렵하게 일어나 아랫도리를 들어 낸 채 누워 있는 내 쪽으로 몸을 숙여 브리프를 끌어 올려 나의 성기를 가리고 자크를 올리고 후크까지 채워준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심장이 미친것처럼 뛴다. 아.. 씨발... 이러지 말라고.. 채민준!!!이 새끼야....!!! 녀석의 그런 행동 하나 하나에 반응하는 내 심장 새끼 때문에 가슴이 뻐근해져 온다. 진연준의 뒤로 서 있던 몇 명의 남자 놈들과 여자들 역시 일그러진 얼굴로 그런 녀석의 행동 하나하나를 지켜보고 있다. 진연준은 일그러진 얼굴로 숙여진 허리를 펴 어정쩡하게 서서 그런 채민준 녀석의 등을 바라보고만 서 있다. 뽀얀 뺨에 피 칠을 한 채 기괴한 표정으로 서 있는 진연준의 표정을 바라보며 나의 입술은 비웃음으로 비틀린다. 힘겹게 몸을 일으키며 머리카락을 쓸어 올린다. 손가락이 부들부들 떨려 쓸어 올리는 머리카락이 그 미약한 떨림에 맞추어 이마로 쏟아진다. 떨리는 시선으로 어느새 자리에 돌아가 양주잔을 들이키며 앉아 있는 녀석에게로 향한다. 대체 너는 나에게 뭐라고 말 한거지?? 들리지 않은 나직한 중얼거림... 그 것에 대한 갈증으로 목이 탄다. 녀석의 말 하나에 지옥과 천국을 오가는 나란 놈에게 있어서 그 말은 내가 풀어야 할 숙제와도 같다. 미칠 듯이 녀석을 바라보며 묻는다. 네가 한 말은 무엇 이였는가... 진연준의 얼굴이 어느새 무표정하게 돌아와 내 앞으로 다가선다. 칼라렌즈를 낀 눈동자가 회색 빛깔의 눈동자에게서 오는 인조적인 느낌에 소름이 돋는다. 헝클어진 기억 속에 녀석의 장례식장 찾아왔던 진연준의 표정이 흐릿하게 떠오른다. 분명 진연준은 웃.고.있.었.다... 슬픔이 가득한 장례식장 한 가운데서서 수많은 사람들에 파 묻혀 숙여진 고개와 입술 끝을 비틀며 웃고 있었다. 마치 불에 댄 것처럼 놀란 얼굴로 진연준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크게 뜨여진 나의 동공 속으로 진연준의 인조적인 회색 눈동자가 비춘다. 뺨에 피를 묻힌 채 목을 그러잡고 서 있던 진연준이 나를 바라보며 웃는다. 눈 꼬리가 아래로 처지며 알 수 없는 웃음을 흘리는 진연준의 웃는 얼굴에서 불안한 그림자를 느낀다. 어느새 진연준의 팔목을 부여잡는 일행 한 놈이 진연준을 향해 귓속말로 지껄인다. 진연준은 그저 일그러진 웃음을 흘릴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나를 쳐다보고 있다. 한참을 그렇게 바라보던 진연준이 나를 향해 다가와 손을 내민다. 시선은 곧 진연준의 손으로 향한다. 한참을 진연준의 내밀어진 손을 바라보고 있는데 나른한 목소리의 저음이 들려온다. “ 이리와- ” 나의 두 눈은 진연준의 손에서 멀찍이 자리에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는 녀석에게로 향한다. 그 블랙홀처럼 깊은 검은 눈동자속의 암흑이 나의 영혼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그 눈동자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내 심장은 다시 미친 듯이 뛴다. 비틀거리며 일어나 녀석을 향해 걸어간다. 한 걸음 한 걸음 녀석의 모습이 가깝게 느껴지고 깊게 타들어가는 심장을 부여잡고 녀석의 모습을 모습 하나하나가 아쉬워서 숨이 막힌다. 녀석의 발밑에 앉아 녀석을 올려다보자 녀석의 붉은 입술 끝이 비틀린다. 그 차가운 웃음에 심장이 떨린다. 녀석의 큼지막한 손이 내 머리위로 올려진다. 두근....두근.... 진연준을 주축으로 서 있던 일행들이 그런 나의 행동에 웅성거린다. 진연준의 얼굴이 일그러지나 싶더니 다시 여유롭게 웃으며 손으로 목에 흐르는 피를 훔치며 말한다. “ 뭐하냐?? 앉아 새끼들아- ” “ 너.. 목은... ” “ 닥쳐- 씹새야- 아가리 닥치고 앉아서 술이나 처마셔- ”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하던 한 녀석이 얼굴을 붉히며 남은 자리에 앉고 진연준의 등 뒤로 배회하던 몇 명의 녀석들 역시 제자리를 찾아 앉는다. 그런 놈들의 옆을 끈적하게 달라붙어 앉는 여자들을 바라보며 인상이 찌푸려진다. 내 머리위로 얹혀져 있는 녀석의 손바닥의 차가운 체온이 서늘하게 느껴진다. 등 꼬리를 타고 흐르는 서늘함에 눈을 감았다 다시 뜬다. 눈을 뜨는 동시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는 맞은편에 앉아있던 여자가 당황한 듯 황급히 시선을 돌린다. 사람들의 시선을 받을 만큼 엉망으로 부어오른 나의 얼굴을 떠오르니 어쩌면 아까의 모습이 꽤나 꼴불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꽤 멋진 장면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녀석의 발밑에 주저앉아 푹신한 의자에 등을 기대고 주머니를 뒤진다. 주머니에서 오직 구겨진 빈 담배 갑 만이 나를 반긴다. 구겨진 담배 갑을 손으로 우그러트리며 맞은편을 바라보자 맞은편 여자 옆으로 앉아서 목에 하얀 천을 대고 앉아 있는 진연준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것이 보인다. 흰빛이 도는 회색 머리카락 사이로 진연준의 인조적인 회색 눈동자가 녀석에게 향함과 동시에 다시 나에게로 향한다. 기묘한 표정으로 웃으며 진연준이 담배 한가치를 던지자 나는 그것을 손을 뻗어 받아 들어 입술에 베어 문다. 담배 끝을 잘근 잘근 씹으며 테이블에 뒹구는 라이터를 집어 들어 불을 당긴다. 붉은 라이터 불을 사이로 맞은편에 앉아 있는 진연준의 묘한 눈빛이 눈에 들어온다. 놈들은 아까의 일들은 모두 잊은 듯 다시 웃고 떠들기 시작한다. 진연준 역시 목에서 흐르던 피가 멎었는지 목에 대고 있던 천을 휴지통 쪽으로 던지며 술을 마시고 있다. 알 수 없는 진연준의 행동에 의심으로 눈을 가늘게 뜨며 그런 진연준의 행동을 관찰한다. 뭉개 뭉개 담배 연기만을 내 품으며 앉아 있는 나와 미친 듯이 술을 들이 붓는 녀석의 손은 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긴 시간이 지나자 술을 마시고 몇 명은 다시 스테이지 쪽으로 내려간다며 룸을 나갔다가 다시 땀으로 흠뻑 젖어 들어오고는 했지만 녀석과 진연준은 꿈쩍없이 앉아서 양주만 들이 키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술만 들이 붓던 녀석이 푹신한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눈을 감는다. 내리깐 기다란 속눈썹을 밑으로 검은 음영이 진다. 테이블 위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쓰러지는 진연준은 꽤 많은 양의 알콜을 섭취한 탓에 눈을 가늘게 뜨며 테이블을 내리친다. 쾅- 하는 소리가 음악과 함께 섞여 귀에 거슬린다. 속눈썹을 내리깔고 혀가 꼬인 목소리로 악에 받친 듯 소리를 지른다. “ 씹-!!!!!!! 개새끼...... ” 벽에 뒷머리를 기댄 채 누워 있던 녀석의 붉은 입술 끝이 치켜 올라간다. “ 너한텐...... 안 져!!!! 이 개새끼...... 채민준!!! 이 씹새끼야... 나의 열등감을 이용해서 언제까지나 즐기게 될지 두고 봐- 큭...크큭.... ” 쾅-!!! 과일안주가 있던 그릇을 내던지며 진연준이 욕설을 내 뱉는다. 감은 눈으로 주머니에서 담배 갑을 꺼내 담배 한가치를 애무하듯 뽑아내 입에 무는 녀석의 동작 하나하나가 무료함에 지친 나른함으로 가득하다. 맞은편에 앉아 양주병을 테이블에 내리치는 진연준의 행동에 대한 반응 대신의 그 행동에 더 악에 받친 듯 진연준이 깨어진 양주병을 부여잡고 녀석이 앉아 있는 쪽으로 걸어온다. 붉은 입술에 맞물린 하얀 담배... 찰칵 소리와 함께 지포라이터를 열고 불에 하얀 담배 끝을 대며 내리감은 눈을 뜬다. 기다란 속눈썹이 들어 올려 지고 새카만 어둠의 그 눈동자가 선명이 녀석 앞쪽으로 다가와 깨어진 발렌타인 병을 녀석의 목 쪽으로 들이미는 진연준을 주시한다. 녀석의 발밑에 앉아 나 역시 그런 진연준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다. “ 언제까지 그렇게 즐거울지... 두고 보겠어....!!! ” 쨍그랑-!! 내 옆으로 유리파편이 날린다. 바닥으로 떨어져 산산 조각이 난 발렌타인 병 조각... 비틀거리며 문 쪽으로 걸어가던 진연준이 고개를 돌려 나를 한번 바라본다. 눈 꼬리를 내리며 싸늘한 웃음을 흘리는 진연준이 다시 고개를 돌려 문을 열고 나간다. 룸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무료하게 그런 진연준을 바라보던 녀석의 입술 끝이 비틀린다. 담배연기를 길게 내품으며 녀석이 내 머리카락을 헝클어 놓는다. 희뿌연 담배연기가 룸 안을 가득 채운다. 쿵쾅거리며 들려오는 음악 소리와 함께 내 머릿속도 헝클어진다. “ 이 봐... 주인.....!! ” “ ............... ” “ 네 목을 조심해....... 하지만.... 충견은 자기 주인을 물지 못하지.... ” 고개를 돌려 녀석을 올려다본다. 담배 연기만을 내품은 채 무료하게 앉아 있는 녀석의 검은 눈동자가 나에게로 향한다. “ 알아 두는 게 좋을 거다. 아마 난 네 충견이 될 거야- 계약 관계로 성립된 관계라 할지라도.. ” 녀석의 붉은 입술이 뭐라고 중얼거린다. 희뿌연 담배 연기에 가리워져.... 알 수 없다...... * * * “ 얼굴 붓기는 좀 빠졌구만- ” “ ........................ ”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집 앞 현관문에서 나를 바라보며 처음 내 뱉은 수영의 대사에 무표정하게 수영을 본다. 며칠 정도 죽은 듯이 누워서 잠만 잔 것 같다. 미친 듯이 울리는 핸드폰 진동 소리가 배터리가 다 되어 더 이상 들려오지 않을 때까지... 오직 머릿속에는 녀석이 나에게 중얼거린 수수께끼만 같은 중얼거림이 멈추지 않고 맴돈다. 붉은 입술과 담배 연기... 소리 없는 중얼거림.. 희망..... 어지럽게 엉키어 가는 머릿속 사정 때문인지 두통이 치민다. 관자놀이에 손을 얹고 눈살을 찌푸리는 내 앞에 얼굴을 내밀며 수영이 버럭 소리를 지른다. “ 야- 이 새끼야!! 네 놈이 안 온 5일 동안 학교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 졌는 줄이나 아냐? 아 씹- 너네 화해라도 한거냐?? 민준이 새끼 길길이 날뛰는 거 참 오랜만에 봤지만... 그 정도로 돌은 놈인 줄은 내가 정말 몰랐다!! ” 머리에 손까지 얹고 고개를 흔들며 수영이 말하자 비릿한 웃음이 입가에 맴돈다. 녀석의 망령 속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눈을 감아도, 꿈속에서도... 아침에 일어나서도.. 온통 내 삶 속에는 녀석으로 가득 했다. 녀석이 나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던 손길, 녀석의 눈빛.... 먹어 버리고 싶을 정도로 탐욕스럽게 녀석에게 굶주려 가고 있다. 나 자신을 제어 할 수 없을 정도로 희망이라는 녀석은 나의 심장을 지배해 간다. 썩은 동아줄이라도 좋아. 끊어지면 다시 잡고.. 끊어지면 다시 잡고... 끊어지면 다시 잡을 거다... “ 역시 세상은 돈이 최고더라- 어떻게 합의를 본 건지 대갈통 터진 새끼들이랑 걔네 부모들이랑 다 합의 보고, 학교에서도 글쎄 정학 처분이란다- 정학처분-!!! 정말 이번 일은 잘릴 줄 알았는데 역시 권력과 돈이란 게 모든 걸 다 가능케 하지 않냐? ” “ ..................... ” “ 주둥이가 붙었냐?? 뭔 말이 없어!! 아무튼 네 면상 참 오랜만에 본다- 매일 아침 그렇게 전화를 때렸건만 전화는 받지도 않고 아예 핸드폰은 꺼놨더라!!! 뭐했냐?? 학교는 안 오고-!! 담탱이가 너 학교 안 온다고 조진다고 벼르고 있어- 새끼야-!! ” 그저 말없이 수영을 바라보며 실없는 웃음이나 흘린다. 수영이 녀석 역시 인상을 찌푸리고 교복 바지에 손을 찔러 넣고 삐딱하게 서서 아래위로 나를 훑는다. 찌푸려진 이맛살을 바라보며 제법 안 본 사이에 햇살에 그을려 얼굴이 많이 탔다는 생각이 든다. 삐딱한 자세로 계속 나를 바라보던 수영이 웃으며 두 손으로 머리카락을 헝클어트린다. 마치 리플레이 되는 화면처럼 녀석이 내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던 손길이 떠올라 온 몸이 흥분으로 물든다. 하지만 나를 어루만지는 이 손길은 녀석이 아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빗어 넘기며 수영을 흘긋 바라보자 뭐가 좋은지 연신 웃음을 흘린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생긴 걸까?? 한참을 생글거리던 수영이 녀석이 갑자기 가방을 뒤적거려 무언가를 부스럭거리며 꺼낸다. 그 모양을 바라보며 나 역시 녀석이 찾는 물건에 대한 궁금증이 든다. “ 아- 이걸 전해 주려는 걸 매번 깜박해서 말이야- 씨발- 백화점 꽤 비싼데서 골라서 사온 거라고 워낙 명품 취향들 이잖냐- 네 놈들이!! ” 쾌활하게 웃으며 열린 가방 문을 비집고 나온 것을 발견하자마자 눈앞이 뿌옇다. 누군가가 나의 뇌를 쥐어 잡고 휘젓는 기분이 되어 어지러운 시야로 비틀거리지 않기 위해 몸에 중심을 잡고 서서 수영이 들고 있는 물건을 멍하니 바라본다. 고급 가죽이 들어 간 갈색 빛이 도는... 다이어리...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한다. 아랫배를 움켜잡고 한 손으로 어지럽게 휘도는 나의 뇌를 움켜잡기라도 하듯 이마에 손바닥을 댄다. 클로즈업 되어 내 눈앞에 보이는 그 다이어리에서 마치 예전의 기억과 겹쳐져 어지럽다. 쇠망치로 머리를 무언가 내리친 듯한 충격에 젖어 떨리는 눈동자에 초점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린다. “ 야- 왜 이래?? 선물로 주면 좋아라 받아야지-!! 왜 이렇게 식은땀은 줄줄 흘리면서 병든 닭처럼 구는 거냐?? 내가 뭐 못 줄 거라도 줬냐?? 왜 이래?? 어!!? ” 수영이 걱정스럽게 내 어깨에 한쪽 손을 올려놓고 가볍게 흔든다. 몸이 흔들릴 때마다 시야를 가리는 앞 머리카락도 같이 흔들린다. 머리카락을 떨리는 손끝으로 쓸어 올리며 어색하게 웃어 보인다. 운명의 장난이라는 것은 이럴 때 쓰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떨리는 손가락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수영이 녀석의 손에 잡힌 다이어리를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움켜잡자 수영이 녀석의 이맛살이 다시 한번 찌푸려진다. 손에 닿는 다이어리의 감촉은 나에게 익숙한 느낌이다. 단지 오래 되어 낡은 느낌이라기보다 방금 사 반들거리는 다이어리의 느낌이 손끝으로 전해져 온다.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다이어리를 연다. 새하얀 빈 공백의 종이에서 심장이 베어져 나가는 고통을 느낀다. “ 이것... 그 녀석....... 에게도 줬겠지...?? ” 확신에 가까운 나의 목소리에 수영은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다 말한다. “ 아... 그 말 하려고 했는데... 어떻게 알았냐?? 설마 네 마음을 읽어 관심법을 썼다느니 그따위 말 지껄이면 한대 쳐 맞을 줄 알아라!!! ” 웃음기 머금으며 장난스러운 수영의 목소리에 눈을 한번 감았다 다시 뜬다. 내 손에서 느껴지는 이 반질거리는 다이어리의 감촉이 운명의 끈이라도 되는 듯한 착각이 든다. 확실히 나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니다. 비틀거리며 다이어리를 손에 잡고 발걸음을 옮긴다. 그런 나의 뒤를 따르며 수영이 어깨를 잡고 몸을 돌린다. 기다란 앞 머리카락이 음침하게 얼굴 한쪽에 쏠려 얼굴의 반을 가린다. 수영이 조금은 화난 듯한 말투로 채근한다. “ 대체 뭐야?? 너희들 우정 전선을 위해서 이 한 몸 뛰어들어 그동안 모아둔 비상금 털어서 선물로 주니깐- 마음에 그렇게 안 드냐?? 다이어리가 선물이라 구리다 이거야?? ” “ 그런 거.. 아니야.....!! ” 내 입에서 흐르는 목소리가 감정에 메말라 건조하고 차갑게 들려 온 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아 잠겼던 목 때문인지 딱딱하게 굳은 얼굴과 갈라지고 잠긴 목소리로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관자놀이에서 뺨으로, 턱 끝으로 매달리는 서늘한 땀방울을 손등으로 훔쳐내며 수영을 올려다본다. 화가 난 듯 어깨를 들썩이며 서 있던 수영이 욕설을 내 뱉으며 나의 어깨를 잡고 있던 손을 밀듯이 놓으며 앞서 걸어간다. 그런 수영이 녀석의 등을 바라보며 다시 한 손으로 들고 있던 다이어리를 멍하니 바라본다. 씨발..... 가슴 속 깊이 서늘하게 내리치는 징그럽게도 나를 옭아매는 느낌은 나에게 빨간 등을 번쩍이며 경고를 내리고 있다.. 다이어리가 그닥 무거운 무게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깨가 탈골 될 정도로 무겁게 내 손바닥 위를 짓누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다이어리를 움켜잡고 힘겹게 수영의 뒤를 쫓는다. 씩씩거리며 앞서 걸어가던 수영이 내가 뒤쫓는 발걸음 소리를 들은 듯 뒤를 휙 돌아서서 나를 한번 쳐다보고 다시 몸을 돌리며 소리친다. “ 씨발- 사람 성의라는 게 있지-!! 아 후- 저런 놈을 친구라고 논 나란 놈이 병신이지!! 그래- 씨발 네 천성이거니 생각하고 내가 또 참아야지 어떻하겠냐?? 아무튼 이왕 받은 거니깐 좋다고 생각하고 써라- 새끼야!! ” 잔뜩 부아가 치민 듯 툴툴거리며 걸어가는 수영의 옆 자리로 슬그머니 걸음 거리에 맞추어 걷자 고개를 한번 휙 돌리더니 다시 고개를 돌려 앞을 처다 보며 걷는다. 수영의 옆에서 묵묵히 다이어리를 들고 있던 손을 내려다 보다 가방을 열어 집어넣어 버리자 마음이 조금은 진정이 된다. 내가 살고 있는 낡고 오래된 아파트를 빠져나가 버스 정류장을 향해 걸어가면서 우리는 아무 말도 없이 그저 걷기만 한다. 사람들에게 밟혀 시들어진 벚 꽃잎이 바람에 힘없이 날린다. 마치 채민준 녀석에게 짓밟혀 버린 다이어리의 내용을 확인한 그 날의 내 심장 덩어리처럼... 골목을 돌아 걸어가던 수영을 향해 무심한 목소리로 묻는다. “ 녀석에겐... 언제쯤 준거냐..? ” 수영이 앞만 바라보며 볼이 맨 목소리로 대꾸한다. “ 일사병 먹고 네가 쓰러진 날 있었잖냐.. 그 날 벌써 그 새끼한텐 줬었다. 너는 줄려고 했는데 몇 번 깜박하고 안 주는 사이에 매번 무슨 놈의 일이 그렇게 벌어지는지... 씨발- 내가 왜 이런 변명을 지껄이고 있는 거야?? ” 투덜거리는 수영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온다. 심장이 멎는 듯한 느낌으로 숨이 벅차다. 내가 과거로 돌아 온 날에 다이어리를 줬다라... 손바닥 가득 차오르는 땀이 질척인다. 우뚝 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버스정류장 표시판을 쳐다본다. 나의 멈춘 걸음에 수영 역시 걸음을 멈추고 나를 왜 그러냐는 눈빛으로 쳐다본다. 한 발짝 뒤로 뒷걸음질치며 피식 웃어 버린다. 확인해야해... 씨발 가서 확인해야해!!! 이 다이어리에 어떤 내용을 썼는지 확인해야 해!! “ 야-!!! 이민영!!! 뭐야?? 왜 그래??야-!! 야 이 새끼야-!! ” 어느새 뒷걸음질을 치며 몸을 돌리는 나를 향해 수영이 버럭 소리를 치지만 아주 작은 메아리 정도로 멀게만 느껴진다. 미친 듯이 달리는 것에 속도를 가하며 반대 편 도로로 뛰어가 택시를 잡아타 녀석의 원룸이 있는 곳을 향하는 내내 머릿속이 어지럽다. 초조하게 주먹을 움켜쥐며 창 밖을 바라보자 황당한 표정으로 서 있는 수영의 모습이 지나친다. 간헐적으로 떨려오는 아랫입술을 쥐어뜯듯 물고 녀석의 집주소를 마치 마법의 주술을 깨는 언어처럼 택시 기사에게 말해준다. 녀석이 있는 원룸으로 향하는 내내 초조함이 몰려온다. 갑갑함에 목을 옥죄어 오는 타이를 헐렁하게 끌어 내리며 주머니 속에 구겨져 있는 담배 갑을 찾아낸다. 구깃구깃한 답배 갑 속에 담배의 존재는 보이지 않는다. 쓰레기로 변해 버린 담배 갑을 우그러뜨리며 시선을 돌린다. 택시 밖의 풍경 속에 빠르게 지나쳐가는 사람들과 가로수에 일렬로 늘어져 있는 나무들의 풍경들이 눈앞을 어지럽게 현실과 환상을 오간다. 죽음과도 같은 침묵 속에서 머리가 아파온다. 땀으로 젖어든 머리카락이 눈앞을 가리 운다. 두 손으로 내 얼굴을 덮는다. 쿵- 쿵- 쿵- 미친 듯이 발작하는 심장박동에 맞추어 내 시선 역시 불안정하게 흔들린다. 만약- 어쩌면 만약- 그 다이어리 속에 내용에. 어쩌면 나를 담을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는 알 수 없는 희망감에 휩싸인다. 비릿하게 쓴 웃음이 흐른다. 아니- 어쩌면 내용이 바뀌어 있을지도 모르지.... 중요한건... 확인해야 한다!!! 택시가 서고 돈을 지불한 다음 강남에 위치한 녀석의 고급 원룸 앞에 다다르자 알 수 없는 희망감에 몸을 떠는 나 자신을 느낀다. 끼익- 허술하게 문을 안 잠그고 사는 녀석의 특성을 알고 있다. 마치 나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여전히 변함없는 녀석의 집은 그대로이다. 이 집에 베어 있는 녀석의 향취 또한 그대로이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 마다 지나간 녀석과의 기억들이 리플레이 된다. 온통 블루 계열로 도배가 되어 있는 녀석의 공간 속에서 나는 과거와 미래와 다시 되돌아 온 현재 속을 왔다 갔다 하며 혼란스럽게 떨리는 눈동자로 녀석의 공간을 훑어본다. 식은땀으로 젖어든 앞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예전과 변함없이 그대로이다. 이른 아침 햇살이 작게 열려진 창문 사이를 비집고 녀석의 침대 쪽으로 비추고 있다. 천천히 침대 쪽으로 걸어간다. 아침햇살에 고스란히 누워 있는 녀석을 비추고 있다. 햇살 속에 유난히 녀석의 얼굴이 눈부심에 숨이 막혀 입을 막아 버린다. 녀석에게서 눈을 돌려 책상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쿵쿵쿵!!! 미친 듯한 심장박동에 맞추어 나는 미친 듯이 녀석의 책상 서랍을 뒤진다. 텅 비어져 있는 책상 서랍 속에 내가 찾아 주길 기다렸다는 듯 지금 내 손에 들려져 있는 다이어리와 같은 모양의 다이어리가 달랑 하나 들어 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다이어리를 들어 올린다. 눈을 감는다. 조금이라도.... 네 녀석에게 난 침투했을까? 다시 뜬다. 씨발... 그럴 수 있을까?? 다시 눈을 감는다. 이렇게 발악 했는데.. 다시 뜬다.... 네 녀석에게 가기까지 지금까지 너무나도 온통 심장이 찢어 질정도로 너덜너덜해져 버렸는데... 떨리는 손으로 다이어리를 연다. 새하얀 여백. 손끝에 전해져 오는 종이의 차가운 감촉에 발작하듯 떨리어 오는 손끝과 함께 팔랑거린다. 다음 한잠을 넘긴다. 간헐적으로 떨려오는 손끝의 떨림에 맞추어 녀석의 휘갈겨 쓴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날짜도 년도도 써 있지 않다. 오직 이름 세 글자만이 낙인찍히듯 시야에 들어온다. 『 이 제 성......... 』 피식.... 입 꼬리를 비틀며 얼굴을 감쌌다. 무릎을 힘없이 꿇으며 다이어리는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친다. 훗... 씨발... 개 같은 희망!!! 나와 녀석에게 있어서 희망 따윈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는지도 모른다. 나는 항상 녀석에게 목이 말라 있었고 녀석을 갈구해 왔지만 온통 녀석의 심장은 내가 아닌 이 제성으로만 향하고 있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으면서도 이 개 같은 희망은 나를 놓아 주지 않았다. 어쩌면.... 어쩌면 조금이라도 녀석의 안에 나를 채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엿 같은 희망.... 나 따위에게 애초부터 주어지지 않았던 축복 이였다. 어떻게 발악을 하든. 시간을 되돌려 내가 다시 돌아온다 하여도 녀석에게는 내가 아니였다. 씨발 죽어서도 난 아니였다 이 말 이였다. 뜨거운 눈물이 얼굴을 감싼 손바닥 아래로 떨어져 나갔다. 발작적으로 흘러넘치는 눈물을 두 손바닥으로 감싸 쥐고 신경질적으로 몸을 돌렸다. 짙푸른 시트위에 몸을 뉘여 잠이 들어 있는 녀석이 보였다. 녀석을 바라본다. 햇빛을 받아 더욱 눈이 부신다. 햇빛 속에 투영되어 떠다니는 먼지들이 녀석의 주위를 춤추듯이 부유한다. 기다란 속눈썹 아래로 햇빛을 받아 길게 그늘이 진다. 발작하듯 녀석의 위에 올라타 목을 그러쥐었다. 그리고 다시 녀석을 바라본다. 호모는 역겹다고 했잖아!!! 그런데 왜 하필 이제성이냐..!! 어째서.......!!!!!! 왜!!!!!! 네 목을 졸라 버리겠어!!! 널 죽여 아무도 바라보지 못하게 만들거야!!! 네가 미워... 채민준.. 네가 미워... 미치도록 네가 미워... 너를 증오해.. 그런데도... 그런데도.. 너를... 사랑해... 이 미친 심장은 너 아니면 이렇게 뛰지 않아... 네가 아니면 안돼... 하나 밖에 모르는 이 심장이라도 떼어가 버려... 아니면 너를 보지 못하게 내 눈을 없애줘... 너를 만지고 싶어 하는 이 손도 잘라가 버리라구... 제발.....날 차라리 죽여줘!!!!!!!!!!!!!!!!!!!!!!!!!!!!!!! 녀석의 목을 그러쥔 채 힘을 주지 못하고 눈물이 뚝하고 녀석의 뽀얀 뺨에 떨어져 내린다. 뚝- 뚝- 녀석의 목을 그러쥔 채 녀석의 붉은 입술을 바라본다. 웃음이 흐른다. 씨발........ 사랑해....................... 녀석의 붉은 입술에 눈물로 젖어든 나의 입술을 맞춘다. 미칠 것만 같다. 타는 듯한 녀석에 대한 갈증을 적신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그러니깐 날 죽여줘!!! 이대론... 난 미쳐 버릴 테니깐...!! 기다랗게 그늘을 지며 내리깔려진 긴 속눈썹 위로 내 눈물이 뚝 하고 다시 떨어져 내린다. 마치 녀석이 울고 있는 듯한 환각을 바라보듯 내 눈물이 녀석의 긴 속눈썹을 적시고 흘러 내려간다. 몸을 비틀거리며 녀석에게서 몸을 뗀다. 눈물이 하염없이 나의 얼굴을 적신다. 비틀 비틀... 끼익- 쾅!!!!!!! 녀석의 집을 빠져나오는 문이 닫힌다. 한쪽 손에 다이어리를 들어 주머니에 쑤셔 넣는다. 두 눈앞에 뿌옇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나를 낳아준 그 여자처럼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그 여자의 미친 광기가 내 피에 흐르고 있었다. 비틀거리며 엘리베이터 앞에 선다. 곧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린다. 두개로 벌어져 열리는 문 사이로 이제성의 얼굴이 서서히 들어 난다. 맞은편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하고 서서히 그 큰 두 눈이 더 커다랗게 뜨여지고 있다. 쾅!!!!!!!!!!!!!!!!!!!!! 주먹으로 엘리베이터 옆의 벽면을 내리쳤다.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뜨거운 피가 내 주먹을 적신다. 이제성이 왜 여기에 오는 건지 아직 내 머리에 제대로 접수가 되지 않았다. 피를 줄줄 흘리는 내 주먹을 바라보고 놀란 이제성이 엘리베이터에서 황급하게 내려 나를 바라보며 소리친다. “ 무슨 짓이야!!!! ” 돌았다. 난 이제 충분히 돌았다. 내 심장을 너덜너덜 다 찢어발겨졌다. 끼익- 이제성의 발작적인 소리침과 내 주먹이 낸 타격 음이 꽤 컸는지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훗........................ 이제성의 머리통을 움켜잡았다. 거부하듯 나를 밀치며 왜 이러냐고 소리 지르며 당황해 하는 녀석의 입술에 내 입술을 내리 누른다. 이제성의 입술을 물어뜯어 가며 키스를 퍼붓는다. 녀석의 입술의 피 맛을 느끼며 더욱더 미친 듯이 녀석에게 키스를 퍼붓는다. 이제성의 등 뒤로 현관문을 열고 서 있는 녀석의 깊고 검은 눈동자를 도전적으로 바라보며......... 날 미치게 만들지마 채.민.준...!! “ 윽- ” 이제성의 머리통을 밀쳐내자 버둥거리던 녀석이 그대로 엉덩방아 찍듯이 쓰러져 앉는다. 찢어진 입술 사이로 핏물이 베어 있다. 내 입술에 묻어 있는 이제성의 피를 혀로 핥아낸다. 제성이 붉게 상기된 얼굴로 벌떡 일어나 나의 멱살을 움켜잡는다. “ 이. 민. 영!!!! 대체 이게 무슨 짓이냐!! 엉?? 너.. 미쳤냐?? ” 잔뜩 화가 난 얼굴로 눈을 치켜뜨는 이제성의 반응이 재미있다. 항상 생글생글 웃을 줄로만 알았더니 제법 화도 내는 군. 녀석의 맑은 눈동자가 눈물로 젖어 있는 내 몰골로 향한다. 짐짓 멈칫한 표정으로 힐끔 뒤를 돌린다. 무표정하게 굳어 있는 녀석의 표정이 금방이라도 무슨 사고를 칠 듯이 불안해 보였는지 움켜잡은 옷을 힘없이 풀어내며 녀석 쪽으로 쪼르르 달려 나간다. 키스를 하는 내내 나는 녀석을 바라봤다. 마치 녀석에게 쏟아 내는 나의 미칠 듯한 감정을 쏟아내듯이. 현관문에 기대어 팔짱까지 끼며 이 모습을 관전하고 있는 녀석의 까만 눈동자가 차갑게 빛이 난다. 이제성이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꼴을 붉은 입 꼬리를 치켜 올리며 바라보고 있다. 키가 큰 편이지만 녀석의 바로 앞에 서 있자 이제성이 한 없이 작아 보인다. 제성이 피가 묻어난 찢어진 입술을 열고 채민준의 손을 잡아챈다. “ 민준아..... 저... 난 괜찮아..... ” 피식- 메마른 입술에 웃음이 스친다. 뭐가 괜찮다는 거지? 나의 시선은 녀석의 손을 잡고 있는 이제성의 손으로 고정되어 있다. 날 너무 도발하고 있는 게 아니야? 주먹에 힘을 주자 욱씬거리는 것이 꽤나 아프다. 녀석의 무표정한 얼굴로 그런 제성을 바라본다. 그 녀석의 시선이 증오든 뭐든 이제성이 아닌 나에게로 다시 향하길 빈다. 날 바라 봐!! 언제까지나 너 하나에게 미친 날 바라보란 말이다. 마치 더러운 것을 털어내듯 이제성의 손을 쳐낸다. 한걸음 뒤로 물러선 제성이 어느새 나를 향해 걸어가는 녀석의 등으로 향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특유의 나른하고도 동물처럼 유연한 걸음 거리로 그리고 그 특유의 무표정은 변하지 않는다. 점점 가까워지는 녀석을 바라보며 비릿하게 웃음을 날린다. 아무런 감정도 들어나지 않은 그 검은 눈동자를 미친 듯이 바라본다. 차가운 녀석의 손이 엉망으로 피를 흘리고 있는 한쪽 손을 움켜잡아 내 눈 앞에 들어 보인다. 녀석의 손아귀에 잡혀진 손이 엉망으로 찢어져 피가 흐르고 있다. 붉은 입술이 예쁜 곡선을 그리며 위로 치켜 올라간다. 콰직- 뼈 마디마디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미칠 듯한 고통에 아랫입술을 깨문다. 녀석의 손아귀에 찢어발겨진 나의 손이 힘없이 축 늘어진다. “ ...윽... ” 손을 잡아 비튼 녀석의 손에서 내피가 줄줄 흘러내린다. 나의 피로 범벅이 된 녀석의 손이 나의 앞 머리카락을 쓸어 올린다. 차가운 녀석의 손길에 소름이 돋으면서 묘한 흥분이 든다. 항상 시야를 가리던 나의 머리카락에 가려지던 녀석에 대한 욕망으로 가득한 나의 두 눈이 들어나 타는 듯이 녀석을 바라본다. 녀석의 유화물감을 칠한 듯한 검고 질척이는 눈동자 속에 나의 모습이 비춤과 동시에 점점 가까워지고, 녀석이 나의 귀에 입술을 가져다 대고 속삭인다. “ 발정난 개새끼처럼.... ” 나의 피가 묻은 한쪽 손으로 나의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리듯 쓰다듬으며 속삭인다. “ 그 역겨운 입으로............ ” 녀석이 시니컬한 어조의 차가운 속삭임과 동시에 얼굴을 들어 손가락으로 아직도 제성의 피가 묻어 있는 나의 입술을 쓸어내린다. 녀석의 손길에 심장은 미친 듯이 두근댄다. 녀석의 손가락이 스친 입술이 불에 대듯 뜨거워진다. 심장은 이미 죽어 버린 것처럼 차가워진다. 녀석의 한마디가 가슴에 와서 박힌다. 역겨운 입술이라.... 그래...... 웃음이 비실비실 흐른다. 미쳐 버릴 것만 같다. “ 잘도 날 도발 하는 군- ” 녀석의 손에 차갑게 빛을 발하는 나이프 칼날이 내 목 끝에 닿아 있다. 소스라치듯 놀란 제성의 비명 소리와 함께 어느새 달려와 채 민준의 허리를 끌어안고 소리친다. “ 야!!! 왜들 이래 이러지 말라구!!! 제발!! 채민준!!! 채민준!! 이러지 않기로 나랑 약속했잖아-!! ” 씨발- 짜증이 치민다. 약속이라- 또 어떤 씨발같은 약속을 한걸까? 천하의 채민준이 약속을 했다고!!! 그런 말도 안돼는 일이 생길리 없다. 구역질이 치밀 듯한 이 엿 같은 감정에 그저 웃음만이 흐른다. 나를 위해 녀석에게 매달린 이제성의 목을 비틀어 버리고 싶다. 그따위 하찮은 선심 따윈 필요 없어. 차라리 녀석의 칼에 목이 뚫리는 것이 이제성의 매달림과 같은 이 씨발 같은 상황 보다는 나으리라.... 채민준의 한쪽 눈썹을 위로 치켜 올리며 입 꼬리가 예쁘게 올라가더니 내 목에 겨누던 칼을 내린다. 마치 느린 화면이 재생되듯이 내 머리카락을 움켜잡았던 손이 풀리며 이제성의 머리 위로 올라간다. 그런 눈으로...... 네 녀석이... 누군가를 볼 리가.... 없다. 그럴리.. 없다... 녀석의 까만 눈동자 속에 스치는 그 부드러움에 온 몸이 얼어붙는 듯 하다. 그럴리... 없잖아..... 절망감에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그리고 이제성의 바라보던 녀석의 시선이 나에게로 돌아온다. 한 없이 무감정한 차가운 그 눈동자 가득 한 혐.오.감!! 녀석이 발이 가차 없이 날라 와 어깨를 걷어찬다. 힘없이 바닥에 쓰러져 눕는다. 차가운 바닥의 기온이 뒷머리위로 스멀스멀 올라온다. 뜨거운 눈물이 관자놀이를 타고 흘러 차가운 바닥에 떨어져 내린다. 미안한 듯 나를 바라보는 이제성의 얼굴이 보인다. 녀석의 팔을 잡고 흔들며 소리친다. “ 들어가자 민준아- 그만하자- 응?? ” 눈을 감는다. “ 미안... 민영아...... 아까 행동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지만...남자한테 이러는 거 당하는 거 솔직히... 기분 별로다....하지만.... 미안..... ” 눈을 뜬다. 나를 한참을 미안한 듯 바라보던 제성이 한숨을 푹 내쉬며 말을 잇는다. “ 내가 좀... 나쁜 놈이 된 거 같다.... 네 마음은.... 모르겠어 오늘 같은 그런 건... 하지만 오늘 민준이 행동은 내가 대신 사과할게- ” 대신 사과라~? 죽여 버리고 싶다. 이제성의 목을 비틀고 그 혀를 뽑아 버리고 싶다. 눈물을 흘릴 듯 입술을 깨물며 말하는 제성의 등 뒤로 녀석이 묘한 시선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며칠 전 나이트에서의 일도. 학교에서의 일도 다 이제성과의 약속 때문 이였던 거냐....?? 숨이 막힌다. 녀석의 칠흑처럼 까만 눈동자에는 아무런 감정도 담겨 있지 않다. 제성이 붉어 진 얼굴로 손을 내민다. 나의 시선은 오직 녀석에게만 꽂혀 있다. “ 채민준!!! ” 내 심장은 죽어 버렸다. “ 채민준...................채민준........................... ” 눈물이 뚝하고 바닥으로 떨어져 내린다. 죽을 듯이 피를 토하는 목소리로 녀석의 이름을 지껄인다. “ 채민준... 채민준 ... 채민준.........!!! ” 피가 흐르는 손으로 녀석의 바지가랑이를 잡고 오열한다. 눈물이 녀석의 바지에 젖어든다. “ 채민준.....채민준...... 채민준.....민준아....................... ”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채민준..... 날 봐...... 이렇게 죽어 버린 내 심장을 봐. 이렇게 사랑하는 나를 바라봐... 그 녀석이 아니라.... 날.............. 날 봐....... 날 .... 제발 날 봐줘... 한 순간 만이라도...... 날... 나 이민영을.... 나란 새끼를... 날... 봐줘... 시리도록 차가운 녀석의 손길과 함께 몸을 낮춘 녀석이 내 턱을 잡고 들어 올린다. 처음 본 순간 단숨에 나를 사로잡아 버린 그 녀석의 눈이 너무 검어서. 무감정한 그 눈빛이 너무나도 서늘해서. 슬프게 녀석을 바라본다. 기다란 속눈썹을 내리깔고 차갑게 나를 내려다보는 녀석의 표정은 무료함이 가득하다. “ 이민영............ ” 속삭이는 듯한 저음의 목소리가 나의 심장을 떨리게 한다. 심장이 뛴다. 아프게...... “ 주인님이라고 불러- 이 개새끼야- 날 부르는 네 새끼 목소린 끔찍해서 토할 것만 같으니깐- ” 시니컬하게 역겨움을 참는 듯이 속삭이고는 나의 턱을 놓아 버린다. 내 눈은 하염없이 녀석을 바라본다. 날 좀 봐주면 안돼냐??? 이렇게 발악하고 미쳐버린 날 좀 봐주면 안돼겠냐?? 그렇게 나란 놈이 역겹냐?? 이렇게 미치도록 널 사랑하는 나란 새끼가.... 역겹냐?? 날 봐... 날 보란 말이야..... 아무런 감정도 담겨있지 않은 검은 눈동자 속에 나의 모습이 비춘다. 기다란 앞 머리카락을 축 늘어뜨리고 역겹게 녀석을 바라보는 나의 모습이. 숨이 막혀 온다. 녀석의 눈 속에 비춘 나는 언제나 이런 모습 이였던가? 너에 대한 내 사랑은 역겨운 쓰레기에 불과 했던 걸까? 녀석이 굽힌 몸을 일으켜 등을 돌린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녀석이 집으로 들어 가 버린다. 고개를 문으로 돌린 제성이 곤란한 표정으로 나를 훑는다. “ 오늘부터 정학 풀려서 학교 가는 날이거든- 그래서 내가 특별히 데릴러 온 거야... 저.... 얼른 민준이 데리고 나올게- 내가 들어가서 저 녀석 혼 좀 내줄테니깐- 울지마- 민영아- 자- 일어나자- ” 손을 내미는 녀석을 쏘아 보며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킨다. 손을 내밀고 있던 이제성이 무안한 표정으로 어색하게 손을 주머니에 집어 넣었다가 황급히 가방을 뒤져 안에서 부스럭거리며 손수건을 꺼내 피가 흐르는 내 손을 감싸 매며 말한다. “ 병원 가봐- 정말 넌 항상 상처만 달고 다니는 구나... ” 걱정스럽고 사려 깊은 이제성의 목소리에 웃음 흐른다. 나란 놈은 말이지... 몇 십년간을 숨겨야만 했다. 그저 녀석 옆에 가장 친한 친구로 남아 붙어 있는 것 하나 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던 시절이 있었지. 녀석의 원룸에서 같이 하루를 보내는 날이 있으면 흥분해 하루를 꼬박 새며 미칠 듯한 욕구와 싸워 가며 눈물 흘린 적도 있었다. 씨발..... 내 자신이 죽도록 혐오스러워 정말 뒈져 버리고 싶었던 게 하루 이틀이 아니였어...!!! 하지만 그걸로 만족 했다. 녀석의 가슴엔 누구하나도 들어갈 수 없으니깐. 녀석은 그런 놈 이였으니깐. 아니 그런 놈이라고 믿고 있었으니깐....... 난 그런 놈 옆에 붙어 있는 것만으로도 행운이라고 생각했었으니깐... 그런데.... 지난 내 모든 세월들이 참 엿 먹을 짓거리였단 걸 깨달았다. 비밀로 꽁꽁 싸매왔던 내 마음이 병신짓거리란 걸 깨달았다고...!! 바로 이제성 너 하나 때문에!!! 제성이 싱긋 어색하게 웃으며 녀석이 있는 곳으로 걸어간다. 끼익- 쾅- 비틀거리며 걸어간다. 어느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는지 조차 모르겠다. 그저 그곳을 빠져나가 미친놈처럼 거리를 걷고 있다. 가끔 가다 내 어깨를 부딪친 사람들의 투덜거리다가 피가 묻어 있는 손수건으로 둘러매어져 있는 손을 발견하고 황급히 입을 다물고 사라진다. 내 심장은 죽어 버려 더 이상의 아픔도 느껴지지 않는다. 한참을 그렇게... 그렇게 걷는다. 수없이 바쁘게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이채롭다. 내가 있는 이 곳이 현실인지 악몽인지 알 수가 없다. “ 이 민 영- ” 꿈처럼 몽롱한 정신으로 비틀거리며 걷던 나의 발걸음을 잡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다. 어느새 어둠이 닥쳐온 거리에 수많은 사람 속에 거만하게 주머니에 손을 넣고 나를 바라보는 녀석의 모습이 낯설지 않다. 무표정한 얼굴로 녀석을 바라보고 있자 녀석이 성큼 성큼 나를 향해 걸어 온다. 회색의 머리카락이 어느 사람들 속에서도 유난히 눈에 띈다. 인조적인 칼라렌즈를 낀 회색 눈동자에 유난히 쳐진 눈매. ‘진연준’의 모습이 그다지 반갑지 않다. 특유의 간교한 웃음을 흘리며 녀석이 나와 마주 선다. 담배 연기를 후- 내뱉으며 녀석이 피식 웃으며 말을 건다. “ 킥- 오랜만이네- 이민영... ” 웃을 때 마다 축 처진 눈이 유난히 간사해 보이는 녀석이지만 꽤나 말끔하게 생긴 편이라 녀석 옆에는 제법 예쁜 여자가 장식품처럼 달라붙어 있곤 했는데 웬일로 녀석은 혼자 있다. “ ........................... ” 아무 말 없이 그런 진연준을 한참 바라본다. 그런 나의 반응에 대수롭지 않다는 듯 녀석이 다시 말을 건다. “ 오늘은 혼자 몸이시군- 할일 없으면 나와 잠시 어울려 보는 건 어때? ” “ .......................... ” 밑도 끝도 없이 나의 손을 움켜잡아 끌며 담배 한대를 건넨다. 나는 말없이 담배를 받아 입에 문다. 진연준은 실실 웃으며 얼굴을 가져다 대 입에 물고 있던 담배 끝으로 나의 담배 끝을 댄다. 서로의 담배 끝이 맞닿아 붉은 불꽃이 스며들 듯 번져 나간다. 깊게 담배를 빨아들인다. 쳐진 눈 꼬리가 더욱더 밑으로 쳐지며 생긋 웃는 진연준 역시 담배 연기를 내 뱉으며 앞장 서 걷는다. 녀석에게 잡힌 손에 끌려 진연준의 뒤를 따라 걷는다. 유흥가 불빛으로 번쩍이는 거리에 아무런 거리낌 없이 진연준의 손에 잡혀 거리를 걷는 이 상황 속에서도 정신을 놓아 버린 듯 제 정신을 찾을 수가 없다. 녀석의 손에 끌려 이리저리 어디론가 걸어가다 들어간 요란스러운 칵테일 바 안은 향락적인 분위기가 가득하다. 엄청난 액수의 양주와 안주를 시킨 진연준이 간교한 웃음을 흘리며 턱에 손을 괴며 나를 바라본다. 인조적인 회색 눈이 징그럽게 빛이 난다. “ 난 말이지- 널 잘 알아- ” 무표정하게 고갤 들어 녀석을 바라본다. “ 네 주인 새끼가 전학 오기 전까지 우리 제법 잘 어울리지 않았던가? 킥- ” 초등학교 기억 속에 녀석은 없다. 내 생의 모든 기억 속에 가득한 것은 채민준 ... 그 녀석 뿐 이였다. “ ............................. ” “ 아- 뭐- 억지로 초등학교 기억을 짜내서 날 떠올릴 필욘 없어- 그다지 날 기억해 주길 바라진 않으니깐- 난 말이야- 예전부터 너란 녀석을 잘 알았어- 네가 남자새끼에게 꼴리는 게이란 거라든지 말이야- 키킥-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감출 수 없는 게 있거든- 그렇게 놀란 표정 지을 필욘 없어- 네 눈을 보면 알 수 있거든 채민준 그 새끼를 바라보는 그 눈빛 말이야! ” 담배를 후- 하고 내뱉으며 녀석이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그토록 숨기려고 했던 모든 진실을 꽤 뚫고 있다는 듯이 녀석의 인조적인 회색 눈이 빛난다. 곧이어 칵테일을 만들던 레게머리를 한 녀석이 양주병과 안주를 내려놓으며 다시 칵테일을 만든다. 양주잔에 가득 양주를 따라 내게 건네며 진연준이 싱긋 웃는다. 양주잔을 받아 입속 가득 털어 넣었다. 다시 잔에 가득 따라주자 연거푸 단숨에 들이킨다. 싱글 웃으며 녀석이 담배를 건넨다. 다시 담배에 받아 들어 담배에 불을 붙이고 담배 연기를 깊게 들이 마신다. 폐부 안을 가득차는 담배연기에 채민준.... 녀석을 느낀다. 씨발..... 어쩔 수가 없다. 난...... 어쩔 수가 없다... 내 눈은. 내 심장은. 녀석이 아니면 안 된다. 이 지독한 외사랑에 완전히 미쳐 버렸다. 양주잔에 다시 그득히 따라진 양주를 다시 들이키며 담배 연기를 내뱉는다. 공기를 부유하는 뿌연 담배연기에 몸이 붕 떠오르듯 몽환적이다. 미치도록 녀석이 보고 싶다. 나를 향해 역겹다고 외치는 그 녀석이 보고 싶다. 몽롱해져 가는 정신으로 녀석을 그리고 또 그린다. 지긋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진연준의 눈빛이 빛난다. 담배를 깊게 빨아들이며 녀석을 비웃듯 쳐다본다. 아까부터 생글거리던 진연준이 양주잔에 든 양주를 홀짝이다 핸드폰 폴더를 열어 전화를 받다가 히죽거리며 통화를 하며 힐끔 나를 바라본다. 연거푸 양주를 마시자 눈앞이 흐릿하다. 눈을 깜박이며 그런 녀석을 지켜보고 있자 녀석이 핸드폰을 닫으며 말한다. “ 이런- 어떻하나- 이민영- 지금 여기로 네 주인 새끼가 나타났다는데- 킥- 이런 우연이 있나~? 안 그래? 키킥- 이민영 저 쪽 좀 한번 보는 건 어떨까?” 희뿌연 담배 연기 속에 묘한 회색 눈동자가 반짝이며 진연준의 표정이 즐거움으로 가득한 표정으로 가운데 지점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커다란 이 칵테일 바 안 가운데쯤에 위치한 곳에는 어울리지 않게 피아노 외에 연주할 악기들이 널려져 있다. 가끔 그 곳에서 공연을 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바 안을 가득 채우던 힙합 음악이 멈추고 눈부신 조명 속에 한 녀석이 올라온다. 이런 곳과 어울리지 않은 깔끔한 옷차림에 단정한 머리 모양, 뽀얀 얼굴에 전혀 세상의 때를 타지 않은 듯한 커다랗고 맑은 눈동자. 양주잔을 홀짝이며 눈을 떴다 다시 뜬다. 아침 무렵 봤던 그 새끼가 분명하다. 수줍게 붉어진 고개를 푹 숙이며 ‘이제성’ 개자식이 피아노 의자에 걸터앉는다. 피아노 위에 설치되어 있는 마이크를 타고 녀석의 수줍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 저... 저..저기...이루마의「널 그리다」란 곡인데요... 저에게.. 각별한 친구에게 이 곡을 바칩니다 - 이제성의 시선이 무대에서 제일 가까운 자리에 향한다. 느긋한 자세로 거만하게 자리에 앉아 그런 이제성을 바라보고 있는 녀석이 보인다. 숨을 삼킨다. 숨을 쉬기조차 힘이 들어 눈앞이 흐릿하다. 담배를 깊게 빨아들이며 녀석의 모습을 바라본다. 나른한 자세로 담배연기를 내뱉으며 이제성만을 바라보고 있는 녀석의 모습 하나 하나가 내 죽어 버린 심장을 할퀴어 내듯 쓰린다. 곧이어 슬픈 멜로디의 피아노 선율이 흐른다. 수줍은 붉은 얼굴로 떨리는 목소리와 함께 이제성이 노래를 부른다. - 언젠가 푸른 하늘 사이로 -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일으킨다. 진연준의 간교한 눈동자가 즐겁다는 듯 빛나며 나의 손목을 잡는다. - 너에게 보낸 나의 마음을 - " 앉아-!! " “ 놔!!! ” 진연준의 손을 뿌리치며 녀석을 쏘아 본다. 개새끼...... - 천천히 나를 스쳐지나가는 바람 속에 - 진연준의 멱살을 쥐어 잡는다. 피식 웃으며 그런 나를 알 수 없는 눈으로 바라본다. “ 죽여 버리겠어!!! 개새끼!! ” 이를 악물며 진연준의 인조적인 회색 눈을 바라본다. 눈 꼬리가 쳐지며 씨익 웃는 녀석이 즐겁게 입을 연다. “ 개새낀 바로 너지-!! 채민준에게 있어서 넌 개만도 못한 존재 아니 였던가? 키킥- ” - 가만히 두 눈을 감고 나만의 널 그리다 - 알콜과 혼미해진 정신 속에 이제성의 맑은 노래 목소리와 진연준의 비웃음 담긴 목소리가 섞인다. 어지럽다. 토할 것만 같다. 이 개 같은 상황이 역겨워 죽을 것만 같다. 머릿속이 웅웅- 울린다. 진연준의 멱살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이 풀린다. 점점 나는 미쳐가고 있는 것만 같다. 이 미치고 지치는 사랑에 점점 미쳐 버리는 것만 같다. 이 들끓는 사랑의 감정을 주체 할 수가 없어서. 이 사랑에 심장이 죽은 것만 같은 고통 때문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 - 맑은 너의 그 미소는 따뜻한 여름비처럼 - 잔에 든 양주를 다시 한번 비워내고 비틀거리며 앞을 향해 걸어가며 담배를 깊게 빨아들인다. 더 이상 나를 막지 않는 진연준이 뒤에서 무엇이 그리 좋은지 킬킬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개새끼!!! 이런 걸 노린 건가??? 역겹다-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눈물이 뚝하고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씨발... 한 손에 든 빈 양주잔을 피아노로 향해 던진다. 정확히 이제성의 머리통에 맞고 굉음을 내며 깨지고 슬로우 모션처럼 계집애들의 비명소리와 웅성거림 그리고 피를 흘리며 쓰러져 내리는 이제성으로 향한다. 거만하고 나른한 자세로 앉아 있던 녀석이 벌떡 일어나 이제성을 향해 달려 간다. 비틀 비틀 거리며 무대 위로 올라간다. 이제성을 들쳐 안은 채민준이 보인다. 피를 흘리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눈을 하얗게 뒤집는 이제성의 모습에 웃음이 흐른다. 잘해 주지 말라고 했잖아- 씨발새끼야!!! 내 껄 채가지 말라고 했잖아 이 개자식아!!! 씨발.... 이제성..... 이제성... 너만 아니 였어도 난 과거로 오지 않았겠지.... 이 미친 사랑의 집념이 날 이곳으로 불러 들였어!! 하지만... 모든 것이 그대로야!!! 내가 아무리 채민준 새낄 사랑하든 말든 그 녀석의 마음은 너에게로 라고. 아무리 미친 듯이 몸부림 쳐도 저 녀석의 마음은 너에게로 잖아. 몸을 비틀거리며 눈물이 흐른다. 담배를 낀 손으로 한쪽 눈을 가린다. 이제성의 피가 튀긴 녀석의 하얀 뺨을 바라본다. 나의 영혼을 모두 집어 삼킨 녀석의 까만 눈동자를 긴 속눈썹을 푸른빛을 띄우며 조명을 받아 윤이 나는 녀석의 머리카락을 녀석의 멋진 콧날을 붉은 입술을..... 숨이 막히도록 나를 미쳐버리게 만드는 녀석의 모든 것을. 미친 듯이 갈구하듯 바라본다. 눈물은 계속 계속 흘러 내 뺨을 적신다. 녀석의 검은 눈동자가 차갑게 나를 바라본다. 사랑한단 말이다...... 미치도록......... 피가 흐르는 이제성의 부둥켜안은 녀석에게로 비틀거리며 걸어가며 소리친다. “ 씨발....................... 채민준...!!! ” 난 미쳐버렸어. 이 사랑에... 미쳐 버렸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난.... 난.... “ 채민준!!! ” 가까이 자리 잡은 파이노 위의 마이크 때문에 내 목소리가 웅웅 울리며 퍼진다. 애절하게 녀석을 이름을 부르며 속삭이듯 외친다. “ 채민준................................. ..................사랑한다....................... ”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마이크에 울리는 나의 목소리가 슬프게 메아리친다. 사랑한다... 미치도록... 긴 세월동안.... 그 세월을 되돌려 온 동안에도... 너만 사랑해 왔다. 채민준... 너만... 너만 사랑해 왔다...... 가슴이 뭉그러져 숨이 차오른다. 심장 부근에 손을 데고 주먹을 그러쥔다. 가쁘게 차오르는 숨결을 토해내며 녀석을 바라본다. 새카만 녀석의 동공이 커진다. 내 썩어 문드러진 가슴이 너무나도 아프게 부풀어 올라서 이 감정을 터뜨리지 않는다면 이 미친 감정을 토해내지 않는다면 죽어 버릴 것만 같았다. 혼자만 흘러가는 이 미친 사랑에 종지부를 찍고 싶었다. 언제나 비밀일 수밖에 없었던 내 사랑을.... 너에게 알린다.... 제발 날 봐달라고... 제발 ... 날 사랑해달라고... 너무나도 숨이 가빠서. 너무나 가슴이 찢어 내려서. 너무나 이 미친 질투에 온몸이 타오르듯 죽어 버릴 것만 같아서 나 자신을 통제 할 수가 없다.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내 심장박동소리만이 내 귓가에 시끄럽게 맴돈다. 뜨겁게 내 얼굴을 내라쬐는 조명과 녀석의 얼어붙은 시선에 마치 마약을 한 듯한 몽롱한 정신 속에서 썩은 피가 흐르는 심장을 부여잡고 녀석의 입술을 바라본다. 굳어버린 얼굴표정으로 한동안 멈추어 서서 나를 내려다본다. 긴 속눈썹에 가려진 녀석의 검은 눈동자에 여러 가지 생각들이 교차하고 있음을 느낀다. 아무런 감정도 담고 있지 않은 녀석의 눈 속에서 동요를 읽는다. 얼음처럼 차갑던 녀석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사랑해..... 사랑해...... 채민준... 사랑한다......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일그러진 녀석을 바라보고 눈물을 흘리며 녀석을 향해 비틀거리며 걸어간다. “ 너를 처음 본 그 순간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한시도 쉬지 않고 너만을 사랑해 왔다........... 사랑하고... 사랑해서...씨발- 죽도록 사랑해서... 죽어버렸던 이 씨발 같은 심장에 네 녀석이 가득해서 한시도 쉬지 않고 죽을 듯이 아파서... 돌아버릴 정도로 네 녀석에게 미쳐서.... 이 사랑에 미쳐 버릴 것만 같아도... 참고... 또 참고... 씨발 참고... 계속 참고.... 참아 왔다.... 이 감정은 지옥까지 가져가 버릴 비밀 이였으니깐!! 그래도... 미치도록.... 널......널..............."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 더 이상의 말을 이을 수가 없다. 이제성을 안아든 녀석이 나를 향해 걸어온다. 한걸음.. 한걸음.. 조심스럽게 이제성을 안아든 녀석의 모습에 웃음이 흐른다. 흔들리는 시선으로 녀석을 바라본다. 눈물이 앞을 가려 계속 시야를 뿌옇게 흐린다. 녀석의 일그러진 얼굴이 점점 무표정으로 돌아간다. 한참을 나를 바라보던 녀석의 차가운 손이 내 뺨을 어루만진다. 그 감촉에 놀라 눈을 크게 뜨고 녀석을 바라본다.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린다. 무표정하게 알 수 없는 녀석의 검은 눈이 차갑게 반짝인다. 그리고 질척거리던 녀석의 검은 눈동자에 물기가 맺힌다. 흔들리는 시선으로 녀석의 눈동자만을 바라본다. 내 앞을 마주선 녀석의 붉은 입술이 열리며 차가운 녀석의 저음이 들려온다. “ 그럼 지옥까지 그 마음 가지고 꺼져버려- ” 숨이 막힌다. 스르르 다리에 힘이 풀려 무릎을 꿇어 안는다. 내 뺨에 손을 댄 자세 그대로 녀석이 손이 허공에 떠있다.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더욱 커져 간다. 뚝- 뜨거운 액체가 이마를 떨어져 눈썹으로 눈꺼풀로 흘러내린다. 내 눈물과 그것이 섞여 뺨을 타고 흐른다. 알 수 없다. 심장이 찢어져 내려가는 고통에 가슴을 움켜잡고 눈물만을 흘린다. 퍽-!!! 역겹다는 듯이 소리를 지르며 웅성거리던 사람들 중 하나가 던진 유리잔이 벽면에 맞아 부셔진 유리조각이 이마를 할퀴고 지나 피가 흐른다. 역겨워 하는 사람들 속에 녀석과 나 이제성이 있다. 가슴이 아파 숨을 쉴 수가 없다. 도저히 알 수 없는 액체의 감촉이 내 가슴을 뜨겁게 만든다. 온 세상이 어지럽다. 숨이 막힌다. 이 썩어버린 내 심장을. 내 사랑을. 지옥에 가지고 꺼져주마..... 채민준.... 그래주마.... 채민준..... 원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네 안에 단 한순간 만 이라도 내가 차지하길 빌고 또 빌었다. 이 개 같고 역겨운 사랑이. 수많은 사람들이 질타하여도 그저 네 옆에 붙어 있는 것 하나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네 녀석 안에 죽어도 이제성 그 새끼라면.... 네 심장을 뜯어서라도 내가 가지겠어..... 그래 주겠다. 채민준! 우뚝 서 있던 녀석은 이제성을 끌어안고 걸어 나간다. 이제성의 피가 녀석의 옷을 적신다. 뚝 뚝 하고 이제성의 피가 무대에 점점이 뿌려진다. 내 눈물도 같은 박자를 타듯 바닥위로 떨어져 내린다. 사람들의 비난 속에서 역겹다는 욕 소리와 함께 과일안주 인 듯한 접시가 머리위로 날라 온다. 쾅!!! 강력한 타격 음에도 아무런 아픔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멍하니 점점이 뿌려진 이제성의 피와 함께 멀어져 가는 녀석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과일의 달짝지근하고 끈끈한 액체가 머리카락을 타고 뒷덜미를 타고 흐른다. 가슴이 찢어지고 아파서 숨을 쉴 수가 없어 거칠게 숨결을 토해낸다. “ 하아- 하아- 하아- 흐윽...........윽.............. ” 가슴을 부여잡고 눈물을 흘린다. 어떻게 해서든..... 널 가질 거야... 채민준..... 날 혐오해도... 이제성 새낄 사랑해도.... 널 어떻게 해든 가질 거다. 그게 어떤 방법이든지.... 결국엔 널 가질 거다. “ 미친놈-.......... ” 진연준의 목소리와 함께 눈앞을 새카맣게 무언가 가린다. 진연준에게서 항상 나는 향수냄새가 훅- 하고 밀려온다. 인상을 찌푸리며 손으로 머리위에 덮어진 천을 벗겨내려 하자 내 머리를 내리누르며 진연준의 목소리가 들린다. “ 면상 공개는 그만해라- 벌써 늦은 감이 있지만 내일쯤이면 네 소문이 학교까지 퍼져 있을 테니깐- 꽤 즐거운 학창 시절을 보내겠구나 이민영- ” “ 큭.... ” 웃음이 흐른다. “ 지금이 웃을 상황이냐? 킥- 뭐 웃을 상황일 수도 있고- ” 뭐가 그렇게 좋은지 키득거리는 진연준의 웃음소리에 나 역시 웃음이 흐른다. 진연준이 한쪽 손으로 내 어깨를 감싼 채 몸을 일으켜 준다. 피로 얼룩진 주먹을 움켜쥐며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며 진연준의 몸에 기댄다. 간헐적으로 웃음을 흘리며 머리위로 덮어진 천을 벗어버린다. 다시 나타난 주위의 시선은 역시나 혐오감으로 가득하다. 그런 내 행동에 진연준이 웃음을 흘리며 천을 받아 한쪽 손에 걸친다. 세상 새끼들이 욕을 하든 혐오하든 웃음만 흐른다. 눈물로 얼룩진 얼굴로 고개를 들어 피식 웃는다. 사랑이란 감정이 이렇게 혐오를 받을 수 있는 감정 이였다면 평생을 그 아무도 사랑하지도 사랑받고 싶지도 않았을 텐데 말이다. 나란 놈은 참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역겨운 존재였군. 그 누구에게도. 난 그저 역겨운 존재일 뿐이다. 웃음과 눈물로 범벅이 된 기괴한 눈빛으로 진연준을 바라본다. 마주선 진연준의 눈 꼬리가 아래로 쳐지며 웃음을 흘리며 말한다. “ 점점 재밌어 지잖아- 이거- ” 눈을 반짝이며 즐겁다는 듯 녀석이 날 바라본다. 마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머릿속이 어지럽다. 비틀거리며 고개를 아래로 내린다. 어지럽다. 어지럽다..... 진연준의 어깨에 얼굴을 박는다. 녀석의 옷에서 나는 강렬한 향수 냄새에 인상을 찌푸린다. 싫은 녀석이다. 진연준이란 새끼는... 그러나 묘하게 이 녀석에게서 알 수 없는 동질감을 느낀다. 기분이 참 엿 같다. 욕설을 중얼거리며 몸에 힘이 빠짐을 느낀다. 씹...... 채민준........ 눈물의 감촉이 뺨으로 느껴진다. 사랑해............... * * * 희뿌연 담배연기. 눈을 뜬다. 담배 냄새와 타는 냄새로 가득한 공간에 인상을 찌푸리며 몸을 일으킨다. 두통과 함께 어지럽게 눈앞의 풍경이 왔다 갔다 한다. 눈살을 찌푸리며 주위를 훑는다. 사방이 온통 하얀색이다. 침대 하나 덩그러니 놓여져 있고 그 침대 위에 내가 누워 있음을 느낀다.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리며 눈앞의 풍경을 말없이 바라보다가 눈에 익은 학교 교복을 입은 녀석을 발견하고 멍하니 그 쪽을 바라본다. 부엌 쪽에서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담배연기와 프라이팬에서 피어오르는 무언가를 타는 듯한 잿빛 연기가 섞여 어지럽게 녀석의 몸을 가리고 있다. “ 씨발-!!! 뭐가 문제야? 켁- 콜록- 콜록- 씹.... ” 신경질적인 욕설과 발작적인 기침 소리와 함께 한참을 무언가를 프라이팬으로 태우던 녀석이 그릇에 시커멓게 그을린 알 수 없는 무언가를 담아 놓고는 고갤 돌린다. 연기 속에 눈이 시뻘개진 채 눈물까지 그렁한 회색 눈동자의 진연준이 담배를 입에 문채 눈썹을 위로 치켜 올리며 나를 바라보더니 눈 꼬리를 내려 웃으며 말한다. “ 스타일 구겼군- 킥- ” 식탁에 덜렁 이상한 것이 담긴 그릇을 올려놓은 채 나를 향해 손짓 한다. 꼴에 알 수 없는 캐릭터가 그려진 앞치마까지 두르고 있는 모습이 여간 어울리지 않다 못해 괴이하다. “ 이리와- 이민영군- 킥- 이 진연준 인생에 처음으로 만든 최초의 음식이란 거다- 어서 와서 시식해 보라고- 자- 이거 먹고 학교가야지- 곧 즐거워 질 텐데 말이야- 킥- ” 신이 난 듯한 표정으로 나를 향해 손짓 하는 녀석을 그저 말없이 쳐다본다. 싫은 녀석이 말하는 날 위해 만든 음식이라는 시커먼 물체를 한참을 바라보며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한다. “ 너나 먹어라- ” 진연준 녀석은 한참을 내 얼굴을 바라보다가 어깨를 들어 올리며 담배 연기를 후 내뱉다가 곧 기분 상한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 이 새끼가- 처먹으라면 처먹어- 씨발- ” “ .................. ” 말없이 진연준을 노려보다가 몸을 일으킨다. 침대 위에 가지런히 올려 진 새 교복은 내가 다니는 학교 교복이 분명하다. 녀석이 보는 앞에서 피가 몇 방울 튀어 더러워진 내 교복 단추를 하나하나씩 풀어 벗는다. 그런 내 모습을 인조적인 회색 눈을 빛내며 담배를 입에 문채 말없이 바라본다. 알몸으로 진연준을 바라보다 피식 웃음을 흘리고 화장실로 보이는 곳을 향해 걸어가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간다. 엄청난 크기의 고급스런 화장실 풍경을 말없이 바라보다가 샤워기에 물을 틀고 몸을 씼는다. 어젯밤의 기억이 악몽처럼 어지럽게 스치고 지나간다. 가슴이 따끔거린다. 가슴 안 묵직하게 무언가 들어간 것처럼 무겁고 찢어지듯 아프다. 지옥까지 가지고 가버려야 할 내 엿 같은 사랑이 저주스러워서 눈을 감으며 물줄기를 맞는다. 진연준의 인조적인 회색 눈이 떠올라 눈을 뜬다. 징그러운 새끼.... 그러다 방금 전의 앞치마 차림에 웃음이 흐른다. 어디서 병신 같은 건 하나 주워 다 입고 미친놈 같이.... 그 개새끼에게 던져줘도 먹지 못할 이상한 것을 보이며 먹으라고?? 하긴.... 난 개새끼였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대충 몸을 닦고 수건으로 젖은 몸을 닦으며 문을 열자 식탁 의자에 앉아 인상을 찌푸리며 담배를 뻑뻑 피며 앉아 있는 진연준의 모습이 보인다. 침대 위에 개켜져 있는 교복을 집어 들고 입는 나의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는 인조적인 회색 눈을 느끼며 고갤 돌려 녀석을 바라본다. 담배를 후- 내뱉으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입을 연다. “ 역겨운 새끼- ” 킥- 웃음이 흐른다. 채민준이나 진연준이나 나에 대한 모든 인간들의 공통생각은 역겨움인가 보군. 교복 셔츠를 하나하나 잠그며 생각한다. 타이를 목에 매고 물기로 젖어 있는 머리카락을 대충 쓸어 넘기고 침대 위로 걸터앉아 진연준을 바라보며 도전적으로 묻는다. “ 역겨우면 꺼져- ” “ 이런- 이런- 서운한데- 쓰러진 널 안 쓰긴 하지만 내 사유 원룸에 재워주고 이렇게 음식까지 만들어 대령까지 해놨는데 그런 소릴 듣다니 기분이 썩 좋진 않군- ” 깐죽거리듯 말하며 인조적인 회색 눈이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빛내며 의자에서 몸을 일으킨다. “ 보기 보단 학교를 좋아해서 말이야- 이만 가 봐야 겠군- 킥- 아-!! 너도 어서 서둘러 학교에 가 보라구- 너희 학교에 심어둔 꼬봉새끼한테 네 얘긴 잘 전해들을 테니깐 말이야- 계속 분발해서 날 즐겁게 해달라고- 알겠냐? ” 담배를 입에 문채 가방을 맨 녀석이 등을 보이며 현관문을 연다. 덜컹- 하고 문이 열리며 들어오는 빛 속에 삐죽삐죽한 회색 머리카락이 눈에 뜨인다. 눈부신 빛을 차단하듯 문이 닫히고 녀석의 뒷모습 역시 사라진다. 시선을 돌려 식탁에 식어 있는 시커먼 무언가를 바라본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식탁으로 가까이 다가가 그것을 가까이서 바라본다. 시커멓게 탄 밥알과 황토 빛이 도는 당근으로 분석되는 무언가, 그리고 더 이상 무엇인지 모르겠는 듯한 다른 무엇들이 어우러져 대충은 볶음밥이라고 상상이 간다. 옆에 놓여져 있는 숟갈을 들어 인상을 찌푸리며 그것을 떠서 한참을 바라보다가 입에 넣는다. 입 안에 탄내와 함께 버석거리는 탄 알갱이들을 목에 넘긴다. 인상을 찌푸리며 숟가락을 식탁에 내 던지고는 식탁에 올려져 있는 담배 각을 주머니에 쑤셔 넣고 몸을 돌린다. 입가에 자조어린 웃음이 흐른다. 누군가가 나에게 음식을 해 준 적이 있던가??? 웃기게도 단 한번도 없다. 피딱지가 져 있는 주먹을 바라보다 피식 웃어 버린다. 엿 같군... 정말로... 나에게 처음으로 음식을 해준 사람이 저런 녀석이라니. 소름 돋도록 징그러운 녀석... 쑤셔 넣은 담배 각에서 담배 하나를 빼 내어 입에 문다. 철컥- 하고 일회용 라이터로 불을 붙이고 깊게 담배연기를 빨아들인다. 필터를 잘근 잘근 씹으며 다시 헛웃음을 흘리고는 진연준의 원룸을 빠져나간다. 아침햇살이 눈이 부시다. 눈살을 찌푸리며 버스정류장을 찾아 두리번거린다. 머리가 지끈거리며 어제의 상황이 떠오른다. 숨이 막힌다. 자괴감에 담배 연기를 길게 내품으며 다시 한번 주위를 훑자 몇 명의 교복을 입은 녀석들이 바쁘게 걸어가는 것이 보인다. 그 뒤를 따라 얼마 걷지 않아 눈앞에 버스정류장이 보인다. 바쁘게 걸음을 걷는 뿔테 안경을 낀 한 녀석이 나를 발견하고 흠칫 놀란 표정으로 옆의 녀석을 향해 귓속말을 지껄인다. 유쾌하지 않은 기분에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무표정하게 녀석들을 훑는다. 쑥덕거리던 녀석들의 눈빛에서 혐오감을 읽는다 .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휙 내던지고 신발로 비벼 끄며 녀석들을 향해 다가간다. 나보다 자그마한 녀석들은 놀란 눈을 크게 뜨며 나를 올려다보더니 한걸음 뒤로 거리를 둔다. 병신들- 입속에 맴도는 욕을 속으로 지껄이며 녀석들을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자 버스가 녀석들의 뒤로 슨다. 안돈의 한숨을 몰아 내쉬는 두 녀석이 허겁지겁 버스 위를 올라타자 나 역시 그 뒤를 따라 올라탄다. 같은 옷. 같은 표정. 같은 눈빛. 버스 안의 녀석들은 마치 복제된 가면을 쓴 가면들처럼 똑같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더럽고 역겨운 새끼라는 듯이. 우습다. 모든 것들이. 사람들이 보는 내 엿 같은 사랑이란 것도 저들의 눈빛처럼 더러운 것일까? 받아질 수 없는 감정. 해서는 안돼는 쓰레기 같은 감정. 녀석의 말처럼 지옥에서까지 끌어안고 사라져 버려야 할... 자조적인 웃음을 흘리며 뒤쪽에 서 있자 인상을 찌푸리던 몇 명 노는 걸로 유명했었던 기억이 나는 녀석들이 뒷자리에서 역겹다는 욕설을 내뱉는다. " 씨발- 아침부터 좆같네- " " 저 새끼 호모라며-? 씹- 토 나온다- 웩- 진짜 아침부터 좆같네- 썅-! " " 저거 언제 밟아 줘야 하는 거 아니냐? " " 지랄하지마- 채민준이 가만있을 거 같냐? 저번일 기억 안나냐? 그 또라이 건드렸다간 우리 골로 가는 수가 있으니깐 알아서 몸 사려야지 씹- " " 그래도 씨발- 눈앞에서 저런 게 주변에 알짱거린다는 자체가 소름 돋아서 가만히 나대고 있는걸 보기 짜증난단 말이야 씹새야- 한번 죽이게 밟아놔야지- 저딴 것들은 사회 암적인 존재라구- " 암적인 존재라... 일본 잡지에서 튀어 나온 듯한 요란한 머리 모양을 한 녀석들 역겹다는 듯한 지껄임을 들으며 비실비실 웃음이 흐른다. 눈을 치켜뜨고 녀석들 앞에 선다. 얼굴이 말상인 한 녀석이 눈을 부라리며 나를 향해 소리를 지른다. " 씨발- 눈 안 깔아? " 눈을 치켜뜬 채 말상인 녀석의 얼굴을 바라보며 비웃음을 흘려준다. 녀석이 벌떡 일어나 나의 멱살을 움켜잡는다. 이런- 이건 진연준이 마련해준 새 교복인데 말이다. 그래도 선물 받은 거나 마찬가지인 것에 구김이 간다는 생각에 기분이 더럽다. 이맛살을 찌푸리며 녀석을 바라보자 녀석의 주먹이 다짜고짜 날아온다. 하도 맞아서인지 면역이 된 것인지 별다른 아픔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아니면 분노란 감정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픔따윈 느껴지지 않는다. 옆으로 돌아간 얼굴을 다시 돌리며 외친다. “ 그것도 주먹이라고 날린 거냐? 킥- ” “ 이 새끼가!!! ” 다시 주먹을 들어 올리는 녀석의 뒤로 친구 녀석 한명이 녀석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소리친다. “ 야- 야- 그만해!! 학교 다 왔어- 씨발- 버스 안에서 쪽팔리게 저 새끼랑 뭐 하자는 거냐?? 내리고 해결 봐- 이 일 채민준 귀에라도 들어가면 좆도 안돼는 거니깐- ” 그제 서야 씩씩거리던 말상의 녀석이 주먹에 힘을 풀며 귀에다 입을 데고 속삭인다. “ 내리고 보자- 역겨운 새끼... ” 말상인 녀석의 입술이 멀어지자마자 버스가 서고 기다렸다는 듯 버스에 탄 녀석들이 우르르 허겁지겁 내리는 것이 보인다. 담배에 대한 갈증이 크다. 버스에서 말상인 녀석들을 따라 내린다. 등교 길로 시끄러운 풍경 속에 여러 명의 불량한 무리들의 뒤를 따라 천천히 걸어가고 있다. 아침 햇살이 눈부시고 내 썩어 버린 심장은 계속 아파오고 지금 이 엿 같은 상황은 기막힌 코미디의 한 장면 같다. 참으로 웃기다. 시간을 건너와도 무엇을 어떻게 하던 나란 존재가 역겹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말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감정조차 쓰레기로 분류 받는 나의 이 기구하고도 엿 같은 삶이란 게 신물이 날 정도다. 마치 이 걸 깨닫기 위해 신이란 존재가 시간을 되돌려 보내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엿 같은 의문에 숨이 막히다. 학교 안 까지 들어선 녀석들이 쓰레기 처리장 쪽으로 걸어가자 말없이 비웃음이 흐른다. 화장실에 이어 쓰레기 처리장이 나에 어울리는 장소인지 모르겠다. 말상인 녀석이 걸어와 담배를 입에 물며 중얼거린다. “ 맞으러 아주 잘 따라 오네- 또라인 정말 또라이네- ” 한 녀석이 킬킬거리며 걸어와 말상인 녀석의 어깨에 손을 데며 말한다. “ 야- 저번에 저 새끼가 오명이 물어뜯은 거 기억 안 나냐? 제 입에 뭐라도 물려 놓자- ” 웃음이 흘러서 픽- 웃어주자 뒤에 있던 다른 한 녀석이 발끈한 표정으로 한걸음 다가와 바로 복부를 가격한다. 아프지 않다. 전혀- 타오르는 이 심장의 아픔 보다야 아프겠는가? 예상하고 있었지만 말이야... 그 녀석이 그런 말을 할 거라고는 예상 했었지만 말이야... 다시 한번 말해 보라고 날 이렇게 죽일 듯이 패주길 바랬어.... 손안에 안아든 이제성을 내려놓고 말이지.... 더럽다고 욕하더라도 분노하는 녀석이 보고 싶었어... 그 증오가 어쩌면 애정일지도 모른다는 오해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지. 씨발- 웃음이 흐른다. “ 풋..... 푸하하하하하하하- ” 몸을 웅크린 채 웃음을 흘리자 녀석들이 욕설과 함께 마구잡이의 발길질이 시작된다. “ 이.... 미친 새끼 같으니라고- ” “ 완전 또라이야- 또라이- ” “ 야- 저 새끼가 다리라도 물라- 뭐라도 물려- ” 한 녀석이 웅크려 있던 나의 턱을 들어 입에 더럽고 쾌쾌한 시궁창 냄새가 나는 천 같은 것을 입에 처넣는다. 눈을 부릅뜨고 나의 입에 더러운 것을 쳐 넣는 녀석이 아닌 위를 향한다. 맞은편 건물 옥상 위 뭉개 뭉개 피어오르는 잿빛 담배 연기가 눈부시다. 난간에 기대어 나른한 자세로 담배를 입에 문채 아침 햇살을 받아 푸른빛이 도는 머리카락이 옅은 바람결에 따라 흔들흔들 거리고 날카로운 턱 선과 흰 피부가 눈이 부시다. 무표정하게 나른한 자세로 난간에 기대어 담배를 입에 물고 이 현장을 관전 중인 채민준...... 그 녀석은 그저 무료해 보일 뿐이다. “ 병신 같은 새끼- 네 새끼랑 딱 어울리는 모습 아니냐? ” 한 녀석이 내 입 가득 시궁창 냄새가 나는 천 쪼가리를 다 쑤셔 넣고는 외치자 주변에 있던 녀석들이 웃어재낀다. 한 녀석이 다가와 내 머리카락을 움켜잡고 위로 치켜 올린다. 나의 시선은 여전히 녀석을 향해 있다. 담배 연기를 빨아들이는 붉은 입술이 다른 한 녀석의 발길질과 함께 벌어지며 잿빛 연기가 피어오른다. 다른 한 녀석이 발로 턱을 걷어차자 몸이 기운다. 옆으로 쓰러져 내리는 나의 시선은 여전히 채민준 녀석을 향해 있다. 무료한 동작으로 나른하게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나른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심장이 찢어져 내린다. 저번처럼 달려 나오지 않는 거냐? 채민준?? 웃음이 흐른다. 시궁창 냄새나는 천을 적시며 피와 섞인 침이 흐른다. 저주스럽다. 내 이 사랑이란 것들이 모두. 내 존재의 역겨움이. 모든 것이 다 저주스럽다. 채민준을 향한 내 사랑도 저주스럽다. 눈물이 흐른다. 뜨거운 눈물이 내 뺨을 타는 듯이 흘러넘친다. 계속 되는 발길질 속에서 나의 시선은 오직 녀석에게로 향한다. 무료한 표정으로 뭉개 뭉개 담배의 잿빛 연기가 녀석의 모습을 흐릿하게 한다. “ 아- 정말- 시작부터 화려한 걸- ” 뜬금없는 목소리와 함께 발길질이 멈추고 다른 학교 교복을 입은 녀석들이 나를 밟아 대던 녀석들을 개 패듯 패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 모습을 한참 어이없는 눈길로 바라보던 나의 앞에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운동화가 시야를 가린다. 바닥에 얼굴을 박고 눈은 옥상으로 향해있던 내 두 눈앞을 가린 운동화를 신은 녀석이 몸을 숙이며 나의 얼굴 코앞에 자신의 얼굴을 내민다. 인조적인 회색 눈을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린다. 진연준.......왜?? 진연준의 눈 꼬리가 내려간다. “ 몰골이- 멋진데- 키킥- ” 눈 꼬리를 내려 웃으며 진연준의 손이 피와 침으로 범벅이 되어있는 입을 막고 있는 더러운 천을 빼내고는 다시 싱긋 웃는다. 징그러운 미소이지만 싫지만은 않다. 삐죽삐죽한 회색 머리카락이 햇빛을 받아 흰빛을 띈다.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담배를 꺼내 입에 물려주며 자신의 입에도 담배를 물고는 담배 끝에 불을 붙인다. 붉은 불꽃이 담배 끝을 붉게 물들이고 그 끝을 내가 물고 있던 담배 끝에 댄다. 담배를 깊게 빨아올리고 주춤거리며 몸을 일으켜 담배연기를 후- 내뱉는다. 일으켜진 내 시 야 속에 옥상 위의 녀석은 보이지 않는다. 마치 연기처럼 공기 속에 흩어져 사라져 버린 느낌이다. 가슴이 무겁게 가라앉는다. 복수심에 가슴이 지끈거린다. 내가 가지지 못한다면 너의 심장이라도 뜯어 가지겠다고 생각했었지. 너의 죽는 모습 하나하나 내 눈 속에 박고 마지막으로 띄는 그 심장을 부여 잡고 네가 죽 는 순간 마지막으로 보는 녀석이 내가 되도록 해주겠다고 말이다... 마치 내 생각이라도 읽는 듯한 인조 적인 회색 눈이 빛난다. 모든 걸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웃음을 흘리는 진연준의 손이 내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리며 입 을 연다. “ 널 구하러 짜잔- 하고 나타난 흑기사 같은 등장 아니냐-? 키킥- ” 진연준의 담배를 문 입술이 위로 치켜 올라간다. 마치 녀석의 미소를 보는 듯한 착각을 느낀다. 담배 필터를 잘근잘근 씹으며 무표정하게 그런 진연준을 올려다본다. 담배 입에 물고 음미하듯 빨아들이며 눈을 감아 버린다. 그런 진연준의 뒤로 같은 교복을 입은 녀석이 어깨를 툭- 치며 말을 건다. “ 여기 선생들 들이 닥치기 전에 뜨는 게 어떠냐? ” 제법 단정하게 생긴 녀석의 말에 감은 눈을 스르륵 뜨며 진연준의 회색 눈동자가 나에게 꽂 힌다. 보면 볼수록 징그러운 눈이다. 인조적인 회색 눈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한참을 나를 들여다보던 녀석의 손이 어느새 내 머리위로 올라간다. 애무하듯 머릿결을 따라 녀석의 손바닥이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는다. 이마가 찢겨져 흐르는 피가 눈꺼풀을 타고 시야를 붉게 물들인다. “ 이민영...................... ” 마치 추억이라도 하는 듯 진연준의 눈빛 속에 복잡하게 꽈리를 틀고 있는 무언가를 발견한 다. “ 비밀 하나 알려 줄까- ? ” 눈 꼬리를 내리며 한참을 웃던 진연준의 얼굴이 무표정하게 변한다. 진연준의 입술이 살며시 나의 머리를 끌어안는 듯한 자세가 대어 귓가에 다가가 속삭인다. “ 채민준... 그 새끼가 사랑하는 건........ ” 심장이 지끈거린다. 무슨 말을 지껄이고 싶은 거냐.. 진연준.... 무슨 말을.... “ ..................망령이다.....!! ” 귓속을 타고 속삭여지는 밀어. 마치 온 세상이 굳어 버린 듯 눈앞의 화면이 정지 한다. 누굴?? 누굴 사랑한단 말이냐 진연준. 웃음이 흐른다. “ 푸훗...............크....큭............ ” 웃음을 흘리며 진연준의 멱살을 움켜잡아 묻는다. “ 사랑-? 누가-? 채민준 .... 그... 새끼가- ? " 입에서 썩은 내가 나는 피가 흐른다. 지끈거리는 심장의 고동소리가 내 귀를 마비시킨다. 온 세상이 잿빛으로 가득 찬다. 입술 끝을 타고 흐르는 피가 흐르는 것처럼 심장이 찢어져 피가 쏟아지는 듯한 착각을 느끼 며 머릿속은 어지럽게 엉켜 버린다. 진연준은 그저 알 수 없는 무표정으로 한참을 내 얼굴을 내려다본다. 묘한 이채를 띠우며 회색 눈동자가 빛남과 동시에 진연준의 눈 꼬리가 내려간다. " 재밌지-? 재밌는 이야기 아니야- ? " " 씹...... 닥쳐..........!!! " 녀석의 멱살을 잡고 흔든다. 녀석의 고개가 힘없이 왔다갔다 흔들린다. 녀석을 흔들던 나의 손에 힘이 풀려 간다. " 비밀은- 까발려 지라고 있는 거라고- 킥- " 진연준의 손이 내 머리 위로 얹혀 진다. 굳어 버린 듯 녀석의 멱살을 힘없이 잡고 있는 자세로 서 있다. 모든 세상이 마치 정지 된 것처럼 뿌옇다. 진연준 주위를 배회하며 채근하는 녀석들의 모습이 마치 빠른 촬영 영상을 바라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망령이라고??? 씨발..... 망령이라고?? 이제성도 이름 모를 어떤 여자도 아니고..... 망령이라고?? 어디서 그런 엿 같은 헛소리를 만들어 지껄이는 거냐.... 어린 시절부터 항상 나는 그 녀석 옆에 있었어... 그녀석이... 모든 걸.. 알고 있다고.... 어지럽다. 역하다. 비틀거리는 나의 어깨를 두 손으로 잡아 받히는 진연준의 얼굴 표정이 묘하다. " 채민준... 그래... 그 녀석은 말이야..... 너를 욕할 자격이 없는 놈이라 이 말이야 이민영- 잘 알아두는 게 좋아..... " 은밀한 미소를 흘리며 다시 진연준의 입술이 귓가에 닿으며 속삭인다. " 그 새끼가 사랑한 망령은 말이야..... " " .................... " 숨을 몰아 내쉰다. 아프다... 씨발.. 아프다.... " 8년 전에 죽어버린 자신의 형이다...... 킥- " 귓가에 떨어져 나가는 녀석의 밀어와 입술의 체온... 웃음을 삼키지 못해 웃어 재끼는 진연준의 기묘한 표정. 배를 잡고 웃는 녀석의 뒤로 친구로 보이는 한 녀석이 받힌다. 눈물까지 흘리며 웃는 녀석의 표정이 기묘하다. 숨을 몰아쉬고 눈을 감고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린다. 모든 세계가 멈추어 버린다. 회색 빛 나의 세상은 어둠으로 내려앉는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컴컴한 암흑일 뿐이다. 가슴을 싸하게 만드는 통증도 점점 둔해져 나간다. 머리 속 모든 기억들이 마구잡이로 뒤엉켜 이리저리 뒹군다. 녀석을 향한 내 미친 사랑이.... 가슴 가득 증오심으로 들끓는다. 역겹다는 듯 바라보던 녀석의 시선. 역겹다고 지껄이던 녀석의 그 붉은 입술. 나를 미치도록 사로잡던 녀석의 향기. 내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던 녀석의 손길. 그 모든 것. 내 심장 모든 것을 지배하던 녀석의 그 세세한 모든 것들 하나 하나에 증오로 뒤덮인다. 형이라고-? 형-?? 웃음이 흐른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른다. 웃음으로 벌어진 입 속으로 짠 눈물 맛이 느껴진다. 썩은 내가 진동하는 입안에 피와 짠 눈물이 가득 복합되어 역겨움이 치민다. " 키키킥- 큭- 크크큭- 큭- 아- 정말 웃음이 나는데-? 이민영 네 표정... 멋져... 멋진 표정 이야- 크크큭- " " 연준아- 이제 좀 가자- 씨발- " 녀석의 등을 부둥켜안고 있던 녀석이 짜증 서린 목소리로 외치자 한참을 기묘한 표정으로 웃음을 흘리던 진연준이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본다. 웃음이 멈춘 기묘한 얼굴표정에 소름이 돋는다. " 이민영- 제일 중요한 비밀 하나를 알려주지 못 했네- " 눈 꼬리를 내리며 웃는 진연준의 저주스러운 입이 벌어진다. " 저번에 그 피아노 치던 새끼 말이야- 네가 골통을 깨버린..... 그 새끼랑 똑같이 생겼더라- 그 새끼 형이랑 말이야.... 10년 전에 본 기억을 더듬어 보자니 그런 결과가 나오더군. 아- 그리고 제일 중요한 비밀이란 건 말이야.... " 진연준이 싱긋 웃으며 자신의 뒤를 받히고 있던 친구를 밀어내 다시 나를 향해 다가온다. 굳어 버린 채 멍하게 진연준을 바라보는 나의 두 눈에 녀석의 얼굴이 가득 찬다. 진연준이 작게 속삭인다. " 10년 동안 쭉- 내가 널 사랑했다 이 말이다 이민영- 알겠냐?? " 진연준의 손이 내 뺨에 닿는다. 회색 눈동자에서 기묘한 빛을 띤다. 알 수 없는 감정의 폭풍이 가득 녀석의 눈동자에서 휘몰아치고 있다. 떨리는 손끝이 내 뺨에 와 닿아 진연준의 떨림을 느낄 수가 있다. 묘하게 슬프면서도 광기가 서린 녀석의 표정에서 마치 거울을 바라보는 듯 내 모습을 발견 한다. “ 사랑은 말이야............... 증오를 만들지.... ” 진연준의 속삭임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흐른다. “ 킥.............. ” 얼굴을 손가락으로 가리고 쏟아져 나오는 웃음을 흘린다. “ 크큭.... 푸하하하하하....... 씹........... 큭..... ” 눈물이 흐른다. 뜨겁게 뺨을 적시는 눈물에 데기라도 한 듯 히스테릭하게 웃음을 흘린다. 가려진 손가락 사이로 녀석의 남자답지 않게 묘하게 기다랗고 보드라워 보이는 진연준의 손 가락 사이로 끼워진 담배가 보인다. 진연준의 손이 올라가고 한참을 서 있던 녀석의 운동화가 한 걸음 한 걸음 멀어져 나간다. 녀석의 운동화를 바라보며 웃음이 흐른다. 씹... 진연준....... 10년이라.....?? 10년을 나만 바라봐 왔다는 녀석의 말에 내 기억을 떠올려 보지만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진연준의 존재를 안 것이라고는 녀석의 장례식장에서 처음으로 알게 되었으니깐.... 웃기게도 난 녀석이 아닌 그 누구에게도 철저하게 관심 따위는 없는 놈 이였으니깐 말이다. 지금 이 찢어지고 헐어 버린 심장 가득 그 누구도 철저하게 들어 올 공간 따윈 없으니깐 말 이다. 이 한편의 코미디 같은 상황이 웃음을 자아낸다. 웃음이 흐르는데 가슴속은 찢어진다. 눈앞의 모든 것이 새카만 어둠으로 가득 쌓여 있다. 이제성도 아니고 이름 모를 어떤 계집도 아닌 남자라고? 자신의 형제를 사랑했단 말인가..........?? 지극히 노말한 녀석인 줄 알았더니... 죽어도 내가 들어 갈 수 없는 녀석의 심장에 고작 들어와 앉아 있는 게 8년 전에 뒈져버린 형이란 말이지...? 녀석을 사랑하며 지낸 지난 세월에 대한 아픔에 숨을 쉬지도 못하는 기분으로 헥헥 거리며 웃음을 흘린다. 씨발새끼. 감쪽같이 날 속였어. 얼굴을 가리던 손을 떼어 내고 시선을 올린다. 햇빛이 내리쬐는 옥상의 풍경. 비틀거리며 일어서 성큼 성큼 옥상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피를 질질 흘리며 비틀거리며 걷는 나를 계단을 내려가는 녀석들이 흘끗 놀란 자세로 피해 가며 쑥떡 인다. 현기증과 역함이 치민다. 푸른색으로 폐인트 칠 했으나 녹이 슬어 떨어져 내린 옥상 문이 눈에 뜨인다. 있는 힘껏 발로 걷어찬다. 녹이 슬어 듣기 싫은 고철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린다. 빛을 막고 있던 문이 열림과 동시에 갑작스런 빛이 내 앞에 쏟아진다. 눈살을 찌푸리며 옥상 난간에 기대어 머리에 하얀 붕대를 한 채 해맑게 웃음을 흘리고 있는 이제성의 모습과 입에 담배를 물고 그런 녀석의 머리카락을 념겨 주고 있는 채민 준................. 녀석의 모습이 빛 속과 함께 녹아들어 시야에 투영된다. 죽여 버리겠어. 그 동안의 내 세월이. 너무 엿 같아서. 증오가 가슴에 끓어오른다. 비틀거리며 뛰어가 채민준의 멱살을 잡고 눈물을 흘린다. 무표정하게 담배를 문채 녀석의 까만 눈동자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제성의 화난 목소리가 들려온다. “ 나쁜 새끼.......... 이제 그만 좀 해............... ” 이제성이 뭐라고 까대든 난 녀석의 멱살을 움켜쥐고 소리친다. “ ...................새카맣게 날 속여......?? 개새끼........... ” 목소리가 쉬어 잘 나오지 않는다. 입에서 피가 질질 흘러내린다. 찢겨진 뺨이 눈물로 적셔져 따끔거린다. 무표정하게 긴 속눈썹을 내리깔고 녀석은 그저 날 바라 볼 뿐이다. 아무런 감정이 담기지 않은 눈빛. 조각 같은 녀석의 얼굴은 차가운 석고상 마냥 차갑고 이질적이다. 붉은 입술에 물려져 있는 새하얀 담배 끝의 담뱃재가 툭 하고 떨어진다. “ 내가 어떤 기분으로 널 바라봤었는데......... 십여년을 고통 속에서 죄악감 속에서 미친놈처럼 살아왔었다.... ” 웃음이 흐른다. 씹........ 아직도. 난 녀석을 바라보면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 미칠 듯한 사랑에 가슴이 설레 인다. 녀석의 하나하나에 미칠 듯이 흥분해 버린다. 아직도.... 난 이렇게 녀석을 사랑하고 있다. 엿 같게도...........난 녀석을 사랑한다. 이제는 이 미친 사랑을 끝내 버리고 싶다. 녀석의 붉은 입술 끝이 조소하듯 위로 치켜 올라간다. 무감정한 녀석의 새카만 눈 속에 어떠한 감정도 찾아 낼 수 없다. 마치 생명 없는 인형처럼 생기 없는 녀석의 눈동자에서 내 자신이 들어 갈 곳 어느 한 곳도 없다는 것을 느낀다. 네 녀석의 모든 것은 망령에 가득 휩싸여 죽어 버린 거냐??? 울고 아파하며 네 녀석의 사랑을 얻기 위해 나는 얼마나 썩어 들어갔던가.... 킥........... 눈물과 웃음으로 엉킨 기묘한 표정으로 녀석의 멱살을 움켜잡은 손이 부들부들 떨려 온다. " 채민준........... " 시야를 뿌옇게 만들던 눈물이 떨어져 내린다. 녀석의 얼굴이 뿌옇게 잘 보이지 않는다. " 사랑해.......................... " 쉬어버린 목소리에 간절하게 외친다. 사랑해.......이 개자식아...... " ............. 널......미치도록......... 사랑한다......... 그래서....... ................................그 사랑만큼....널....... 증오한다... " 사랑에 마지않았으나 감히 건드릴 수 없었던 녀석의 턱 선을 손가락으로 훑는다. 짙은 녀석의 눈썹이 찡끗 위로 치켜 올라간다. 녀석의 붉은 입술에 머금고 있는 담배를 채가듯 손으로 빼앗고 녀석의 멱살을 쥔 채로 미친 듯이 녀석의 입술에 내 입술을 가져다 댄다. 등 뒤로 경악에 가까운 제성의 소리가 들려온다. 제어할 수가 없다. 이제는.. 더 이상 머뭇거릴 필요도 더 이상 아파 할 필요도 없다. 널 가지고 싶다. 가질 수 없다면.... 차라리 네 생살 하나 하나를 삼켜 먹듯이 씹어 먹어주겠어. 죽여 버리겠어..!! 꿈결 같이 부드럽고 따스할 것만 같던 녀석의 입술은 차다. 녀석의 붉은 입술을 먹어 치우듯이 빨아들인다. 혀를 들이밀어 먹어치우듯이 녀석의 혀를 빨아들이고 휘어 감는다. 환상적 일 것만 같던 녀석과의 키스는 차다. 눈물이 흐른다. 눈을 뜬다. 블랙홀처럼 나를 빨아 버릴 듯한 검은 녀석의 눈동자와 마주 바라본다. 검은 눈동자는 알 수 없는 빛으로 일렁거린다. 심장이 지끈거린다. 차갑다.... 너무나도 차기만 하다... 부르르 몸을 떨며 녀석의 잡고 있던 손을 푸르고 입술을 뗀다. 헛웃음이 흐른다. 스르르 쓰러져 내려 허탈한 웃음을 흘리는 나의 몸이 들어 올려진다. 무표정한 얼굴로 나의 멱살을 들어올리는 녀석의 손아귀에 따라 힘없이 들어 올려진다. 축 늘어진 고개를 들어 올려 녀석을 바라본다. 나와의 키스로 부어 오른 녀석의 붉은 입술과 일그러진 얼굴. 한쪽 뺨을 타고 흐르는 내 눈물의 감촉. " ...........역겨운 새끼.............................. " 부어오른 녀석의 붉은 입술이 열리고 쏟아지는 혐오감이 어린 저음의 목소리. 그래............... 여기까지다 채민준. 녀석의 붉은 입술 끝이 일그러지듯 올라간다. 나의 입 꼬리 역시 비웃듯 올라간다. 여기 까지다. 정말 채민준 여기 까지만 할랜다. 비틀거리며 내 멱살을 움켜잡은 녀석의 손을 쳐 내고는 옥상 난간에 등을 기댄다. " 더럽다고........?? 킥................. " 비틀린 웃음이 흘리며 난간 위로 기어 올라가 선다. 네 녀석이 날 더럽다고 욕할 자격이 있단 말인가?? 내 사랑을 욕할 자격이 있냔 말이다............... 이 미친 사랑을 욕할 자격이 있다는 말인가?? 제성이 당황한 얼굴로 소리친다. " 미쳤어!!!!!!!!!!!! 미쳤냐 이민영!!! 내려와!! 뭐 하자는 거야!!! " 붉어진 얼굴로 악에 받힌 듯 소리치는 이제성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네 녀석이 사랑한다는 사람 얼굴이...... 저런 얼굴이란 말이지.............?? 아름다운 눈동자를 가진 녀석 말이야......... 네 녀석의 형의 눈동자 역시 그랬을까?? 저렇게 때 타지 않은 듯 아름다웠을까?? 헛웃음이 흐른다. 주머니를 뒤적거려 담배를 꺼내 입에 물어 담배 불을 붙인다. 담배를 깊게 빨아들이며 녀석을 바라본다. 이상하게도 굉장히 화가 난 표정이다. 항상 무표정하기만 했던 녀석의 표정이 굉장히 화가 난 표정이라 이상하다. 잔뜩 찌푸려진 녀석의 얼굴은 처음 보아서 웃음이 흐른다. 담배연기를 불어내며 그런 녀석을 바라보며 히죽 웃어 주며 팔을 벌린다. 바람이 불어와 난간 위로 서 있는 몸이 위태위태한 느낌이다.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카락이 날리고 교복 셔츠와 타이가 바람결에 따라 휘날린다. 담배 필터를 잘근잘근 씹으며 녀석의 이름을 희미하게 불러 본다. " 채민준...................... " 이상하지?? 웃음이 나는데 자꾸 눈물이 흐른단 말이야........... 나 방금 10년 동안 날 사랑해 왔다는 고백을 들었는데 말이야. 웃기게도 그 소린 들리지도 않더군. 내 안에는 너 뿐이라... 씹.. 너 뿐이라 아무도 들어 올 수가 없어서. 그렇다면 네 새끼 심장 속에 살아 있는 그 망령은. 어떻게 내 쫓아 낼 수 있을까?? 망령을 닮아 버린 이제성을 바라보는 네 녀석을 바라보며.... 난 과연 망령을. 이제성이란 녀석에게서 네 녀석의 마음을 떼어낼 수 있을까??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그런데............... 방법이 없더라고........ 이러는 수밖에........ " ......채민준......... 채민준........... 채민준................ 정말 이젠... 끝내고 싶다........" 엿 같게도 눈물이 툭- 하고 한쪽 뺨을 타고 흐른다. 더럽게 울고 있잖아 ... 이민영..... 이 병신 새끼.... 담배를 깊게 빨아들이며 피식 웃는다. 녀석을 바라본다. 화가 난 얼굴로 이 쪽을 향해 성큼 성큼 걸어오고 있는 녀석의 모습이 묘하게 두근거린다. 바람결에 따라 녀석의 검푸른 머리카락 역시 날린다. 녀석의 질척한 검은 눈동자를 다시 한번 바라본다. 네 녀석의 눈은 말이야... 참 아름답다... 녀석의 눈동자를 바라봄과 마지막으로 눈을 감는다. 담배를 입에 물고 몸을 뒤로 기운다. 하늘을 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제길..... 떨어지면 아프려나.... 하지만.... 이 심장의 아픔 보다야 아플까?? 씨발.... 이쯤 하면 골통이 깨졌어야 하는데 말이야..... 이상하게도 몸이 뒤로 기울며 떨어져 내리는 느낌과 동시에 팔목을 압박하는 강한 힘을 느끼며 눈을 뜬다. 검다. 암흑 속에 갇힌 듯한 녀석의 검은 눈동자를 바라본다. 간당간당하게 난간에 몸을 걸치고 내 팔을 잡고 있는 녀석을 바라본다. " 왜........?? " 왜 나를 잡았을까? 알 수 없다. 엄청난 힘으로 끌어 올려진 나의 멱살을 움켜잡고 이성을 잃어버린 듯한 녀석이 붉게 상기된 얼굴로 내 목을 움켜잡고 흔든다. " 미친 새끼!!! 이 미친 새끼야!!! " 힘없이 녀석의 손아귀에 고개가 이리저리 흔들린다. 정신없이 그런 녀석의 눈동자만을 멍하게 바라본다. 눈까지 빨개져서는 나의 목을 잡고 미친 듯이 흔들며 녀석의 주먹이 내 얼굴을 향한다. 빠각- 엄청난 타격음과 함께 몸이 저 멀리 옆으로 뒹군다. 획- 하고 돌아가 버린 고개 사이로 쿵쿵거리며 나를 향해 다가와 머리카락을 움켜잡고 들어 올린다. 턱을 타고 붉은 피가 흐른다. " 죽고 싶었나-? 지금 내 눈앞에서 네 새끼가 죽어 가는 꼬라지를 보이려 했단 말이지!!! " 빠각- 엄청난 아픔과 함께 몸이 다시 옆으로 나 뒹군다. 피가 철철 입에서 흘러넘친다. 내 몸 위로 올라타 계속 되는 주먹세례에 힘없이 피를 흘리며 얻어맞는다. 알 수 없다. 이 녀석이 화를 내는 이유를. 널 위해서 였는데. 이 미친 사랑에 종지부를 찍어 버리고 싶었는데. 내가 지금 죽지 않는다면... 분명 나는 널 물어 버릴 거다 채민준. 알고 보니 난 충견이 아니더라고. 주인의 목 따윈 언제라도 물어 버릴 수 있는 그런 놈이란 말이다. 난 이 사랑에 미쳐 버렸거든............. 정말....... 미쳐 버렸거든... 난 널 물거다. 난 널 죽여 버릴 거야!!! " 죽을 거라면 내 눈 앞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어- " 차가운 녀석의 저음에 심장이 얼어붙는다. 채민준.... 내 사랑...... 저주스러운............ 내 사랑............... 널............. 증오 한다......................... 녀석의 향한 증오로 끓어오른다. 눈물이 흐른다. 내 목을 움켜잡고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괴롭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녀석을 비웃듯이 바라본다. 알 수 없는 감정으로 뒤섞여 있는 녀석의 검은 눈동자가 차갑게 빛난다. 나를 향해 다시 한 번 주먹을 날리려는 그 때에 뒤에 서 있던 이제성이 달려와 녀석의 주먹을 품에 안 듯 잡아채며 소리친다. “ 그만 들 좀 해!!!! 제발!!!!!!! 그만 좀하라고!! 이러다 정말 민영이 죽겠다!!! ” 인상을 가득 찌푸리며 소리치는 이제성의 얼굴을 바라보며 묘한 기분에 빠져든다. 너랑은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다구... 채민준... 그런데 네 형 새끼가 저 새낄 닮았다고?? 킥- 씹..... 웃기는 군. 죽여 버리겠어. 너나 저 새끼나.... 정말 죽여 버릴 거야... “ ㅇ.....윽..... 채민준!! ” 입에서 흐르는 피를 거칠게 닦아 올리며 녀석을 올려다본다. 알 수 없는 복잡 묘한 표정으로 녀석이 나를 내려다본다. 긴 속눈썹으로 가려진 녀석의 검은 눈동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피식 웃어 버린다. 찢어진 입술이 아려 온다. “ 날 살린 걸 후회하게 될 거다- 기필코 언젠가는 말이야.... ” 녀석의 주먹을 끌어안은 포즈로 서 있는 이제성을 아래위로 훑어 준다. 제성의 이맛살이 살짝 찌푸려진다. 네 새끼 역시 더 이상 참기 힘들다 이거냐? 비웃듯 이제성을 올려다보고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킨다. 피를 너무 쏟은 탓에 몸이 기우뚱거린다. 인상을 구기고 있던 제성이 빠른 동작으로 그런 나의 몸을 부축한다. 짜증이 치민다. 끝까지 천사 표 흉내라 이건가? 그녀석의 형과 같은 얼굴을 하고 천사 인양 착한 척을 하며 맑은 눈동자를 빛내고 있다. 그 모습이 나에게는 역겹게만 다가온다. 신물이 나도록 모든 것이 역겹고 증오스럽다. 거칠게 그런 이제성을 밀쳐내고 쉬어터지다 못해 잘 나오지도 않은 목소리를 끌어 올려 악에 받힌 소리를 내지른다. “ 꺼져- 씹 새끼야!!!! 꺼지란 말이야-!!!! 착한 척 아무것도 모르는 척 고고한 척 씨발- 역겨운 면상 저리 치우란 말이다-!!! 죽어 버려 이제성!!!! ”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던 이제성의 얼굴이 굳어 버린다. 이상하게도 가만히 그런 나의 모습을 바라보고만 있는 녀석은 마치 탈진 한 사람처럼 이제성의 어깨에 고개를 파묻는다. 가슴이 쓰리다. 주먹을 그러쥔다. 굳은 얼굴 표정으로 그런 녀석의 까맣다 못해 푸른빛이 도는 결 좋은 머리카락을 쓰다듬듯이 어루만지며 끌어안는 이제성의 모습을 바라본다. 입술 끝이 일그러지듯 올라간다. 눈꺼풀을 타고 내려오는 핏물 때문에 시야가 붉은 빛으로 흐릿하다. 비틀거리며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문다. 손에서 흐르는 핏물 덕택에 담배 역시 핏빛으로 젖어든다. 비틀 비틀 한 걸음 한걸음을 옮길 때 마다 녀석을 향한 증오심이 커져만 간다. 끼이익- 쾅!!!! 철문을 닫는다. 환하게 뒤통수를 내리쬐던 빛 또한 문이 닫힘과 동시에 차단되어 버린다. 내 모든 것은 오직 어둠뿐이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은 썩어 버릴 증오와 어둠. 비틀거리던 몸이 기운다. 힘없이 몸이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친다. * * * 온 몸에 벌레가 기어들어가는 느낌..... 역겨움............... 소리를 지르고 있는데 어둡다. 눈앞의 모든 것은 사물을 구분 할 수 없을 정도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온 몸 가득 떨려오는 괴로움과 역겨움으로 가득하다. 소리를 지른다. 마치 독을 품은 듯이 악귀처럼 소리를 지르고 있다. 머릿속이 어지럽고 역겹다. 파노라마처럼 혼란스럽게 지나가는 모든 것들이 보이지 않는다. 그 속에서 녀석의 검은 눈동자가 보인다. 긴 속눈썹 사이로 유화처럼 번들거리는 녀석의 검은 눈동자가 알 수 없는 빛이 일렁인다. 가슴이 아파 녀석을 끌어안는다. 차가운 녀석을.... 마치 연기처럼 흩어져 버리는 녀석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린다. 허공을 품에 안은 채 소리를 내지른다. 식은땀을 흘리며 눈을 뜬다. “ 정신이 드냐? ” 인상을 찌푸리며 나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 수영을 무표정하게 올려다본다. “ 너 이러는 꼴 보기도 이젠 지겹다- ” 한숨과 섞인 목소리로 체념하듯이 수영이 말한다. 금빛을 물들인 머리카락이 윗부분이 검은 끼가 도는 것이 꽤 머리가 긴 모양이다.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한참을 한숨만 푹푹 내쉬는 수영을 바라보다 눈을 돌려 주변을 훑는다. 숨을 조여 오는 약 냄새와 링겔, 수영이 기대고 있는 창 사이로 조금 열려져 들어오는 바람결을 따라 휘날리는 새하얀 커튼.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수영의 금발 머리카락. 병원에 실려 올 정도로 맞았던가? 비웃음이 흐른다. 무표정하게 수영을 바라보자 내 얼굴을 한참 바라보던 수영이 녀석이 다시 한번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 미친놈................... 이민영 이 미친놈아....!! 제발 정신 좀 차려!!! 너 갈비뼈도 몇 대 갈라지고 아주 출혈과다로 황천행 할 뻔 했단다- 이 새끼야!!! 네 새끼 뒈지면 누가 슬퍼할 새끼 있는 줄 알아? 고작 나나 채민준 녀석 밖에 더 있겠냐고- ” 미친 소리. 채민준................ 그 녀석이 내 죽음에 슬퍼 할 거라고?? 자조어린 웃음이 흐른다. “ 이제 그만하자... 민영아.............. 넌.... 아무리 봐도 제정상이 아닌 거 같아 지금 이 모습... 정말 제정상이 아닌 거 같다.... ” 수영이 녀석이 애타는 목소리로 외치며 내 손을 움켜잡는다. 목에 한 기브스 덕택에 눈만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정도여서 눈을 내리깔고 내 손을 잡고 있는 수영의 손을 바라본다. 눈물까지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수영이 녀석이 내 손을 꼬옥 잡으며 외친다. “ 나에게 정말 네 녀석들은 소중한 친구란 말이야...씨발.... 소문처럼.... 네 녀석이... 민준이 녀석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든....난 상관없다..... 그냥 난 네가 너무 안쓰러워.... 넌 항상 위태위태해 보인단 말이야.... 그런 거 이제 그만해.. 민영아...그런 마음 개나 줘버리란 말이다!!!! 제발............... ” 무표정하게 수영을 바라본다. 개나 줘 버리라고?? 지나가는 개새끼한테나 가볍게 던져 줄 수 있는 것이 남들이 보는 내 사랑이라는 감정인 건가?? 사랑이라..................... 이제 증오 밖에 남아 있지 않는 허물어진 쓰레기 같은 감정. 거칠게 녀석의 손아귀에서 손을 빼내고는 눈을 감아버린다. “ 하아............ ” 깊은 적막 속에 수영의 한숨소리. 담배가 그립다. 따스한 수영의 손가락이 내 머리카락을 어루만진다. 녀석의 손길은 항상 차가웠었지.... 그 손길이 좋았지만 말이다. 이상하게도 녀석과 함께 했던 모든 것들이 꿈처럼 흐릿하게만 느껴진다. 같이 학교를 다니고 녀석을 사랑하며 비밀로 붙여두며 끙끙거리던 지난 세월들이 말이야.... 마치 백일몽의 꿈처럼 아련하다. 가슴은 썩어 들어가 증오만이 남았다. “ 미안하다.......... ” 한숨만을 일관하던 수영이 쥐어짜듯 중얼거린다. 눈을 뜨고 수영이 녀석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울 듯 슬픈 녀석의 얼굴을 이해 할 수없다. “ ..........담배나 줘봐- ” 입을 열자마자 엉망으로 쉬어 버린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깔깔한 목의 아픔에 인상이 저절로 찌푸려진다. 수영이 녀석이 이맛살이 보기 흉할 정도로 일그러지며 버럭 소리를 지른다. “ 미친놈!!! 환자새끼가 무슨 담배냐 담배가!!!! ” 일그러진 수영이 녀석이 볼만하다. 피식 웃음을 흘리며 몸을 힘겹게 일으키려 하지만 가슴 부위로 강력하게 전해져 오는 아픔에 인상을 찌푸려지며 다시 몸을 눕힌다. 연신 붉어진 얼굴로 화를 내는 수영이 한참을 나에게 설교조로 말을 쏟아 부을 듯 입을 여는 순간 녀석의 등 뒤로 문이 열린다. 열려진 문사이로 삐죽삐죽한 회색 머리 모양의 진연준이 거만한 자세로 걸어 들어온다. 진연준이 들어오는 광경을 바라보던 수영이 녀석이 황당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며 묻는다. “ 너 저 새끼랑은 어떻게 아는 사이냐?? 오라는 민준이 새낀 안 오고 저 새낀 뭐라고 자꾸 문병을 오고 지랄인 거냐고!!! 씨발!!! ”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수영이 녀석을 무표정하게 바라보다 녀석의 등 뒤에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서 있는 진연준을 바라본다. 한참을 키득거리던 녀석이 수영을 한번 쳐다보고는 눈 꼬리를 아래로 내려뜨리며 싱긋 웃으며 나를 향해 다가 와 다시 웃어 보인다. 알 수 없는 녀석이다. 나를 향했던 녀석의 고백이 머릿속을 울린다. “ 꽤 오래 뻗어 있더라- 몇 번 찾아 왔었는데 뻗어 누워 있는 모습만 보고 항상 되돌아갔었다고- 저 새낀 무슨 장승처럼 지키고 서서 호들갑 떨고 말이야- ” 진연준의 눈이 수영이 녀석으로 향한다. 얼굴이 붉어진 채 입이 댓발 나와 툴툴거리고 있는 수영이 녀석을 힐끔 보고 다시 진연준에게 시선이 향하자 씨익- 웃어 보이는 쳐진 눈 꼬리를 짜증스럽게 바라본다. 한참을 징그러운 웃음을 흘리던 진연준이 수영이 녀석 옆에 있는 빈 의자 하나를 끌어 내 옆 가까이 대고 걸터앉는다. 침대에 팔을 대고 턱을 받힌 자세로 나를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진연준의 쳐진 눈을 무표정하게 바라보고 있자 이제는 진연준 뒤에 어정쩡하게 서 있는 자세가 되어 버린 수영이 화가 난 표정으로 소리친다. “ 야-!!! 그거 내가 앉을 의자란 말이야!! ” 내가 꽤 오랜 시간 정신을 잃은 채 병원에 있었는지 여러 번 투닥 거린 느낌을 주는 수영의 말에 진연준을 바라보자 진연준은 그저 생글 생글 웃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연다. “ 킥....... 이민영...... 한참을 죽은 듯이 누워 있는 네 녀석을 바라보면서 생각했어...........이 감정들은.......죄책감이란 걸까? ” 눈 꼬리가 밑으로 쳐진다. 긴 속눈썹을 내리깔고 웃는 진연준의 얼굴 표정은 미묘한 느낌이라 말없이 그저 바라만 보고 있다. 진연준의 등 뒤로 얼굴이 붉어진 채 황당한 얼굴로 입을 벌린 채 얼빠진 모양으로 서 있는 수영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터진다. 마치 나의 웃는 모습을 처음 봤다는 듯 굳어버린 얼굴로 한참을 내 얼굴을 바라보던 진연준의 목소리가 차갑게 울려 퍼진다. “ 오랜만인데- 그 웃는 표정............. ” 오랜만이라.....?? 진연준에 대한 기억은 없다. 어린 시절 함께 했었다고 말하던 진연준의 말이 떠오른다. 기억나지 않는다. 내 모든 기억들은 녀석으로 가득 차 버려서 다른 그 무엇도 의미 있게 다가 온 적이 없을 만큼 나는 미치도록 그 녀석에게 빠져 있었다. 과거도.... 현재도...........미래에도................. 꿈꾸는 듯한 얼굴로 진연준이 무언가를 떠올리는 듯 턱을 괸 채 눈을 내리 감는다. 기다란 속눈썹이 녀석의 회색 눈동자를 가리 운다. “ 어느 하나 관심 가는 구석이 없는 얼굴 이였는데- 유일하게 내 눈에 뜨이는 게 있었지.......... 그 얼굴.......... 그 웃는 얼굴 말이야.... 가슴이 설레 였어....... 킥... 네 녀석 옆에 서면 떨리는 마음으로 말을 걸고는 했지.. 네 녀석은 항상 웃는 낯으로 나를 바라보며 상냥하게 대꾸 해주고는 했어- 지금과는 다르게 나근나근한 녀석 이였는데 말이야.... ” 무표정하게 그런 진연준을 바라본다. 나근나근 이라... 울지 못해 웃었다. 사랑 받고 싶어 웃었다. 가식 적으로 웃어 주는 기계처럼 표정 짓는 나의 모습을 바라보며 제발 한번만 날 사랑해주기를 빌고 또 빌며 웃었다. 내 슬픔에 녀석이 반했다는 건지 알 수 없다. “ 담배나 줘- ” 쉬어 갈라지는 목소리로 진연준을 향해 말한다. 담배가 미치도록 그립다. 피식 웃어 버리며 진연준이 담배 한가치를 꺼내 내 입에 물려준다. 등 뒤로 가르랑거리는 수영이 녀석이 보인다. “ 미친 새끼들!!!!! 아픈 새끼가 담배는 무슨 담배야!!! 뒈질려고 환장을 했구만!!! ” 수영의 외침이 들리는지 마는지 진연준은 지포라이터 뚜껑을 열고 불을 붙여 주는 친절까지 베풀어 준다. 회색 인조적인 눈동자가 반짝인다. 담배를 깊게 빨아들이자 심장 부근이 지끈거린다. 대체 갈비뼈는 몇 대나 갈라진 걸까? 담배 연기를 내 품으며 생각해 본다. 수영이 녀석은 벌게진 얼굴로 병실 안을 몇 번이고 뺑뺑 돌다가 결국 분에 겨운 표정으로 병실을 빠져 나간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히고 수영의 퇴장과 동시에 진연준의 손이 어느새 내 머리카락을 향한다. 피하려고 움찔거리며 눈을 감아버리자 피식 웃으며 내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 귀 뒤로 넘기며 녀석이 속삭인다. “ 내 마음을 받아달라는 말 따윈 하지 않겠어. 난 널 증오하거든- 지금이라도 당장 죽여 버리고 싶을 만큼.......... ” 눈 꼬리를 내리며 웃음을 흘리던 진연준의 회색 눈이 차갑게 빛난다. 말없이 녀석을 그저 바라본다. 쉬어 터져 잘 흐르지 않은 목소리를 억지로 끌어 올려 진연준을 향해 속삭인다. “ 그렇다면 지금 당장 내 목을 졸라- ” 담배 연기를 내 품으며 녀석을 바라본다. 나의 머리카락을 넘기던 진연준의 손길이 굳어 버린다. 한참을 내 얼굴을 미묘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진연준이 곧 익숙한 웃음을 흘리며 상냥하게 대꾸한다. “ 넌 내 손에 죽으면 안돼 거든- 이왕이면 끝까지 질기게 살아줬으면 좋겠다는 게 내 바람이야- ” 쳐진 눈 꼬리가 징그럽게 내려간다. 녀석의 등 뒤로 새하얀 커튼이 바람결을 따라 춤춘다. 내 입에서 품어져 나오는 담배연기 역시 바람결에 아지랑이를 만들며 흩어져 내린다. 바다의 모습이 떠오른다. 흩어져 내리는 담배 연기 속에 흰 거품을 내며 일렁이는 파도가 그려진다. 담배를 빨며 필터를 잘근 잘근 씹는다. “ 바다.......... ” 꿈꾸는 듯이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린다. 역시나 무표정하던 진연준이 갑작스레 씨익- 웃으며 팔목에 꽂혀 있는 링겔 주사를 빼내더니 등을 보이며 몸을 굽힌다. 한참을 알 수 없는 녀석의 행동에 멍하니 녀석의 등만을 바라보고 있다. 요지부동한 자세로 몸을 굽힌 채 등을 보이고 있던 진연준이 채근하듯 말한다. “ 업혀- ” 멍하니 넓기보다 조금은 가녀린 녀석의 등을 멍하니 바라보며 묻는다. “ 뭐냐....?? ” “ 바다 가자- ” 담배를 입에 물고 물끄러미 녀석의 등을 바라보다 어색하게 몸을 일으킨다. 가슴이 찌르르하고 아파 오지만 억지로 몸을 일으켜 팔로 녀석의 목을 감는다. 녀석의 부드럽고 따스한 목의 감촉과 등의 체온이 의외로 포근한 느낌이다. 묘하다 이런 기분은... 녀석의 어깨에 턱을 괴고 담배 필터를 잘근 잘근 씹는다. 나의 몸을 업은 채 병실 문을 열자 복도 반대 방향 쪽에 자리 잡힌 의자에 쭈그린 자세로 앉아 있던 수영이 녀석이 놀란 눈으로 몸을 벌떡 일으키며 소리친다. “ 지금 뭐하는 거냐??? 갈비 뼈 갈라진 새끼 부둥켜 업고!!! 돌은 거냐?? ” 수영의 외침이 마치 메아리처럼 멀리 느껴 질 정도로 순식간에 병원 복도를 가로질러 뛰고 있다. 진하게 풍겨 오는 진연준의 향수 냄새가 묘하게 반감을 샀지만 삐죽삐죽한 녀석의 회색 머리카락이 밤송이 같은 느낌이라 손으로 몇 번 만져 보다가 담배를 빨아들인다. 혼란스러운 기분에 빠져든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담배 연기를 내품으며 눈을 감는다. 진연준이 뛸 때마다 가슴에 통증도 오지만 그 기분이 그닥 나쁘지도 않다. 뭐가 그리 즐거운 건지 어깨를 들썩이며 키킥 거리는 진연준의 웃음소리에 나 역시 웃음이 흐른다. 복도를 지나치던 의사와 간호사가 당황한 얼굴로 쫓아오는 것이 보인다. 목에 한 기브스 덕택에 뒤 돌아 보기 힘들지만 등 뒤로 소리를 꽥꽥 지르며 따라 달려오는 수영의 발소리도 들려온다. 담배 필터를 잘근잘근 씹으며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웃음이 흐른다. 얼마나 난 이 웃음이라는 것을 잊고 있었을까? 녀석의 얼굴이 떠오른다. 아프고 아파서.... 떨리고.... 떨리는.... 내 사랑을.... 닿을 수도 만질 수도 없는 한낮 담배연기처럼 흩어져 버리는 녀석을... 얼마나 부둥켜안으려고 눈물 흘렸던 가를. 지금 이 사소한 순간에도 나는 녀석을 그리며 처절하게 피 흘리는 심장으로 짐승처럼 아프게 울부짖고 있음을. 진연준의 목을 더욱 끌어안는다. 진연준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진다. 삐삑- 병원 주차장 쪽으로 미친 듯이 달려가던 진연준이 주머니에서 꺼낸 무언가를 누르자 스포츠카 문이 위로 열린다. 옆자리에 나를 급하게 앉히고는 운전석에 앉은 진연준이 급하게 시동을 걸며 차를 출발시킨다. 줄줄이 햄처럼 병원 문에서 빠져 나오는 수영이를 비롯한 간호사와 병원 경비의 모습이 멀어져 간다. 눈을 감고 담배를 깊게 빨아들인다. 후- 하고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눈을 뜬다. 눈을 뜬 순간에 찰나로 자동차 옆으로 스쳐지나가는 얼굴에 몸을 벌떡 일으킨다. 바람 곁에 산산이 흩어지는 담배연기... 슬로우 모션처럼 녀석의 검은 눈동자를 바라보며 스쳐 지나간다. 왜인지 모르게 눈물이 흐를 것만 같다. 점처럼 멀어져 가는 녀석을 떠올리는 사람을 바라보며 고개를 숙인다. 어깨에 꽃다발을 들쳐 얹은 채 담배를 물고 나른한 자세로 멀어져 가는 차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녀석 일리 없다. 그럴리 없다. 눈물이 한쪽 뺨을 타고 툭- 떨어져 내린다. 녀석 일리 없다........... “ 이민영....... 뒤 돌아 보자마....... ” 진연준의 목소리가 슬프게 울린다. 아무런 대꾸 없이 마냥 뒤를 바라본다. 점이 되어 버린 그 형체를 한 없이 물끄러미 바라보며... 끼이이익- 쾅!!!!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차가서고 몸이 쏠려 앞 유리에 머리를 박으려는 찰라 핸들을 내리치던 진연준이 내 목을 움켜 껴안는다. “ 씨발..............뒤돌아보지 말랬잖아!!!! ” 눈을 감는다. 진연준에게 안긴 자세로 너무 멀리 있어 점으로 보이는 형체를 바라본다. 눈물이 다른 한쪽 뺨을 타고 흐른다. 下 가느다랗게 떨리는 진연준의 어깨를 느낀다. 힘없이 손을 올려 진연준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진다. 뾰족하게 손바닥에 와 닿는 진연준의 머리카락 감촉에 눈을 감는다. 감겨져 가는 시야 앞으로 저 멀리 점처럼 보이던 사람의 형체는 눈물에 가려져 흐릿하게 존재조차 보이지 않는다. 마치 공기 중에 흩어져 버린 먼지처럼... “ 죽여 버린다- 이민영- ” “ .................. ” 물기 어린 진연준의 목소리에 나는 말없이 그저 녀석의 체온을 빼앗듯 안겨 있을 뿐이다. “ 씨발..... 난 미쳐 버릴지도 몰라....... 아파서... 너무나 아파서.... 미쳐 버릴지도 몰라.. 이민영... ” “ 그럼........죽여.........날 죽여 버려라- ” 녀석에게 힘없이 안긴 채 속삭인다. 미치지 말고 죽여 버려라. 미친놈은 나 하나로 족하니깐. 시니컬한 웃음을 흘린다. 손가락 사이로 끼워진 담뱃재가 툭- 하고 자동차 시트에 떨어져 내린다. 담배 끝을 타고 흐르는 담배 연기 사이로 형체조차 보이지 않는 먼 곳을 바라본다. 끝없이....... 메마른 가슴을 안고... 진연준의 어깨 떨림이 미미해지고 녀석이 나의 어깨를 잡고 떼어 놓듯 자신의 몸에서 떨어뜨리며 급하게 차를 출발 시킨다. 녀석의 옆얼굴을 그저 물끄러미 바라 볼 뿐이다. 차가 움직이자 바람이 불어 진연준의 머리카락을 훑는다. 짧은 회색 머리카락이 바람결에 따라 흐트러졌다 다시 제자리를 찾는다. 담배를 입에 물고 피식 웃음을 흘린다. 불쌍한 새끼................ 넌 아니야........ 죽어도 넌 아니라고..... 물기 젖은 녀석의 뺨이 햇빛을 받아 빛난다. 마치 또 다른 나를 바라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진연준의 가슴도 나처럼 찢어 뭉그러졌을까?? 사랑이라는 이름의 고통으로 말이야... 찢어져 피가 흐르고 고름이 흐르는.... 뭉그러져 버린 그 심장을 껴안고 내 옆에 있는 걸까?? 가슴속 한구석이 이상하게 아릿해 온다. 바람이 불어와 머리카락이 이리저리 휘날린다. 자동차 시트에 몸을 기대며 담배를 입에 문다. 가슴 부근의 뻐근한 통증에 인상이 조금 찌푸려진다. 차는 한 없이 도로를 타고 달린다. 진연준과 나는 그저 침묵한 채 차안에 몸을 맡긴다. 바람이 불어와 녀석과 나의 머리카락을 휘젓는다. 눈을 감아 아득히 떠오르는 바다의 풍경을 그린다. 이상하게도 심장이 두근거린다. 바다.... 흐릿하게.... 흑백화면처럼 스치고 지나가는 무언가가 떠오르지만 심장이 발작하듯 아파와 눈을 부릅뜬다. 그래.... 어머니..... 미친 어머니를 부둥켜안고 울던 어린시절의 내 모습. 할머니 손에 이끌려 미쳐 버린 어머니를 데리고 바다에 갔더랬지. 가슴이 지끈거린다. 식은땀을 흘리며 파노라마처럼 돌아가는 영상을 지워버리듯 고개를 흔든다. 때 구정 물 줄줄 흐르던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있던 모습이 흐릿해져간다. 기억하고 싶지 않아............... 머리카락을 감싸지며 고개를 흔들다 건조한 웃음이 흐른다. 병신............. 고개를 들자 눈앞의 풍경을 바라본다. 먹구름이 가득 낀 하늘은 금방이라도 빗방울이 떨어져 내릴 것만 같다. 어둑해진 주변 풍경에 쓴 웃음이 흐른다. 내가 바라보고 싶었던 바다는 파란 하늘에 말이야... 솜사탕 같이 부드러운 느낌의 하얀 구름이 눈앞에 펼쳐져 하늘을 경계로 깊고 깊은 바다가 자리 잡고 있는 풍경. 새하얀 파도가 일렁이며 내 몸을 휩쓸 듯이 모래사장 위로 춤추는 모습. 역시나- 나란 놈에겐 말이야- 이런 것이 맞을 지도 모르지. 자조 섞인 웃음을 흘리며 진연준을 바라본다. 항상 내내 웃음을 흘려 거부감을 주던 녀석의 얼굴은 묘하게 굳어 있다. 한참을 달리던 도로 옆으로 짠 내음과 함께 어둑해진 잿빛 하늘을 경계로 마치 죽어버린 듯한 검푸른 바다의 풍경이 눈에 비친다. 진연준의 눈 꼬리가 내려간다. 바다를 향해 돌진 하듯 커브를 틀고 모래사장 쪽으로 돌진한다. 끼이익- 멈추어지는 차타이어 사이로 모래가 튀듯 옆으로 퍼진다. 차문을 열고 빠른 걸음걸이로 걸어 들어가는 진연준의 등을 멍 하니 바라본다. 거세진 바람이 진연준의 머리카락을 훑고 지나간다. 먹구름이 잔뜩 낀 구름을 올려다본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 질것만 같다. 다시 시선을 돌려 진연준의 등을 바라본다. 마치 아까전의 상황처럼 점처럼 멀어져 가는 녀석의 등을 바라보며 쓴 웃음이 흐른다. 뭐 하자는 거냐?? 응?? 진연준... 지금 뭐하자는 거냐고- 무표정하게 그런 진연준을 바라본다. 점처럼 멀어져 가는 녀석의 발이 물에 잠기는 듯하더니 점점 바다 속으로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다. 미친놈!!! 벌떡 몸을 일으키자 가슴 부근이 지끈거린다.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차문을 열고 모래사장을 뒤뚱거리며 걸어간다. 검푸른 바다는 거친 파도를 일으키며 마치 진연준을 먹어버리기라도 하듯 녀석의 몸을 삼킨다. “ 씹새끼-!!!! ” 차가운 바다를 느끼며 발을 담그고 첨벙거리며 녀석을 따라 들어간다. 종아리에서 허벅지... 그리고 가슴 깊이 까지 잠기며 커다란 파도가 내 위를 덮친다. 으스러진 갈비뼈가 부러지기라도 한 듯이 굉장한 아픔에 숨을 내 쉰다. 물의 차가움에 입술이 새파랗게 물들어 간다. “ 윽- 씨발!!! ” 좀더 가까이.. 좀더 가까이 손을 뻗친다. 머리끝까지 잠기어 버리는 진연준의 모습이 보인다. 이 미친 새끼!!! 나보다 더 돌은 새끼!!! 이 병신 같은 새끼야!!! 좀더 녀석에게 손을 뻗어 녀석을 껴안음과 동시에 파도가 머리 위를 덮친다. 눈을 감는다. 가슴을 쑤시는 듯한 아픔과 함께 바다에 몸이 잠긴다. 숨이 차오르며 극한의 추위에 몸이 떨린다. 난 수영 따윈 못한단 말이다!!!!! 같이 죽기라도 하자는 거냐?? 비실비실 웃음이 흐른다. 왜 나 같은 새끼 때문에 이러는 거냐!! 왜!!! 네 녀석이 어떻게 하든 난 오직 그 새끼 하나일 뿐인데. 채민준 그 새끼가 아니면 이 미친 심장이 받아들이질 못해... 난 철저하게 그 새끼만을 사랑하는 심장만 가지고 살아왔단 말이다. 바다 속에 잠겨 죽어 버리는 건가? 진연준과 함께 물고기 밥이 되어 떠오른다는 생각을 하니 바다 속에서도 허탈함에 웃음이 흐른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는데... 내 마지막은 채민준... 그 새끼를 바라보아야 한다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말이다. 그 녀석의 모든 것.. 하나하나... 다 내 눈 속에 담아두고 죽어야 한단 말이다!!! 씨발.......... 감기어진 눈을 억지로 뜬다. 온통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검은 바다 속 풍경..... 내 품에 안기어 눈을 감고 있던 진연준이 눈을 뜬다. 소름 돋도록 징그러운 녀석의 회색 눈동자가 보임과 동시에 녀석의 입술이 덥치듯 내 입술 위를 내리 누른다. 입이 열리고 미친 듯이 쏟아 붙는 거칠은 녀석의 입맞춤에 녀석의 혀를 물어 버린다. 멀컹한 혀의 감촉과 함께 피어오르는 비릿함. 찢어진 녀석의 혀에서 흐르는 피가 바다 속에 조금 번져 흐른다. 무표정하게 변해버린 녀석의 눈 꼬리가 어느덧 밑으로 내려간다. 기묘한 표정으로 웃음을 흘리던 녀석이 내 목에 채워진 기브스를 풀러내고는 내 몸을 껴안고 바다위로 솟구친다. 갑자기 공급되는 산소에 입을 벌리며 헉헉거리는 내 위로 다시 파도가 내리친다. 헤엄쳐 나가는 진연준의 품에 목을 끌어안긴 채 힘없이 축- 쳐진 몸을 내맡긴다. 머릿속이 어지럽다. 파노라마처럼 스치고 지나가는 기억 속에 어릴 적 채민준의 얼굴이 떠오른다. 이상하리 만큼 가슴이 두근거린다. 녀석의 처음 본 그 순간... 녀석의 바라보며 뛰어대던 내 심장... 그 모든 기억들이 스치듯 지나친다. 하아... 이민영.... 난 미치도록 채민준을 사랑하고 있다... 그래서 그 새낄 그 사랑만큼 미치도록 증오한다. 진연준... 너 역시 그 만큼 날 증오하는가? 헉헉거리며 거친 숨결을 토해내며 모레사장으로 질질 끌어내는 진연준의 등을 바라보며 생각 한다. 빗방울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모래사장을 적신다. 점점 굵어지는 빗방울을 맞으며 축 늘어져 있는 내 몸 위로 비틀거리며 진연준이 올라타 앉는다. “ 이민영.......................... ” 차갑게 울려 퍼지는 진연준의 목소리가 기묘하다. “ 이 민영...........!!! ” “ .................. ” 녀석의 손가락이 내 목을 움켜잡는다. “ 넌 아주 미친 새끼야- ” “ .............. ” “ 넌 아주 미친 새끼야 이민영..... 그 미친 새끼 덕택에 나 역시 돌아 버렸지- 제정상이 아니거든 지금-!! 키킥- 널 정말 부셔 버릴 거다-” “ 부셔버려- ” 진연준을 바라보며 차갑게 외친다. 부셔 버려- 날 죽여버려라- 대신 채민준 앞에서 말이야... 아니- 내가 채민준 그 자식을 죽여 버린 이후에 말이야.... 빗물에 젖은 회색 머리카락 끝으로 맺힌 빗방울이 툭- 하고 이마에 떨어져 내린다. 기묘한 웃음을 흘리는 진연준의 쳐진 눈 꼬리를 바라본다. “ 이민영...... 넌 어린시절부터 지금까지 항상 잔인한 새끼였다!!! 기억 하고있어?? 난 똑똑히 기억 하고 있다구.... ” “ .................. ” “ 어느날 말이야... 이 날을 되돌아보며 후회 하는 날이 오겠지..이민영...바다에서 날 건져내려고 뛰어든 그 순간을 말이야....키킥- 그리고 지금 네가 내뱉은 한마디를 말이야....... ” “ ......... 그럴까- ? ” 입술 끝을 비틀며 웃어 준다. 굵은 빗방울이 진연준과 나를 적신다. 이글거리는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던 진연준의 입술 끝 역시 비틀린다. 피에 적셔진 진연준 입술이 붉다. “ 기대 해도 좋아- 크큭- ” “ 미친놈............ ” 너나 나나 채민준 그 자식이나 미친놈이다. 사랑에 ........... 미친놈들이다.... 거세진 빗방울을 맞으며 진연준이 나를 끌어안는다. 녀석의 따스한 체온이 심장에 와 닿는다. 따스하나 느껴지지 않는다. 멎어 버린 듯 죽어버린 나의 심장은 사랑이라는 독에 썩어 버렸다. 진연준의 품에 안기어 몸이 들어 올려지고 녀석이 비를 맞으며 나를 안고 차가 세워져 있는 쪽으로 걸어간다. 빗방울이 녀석과 나를 적신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갈 때마다 비에 적셔진 진연준의 모습에서 내 모습을 발견한다. 사랑. 그 지독하리만큼의 잔인한 이름에 뭉개져 버린 심장을 껴안고 진연준과 나는 빗속을 헤맨다. 비에 젖어 버린 시트에 나를 내려놓자 스포츠카 위 덮개가 올라간다. 덮개 위로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만이 주위를 맴돈다. 눈을 감자 빗소리만이 주위를 적신다. 따스한 진연준의 손길이 어깨에 와 닿는 동시에 따스한 무언가 머리위로 올려진다. 감은 눈을 뜨고 녀석의 인조적인 회색 눈동자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눈 꼬리를 내리며 붉은 피 칠갑을 한 입술이 예쁜 곡선을 그으며 해맑게 웃음을 보인다. 소름이 돋도록 그 해맑은 웃음에서 기괴함을 느낀다. 녀석의 웃음속 가면 안의 얼굴은 어떤 모습일까? 내 머리위로 씌여진 녀석의 겉옷 때문에 덜덜 떨리던 몸이 조금은 노곤해지는 듯도 하다. 물기를 뚝뚝 떨어뜨리는 진연준의 머리카락을 바라본다. 마치 착시 현상처럼 채민준 그 녀석의 어린 시절 얼굴이 떠오른다. 물기에 젖어 내리던 그 검은 머리카락....... 고개를 가로저으며 몸을 돌려 버린다. 온몸이 미친 듯이 쑤셔 온다. 아랫입술을 꽉 깨물며 차 창 밖을 바라본다. 차는 한 없이 비를 맞으며 도로를 질주한다. 진연준이 히터를 틀은 덕택에 몸에 떨림과 추위는 멈추었지만 습기가 차 뿌예져 차창 밖의 풍경이 흐릿하다. 손바닥으로 대충 습기를 닦아 낸다. 빗방울이 매달리고 옆으로 쓸리듯 흘러내린다. 빗물로 가득 젖은 창밖의 풍경은 짙은 회색빛이다. 무표정하게 스치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기묘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몸을 맞대고 한 우산을 쓰고 즐거운 표정으로 걸어 가는 사람들.... 평범한 일상의 단편적인 모습이 왜 이리도 나에게는 기묘하게 보이는지 모르겠다. 결코 나는 할 수 없는 것들.... 잡을 수 없는 이야기...... 눈을 감는다. * * * 따스하다. 그 따스한 것에 얼굴을 박으며 속삭인다. “ 민준아......... ” 가슴이 벅차올라 숨을 쉴 수가 없다. 무겁게 차오르는 심장이 뜨겁다. 온 몸이 공기 중을 부유하는 먼지처럼 부유하는 기분이다. 추위를 느끼며 몸을 사린다. 따스한 쪽으로 얼굴을 박고 절박하게 속삭인다. “ 민준아......... 민준아.....민....준......... ” 타오르는 열기 속에 갈망하듯 지껄인다. 따뜻한 곳에 뺨을 부비며 눈물을 흘린다. 춥다... 너무나도 춥다... 민준아.. 너무나도 춥다... “ 난.......... 채민준이 아니야.................씨발 새끼야.. ” 눈을 뜬다. 흐릿한 시야 사이로 등이 보인다. 머릿속이 어지럽다. 몸을 떨며 녀석의 등에 파고든다. “ 내 등에 업혀 다른 놈 생각하지 말란 말이다......... 참을 수 없으니깐 ” 흔들리는 음성에 한참을 멍해진 정신으로 진연준을 떠올린다. 그렇구나... 진연준... 너였구나.. 난 네 말 맞다나 참 잔혹한 새끼일지도 몰라. 채민준 그 녀석이 나에게 그러했듯. 나 역시 지금 네 녀석에게 얼마만큼의 상처를 주고 있는 걸까? 흐릿한 시야로 주위를 훑는다. 환한 불빛에 소독약 냄새. 당황스런 표정으로 나와 녀석을 쳐다보는 시선. 빗물과 섞인 진연준의 향수 냄새를 맡으며 눈을 감는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 마다 몸이 흔들린다. 끼이익-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알싸한 꽃 냄새와 섞인 독한 담배향기가 느껴진다. 이상한 느낌에 눈을 뜬다. 어둑하게 불이 꺼진 개인 병실 안은 열려진 문 사이를 타고 조금의 빛이 들어온다. 그 빛을 타고 나의 시선은 점점 깊은 어둠 속 빛이 들어오지 않는 창가로 향한다. 어둠 속에서 붉은 담배 불 끝만이 눈에 뜨인다. 검은 사람의 형체를 한 그림자를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다. 사람의 형체를 한 그림자가 점점 앞으로 다가오며 빛을 따라 신고 있는 신발에서 점점 위로 형체를 들어낸다. 한쪽은 어둠으로 가려져 반만 빛으로 형체를 들어낸 반쪽의 날카로운 턱 선과 그 검은 눈동자에 심장이 내려앉는다. 담배의 붉은 끝을 타고 희뿌연 담배연기에... 어지러운 머릿속 때문인지 점점 시야가 흐릿해져만 간다. 미친 듯이 쿵쾅거리는 심장에서 피가 흩뿌려지는 듯 어지럽다. 붉은 반쪽 입술 끝이 비틀리듯 위로 치켜 올라간다. 그럴리 ..없잖아.... 네 녀석이 그럴리 없잖아..... 아까 본 그 녀석이 네 녀석일리 없잖아.. 네 녀석이 이 곳에 올리 없잖아... 씨발... 눈물이 흐른다. “ 재미 좋아 보이는데- ? ” 차갑도록 건조한 저음이 내 심장을 할퀸다. “ 나 다음에는 진연준인가-? ” 다시 입술 끝이 비틀린다. 담배 연기 속에 녀석의 얼굴이 비틀리듯 보인다. “ ......결국........................... ” 들리지 않는다. 녀석의 붉은 입술로 무슨 말인가를 속삭인다. 들리지 않는다. 눈물이 흐른다. 머릿속은 점점 어지러워진다. 흐릿해져 가는 시야사이로 눈물이 차오른다. 진연준의 굳어진 어깨 위로 이마를 맞대며 몸이 흘러내린다... * * * 회색 담배연기. 담배를 입에 물고 눈을 가늘게 뜬 채 위를 올려다보고 있는 녀석. 바람이 불어 녀석의 검고 짧은 머리카락을 휘날린다. 짧은 머리 덕택에 뚜렷한 이목구비가 더 선이 굵고 뚜렷하게 눈에 들어 온다. 그 검은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미친 듯이 뛰어대는 심장박동 때문에 제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희고 기다란 녀석의 손가락 사이로 끼어진 담배 연기가 녀석의 얼굴을 흐릿하게 만든다. 무표정하게 그런 녀석을 바라본다. 교실에서 수업을 하던 수학 선생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창 밖 운동장 한가운데 유유히 담배를 피우며 서 있는 녀석을 바라보고 소리 지른다. 「채민준!!! 저 미친새끼!!!」 손에 들고 있던 방망이를 손바닥으로 툭툭 치며 수학선생이 쓰고 있던 안경을 치켜 올리고 창문에 고개를 내밀어 소리를 지른다. 「채민준 이 개새끼야!!!! 안 올라와!!!! 수업 시간에 지금 뭐 하는 거야!! 너 올라오면 죽을 줄 알아 이 새끼야!!!」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멍 하니 그 모습을 바라본다. 햇빛이 산산이 녀석을 내리쬐고 있다. 녀석이 입고 있는 교복의 하얀 셔츠가 눈부시게 빛이 난다. 운동장을 채우고 있던 벚꽃 잎이 휘날리고 녀석의 셔츠와 교복 마이, 헐겁게 채워진 교복 타이가 벚꽃 잎과 함께 춤추듯 휘날리고 있다. 녀석의 붉은 입술이 한쪽 끝을 치켜 올리며 올라간다. 그 입술 곡선을 바라보며 한 손으로 녀석의 옆자리 빈 책상을 어루만진다. 차갑기 만한 그 감촉을... 끼리릭- 책상의자가 교실 바닥을 긁는 듣기 싫은 소리와 함께 몸을 서서히 일으킨다. 한걸음 한걸음 가방을 어깨에 대충 짊어지고 교실 문을 열자 그제 서야 창문 밖으로 향하던 수학 선생의 얼굴이 돌아가고 나를 향해 소리를 지른다. 「이민영 넌 또 뭐야!!! 제 자리에 안 앉아??」 「저 녀석이 놀아 달라는데- 놀아 주고 올 게요-」 고개를 돌려 선생에게 그렇게 내뱉으며 피식 웃어 버린다. 화가 잔뜩 난 수학선생이 붉어진 얼굴로 나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오고 교실 문을 닫아 버린 채 성큼성큼 걷던 걸음이 뜀박질로 바뀌어 간다. 복도를 지나 계단을 거쳐 내려가며 나의 심장 박동도 점점 더 거세진다. 건물 밖을 나와 운동장 쪽으로 뛰어가며 내 주위를 감싸는 흙먼지에 기침을 몇 번 하며 녀석의 앞에 다다른다. 「헉 헉 헉....」 무릎에 손을 집고 거친 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든다. 햇빛에 역광 하여 비치는 녀석의 얼굴이 너무나도 아름다워 숨이 멎는다. 붉은 입술 끝이 비틀려 올라가며 녀석의 큼지막한 담배를 끼운 손이 내 머리카락 위로 얹혀 진다. 「씨발- 문자를 보내지- 학교도 안 나온 새끼가 운동장까지 마중은 왜 나오냐-?」 녀석이 피식 웃는다. 입술 끝으로 핏물이 조금 베어 있다. 눈 꼬리가 붓처럼 그려진 곡선으로 미묘하게 위로 치켜 올라간다. 붉은 입술 끝을 비틀며 녀석의 손가락이 내 머리카락의 애무하듯이 어루만진다.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리고 있다. 이러다 터져 버릴지도 모른다고 이 미친 심장이. 더군다나 미칠 듯이 뛰고 있는 내 심장을 아는지 마는지 녀석이 거칠게 내 손을 낚아챈다. 놀라서 고개를 들자 등 뒤로 선생의 고함 소리가 들려온다. 녀석과 손을 맞잡고 운동장을 가로지르며 뛴다. 흙먼지와 바람결에 나부끼는 벚꽃이 아스라이 녀석의 커다란 등을 감추듯이 휘날린다. 너무나도 아득해져 멀어 질것만 같아 손을 뻗는다. 씨발- 잡을 수가 없어. 교문 앞에 세워져 있는 바이크에 올라타 녀석의 허리를 껴안은 나의 손가락이 떨려온다. 쿵쾅... 쿵쾅 ... 심장이 미친 듯이 뛰어 오르고 있다. 녀석의 등에 맞댄 나의 심장박동을 아는지 모르는지 바람에 미친 듯이 휘날리는 녀석의 머리카락에서 나는 향에 숨이 멎을 것만 같다. 「씨발- 또 싸웠냐-? 네 새끼가 얻어맞기도 하네-?」 불어오는 바람소리 때문에 소리를 지르며 그렇게 외친다. 아무런 대꾸도 없다. 잔뜩 화가 난다. 어떤 새끼야... 이 괴물 같은 녀석을 때려 입술이 터지게 만든 녀석은 본 적이 없다. 「$%^%^&..........」 바람결에 흘려 나오는 녀석의 저음의 목소리가 마치 환청같이 들려온다. 눈을 감고 크게 소리친다. 「뭐라고- ??」 마치 환청 이였다는 듯이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는다. 한숨을 내 쉬며 녀석의 등에 얼굴을 파묻으며 속삭인다. - 사랑해........... - 결국......................... 눈을 뜬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유화를 칠해 놓은 듯 번들거리는 그 검은 눈을 가득 채운 물기를. 온 몸에 가득한 열기로 거칠은 숨결을 토한다. 손을 뻗어 그것을 어루만진다. 날카로운 턱선. 어두움 속에 창백하게 빛나는 하얀 얼굴. 물기를 머금은 그 눈동자에서 떨어져 나오는 물방울이 희미하게 뜨여진 나의 눈에 떨어진다. 마치 내가 눈물을 흘리듯이 흘러내린다. 뜨거운 숨결을 토해내며 차갑게 몸을 떤다. 머리 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한 장면이 이상하게도 비슷한 느낌이다. 녀석을 향한 내 비밀을 털어 놓던 그 날의 한 장면이... 이마 위로 떨어져 내린 뜨거운 그 것의 감촉과 동일하다. 내 눈물과 섞여 흘린 그 뜨거운 감촉이 내 심장을 아프게 한다. “ 하아... 하아... 하아... ” 붉은 입술이 속삭인다. “ %%^&.......... ” 붉은 입술이 마치 분열된 한 장면처럼 일그러지고 환영처럼 아스라해 진다. 눈을 감고 숨을 헐떡인다. 애써 눈을 뜬다. 아스라이 사라진 신기루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뿐이다. 거칠게 웃음을 흘리며 무겁게만 느껴지는 눈꺼풀이 내려간다. 채민준..........채민준......... 채민준............. 「야 채민준!!! 야 채민준!!!」 수영이 녀석의 하이톤 목소리가 시끄럽게 울려 퍼진다. 「야- 이민영- 채민준 저 새끼가 옆 학교 쭉빵이를 차 버렸다는 거 아니냐- 미친놈!!! 며칠 만났다고- 그 죽여주는 앨 차냐?」 「............」 입술 끝을 비틀며 녀석이 담배를 입에 문다. 녀석의 붉은 입술을 말없이 바라본다. 놀이터 그네에 올라타 그네를 움직이며 투덜거리는 수영이 녀석이 맞은편 미끄럼틀 쪽에 몸을 기대고 무표정하게 담배 불을 붙이는 녀석을 바라보며 쨍알거린다. 「저 따위 새끼가 뭐가 좋다고 여자들이 따라 붙나 몰라?? 말이 많아서 재밌기를 해? 그렇다고 매너라도 있어-? 참내- 성질 한번 개 같지- 가끔 보면 미친놈 같다니깐.....볼 거라고는 집안이 좀 사는 거랑 반반한 얼굴 하나 아니냐?」 수영이 녀석의 말에 피식 웃음을 흘리다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검은 눈에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다. 어둠 속 가득 놀이터 구석에 있는 가로등만이 주위를 밝혀 주고 있다. 어두운 미끄럼틀 쪽으로 희미하게 오렌지 빛으로 녀석의 얼굴을 비추고 조각같이 곧게 뻗은 녀석의 코 옆 반쪽 얼굴로 음영이 진다. 긴 속눈썹을 내리깔자 녀석의 검은 눈동자가 가려진다. 담배를 입에 문 붉은 입술을 목마르듯이 바라보며 침을 삼킨다. 「야-!! 이민영 너도 한 마디만 해 봐라-!! 저 새끼의 어느 점이 그렇게 매력이 있냐 이 말이야?」 물끄러미 녀석을 바라본다. 담배 끝이 붉게 타들어 간다. 길게 가리워진 속눈썹이 올라가고 녀석의 검은 눈동자가 다시 들어난다. 뚫어지게 나를 바라보는 녀석의 시선에 얼굴이 붉어짐을 느끼며 고개를 황급하게 돌리며 소리친다. 「글쎄...........그딴게 어딨냐? 같은 거 달린 새끼들끼리 매력을 느끼면 그게 정상이냐-?」 갈라지며 황급하게 나오는 목소리는 떨리고 있다. 그래. 난 제정상이 아닐지도 모른다. 고개를 돌려 올려진 시선 위로 오렌지 빛 가로등이 어둠을 밝히고 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어 오른다. 숨이 벅차올라 급하게 숨을 몰아 내쉰다. 등 뒤로 수영이 녀석이 타고 있는 그네가 움직이는 쇠와 쇠의 마찰음만이 정적을 감싸고 있다. 주먹을 움켜쥐고 무표정하게 표정을 꾸민 뒤에 고개를 돌리자 수영이 녀석이 킬킬거리며 말한다. 「하긴- 그건 그렇다- 그런 건.. 좀 역겹지 않냐? 어떻게 같은 거 달려 있는 새끼를 보고 꼴리냐? 생각만으로도 토할 거 같다-」 녀석은 그저 무표정하게 몸을 기댄 채 담배 연기를 그 붉은 입술을 열어 흘려내고 있다. 긴속눈썹에 가리워진 녀석의 검은 눈동자에서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다. 「이 새끼들이랑 놀다 보면 내 입만 아프다니깐- 그런 구질한 이야기는 그만하고, 야- 이민영- 너네 집에서 술판 좀 벌여도 되냐?」 「안돼.」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안 된다고 대답하자 짜증스럽게 수영이 녀석이 그네에서 몸을 일으키며 소리친다. 「썅!!! 치사하게 이럴래?? 너희 집 좀 놀러가 보는 게 소원이다- 씨발 너네 집에 무슨 금은보화라도 숨겨뒀냐? 친구 새끼네 집에 좀 놀러가 보겠다는데 왜 매번 안된다고 거절이야? 정말 금은보화라도 고이 모셔뒀냐?」 「가자-」 기댄 몸을 일으키며 낮은 녀석의 저음이 들려온다. 바지 주머니에 손을 끼운 채 물고 있던 담배를 튕기듯 바닥에 떨어트리고 수영이 녀석의 어깨에 손을 얹는다. 수영이 녀석이 입을 삐죽거리며 몸을 돌리며 다시 중얼거린다. 「이 놀이터에서 5분 거리가 저 새끼네 집인데- 좀 놀러가 보면 어디 덧나냐?? 저 새끼 혼자 산다면서- 눈치 볼 어른도 없는데 왜 안된다는 거야- 정말 저럴땐 저 새끼한테 서운하단 말이야...」 무표정하게 그런 수영이 녀석을 바라본다. 수영이 녀석의 어깨 위로 올라간 녀석의 손을 바라보며 인상이 찌푸려진다. 저 손 좀 어떻게 떼어내고 싶다는 생각만이 간절하다. 「야 이민영- 그래 오늘은 여기서 찢어지자- 씹새- 나중에 너네 집 놀러 꼭 간다!! 오늘은 그냥 가주는 거야-」 얼굴을 찌푸리며 투덜거리는 수영이 녀석이 녀석의 손에 이끌려 발걸음을 돌리고 있다. 멀어지는 녀석들의 등을 바라보며 주저앉듯 몸을 웅크리며 앉는다. 바닥에 희미하게 붉은 빛을 띄우고 있는 녀석이 버린 담배를 주워 든다. 떨리는 손으로 당배를 잡아들고 한참을 바라본다. 녀석의 붉은 입술 사이로 물려져 있던 담배. 담배를 들어 입에 문다. 깊게 담배를 빨아들이며 녀석을 떠올린다. 흥분하여 발기 된 듯 앞부분이 저릿하다.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아 더욱 깊게 담배를 빨아들인다. 녀석이 버린 담배꽁초를 입에 물고 녀석을 떠올리며 발기 하는 나 자신을 느낀다. 역겨운 내 자신을. 태어나 처음으로 담배를 피운 느낌은 씁쓸하고 역겨운 내 자신과 함께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릴 녀석을 느끼는 것 이였다. 담배를 입에 물고 몸을 일으킨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갈 때 마다 감옥같이 느껴지는 집이 보인다. 미친 내 어미가 있는 그 집. 외할머니와 생활하던 집에서 나와 처음 여자를. 아니 나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 집에 들어 왔을 때 어머니는 환하게 웃음을 흘렸었다. 미쳐서 히죽거리던 웃음이 아니라 마치 제정상인 사람처럼 흘리던 그 웃음을 잊을수가 없어서 잠시 행복했던 것도 같다. 그러기를 며칠을 지났을까 피범벅이 되어 겁탈당해 들어온 어머니를 바라보며 피 눈물을 흘렸던 것이...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미쳐 버린 내 어미를. 불쌍한 그 여자를.... 비틀거리며 열쇠로 집 문을 따고 들어간다. 어둠 속으로 가득한 그 공간이 내가 문을 여는 것과 동시에 빛이 파고든다. 그 빛 속으로 거실 한 가운데 아랫도리 밑으로 피를 줄줄 흘리며 몸을 덜덜 떨고 있는 여자가 보인다. 하얗게 말라비틀어진 여자의 입술을 바라보며 급박하게 심장박동이 거세진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여자의 몸을 일으킨다. 「대... 대체.. 뭐야!!! 장난해?? 지금 나랑 장난해?? 씨발 왜 이래!! 왜 이러냐고!!!」 눈물이 흐른다. 대체.... 이게 뭐야.... 이게 뭐냐고.....!! 여자의 어깨를 잡고 흔들자 힘없는 몸뚱이는 내 손에 힘없이 흔들린다. 그녀의 차갑게 식어 가는 손을 잡고 고개를 돌려 주위를 훑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주머니를 뒤적거려 핸드폰을 꺼내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번호를 누른다. 머릿속 가득 녀석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신호음이 들리고 곧 이어 전화 받는 녀석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기억나지 않지만 무수한 말을 내 뱉고 있다. 살려달라고.... 살려달라고 울부짖은 것 같다. 나의 어머니를 부여잡고 눈물 흘린다. 이 불쌍한 여자를 얼마나 원망 했던가... 이 불쌍한 여자를 얼마나 증오했던가.... 핸드폰을 잡고 하소연 한다. 무슨 말인가를 쏟아 내고 있는데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점점 싸늘해 가는 내 어머니의 체온을 느끼며 눈물을 흘려가며 녀석의 이름을 부른 것 이외에는.. - 채민준... 민준아... 응급차가 와서 내 어머니를 데리고 사라질 때 까지 나는 녀석의 이름을 부르고 또 부른다. 끊어져 버린 핸드폰을 부여잡고 악에 받혀 소리를 지르며 내 어미의 피로 젖어든 얼굴이 피 눈물처럼 흐른다. 피로 얼룩진 거실을 한 가운데 몸을 눕힌다. 등 뒤로 전해져 오는 차가운 한기에 몸을 떨며 눈을 감는다. 이상하지-? 왜 나는 그 녀석을 찾았을까? 그 순간 속에서도 나는 녀석에게 그렇게나 목말라 있었던 걸까? 전화를 걸어도 나를 찾아오지 않은 그런 녀석인데 말이야... 헛웃음을 흘리며 누워 있다. 덜덜 한기로 떨려와 이와 이가 부딪히는 소리가 조용한 공간에 간간히 들려 오고 있다. 팔로 나 자신을 끌어 안 듯 안아 올리며 눈을 뜬다. 녀석이다. 담배 중독자처럼 언제나 입에 물고 있는 녀석의 담배 연기가 공간을 가득 메운다. 눈을 감고 다시 뜬다. 녀석 일리 없다. 이건 환영이라고 생각하며 다시 눈을 비벼 본다. 손에 묻어 있는 여자의 피로 눈 주변에 이물질이 묻어나는 느낌이 들지만 지금은 내 앞에 서 있는 신기루에 제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이상하지? 나른한 표정으로 한참을 누워 있는 나를 앉은 자세로 쳐다보던 녀석의 신기루의 붉은 입술이 비틀어 올라간다. 몸을 벌떡 일으켜 기어가듯 신기루 쪽으로 다가가 끌어안는다. 고가의 명품 옷이 붉은 핏물로 번져 나가는 것을 바라보며, 내 몸의 미약한 사람의 체온이 그것이 신기루가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녀석의 짙푸른 머리카락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린다. 끈적한 피가 녀석의 머리카락을 적신다. 「민준아................」 이상하게도 녀석이 나를 밀치지 않는다. 무표정한 인형 같은 표정으로 달빛이 비추어 오는 베란다 쪽으로 공허하게 시선을 향한 채 그 커다란 몸이 경직되어 내 품에 안기어 있다. 달빛에 비추어 푸르스름한 빛을 띄우며 붉은 입 꼬리 만을 비튼 채 담배를 물고 있다. 「채민준..... 난 .. 두렵다.....」 녀석을 더욱 거세게 끌어안는다. 「네 녀석이... 마치 신기루처럼.... 이렇게 내 품에 안기어 있다가 사라져 버릴까봐.....」 「.................」 「더 이상 내 소중한 것이....... 사라져 버릴까봐..... 두렵다....」 「사라지지 않아. 난 여기 존재 한다-」 마치 혼자 속삭이는 듯한 녀석의 저음에 심장이 떨려온다. 입에 물려져 있던 담배를 손가락으로 잡은 자세를 하자 내 머리를 껴안는 자세가 되어 버린다. 녀석은 그저 담배를 손가락으로 잡은 채 달빛을 바라보고 있다. 녀석의 향기에 온 몸이 흥분으로 심장처럼 떨려오고 있다. 녀석을 거세게 껴안으며 눈물 흘린다. 사죄 하는 마음으로..... 이런 더러운 나란 녀석이... 널 사랑해서 미안하다는 사죄 하는 마음으로.. 이 역겨운 내 마음이 바스러지길 바라며... 녀석을 껴안고 눈물 흘린다. 내 어머니의 피로 녀석의 뺨이 옷이 적셔져 내려가 달빛에 비춘다. 녀석의 붉은 내 어미의 피를 닮은 입술 끝이 처연하게 올라가 있다. 담배에 그저 손을 댄 채 녀석은 그렇게 나를 끌어안고 있다... 달빛 속에서... 그래. 그 날 이후 어머니는 정신병원에 들어갔지..... 녀석의 품에 처음으로 안기었던 17살의 어느 기억의 한 페이지가 마치 오래된 영화가 재생되듯이 펼쳐진다. 눈물이 차오른다. 시간을 되돌려 가기 전의 기억이다. 그 아릿한 기억에 눈물이 차오른다. 손을 뻗자 무엇인가 잡혀 온다. 그것을 잡고 끌어 안는다. 따스한 체온.... 바스라지게 그것을 끌어 안고 눈물을 흘린다. 끌어 오르는 온 몸의 열기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꿈과 현실을 오가듯 어지럽다. 모든 것이 바스러져 사라져 버릴 것만 같다. 녀석이 그립다. 채민준... 네 녀석이... 미치도록 그립다..... 미치도록................... 그런 네 녀석을 증오한다.. - 이민영..................... 이 미친 자식아... 떨려오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눈을 뜬다. 회색 인조적인 눈동자. 온통 엉망이 된 얼굴로 피를 흘리며 쏟아 내는 녀석의 목소리가 애처롭다. - 난...........채민준 그 씹새가 아닌데 말이야... 킥- 녀석의 입술 끝으로 핏물이 흘러나온다. - 이러면.......... 널 증오 할 수밖에 없잖냐..... 눈을 감는다. 슬픈 듯한 회색 눈동자를 마지막으로 시야에 담으며... 울 듯한 얼굴의 꼬마 녀석의 어린 모습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 * * “ 어때? 같은 병원에 지내고 있는 소감이-? ” 부어 오른 한쪽 볼이 우스꽝스러운 진연준이 레몬 맛 사탕을 입안에 집어넣고 쪽쪽거리며 묻는다. 다리에 데고 있던 석고를 뜯었지만 목발을 짚은 채 눈 꼬리를 내리며 베시시 웃음을 흘리는 녀석의 표정이 짜증스러워 인상을 조금 찌푸려 보인다. 한참을 사경을 해매고 깨어나 보니 쳐진 눈 꼬리는 시퍼런 멍으로 마치 팬더 같은 인상으로 오늘처럼 사탕을 문채 웃어 보이던 진연준이 기억나 피식 웃음이 흐른다. “ 이봐- 웃지 말고 대답하라고- ” 사탕을 쪽쪽 빨며 녀석이 팔로 툭- 어깨 쪽을 친다. 대충 갈비뼈도 제대로 자리를 잡고 붙은 듯 그다지 아픔은 전해져 오지 않는다. 우스꽝스러운 몰골로 피 떡이 된 녀석의 몰골을 떠올리며 공기 빠지는 소리로 하- 하고 한마디를 내뱉던 그 날의 상황이 다시 떠오른다. 진연준의 등 뒤로 팔짱을 낀 채 뾰로퉁한 표정으로 서 있던 수영이 녀석의 모습까지 덤으로 떠오르자니 웃기기도 하다. “ 허파 터진 새끼처럼 처 웃지 말고- 대답하라고- 킥- ” 자기 병실 드나들 듯이 찾아오는 진연준에게 질리고 만다. 대체 어느 녀석이 허파 터진 새끼마냥 처 웃고 있는지 의문이다. 틈만 나면 이상한 웃음을 흘리고 있는 주제에 말이다. 사경을 헤매던 기억 속에 울 듯한 목소리로 피를 흘리던 진연준이 떠오른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누군가에게 얻어맞은 듯한 진연준의 화려한 몰골도 많이 안정되어 있었다. 어느새 여름을 훌쩍 넘어 가을을 향해 치닫고 있지만 아직까지 병실가득 더위가 느껴진다. 길게 혼수상태에 빠져 일어나 진연준과 수영이 녀석에게 맞부딪히며 보낸 병실에서의 시간은 금방 지나가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게도 빠르게... 지금까지 와도 너무나도 다르게 평화롭게.. 마치 내 마음의 아픔이 고요함으로 뒤바뀐 듯이. 그 작은 고요함 속에서 내 마음은 들끓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메마른 사랑으로 독이 올라 곪아가고 있었다. 내 정신도. 이 심장이란 놈도. 이 사랑이라는 이름의 감정도. “ 귀찮게 달라붙지 말고 나가- ” 진연준은 그저 눈 꼬리를 내리며 징글징글한 웃음을 흘리며 사탕을 다시 입에 문다. “ 나 말고 어떤 새끼라도 기다리냐? ” 심장이 쿵- 내려앉는다. 조용히 시선을 돌려 진연준을 바라본다. 이죽거리는 웃음기 어린 녀석의 표정이 짜증나게도 역겨워져서 고개를 돌려 버리자 우악스러운 손이 갑작스레 나의 턱을 잡고 돌린다. 돌려진 고개로 눈 꼬리를 내려 웃고 있지만 사탕을 물고 있는 입술은 일직선을 타고 굳게 다물어져 있다. 인조적인 진연준의 회색 눈동자를 바라본다. 무슨 생각을 담고 있는 걸까? 저 눈은 볼 때마다 두려워진다. 진연준의 눈에서 피어오르는 격한 눈빛이, 그 감정들이 두려워만 진다. 진연준의 손을 짜증스럽게 쳐내며 시선을 창밖으로 돌린다. 한참의 긴 정적으로 묘한 공기가 흐른다. “ 민영- 야 이민영- ” 하이 톤의 목소리가 소란스럽게 들려오며 문이 열린다. 검은색으로 바뀐 머리를 찰랑이며 등장하는 수영이 녀석이 환한 웃는 표정이 창의 유리표면으로 비추어 진다. 수영이 녀석은 잔뜩 들뜬 표정으로 의자를 끌어내 앉으며 소란스럽게 소리친다. “ 야- 임마!!! 너 퇴원해도 된다더라- 아까 의사선생이랑 대화 좀 나눠 봤는데- 크큭- 그나저나 너희 외할머니도 참 대단하신 분이다- 외손주가 아파 병원에 누워 있는데 한번도 오시지를 않네- 병원비만 통장으로 보내시고- 너 퇴원하는데 네 외할머니 얼굴한번 못 보고 이 병원을 뜨는 구나- 떠- ” “ ............... ” “ 씨발........ ” 사탕을 입에서 빼내며 진연준이 내뱉는 말에 수영이 녀석이 눈을 부릅뜨며 소리 지른다. “ 이 새낀 왜 맨날 여기 와 있어-? 언제부터 내 친구랑 네 새끼랑 친했다고 여기 와서 박혀 있냐-? 내가 오면 좀 꺼져 줄 정도의 눈치도 없냐-? ” 수영이 녀석의 말이 들리는지 안 들리는지 욕설을 내 뱉으며 들고 있던 목발을 병실 바닥에 내 팽겨 친다. 콰쾅- 거리는 소리와 함께 목발을 바닥에 내동댕이친 진연준이 눈 꼬리를 내리며 목발을 집어 들고 선반 쪽 꽃병을 향해 던져 버린다. 산산히 깨져가는 유리의 소리를 들으며 공허하게 그 모양을 바라본다. 앙상하게 시들어버린 꽃 더미가 바닥으로 유리 조각과 함께 쏟아져 내린다. 진연준은 입에서 사탕을 빼내며 짜증난다는 식의 목소리로 소리치는 것이 들려온다. “ 씨발- 나도 오늘 퇴원 할 거다-!! ” “ 저 새끼 뭐야-? 완전 또라이 아니야? 진짜 어의 상실이네- ” 수영이 녀석이 황당하다는 식으로 입을 벌린 채 말을 한다. 무표정하게 그런 진연준의 행동을 바라 보다 다시 시선을 돌려 떨어져 내린 앙상한 꽃잎을 바라본다. 바닥에 바스라져 떨어져 내린 마른 꽃잎들과 함께 날카로운 유리조각이 날카로운 면을 보이며 햇빛을 받아 번쩍이고 있다. 아까 전 만 해도 아픈 척 하며 발을 움직이지도 못했던 녀석이 쌩쌩하게 성큼성큼 어느 하나 아파 보이지 않은 발걸음으로 병실 문을 열고 나가 버린다. 나의 시선은 다시 말라비틀어진 꽃잎으로 꽂힌다. 주먹을 그러쥐고 그 모양을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다. 내가 사경을 해맨 날 녀석이 병실에 놓고 간 꽃인데.......... 씹...... 짜증이 치민다. “ 저 새끼 정말 미친놈 이야- 씨발 왜 내 주위에는 다 저 딴 새끼들만 가득이냐고!!! 줄창 여기 와서 잡일만 하는구만-” 툴툴거리던 수영이 녀석이 빗자루를 가지고와 말라비틀어진 꽃과 유리조각을 향해 비질을 하려고 몸을 숙이는 모습이 보인다. 마치 머릿속의 핀트 하나가 나간 것처럼 몸이 튕기듯 일어나 진다. 손목 쪽이 따끔한 느낌이 들긴 하지만 내 눈에는 오직 말라비틀어진 꽃송이를 향하는 빗자루 밖에 보이지 않는다. 말리 비틀어진 꽃송이를 손으로 움켜쥔다. 빗자루를 들어 올리던 수영이 녀석의 손길이 멈춘다. 뚝뚝- 버석거리는 소리와 함께 말라비틀어진 꽃이 바스라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심장이 조각조각 나뉘는 기분이 들고 만다. 손가락 사이로 가루처럼 바스라져 떨어져 내리는 감촉에 망연히 그 모양을 바라보고 있다. 살 속을 파고드는 유리조각의 아픔 때문이리라... 이 망연한 상실감은. 핏물과 함께 바스러져 떨어져 내리는 갈색 빛 죽어버린 꽃잎 조각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다. 그저 잡으려고 했던 것뿐 이였다. 아무도 그것을 건드리지 못하게 오직 나만의 것을 잡으려고 한 것 뿐 이였다............. “ 야- 이 병신아 무슨 짓이야!!!! ” 수영이 녀석의 당황스러움이 역력히 묻어나는 목소리로 황금하게 나의 손을 낚아챈다. 손바닥 안으로 박혀 있는 유리조각이 햇빛을 받아 핏물과 함께 빛을 발한다. 바스라져 버린 꽃 조각이 손가락 사이로 흩어져 내린다. “ 으악- 이걸 어쩌냐-? 간호사 누님을 불러 올 테니깐 기다려라- 아후- 내가 저 새끼 때문에 10년은 더 바짝 꼴아버렸다니깐- 젠장할- ” 빗자루를 바닥에 내팽긴 채 수영이 녀석이 병실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려오고 곧이어 당황스러운 녀석의 목소리가 들린다. “ 어-? 너..... 이제성?? ” 죽어버린 갈색 빛 꽃 잎 조각을 움켜진다. 유리 조각이 살점에 깊게 파고든다. 손목에 아슬아슬하게 바늘이 빠져 핏물이 스며들고 있다. “ 아- ” 어색한 목소리로 대꾸를 하는 맑은 목소리에 소름이 돋아 온다. 몸을 경직시킨 채 주먹에 힘을 쥐자 온 몸이 부들부들 떨려온다. “ 아- 그래 문병 온 거냐?? 이야기들 하고 있어- ” 수영이 녀석이 장난스럽게 어깨를 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주먹을 움켜 쥔 채 멍하니 바닥에 점점이 떨어져 내리는 핏방울을 무표정하게 바라보고 있다. “ 아... 그 손은... 괜찮은 거야? ” 어색한 목소리로 미약하게 떨려오는 이제성의 목소리가 심기를 건드려 기분이 유쾌하지 못하다. 머릿속이 혼란스럽게 엉키어 나가고 있다. 마치 처음 그 녀석을 보았을 때처럼 내 눈 앞에 다가와 몸을 숙여 내 얼굴과 마주 바라보는 커다란 녀석의 눈망울이 역겨움에 떨려 온다. “ 괘... 괜찮........ ” 이제성의 손이 내 주먹에 맞닿으려 한다. “ 건드리지마........ 눈깔을 파버리기 전에... ” 눈을 치켜뜨고 이제성을 바라보며 차갑게 외친다. 입술 끝이 치켜 올라간다. 그래. 아주 잔인하게 네 새끼 눈깔을 파버릴 수도 있지. 지금 당장이 아니라 벌써 내 머릿속은 녀석의 눈을 파버리고 눈알 없이 피를 흘리는 네 새끼의 모습이 그려져 웃음이 흐를 정도니깐 말이야..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휘둥그렇게 눈을 뜬 녀석이 얼굴이 벌게진 채로 마주 보고 서 있다가 급하게 손을 치우며 몸을 일으킨다. 커다랗고 남자다운 이제성의 덩치 치고는 굉장히 예쁘장한 얼굴이 일그러진 모습이 꽤나 돌아버릴 것 같은 기분을 조금이나마 유쾌하게 만들어 논다. " 저...... 어떠나 하고 와 봤어... 좀 늦게 문병 온 편인가? “ 어색하게 베시시 웃음을 흘리는 이제성의 붉은 얼굴을 말없이 올려다본다. 이제성이 조심스럽게 카라 꽃 한 다발을 나에게 내민다. 점점 파고드는 유리의 감촉이 온 몸에 소름을 돋게 만든다. 핏물은 점점이 더 굵은 물방울 모양을 만들어 가며 바닥을 향해 떨어져 내린다. “ 그다지 올 필요까진 없었을 텐데- ? ” “ 아.... 저........ ” 고개를 푹 숙이는 이제성의 긴 속눈썹이 불안하게 떨려 온다. 눈을 깜박이며 머리카락을 긁적이던 이제성이 내밀고 있던 꽃다발을 선반 위에 조심스레 올려놓으며 창 밖을 향해 시선을 돌리고 중얼거리는 식의 목소리로 작게 말을 잇는다. “ 처음에는.... 실은........ 정말 너의 웃는 얼굴을 본 이후로, 한 참을 그 얼굴을 지켜 주기 위해서라도- 내가 그러면 안되겠다 싶었어 ” “ ................. ” “ 하지만..민영아.... 아니 이민영, 너는 내 마음을 가지고 장난을 쳤어!! 넌 날 기만 했다고- 넌.... 날 좋아한다고 거짓말을 했어. 하지만..... 넌...... 실은 날 증오 하고 있잖아- ” 괴로운 듯이 얼굴을 찌푸리며 녀석이 시선을 돌려 나를 바라본다. 주먹을 움켜 쥔 채 떨려 오는 이제성의 어깨를 무표정하게 바라본다. 나처럼 온 몸을 떨고 있다. 귀찮고 짜증스럽다. “ 증오라......증오라기보다도, 죽여 버리고 싶다- 이 정도일까-? ” 쇳소리처럼 울려 퍼지는 나의 목소리에 이제성은 아랫입술을 깨어 물며 다시 고개를 돌려 창 밖을 바라보며 말을 잇는다. “ 벌써- 가을이구나....... 낙엽이 떨어지려고 하네- ” “ 여기 온 이유가 뭐냐-? ” 짜증스럽게 몸을 일으켜 침대 위로 걸터앉는다. 담배가 미치도록 그립다. 손바닥을 펴 손바닥 깊이 박혀 있는 유리조각과 가루처럼 부셔진 꽃 조각을 바라본다. 핏물이 진득하게 베어 갈색 빛 꽃 조각이 선홍빛으로 물들어 있다. “ 그냥..... 문병이야. ” “ .................... ” “ 굳이 이유라고 꼽자면...지금 와서 너에게 이런 말 하기는 뭣하지만... 해주고 싶은 말도 있고..... ” “ ........... ” “ 아직까지.. 민준이를 생각하고 있다면, 이제 그만 좀 놔줘라- ” 이제성이 창밖을 향해 있던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다. “ ............. ” “ 네가 정말 민준이를 좋아한다면, 아니 사랑하고 있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놓아 줄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 ” “ 킥- 개소리- ” 이제성을 비웃듯 바라본다. 어디서 본 엿 같은 신파극 대사를 지금 날리고 있는 거냐? “ 나는 네가 걱정 되서 하는 말이야.. ” 헛웃음이 흐른다. 유리 조각이 박히지 않은 한 손으로 이마를 짚는다. 머릿속 가득 생각들이 헝클어져 간다. 저 착한 척 가식적인 목소리에 역겨움이 치민다. 눈을 크게 뜨고 이제성을 바라본다. 맑은 눈망울이 슬프게 반짝이고 있다. 이제성의 연분홍빛 입술이 길게 한숨을 내 뱉는다. “ 민영아............. ” “ ................. ” “ 민준이와 나...... 이제 더 이상 친구관계 아니다. ” 머릿속 가득 그 녀석이 떠오른다. 달빛 속에서 바스러지게 끌어안던 녀석의 미약한 체온이. 담배 연기처럼 아스라하게 멀어져 가는 녀석의 얼굴이. 신기루처럼, 내 손에 잡혀 있는 바스라져 버린 꽃 조각 마냥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고 있다. 녀석과의 추억이. 이 내 사랑이. 피 눈물 흘리며 녀석을 그리던 그 나날들이. 손가락 사이로 흘러 내려간다. 이 사랑이라는 감정이 바스라져 썩어 버려, 가슴속을 싸지르는 독처럼 썩어 간다. “ 이만 갈게- 몸 조리 잘해라......... ” 고개를 숙이며 몸을 돌리는 이제성의 등을 멍 하니 바라본다. 붉어진 얼굴로 죄책감에 가득한 이제성의 얼굴이 너무나도 아파 보여서 그것이 더욱 짜증을 유발한다. 이제성의 고급 구두가 바닥에 널려 있는 말라비틀어진 꽃을 밟는다. 유리 조각이 으스러지는 소리와 꽃이 으스러지는 소리가 귓가를 파고든다. 온몸이 경기를 일으키듯 떨리어 오고 있다. 이제성의 발에 으스러지는 꽃을 바라보며 주먹을 그러쥔다. 문이 열리고 닫히며 이제성의 뒷모습이 사라져 간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꽃다발을 잡고 찢어발기듯 움켜잡는다. 새하얀 카라 꽃 잎 가득 핏물로 적셔져 나간다. “ 아아아아아아악-!!!!!!!!!!!!!!!!!!!! ” 소리를 내 지른다. 얼굴을 감싸며 미친 듯이 소리를 내지른다. 손바닥에 박혀 있는 유리조각이 날카롭게 뺨을 스친다. “ 민영아- 민영아- 야 이 새끼야- 왜 그래?? ” 수영이 내 어깨를 잡고 흔든다. 수영이 녀석 등 뒤로 따라 들어온 간호사 한명이 당황한 낯으로 허둥지둥 밖으로 달려 나간다. “ 아아아아아아아악-!!!!!!!!!!!!!!!!!!!! ” “ 야- 임마-!! 이민영!! 민영아!!! ” “ 아아아아악....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 비명이 발작적인 웃음소리로 뒤바뀌어 간다. “ 하....하하.....하하하하하.... ” 주먹을 움켜쥔다. 심장이란 놈이 엉망으로 찢어 발겨진다. 카라꽃 잎들이 나뒹군다. 버석거리던 꽃잎은 핏물로 축축이 젖어 바닥을 타고 핏물과 섞여 떨어져 내린다. 놀란 얼굴의 수영이 녀석이 나의 팔을 부여잡는다.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들어 고개를 돌려 수영이 녀석을 바라본다. 뜨거운 눈물 한 방울이 한쪽 뺨을 타고 흐른다. 웃음이 흐른다. 잡을 수 없는 너는 고작 신기루였을 뿐 이였다. 내 손에 닿으면 바스라져 버리는 죽어 버린 꽃처럼. 내 손가락 사이로 그러잡으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너는 나에게 있어서 ‘허상’에 불과 했다. 그 허상을 찢어 발겨 주리라..... 네 목을 물어 버리리라.... 문이 열리고 간호사의 뒤로 흰 가운을 입은 의사가 심각한 표정으로 들어오다 무표정한 나의 표정에 당황한 낯 색으로 간호사를 추궁하기 시작한다. 무표정하게 그 모양을 바라보며 문 쪽을 바라본다. 간호사를 추궁하던 의사가 나에게 다가와 손바닥에 박혀 있는 유리를 뽑아 내며 치료를 하는 동안 나의 시선은 오직 문 쪽으로 향해 있다. 의사의 손에 붕대가 감기고, 병실 문을 닫고 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는 동안에도 나의 시선은 오직 닫혀져 있는 문으로 향한다. 수영이 녀석이 말없이 나의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을 준다. 녀석의 따스한 체온이 전해져오지만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다. 아무것도.... 내 심장은 이미 죽어 버렸으니깐. 이미 난 죽은 녀석이나 다름없으니깐 말이다. 입술 끝을 비틀며 무표정 하게 앞만 바라보고 있다. 이제성.... 네가 붙들고 있는 자식은 말이지. 나와 같이 허상을 붙들고 심장이 썩어 버린 새끼다. 나보다도 더 더러운 새끼라고..... 자신의 형을 사랑한 미치광이 녀석일 뿐이다. 넌 그저 형을 대신할 껍데기일 뿐이지. 그런데 말이야... 난 그 껍데기라도 되어 보고 싶었거든. 그 자식의 품에 한번만 안겨. 그 자식의 그 눈에 나를 담아 주기를... 그 심장 안에 형을 대신할 놈이라도 되고 싶었어. 그 껍데기라도 말이지. 그래서 말인데.... 아무래도 난 널 죽여 버려야겠다. 그 새끼가 네 새낄 통해 형을 못 보도록. 내가 아니면 아무도 안 되거든. 그게 혹여 죽어버린 새끼라도 말이야. 그 새끼의 ‘허상’을 찢어 발겨 주겠다고... 그러기 위해선...... 웃음이 흐른다. 뜨거운 눈물을 동반한 이 시니컬한 웃음을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수영이 녀석의 표정 또한 기묘하다. 미쳐가고 있다. 나는. 눈물이 뜨겁게 나의 뺨을 적셔 내린다. * * * 늦은 저녁, 병원 옥상 위의 풍경은 화려하다. 병원 근처의 도심은 흔한 드라마의 대사들처럼 보석을 흩뿌려 놓은 것처럼 반짝이고 있다. 핏기 하나 없이 건조한 입술로 담배를 베어 물고 주위 풍경을 바라본다. 옆쪽에 마주 서서 거리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던 진연준이 얼굴을 가까이 데며 물고 있던 담배 끝으로 담배 끝을 맞댄다. 붉은 불꽃이 하얀 담배 끝을 좀먹듯이 붉게 타오른다. 담배를 깊게 빨아올린다. 녀석의 환영이 머릿속을 휘돈다. 제법 쌀쌀해진 바람이 불어와 길게 늘어진 앞 머리카락이 흔들린다. 흔들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천연 색의 빛깔이 어지러이 수 놓여 있는 도심의 한 공간을 흐릿하게 만들어 버린다. “ 진연준............ ” 담배 필터를 씹어 내리며 입을 연다. 쇳소리처럼 껄끄럽게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마치 다른 사람의 목소리 같다. 지금 나오고 있는 이 목소리가 나의 것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의 것인지 모호해 져가는 느낌이다. “ 왜.....? ” 회색 눈동자가 묘하게 빛나 온다. “ 너................. 나랑 잘래?? ” 타들어 가는 진연준의 담뱃재가 툭- 하고 바닥으로 떨어져 내린다. 기묘한 얼굴로 진연준이 눈 꼬리를 내리며 고개를 돌린다. “ 다시 말해 볼래-? 킥- 내 귀가 좀 고장 난거 같거든- ” 귀를 쑤시는 시늉을 하며 진연준이 고개를 돌린다. 인조적인 회색 눈동자가 묘한 빛으로 빛나 오고 있다. 입술 끝을 비틀며 담배를 깊게 빨아 들였다 연기를 내뱉으며 속삭인다. “ 나랑 섹스하겠냐고- ” 낯선 목소리로 진연준을 향해 속삭인다. 진연준의 묘하게 당황하는 표정을 바라보며 나의 입술 끝은 더욱 비틀어 올라간다. * * * “ 큭.......... 섹스라......... ” 진연준의 눈 꼬리가 더욱 아래로 내려간다. 한쪽 손으로 한쪽 얼굴을 가리듯 받힌 자세로 나를 쏘아 본다. 회색 눈동자는 초점 없이 흔들리고 있다. “ 그래- 내 몸을 파는 대신에 조건이 하나 있다- ” 입술을 비틀며 그렇게 말한다. 머릿속이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혼란스럽고 어지럽게 돌아가고 있다. “ 조건이라.... ” 흔들리는 회색 눈동자를 무표정하게 바라보며 심장이 지끈거린다. 내 심장에 박힌 칼 때문에 말이다. 네 심장에도 칼을 박아야 할 것만 같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를 사랑한다고 말해 준 너에게 말이야. “ 죽여줘- 채민준.......이제성........... 그 두 새끼들... ” 차갑게 굳은 얼굴로 무표정하게 말한다. 진연준의 몸이 덜덜 떨려 오는 것을 느낀다. 바들바들 떨려오는 어깨로 주먹을 꽈악- 그러지는 진연준을 바라본다. “ 너 정도의 돈과 권력정도라면 할 수 있잖아- 안 그래? 채민준 그 새끼는 좀 어렵겠지만 말이야......” 웃음이 흐른다. 건조하게 바싹 말라 있는 입술 끝을 비틀어 웃으며 아려오는 심장의 아픔을 잊으려는 듯 담배를 입에 문다. 채민준.....그 녀석의 향이 떠오르고 녀석의 모습이 떠오른다. 씨발- 좆까먹을 담배- 담배를 그러쥔다. 예전 녀석에게 지져진 이마의 상처가 지끈거리는 느낌이다. 손바닥을 뜨겁게 아려 온다. “ 씹새끼........ ” 이가 갈리는 소리와 함께 진연준의 욕설이 나직하게 들려온다. 달빛이 진연준의 회색 머리카락을 차갑게 빛나 오르게 한다. 하얗게 상기된 얼굴이 달빛에 의해 더욱더 차가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입술을 깨물며 몸을 떨던 진연준의 주먹이 바람을 가르며 내 얼굴에 꽂힌다. 무기력하게 주먹을 맞고 돌아간 고개를 들어 진연준을 쳐다본다. 입 안이 아릿하지만 그 아픔조차 이상하리 만큼 나 자신의 아픔같이 느껴지지가 않아 무표정한 얼굴로 진연준을 마주 본다. 숨을 거듭 몰아 내쉬며 주변을 한바퀴 빙빙 돌다가 벽 쪽으로 다가가 주먹을 내뻗는다. 콰쾅-!! 진연준의 핏줄기가 벽을 적셔 내려간다. 한참을 주먹을 벽에 꽂은 채 흐르는 피를 들썩이는 어깨로 바라보던 진연준이 급하게 몸을 돌리며 나에게 성큼성큼 다가와 어깨를 잡는다. 내가 입고 있는 환자복으로 녀석의 피가 스며든다. 스며들어가는 핏방울을 눈살을 찌푸리며 바라보다 다시 진연준을 마주본다. 알 수 없는 감정으로 뒤섞여 있는 녀석의 눈동자는 차갑고 음습한 시멘트빛깔처럼 어둡게 침체되어 가고 있다. “ 킥- 너란 새끼는 역시.........이거 고맙다고 해야 하나-? ” 비쭉 웃음을 흘리며 진연준이 속삭이듯 입을 연다. 눈 꼬리를 내리며 알 수 없는 묘한 표정으로 웃음을 흘리는 진연준의 손이 내 턱을 움켜잡는다. “ 기대해- 아주 둘 다 조져 줄게- 난 말이야- 고마울 따름이야- 이렇게 미끼를 던져준 너에게 아주- 아주 고마워 할 따름이지- 키키킥- 거기다 이민영과의 섹스라니- 벌써부터 흥분으로 온 몸이 달아오르고 있다고- 어때? 지금 당장 대줄래? 응-? ” 우그러지듯 잡혀 있는 턱이 저릿하다. 무표정하게 눈을 내리깔고 대답한다. “ 원한다면- ” “ 킥- ” " ............. " " 네가 날 좀 잡아 주길 바랬다. “ “ ................ ” “ 왜인지 모르게 말이야- 병원에 있는 동안 굉장히 이 미친 심장을 잠재울 수 있을 것만 같았거든- 널 바라보면서 멈출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 자신이 미쳐가는 걸 말이야.... ” “ 무슨 소리냐..? ” “ 킥- 아무것도- ” 진연준의 따스한 손가락이 내 머리카락을 쓸어 넘긴다. 바람결과 진연준의 손길에 따라 머리카락이 결 좋게 넘어간다. “ 이렇게 갇게 되나 보군- ” 진연준의 눈 꼬리가 내려간다. 그 웃음에 소름이 돋아 말없이 그 모양을 바라본다. 물기를 머금고 있는 회색 눈동자가 슬프게 달빛을 받아 반짝인다. 담뱃불이 손바닥을 아릿하게 태워나가는데도 나는 그 담배를 놓지 못하고 있다. 이마에도 손바닥에도 상처가 남을 것이다. 녀석을 사랑한 나의 상처가. * * * 하얀 커튼사이로 투영되는 달빛이 진연준의 몸으로 쏟아져 내린다. 단추를 하나하나 풀 때마다 가는 몸 치고 잘 자리 잡힌 근육들이 들어난다. 입술 끝이 비틀린다. 옷을 벗어 나가는 진연준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고 있다. 진연준을 바라보며 채민준... 그 새끼를 느끼고 있다. 난 미쳐버렸어. 널 죽여 버려야겠거든. 다른 새끼에게는 못 줘. 절대 말이야... 이 한 몸 더럽게 굴리는 한이 있어도. 다른 새끼에게는 못 준다고. 내 손에 잡히지 않는다면 죽어버려. 나의 환상. 나의 사랑. 나의 전부. 채민준.... 미치도록.. 증오하고 있다. 진연준의 손이 내가 입고 있는 환자복을 벗겨 내린다. 말없이 담배를 피우며 바라보고 있다. 이상하게도 마음먹고 있었던 것인데 몸이 떨려오고 있다. 벗겨져 병실 바닥에 떨어져 내리는 환자복을 무심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으나 몸은 병적으로 떨려 나가고 있다. 진연준의 따스한 손이 나의 어깨를 강하게 잡는다. 떨려오는 몸을 제지하듯이 강하게 잡아오는 녀석의 손아귀에 공허한 눈으로 진연준을 바라본다. 알 수 없는 감정으로 일렁이는 눈동자에 나의 벗은 몸이 비쳐진다. 담배를 입에 문채 입술 끝을 비틀어 올리며 공허한 눈동자로 몸을 떨고 있는 내 모습이 정말로 짜증나게도 더러워 보인다. 담배를 입술에서 떼어내 손가락 사이로 끼운다. “ 네가 원한 거잖아- 그만 떨어- ” “ ................... ” “ 역겨운 새끼..... ” 눈 꼬리를 내리며 역겹다고 속삭이던 진연준의 입술이 내 입술과 맞닿는다. 입을 벌리고 녀석의 혀를 받아들인다.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은 채 진연준의 혀와 엉켜나간다. 가슴속 저 밑바닥 지옥으로 꺼져나가는 기분으로 공허하게 창 밖을 바라보고 있다. 어깨를 우그러트리듯 잡고 녀석과 깊게 키스를 이어 나간다. 아무런 감정도 아무런 흥분도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 경기를 일으키듯이 온 몸은 병적으로 계속 떨리고 있다. 부들부들 떨리는 뒷목을 그러잡은 진연준의 손길이 따스하다. 채민준.... 그 녀석과는 다르게도 너무나도 따스하다. 그 따스함에 심장이 싸늘하게 차갑고 춥다는 느낌이다. 떨려오는 뒷목을 잡고 더욱 깊게 키스를 해 나가던 진연준의 입술이 떼어져 나간다. 울 것만 같은 표정으로 일그러져 있다. 울 것 같은 얼굴로 나의 목에 입을 맞추는 진연준의 입술이 너무나도 따스하다. 그 생소한 따스함에 온 몸은 더욱 떨리어 오고 있다. 울 것 같은 그 표정을 어디선가 많이 본 것만 같다. 기억 속 어딘가의 꽁꽁 숨겨 놓은 한 장면처럼 아스라하게 울 듯한 얼굴이 스치고 지나간다. 온 몸이 미치도록 떨려 나가고 있다. 목과 가슴에 입을 맞추며 애무를 해나가는 진연준의 회색 머리카락을, 반득한 이마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공허하기만 하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아무런 흥분도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은 인형이 되어 버린 것만 같다. 뜨거운 액체의 느낌이 가슴을 타고 전해져 온다. 내 몸 위로 올라탄 진연준의 눈에서 떨어져 내려오는 눈물이 가슴을 적신다. 손을 뻗어 숙여진 진연준의 뺨을 잡는다. 뜨거운 눈물의 감촉이 손바닥을 타고 전해져 온다. 후끈하고 손바닥의 상처가 아릿하다. 들리어진 얼굴이 눈물로 젖어 있다. “ 왜 우냐-? ” 무감정한 나의 목소리가 병실 안을 메운다. “ 글쎄........... ” 다시 입을 맞추어 오는 진연준의 입술이 짜다. 짜디짠 입맞춤을 이어가며 녀석의 손이 나의 뒷목을 어루만진다. 격렬하게 떨리어 오는 뒷목을 어루만지는 녀석의 손길 역시 떨리고 있다. 혀와 혀가 엉키고 서로의 몸을 부비며 녀석의 따스한 체온을 훔쳐내는 나의 몸은 계속 떨리어 나간다. 머릿속이 어지럽게 엉키어 나가며 역겨움이 올라온다. 애써 토기를 참으며 긴 키스를 이어나가고 있다. 머릿속 가득 오는 거부반응에 참을 수가 없다. 녀석의 어깨를 밀어 버리며 숨을 헐떡인다. 발작적으로 떨려오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손등을 깨어 문다. 찝찌름한 철 맛이 나는 핏물이 깨물어 진 손등을 타고 입 안으로 흐른다. “ 씨발............. ” 숨을 헐떡이며 진연준을 올려다본다. 일그러진 얼굴과 눈물로 적셔진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다. 머리카락을 거세게 움켜잡는 녀석의 우악스러운 손길에 힘없이 고개가 진연준의 손아귀에 끌려 옆쪽으로 기운다. “ 역겹냐?? 어쩌겠냐- 난 채민준 그 씹새가 아닌데 말이야..... 역겨워도 참아야지- 킥- 안 그래?? 네 새끼 대신 손에 피 칠하는 불쌍한 새끼를 위해서라도 참아 줘야 미덕이지- 안 그래-? ” 입술 끝을 비쭉이며 진연준이 사납게 외치며 입술을 덮쳐온다. 눈을 내리 감는다. 온몸이 미치도록 떨리어 온다. 병적으로 떨려 나가는 나의 몸을 부둥켜안고 몸을 돌린다. 베개 쪽으로 얼굴을 박은 채 몸을 떠는 머리카락을 움켜잡고 머리를 민다. 병원의 소독약 냄새가 물씬 풍겨오는 베개에 얼굴을 박고 흐느낀다. 어느새 손등은 베개 속을 파고들어 입에 물려 있다. 핏물이 흘러 베개를 적시어 나간다. 발작적으로 떨리어 오는 몸을 어찌 할 수가 없다. 채민준.... 채민준... 채민준... 내 뒤에 있는 녀석은 채민준이라고... 손등을 깨물며 그렇게 생각한다. 참으로 모순 되게도 지금 죽이기 위해 벌이는 이 행위의 이유인 그 녀석을 떠올리자마자 온 몸이 흥분으로 떨리어 온다. 감기어진 녀석의 기다란 속눈썹을 떠올리고 그 붉은 입술을 떠올리며 바들 거린다. 바지와 브리프를 벗기어 낸 진연준의 손이 나의 것으로 머문다. 만지작거리는 녀석의 손길에 녀석을 떠올린다. 마치 채민준.. 그 새끼의 환영이 나타나 나와 맨 몸을 맞대고 뜨겁게 입술을 포개고 나의 것을 어루만지고 있는 듯한 느낌의 흥분감에 점점 커져 나가는 것을 느낀다. 등 뒤로 뜨거운 액체가 떨어져 내린다. 진여준의 눈물임을 느끼고 있다. 한참을 뚝- 뚝- 하고 눈물이 등을 때린다. 그 뜨거운 감촉에 온몸은 더욱더 떨리고 있다. “ 왠지...... 채민준 그 새끼가 불쌍해지는데..... ” 흐릿하게 웃음기 어린 진연준의 속삭임이 들려온다. 아무런 전희 없이 그저 큼지막한 것이 뚫고 들어오는 느낌에 비명을 내지른다. 손등에 흐르는 핏물과 베게에 입술을 박은 채 흐느낌 섞인 비명을 내지르며 온 몸이 반으로 가르는 섬뜩하고 더러운 느낌에 심장이 먿을 것만 같다. 녀석을 떠올린다. 채민준 그 녀석의 모습이 아릿하게 신기루처럼 머릿속에 휘몰아친다. 녀석의 향이... 녀석의 검은 눈동자가... 녀석의 붉은 입술이... 손을 억지로 빼내어 내 뻗는다. 녀석의 환상이 사라져 나간다. 온 몸 가득 벌레가 기어 나가는 들끓는 역겨움과 아픔에 죽어 버릴 것만 같다. “ 흐윽... 으윽....... ” 아픔과 함께 끓어오르는 역겨움에 토기를 참아내며 팔을 물어뜯는다. 머릿속에 그려지는 이제성의 뒷모습이 떠오른다. 옥상 위로 이제성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는 녀석의 희고 기다란 손끝을 떠올린다. 참아 낼 수 있을 것만 같다. 역겨움과 이깟 아픔 따위... 이 한 몸 더럽게 굴려서 참아 낼 가치를 느끼고 있다. 입술 끝을 비틀린다. 동물들이 교미하는 것처럼 원시적인 리듬을 타고 온몸이 흔들리고 아픔을 참아내며 팔을 문다. 철 맛이 느껴지는 핏물이 울컥 하고 목구멍을 타고 흐른다. 눈을 내리 감는다. 온 몸이 타들어 갈 것만 같은 아픔과 열기에 숨을 몰아 내쉬며 짐승처럼 소리 지른다. 아픔이 온 몸을 지배 할 뿐이다. 등허리를 타고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린다. 울 듯한 얼굴이 스치고 지나간다. 핏물이 입안을 적셔나간다. 동물 적인 움직임에 맞추어 흔들거리던 몸이 힘없이 축 늘어져 나간다. 경끼를 일으키듯 간간히 발작처럼 몸을 떨고 있지만 나의 뒤를 박아 오는 진연준의 움직임도 찢어지는 아픔도, 등허리를 타고 흐르는 뜨거운 눈물의 감촉은 계속 되고 있다. 눈앞으로 흐릿하게 그 울 듯한 얼굴의 검은 눈동자를 떠올린다. 심장을 저릿하게 만들 정도로 애달픈 그 얼굴이 흐릿하게 저 너머로 바스라져 나간다. 벌레가 기어가는 역하는 느낌과 함께 내 눈앞을 사로잡는 환영이 점점 나의 뇌 속을 파고들어 나를 미치게 만든다. 기억의 한 귀퉁이 어느 곳에선가 나의 이름을 부르며 눈물을 흘리던 울 듯한 얼굴이 겹쳐지고 그 얼굴 위로 진연준의 얼굴이 겹쳐져 나간다. 토 할 것만 같다. 아픔으로 온 몸이 쪼개져 버릴 것 만 같다. 흔들리는 몸뚱이는 아픔과 알 수 없는 두려움과 역겨움으로 발작적으로 떨리고 있다. 눈앞을 하얗게 만들어 버리는 얼굴이 희미하게 지워져 나간다. 눈물을 흘리며 그것을 붙잡으려고 눈을 뜬다. 내 몸 안으로 사정을 하며 쓰러져 내리는 진연준의 체온이 등을 뜨겁게 달군다. 눈을 뜬다. 병원 냄새와 어둠 속을 휘감으며 떠도는 먼지, 살랑거리며 바람결에 따라 흔들리는 커튼 사이로 투영 되는 달빛. 그리고 17살 귀퉁이 기억의 나를 끌어안던 녀석의 차가운 체온이 떠오른다. 덜덜 떨고 있는 나의 등을 끌어안으며 진연준이 속삭인다. “ 흐윽............. 사랑.....해........... ” 왜 울고 있는 거냐? 넌 내 몸을 가졌는데.... 덜덜 떨고 있는 나의 몸을 안으며 속삭이는 진연준의 서글픈 목소리가 귓가를 울린다. “ ...... 미안 하다............. ” 뭐가 미안하다는 거냐?? 나의 뒷목에 얼굴을 박고 흐느끼는 진연준의 눈물이 목을 적셔 나간다. 알 수가 없다. “ 되돌아가기에 너무 멀리 와 버렸어... 킥.. 우린 이 미친 사랑이라는 환상 속에 갇혀 영원히 빠져 나오지 못하겠지- ” 죽음을 불사하며 되돌아 온 흘러가 버린 나의 미래의 기억들이 떠오른다. 되돌리기에 너무 늦어 버린 걸까? 정말............. 너무 늦어 버린 걸까?? 무엇을 위해 내가 시간을 되돌려 여기까지 왔었더라.... 눈물이 흐른다. 벌벌 떨며 눈물을 흘리는 내 몸 옆으로 몸을 뉘우는 진연준의 옆얼굴을 멍- 하니 바라본다. 방금 나와 했던 정사의 흔적을 들어내듯 땀으로 적셔진 얼굴이 달빛에 들어 난다. 한참을 무표정하게 바라보며 쓰라린 뒤쪽의 감각에 몸을 움찔하며 일어선다. 침대 밑에 있던 가방을 뒤져 수건으로 대충 뒤쪽의 정액을 닦아 내며 일어서자 뒤쪽으로 정액과 섞인 피가 다리를 타고 흐른다. 내 어미의 예전 모습이 떠올라 토기가 흐른다. 그 아들에 그 어미인가? 자조적인 웃음이 흐른다. 온몸은 계속 격렬하게 떨리고 있다. 허벅지를 타고 흐르는 정액과 함께 흐르는 피를 닦아 내고 평소 입던 간편한 옷으로 갈아입으며 휘청 인다. 찢어져 내린 뒤쪽의 고통에 아랫입술을 깨물며 병실 문을 열어 재낀다. 뒤를 돌아봐 눈을 내리 감고 있는 진연준의 얼굴을 바라본다. “ 잊지마..........둘다 내 두 눈앞에서 죽여라 .... ” 아랫입술을 깨물며 건조한 목소리로 말을 내뱉는다. 진연준의 처진 눈 꼬리를 타고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는다. 병원 뒤에 쪽에 자리 잡혀 있는 비상구 계단을 내려서며 비틀거리며 병원을 빠져나와 어두운 귀퉁이 골목 구석으로 내달려 전봇대를 붙잡고 속을 게워 낸다. 위액과 침이 섞여 골목 구석의 시멘트 길을 적셔 내린다. 손등으로 입술을 훔친다. 물어 뜯기어 살이 반 정도 찢겨져 나가 손등의 아릿한 아픔에 인상을 찌푸린다. 입술을 훔친 자국으로 핏자국이 길게 뺨 위까지 그려진다. 온 몸이 상처 자국이다. 손등도 담배로 지져진 손바닥도, 그리고 이마에도... 그리고 나의 심장에도.... 벌벌 떠는 몸으로 비틀거리며 어딘가를 향해 한 없이 걷고 있다. 어두운 길목 귀퉁이를 지나 야릇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네온사인드가 번쩍이는 번화가를 지나 마치 안개 속에 휩싸인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걸어 나가고 있다. 몽롱한 환각상태처럼 머릿속이 어지럽다. 걷고 또 걷는다. 온 몸을 감싸는 아픔 따위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내 옆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쁜 사람들의 형상이 마치 담배연기처럼 어른거리는 느낌이다. 비틀거리며 눈물을 계속 흘린다. 바들바들 떨리는 몸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어딘가로 향해 걸어가고 있다. 땀으로 얼룩진 머리카락을 쓸어 올린다. 마치 환상 속 미로를 따라 걷는 기분이다. 계단을 오르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익숙한 곳의 층수를 누른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너무나도 익숙한 그 문 앞을 어둠 속에 몸을 가리고 서서 바라만 본다. 눈물이 흐르고 심장이 떨리어 온다. 비틀거리며 흔들리는 시선으로 그 문만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한참을 눈물로 적셔진 얼굴로 그 문만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문이 열리고 밝은 빗속을 타고 열려진 문 사이로 이제성이 나오는 것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얼굴이 붉게 상기된 채로 무언가 안타까운 눈빛으로 그렇게 문을 닫고 반대쪽 방향으로 걸어 나간다. 이제성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입술 끝을 비튼다. 한 걸음 한 걸음 이제성이 닫아 버린 문에 다가와 등을 댄다. 바닥을 타고 나의 핏방울 점점이 떨어져 내리고 있다. 숨을 헐떡이며 차가운 문에 등을 댄 채 눈을 감는다. 눈물이 흘러 뺨을 적셔 나간다. 아프다.. 너무나 아파서 미쳐 버릴 것만 같다. 시간을 되돌려 널 가지러 왔을 뿐인데.... 차라리 죽어 버린 널 그 관속에 나 역시 묻어 버리고 죽어 버릴걸. 이 지긋지긋한 심장의 아픔 속에서 내 심장을 죽이고 너와 함께 죽어 버릴걸 그랬다 채민준. 심장이 아릿해 온다. 눈물이 계속 흐른다. 격렬하게 몸을 떨며 스르륵 문에 등을 대고 미끄러져 내린다. 난 오늘 날 팔아 널 죽이기로 했다. 채민준...... “ 크윽... 하하...하하하... ” 쇳소리 나는 웃음을 흘리며 눈을 감는다. 머릿속이 어지럽다. 돌아 버릴 것만 같다. 아까의 그 역겨움이 다시 살아난다. 토기를 억누르며 다시 눈을 뜬다. 이상하게도 내 두 눈앞 어둠 속에 익숙한 향이 머문다. 손을 뻗어 그 향이 나는 곳을 향한다. 그 어두운 물체가 몸을 숙여 나를 껴안는다. 이상하게도 몸의 떨림이 멈추어 온다. 미약한 체온으로 인해 냉기가 흐르는 그 품이, 그 향이 왜 이렇게 내 심장을 아릿하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몽롱한 시야로 그 물체의 목에 얼굴을 박는다. 익숙한 담배냄새와 묘하게 섞인 달큰한 향기에 숨이 막혀 온다. 땀으로 젖어 있는 나의 뒤쪽 머리카락을 휘감듯 쓸어내리는 그 차가운 감촉이 너무나도 익숙해서 눈물이 흐른다. 이건 환상이군. 그런 거야... 자조적으로 웃음을 흘린다. 나를 더욱 깊게 끌어안는 그 환상을 느끼며 묘하게 웃음을 흘린다. 이상하게도 굉장히 화가 난 얼굴을 한 그것이 입술 위를 스치고 뺨으로 이어지는 피 자국을 손가락으로 어루만진다. 그 희고 기다란 손가락에서 배어나오는 익숙한 담배 향에 숨이 멎는다. 그 붉은 입술이 무슨 말인가를 속삭인다. “ 그만.......... 그만............ 이제 지쳤어....... ” 속삭인다. 지쳤다고 나는 계속 속삭이고 있다. 이제 너무 지쳐 버렸어... 널 사랑하는 이 외 사랑이라는 것에 너무 지쳐 버렸어.. 나를 끌어안고 있는 이것은 환상이다. “ 누구냐............? ” 가르랑거리듯 울부짖는 낮은 저음의 목소리가 사납게 속삭인다. “ .........진연준 이냐..? ” “ .............. ” “ ............그 새끼랑...... 했냐? ” 환상의 그것이 달빛 속에서 그 붉은 입술로 소리친다. 어둠을 닮은 그 검은 눈동자가 차갑게 빛난다. 그 속에 핏물로 입술을 적신 괴이한 삐에로 가면을 쓰고 있는 듯한 나의 모습이 비춘다. 엉덩이 쪽으로 흘러나온 정액 때문인지 축축하게 젖어 있는 느낌이다. 비죽 웃음을 흘렸다. 그것의 붉은 입술 끝 역시 싸늘하게 비틀린다. 검은 눈동자가 광폭하게 빛나 오르고 있다. 한쪽 손으로 나의 턱을 우악스럽게 움켜잡는다. 그제서야 몽롱한 정신 속에서의 그것이 환상이 아님을 눈치 챈다. 달빛을 등지고 서 있는 채민준의 표정이 사납게 일그러져 있다. 왜...... 그런 표정인 거냐?? 더러워서?? 더러워서 그런 거냐?? 어쩌면 오늘이 마지막 해후일 수도 있는데 말이야.. 채민준.... 채민준..... 아... 나의... 채민준....... * * * 손을 뻗어 녀석의 차가운 뺨을 어루만진다. 달빛을 등지고 서 있는 녀석의 얼굴이 어둠 속에 쌓여 잘 보이지 않는다. 아... 나의 채민준.... 민준아... 민준아.... 눈물이 흐른다. 쇳소리처럼 울려 퍼지는 목소리로 힘겹게 속삭인다. “ 그래............... ” 감히 어루만지지 못했던 녀석의 뺨을 아무렇지도 않게 어루만지고 있다. 믿어지지 않게도 나는 지금 녀석을 어루만지고 있다. 녀석의 차가운 뺨이 마치 나를 외면하는 녀석의 마음 같아서 가슴이 쓰리면서도 애틋하다. 닿으면 아스라하게 바스라질거 같은 녀석을 어루만지는 나의 손가락이 떨린다.. 심장이 아프게 욱신거려 덜덜 몸이 떨리어 온다. 우악스럽게 잡혀 있는 턱으로 전해져 오는 압박감이 느껴진다. 나의 턱을 움켜잡고 알 수 없는 묘한 표정으로 일그러진 녀석을 바라보며 입술 끝을 비틀고 말을 잇는다. “ 그래... 했다.... 그 녀석과 몸을 섞었지.....킥...... 그 새끼와 몸을 섞으며 절정에 치달으며 섹스를 했어- ” 시니컬한 웃음이 흘림과 동시에 으득- 하며 머리카락이 빠져나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우악스럽게 나의 머리카락을 움켜잡은 녀석이 현관 쪽으로 머리통을 강한 힘으로 밀쳐낸다. 콰쾅- 머릿속이 멍해지며 점점 시야가 흐릿해져 간다. 머리통으로 전해져 오는 고통으로 신음이 흘렀다. “ 으윽..... ” 쾅-!! 쾅--!! 쾅---!! 주먹으로 현관문을 내리칠 때 마다 문이 움푹 들어가는 모양을 멍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주먹으로 내리칠 때 마다 오는 철이 뭉개지는 소리와 피와 뼈가 부셔져 나가는 소리가 소름 돋게 울려 퍼진다. 녀석의 피가 뺨으로 튄다. 쾅-!! 쾅--!! 뭐가 그렇게 화가 난 거냐?? 알 수 없다. 녀석의 분노에 알 수 없는 희열을 느끼고 있다. 그래.... 화를 내.... 화를 내줘.... 이상하게도 웃음이 흐른다. 미칠 듯이 웃음이 흐르고 있다. 왜 화를 내는지 도통 이해 할 수 없지만, 이 상황이 몽롱한 머릿속에서도 알 수 없이 웃음을 흐르게 만든다. 문이 부셔질 듯 삐그덕 거리고 녀석의 피는 계속 해서 내 뺨을 튀긴다. 하얀 뼈마디가 살갗위로 튀어나와 벗겨져 내려간 주먹을 타고 녀석의 피가 바닥에 떨어져 내린다. 이상하게도 녀석의 들어난 뼈마디에 가슴이 뭉그러질 듯 아프다. 피로 질척해진 문을 향해 주먹을 날리는 녀석의 목을 끌어안는다. 왜.......... 네 새끼 주먹이 뭉그러져 나가는데...... 내 심장이 더 뭉그러지는 거지? 왜...?? 어째서... 왜??? 왜 내 심장이 더욱 아파 오는 거냐?? 눈물이 흘러 녀석의 어깨로 떨어져 내린다. 녀석의 목을 끌어안고 녀석의 목에 내 얼굴을 박으며 짐승처럼 흐느낀다. “ 흐으윽... 으윽...흑...........사.... 사랑해........... ”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소리친다. 심장이 짓이겨지는 아픔으로 숨이 막힌다. 사랑하고 있다. 너의 그 모든 하나하나, 네 몸짓 네 한 숨, 네 향기 네 머리카락 네 그 검은 눈동자, 네 가슴, 네 다리, 너의 거기까지 너의 모든 걸 사랑해..... 사랑한다... 채민준... 사랑하고 있다...!! 나는 항상 너에게 목이 말라 있다. 이 목마름이, 이 갈증이 언제쯤이면 이 메마른 가슴을 적셔 줄지 모르겠어. 너의 피로 이 메마른 가슴을 적셔 나갈 수 있다면. 널 죽임으로서 네 심장을 가질 수 있다면. 마지막 네 숨결을 내가 가질 수만 있다면... 널 죽일 거다. 난 널 죽일 거야. 사랑해...................... 난 정말 미쳐버렸나 봐. 널 너무 사랑해서........ 돌아 버렸어. “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사랑해.... 채민준 사랑한다...... 흐윽..... 사랑...한다................ ” 녀석의 목에서 손을 풀고 녀석의 날카로운 턱 선을 어루만지며 올려다본다. 차가운 달빛을 등지고 주저앉듯 무릎 꿇고 서 있는 녀석의 뺨으로 점점이 튀겨져 있는 핏방울이 묘하게 위험스러우면서도 녀석과 잘 어울린다. 주먹을 내리고 바닥을 적셔 나가는 녀석의 핏방울 바라보며 고개를 숙여 그 핏물에 입을 맞춘다. 난 정말 미친놈이 분명하다. 비릿하게 철 맛이 도는 녀석의 혈 향을 느끼며 혀로 핥는다. 너의 피까지... 사랑하고 있다. 으득- 하는 소리와 함께 얼굴이 뒤로 젖혀진다. 머리카락을 움켜잡아 뒤로 꺾어 올리자 고스란히 달빛을 받아 하얗다 못해 푸르스름한 녀석의 뺨 위로 튀긴 핏방울이 눈에 뜨인다. 숱 많고 긴 속눈썹이 녀석의 암흑과도 같은 질척한 눈동자를 가리 운다. 그 내리깐 눈동자가 묘하게도 슬퍼보여서 심장이 아파온다. 그 붉은 입술 끝이 뒤틀리고 낮은 저음이 음산하게 울려 퍼진다. “ 다시 말해봐- ” “ ..................... 사랑해.... ” “ 다시- ” “ ...사랑- 윽- ” 녀석이 날린 주먹에 얼굴이 돌아가고 그 충격으로 현관문으로 뒤통수를 부딪친다. 입술이 터져 핏물이 입술 끝을 타고 고인다. 괴이한 몰골로 핏물로 엉망이 된 나의 턱을 우악스럽게 움켜잡아 치켜 올리며 녀석이 음산한 녀석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 사랑-? 날 사랑한다고-? 킥..... 사랑한단 말이지....... ” 기묘하게 뒤틀린 얼굴이 묘하게 색스럽다. 그 붉은 입술에 입을 맞추고 싶다. 괴롭게 일그러진 그 얼굴이 너무나도 황홀해서 눈앞에 흐릿하다. 붉은 입술 끝이 비틀린다. 싸늘하고 차가운 저음이 내 심장을 차갑게 파고든다. “ 내가 말했지-? ” “ ............................... ” “ 그 마음 지옥까지 가지고 꺼져버리라고- ” “ ....................... ” 녀석의 검은 눈동자가 푸른빛을 돌며 차갑게 빛난다. 일그러진 얼굴이 점점 무표정하게 변해 간다. 마치 괴물의 얼굴에서 점점 깨질 듯 말듯 한 유리인형이 겉모양처럼 아무런 표정도 서리지 않는다. 붉은 입술 끝은 차갑게 비틀려 있을 뿐이다. 나른한 자세로 담배를 꺼내 입에 물며 녀석의 붉은 입술이 내 귓가에 대고 속삭인다. “ 이민영....... 너란 새끼는 정말... 최악이군- 넌덜머리가나- 네 새끼 면상을 보고 있으면 역겨움에 토하고 싶어져....... ” 머리카락이 뽑혀나가는 소리와 함께 녀석의 입술이 귓가에서 떨어져 나가고, 피가 뚝뚝 흐르는 한 손으로 지포라이터를 켜 하얀 담배 끝에 댄다. 담배 끝으로 타오르는 불꽃이 녀석의 얼굴을 비춘다. 그 불빛 속에서 유리알처럼 아무런 감정도 담겨지지 않은 암흑뿐인 그 검은 눈동자가 심장을 쓰리게 만든다. 덜덜 떨리는 턱을 타고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눈물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린다. “ ................................. ” 가슴이 아파 숨을 쉴 수가 없다. 몽롱한 머릿속에서 피어나는 살의가 온 몸의 휘감는다. 쿵- 쿵- 아프게 뜀박질 하는 심장이 아파와 눈을 질끈 감았다 다시 뜬다. “ 그 역겨운 몸뚱이로 그 새끼랑 뒹굴며 개처럼 헉헉 거렸나-? 응- ? ” 나의 턱을 움켜잡고 치켜 올리며 녀석이 소리친다. 그 음산하고 소름끼치는 음색에 온 몸에 소름이 돋는다. 가르랑거리는 날카로운 음색이 나의 심장을 떨리어 오게 한다. “ 내가 어떤 새끼와 배가 맞아 씹질을 하든 개새끼처럼 헉헉거리든- 네가 상관할 바가 아니야- 난 더 이상 네 새끼의 개새끼가 아니야.... 더럽다고? 역겹다고-? ” 웃음이 흐른다. 이 빌어먹을 눈물이 내 뺨을 태우듯이 흘러내리고 있다. 터진 입술 끝을 타고 피를 흘리며 쇳소리 나는 목소리로 짐승처럼 소리를 내지른다. “ 역겨운 건 너다- 너라고... 너라고 채민준!!!! 더럽다고 했잖아- 역겹다고 했잖아!!!! 호모 따윈 역겹다고 했잖아-!!!! 그런데 왜 하필 이제성이냐!! 왜 하필... 이제성이냔 말이야..... 이제성이 네 새끼 형과 닮아서- 네 새끼가 사랑한 그 형과 닮아서 말이냐- 어-? 그런 거냐?? 킥.... 병신 같은 새끼..... 형을 사랑한 너야 말로 더러운 새끼란 말이야.... 너야 말로 더럽고 역겨운 새끼란 말이다!!! ” 검은 녀석의 동공이 커져 나간다. 유리로 된 인형의 동공이 깨져나가듯이 그 확대 되어 가는 동공의 파장이 느껴진다. 입에 물고 있던 담배가 녀석의 격렬한 떨림에 툭- 하고 바닥으로 떨어져 내린다. 희뿌연 담배 연기 사이로, 그 몽롱한 정신 사이로 깨져 버린 유리 인형 같은 표정으로 광기로 일그러진 녀석이 짐승처럼 소리를 내 지르며 내 목을 움켜 잡는다. 숨이 막혀 오는 고통과 함께 눈을 하얗게 뜨고 녀석을 노려본다. 녀석의 검은 눈동자가 고통스럽게 떨리어 오고 있다. 그 강렬한 떨림에 내 심장이 쓰리어 온다. 그렇게 가슴이 아픈 거냐....? 넌 아직도 그 형이라는 그림자에 쌓여 벗어나지 못한 거냔 말이야... “ 더러운 입으로.............. ” 격렬한 울부짖음 같은 소리로 낮은 저음의 목소리가 슬프게 울려 퍼진다. 점점 옥죄어 오는 목의 통증과 호흡곤란으로 헉헉거리며 숨을 몰아 내쉰다. “ 내 형에 대해 떠들 지마...... ” 숨통이 막혀와 심장은 급박하게 뛰어 오르고 있다. 눈물 때문에 눈앞이 뿌옇다. 뿌연 눈앞으로 점점 다가오는 녀석의 붉은 입술을 바라본다. 숨이 막힌다. 가슴이 아프다. 눈앞이 흐릿하다. 부드러운 피 맛이 느껴지는 무언가가 입술을 파고든다. 그 감촉에 희뿌옇게 앞을 가린 눈물이 툭- 하고 뺨을 타고 내려가며 내리깔린 긴 속눈썹 사이로 새카만 잉크처럼 검고 질척거리는 눈동자가 보인다. 내 입술에 그 붉은 입술을 맞대고 속삭인다. “ 내 형에 대해.... 떠들지마...... 죽여 버리겠다..... ” 알 수 없다. 죽여 버리겠다고 반복되며 속삭이며 내 입술에 입술을 맞대고 입을 맞추어 오는 녀석의 그 눈동자를 바라보며 막혀 오는 숨통으로 괴롭게 얼굴을 일그러트린다. 입을 벌리며 꿈틀거리는 나의 입속으로 녀석의 혀가 엉켜 들어와 휘감는다. 막혀 오른 숨통으로 눈앞이 뿌옇다. 이상하게도 숨이 막혀 몸을 덜덜 떨고 있으면서도 황홀함을 느끼고 있다. 덜덜 떨리는 팔로 녀석의 목을 휘감고 키스를 한다. 질척하게 엉켜 들어가는 녀석의 혀와 나의 혀가 얽혀 나가 입천장을 훑고 입안을 헤매는 녀석의 혀의 감촉에 죽음을 목전에 앞둔 나의 몸이 부르르 떨리며 황홀경을 맛보고 있다. 머리끝 신경 하나하나가 끊어질 듯 죽음을 향해 치닫는 느낌이다. 하지만 이 키스를 놓칠 수가 없어 이대로 죽어 버리고 싶다. 점점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 간다. 온 몸의 신경 세포 하나하나가 경직 된 채, 뿌옇게 변해 가는 세상으로 그 타오르는 입맞춤과 함께 머릿속이 하얗게 바스러져 나간다. 목이 졸린 채 나의 마지막 숨결을 녀석이 앗아간 채, 짐승처럼 나의 입술을 물어뜯는 녀석의 감촉에 아픔과 동시에 황홀함을 느낀다. 눈앞이 하얗게 뒤집어 지고 혀가 길게 늘어진다. 축 늘어지는 몸이 발작적으로 몇 번 떨리어 온다. 그래........ 날 죽여- 난 널 죽일 테니까- 마지막 선물로 너의 키스라니- 씨발 황홀해 미쳐 버릴 것만 같아- 더욱더 내 목을 그러잡아- 날 죽여줘- 날..... 죽여줘.... 덜덜 떨리던 몸이 축 늘어지며 눈앞이 까맣게 변해버리는 순간, 목을 그러잡아 오던 녀석의 차가운 체온이 순간적으로 사라지고 입 안 가득 차가운 공기가 파고든다. 피처럼 붉은 녀석의 입술에 묻어 있는 붉은 피가 야수처럼 광기 어리게 비추어 오는 것을 바라보며 숨을 몰아 내쉰다. 녀석과의 입맞춤이 계속 하고 싶어 숨을 헐떡이며 녀석을 향해 손을 뻗는다. 힘없는 손은 아무리 움직이려 해도 잘 들어지지 않는다. 뿌옇고 엉망이 된 시야 속에 어지럽게 돌아가는 앞의 장면들이 여러 조각으로 나뉘며 입술 끝을 비트는 녀석의 얼굴이 여러 조각으로 나뉜다. 길고 유연하게 위로 치켜 올라간 눈매도, 녀석의 멋진 콧날도, 그 붉은 입술도 여러 조각으로 나뉘어 어지럽게 일그러진 형상을 만들어 낸다. 약을 한 것처럼 어지러운 환상속의 한 장면을 바라보듯 슬프게 녀석을 바라본다. 너와 나눈 이 죽을 듯한 황홀한 피 맛의 키스도 환상인 걸까? 지금 내 앞에 있는 너는 내가 만들어 낸 한낮 신기루에 불과한 것일까-? 너에게 난 항상 목이 말라 있으니까 말이야.. 채민준.... 네 녀석을 미치도록 사랑한 것이 죄악 이였던 걸까? 일그러진 영상 속의 녀석이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이는 나른한 동작 하나하나가 희미한 안개 속에 휘어 잡힌 것처럼 흐릿하게 보인다. 핏물로 물드는 녀석이 물고 있는 하얀 담배필터와 희뿌연 담배 연기 속에 녀석의 입술이 너무나 아름답다. 녀석의 손가락이 나의 턱에서 눈물과 핏물로 얼룩진 뺨으로 올라간다. 그 차가운 체온이 환상이 아님을 느끼게 해준다. “ 내 심장은 죽어 버렸다- ” 나른한 저음의 목소리가 차갑게 귓가를 울린다. 눈을 감는다. 담배향이 코끝을 스친다. “ 나의 형이 죽어 버린 그날 이 후...... 나 역시 죽어 버렸어- ” 씨발.. 듣고 싶지 않아!!! 그만!!!!!! 물먹은 솜처럼 무겁게 느껴지는 몸을 느끼며 눈을 뜨려고 안간 힘을 쓴다. 무겁게 내려앉은 눈꺼풀은 굳게 내려가 떠지지가 않는다. 붉은 시야 안으로 벌벌 떨리는 나의 목을 그러잡아 쓰다듬으며 속삭인다. “ 어차피 이민영 네 녀석이 사랑한 것은 허상일 뿐이다..... ” 차갑게 이죽거리는 듯한 나른한 저음에 심장이 찢겨져 나간다. 내가 사랑한건 허상이 아니야- 바로 너란 말이다- 채민준... 바로 너란 말이야.....!! 힘겹게 눈을 뜬다. 검고 검은 그 심연을 알 수 없는 질척한 검은 눈동자. 핏물로 번들거리는 입술. 퇴폐적이고 나른한 표정으로 무표정하게 나를 바라보는 녀석의 무료한 시선. 죽어버린 눈동자. 다시 눈이 감겨 온다. 감기어지는 마지막 희미한 시야 사이로 조금이라도 그 죽어버린 녀석의 눈을 담아내기 위해...... 난 죽어버린 네 녀석 모두 까지 사랑해.. 사랑하고 있어....... 사랑...하고.. 있어... 녀석의 향한 입안에만 맴도는 말을 쏟아내며 눈을 감는다. 한쪽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감촉을 느끼며... * * * 이상하게도 가슴이 아릿하게 만드는 향. 그 향에 코를 박고 얼굴을 비빈다. 아... 바스러질 듯 이상하게도 애틋하고 아련하다. 조각나 넝마가 되어버린 심장이 쿵...쿵.. 미약하게 뛰고 있다. 꿈속에서 언제나 나는 헤매고 있다. 헤매고, 헤매고 헤맨다. 굴레처럼 돌고 도는 꿈속에서 헤매다 눈을 뜬다. 온통 푸른빛이 도배 되어 있다. 녀석의 공간이다. 바스러질 듯 끌어안고 있는 푸른 시트를 움켜잡고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텅 비어 버린 공간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두리번거리며 화장실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가 거울을 바라본다. 피딱지가 앉아 범벅이 되어있는 괴이한 몰골로 입술은 이상하게도 붉게 부어올라 굳은 핏덩이를 얹은 채 무표정으로 서 있는 내 모습이 비춘다. 더럽게 피로 얼룩져 있는 옷을 벗어내고 욕조에 물을 받아 욕조 안으로 들어간다. 따스한 물의 느낌에 온 몸이 노곤해 지며 뒷부분과 손등, 팔등 부분이 아릿해 온다. “ 으윽- 씹... ” 욕설을 내뱉으며 물 속에 몸을 담그고 눈을 감는다. 일그러진 얼굴로 떠올리는 어제의 장면은 마치 조각나 있는 퍼즐 조각을 끼워 맞추듯이 몽롱한 환각 상태의 트릭 같다. 거짓과도 같다. 녀석과의 키스-! 씨발- 좋아 미칠 것만 같으면서도 녀석의 죽어버린 눈동자를 떠올리게 한다. 형과 함께 죽어 버렸다고-? 마치 시간을 되돌리기 전의 나의 모습이다. 나 역시 네 새끼가 죽음으로 같이 죽어 버렸었다고.... 그러고 보면 웃기게도 시간을 거슬러 온 것도 녀석의 향한 증오의 감정이기도 하다. 아이러니 하게도.... 나는 녀석을 사랑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으로는 미치도록 증오하고 있다. 녀석의 목을 물고 놓아 주지 않은 미친 개새끼 마냥. 녀석이 나에게 왜 물어뜯는 듯한 키스를 했는지 알 수 없다. 알 수 없는 감정에 물 속 으로 잠수하듯 몸을 뉘인다. 물 속의 따스함과 쓰라린 감각, 숨 막히도록 고요함. 그리고 떠오르는 녀석과의 키스, 키스, 키스- 머릿속이 혼란스럽게 헝클어져 간다. 눈앞을 배회하는 물 속의 공기방울과 수면 아래에서 바라보는 물 위의 하얀 욕실 천장을 바라보며 눈을 감는다. 녀석과의 혼란스러운 키스가 마치 환상같은 장면으로 머릿속에 반복 되고 반복 된다. 점점 압박해 오는 숨막힘과함께 멍멍하게 울리는 음악 소리에 눈을 뜨며 몸을 일으킨다. 머릿속의 세상은 깨어져 나간다. 물로 질척이는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눈을 부릅뜬다. 욕실을 울리는 핸드폰 벨소리에 몸을 돌려 넝마가 되어버린 옷 속을 뒤져 핸드폰을 찾아내 폴더를 연다. “ ................ ” 폴더를 연체 가만히 들고만 있자 진연준의 무겁게 가라 앉아 쉬어 버린 목소리가 핸드폰을 타고 욕실을 울린다. - 이봐- 달링- 묘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를 타고 달링을 외치는 진연준의 목소리에 눈살을 찌푸리며 입안에서만 우물거리고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은 목소리 덕택에 몇 번 기침을 하고 짜증스럽게 간결이 말을 내뱉는다. “ 전화한..... 용건은-? ” - 섹스까지 한 사이에 너무 냉정한거 아닌가-? 킥- “ ........................... ” 한참의 긴 침묵과 함께 낮게 울려 퍼지는 진연준의 키득거림이 묘하게 신경을 짜증스럽게 자극한다. - 이봐- 이 빌어먹을 나의 달링- “ ....................... ” - 한 가지 말해 줘야 할게 있어서 말이야........ 아- 마지막 피날레를 위해서 그건 나중에 말해 줄까? “ 무슨 소리냐? ” 짜증이 치민다. 첨벙- 하고 물방울 튀기는 소리가 요란히 울려 퍼지며 짜증스럽게 이마와 뺨을 달라붙는 머리카락을 다시 쓸어 올린다. - 어제 새벽에 말이야- 채민준 그 새끼가 날 찾아 왔더라- 너와 섹스하고 본가로 갔었는데 말이지- 본가까지 찾아와 깽판을 부리는 통에 아주 그 새끼 골치 아파지게 생겼어... 그 새끼 집안만큼 우리집안도 꽤 하는 집안인데 말이야- 윗어른 다 계시는 곳 까지 쳐들어와서 쇠파이프로 집안 기물 다 부수고 말이야- 내 대갈통을 날리려 하더군- 그 새끼가 좀 또라이잖냐- 어릴 때나 지금이나- 킥- 또라이지....... 심장이 떨리어 온다. 계속 말을 잇는 진연준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는다. 벌벌 떨리는 손으로 폴더를 닫고 물 속에서 몸을 일으킨다. 차가운 공기가 몸에 와 닿고 온 몸에 소름이 일어나며 머릿속이 어지럽게 춤춘다. 녀석과의 키스... 그 달콤하면서도 절망적인 기억이 내 머릿속을 휩쓸고 놓아 주지 않는다. 그래..... 어쩌면.... 어쩌면.... 씨발 어쩌면.... 걸레처럼 박혀 있는 옷을 주워 입고 녀석의 원룸에서 뛰쳐나간다. 뛰고 또 뛴다. 떨어진 낙엽을 밝고 지나치나는 거리속의 사람들은 일그러진 표정으로 나의 모습을 훑는다. 뒤쪽이 아릿하게 피가 흘러 옷이 피로 젖어드는 지도 모른 채 뛰어 나가 택시를 잡는다. 택시 속에서 몇 번이고 손톱을 물어뜯으며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차 창 밖의 바쁘게 걸어가는 모습들을 바라보며 일그러진 웃음을 흘린다. 마치 삐에로 가면을 쓴 듯 우스운 미소. 손가락으로 차창 표면을 쓰다듬는다. 미적지근한 차창 표면의 온도에 심장이 미친 듯이 발광을 해대고 있다. 스쳐지나가는 많은 사람들이 차창에 와 닿아있는 내 손끝을 스치고 지나친다. 그리고 그 손끝으로 학교 교문을 마지막으로 다다른 순간 튕겨져 나가듯 돈을 지불하고 택시에서 뛰어내려 교문을 열고 운동장을 가운데 편을 가르며 뛰기 시작한다. 바스락거리며 운동자에 뒹구는 퍼석거리는 낙엽을 밟아 내리며 뛰고 있다. 심장은 미친 듯이 펌프질을 해대고 있다. 학교 건물로 들어가 계단을 오르고 단숨에 뛰어 들어가 교실 문을 연다. 환한 빛과 함께 뻑뻑한 소음을 내며 들려오는 열리는 문소리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집중된다. 칠판 가득 수학의 공식들을 빽빽이 적어 가며 수업을 하고 있던 수학 선생의 눈을 커다랗게 뜨며 소리를 지른다. “ 이민영- 너 이 새끼!!!! 너 그 꼬라지하며- 병원에 누워 있어야 할 자식이..... ” 모두 몰려오는 시선 속에 녀석은 없다. 텅 비어 버린 녀석의 책상과 이제성의 책상. 쾅- 하고 문을 닫아 버리며 공부하는 녀석들의 당황스러운 시선과 선생의 시선이 차단된다. 텅 비어 버린 책상을 떠올리며 힘없이 허탈하게 웃음을 흘리며 옥상 쪽으로 향하는 계단 위로 뛰어 올라간다. 제발.......... 제발........ 채민준........... 한 계단 한 계단 헐떡거리는 숨결을 내뱉으며 뒤쪽으로 우릿하게 흐르는 피로 덜덜 떨리는 다리를 비틀거리며 올라선다. 푸른빛 페인트칠을 한 녹이 슬어 군데군데 뜯어진 자국이 선명한 옥상 철문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일그러진 얼굴로 문을 반쯤 밀어 낸다. 반쯤 들어난 환한 햇빛이 눈앞을 뿌옇게 만들어 눈을 가늘게 뜬다. 마치 예전의 그 한 장면처럼. 이제성의 타이를 한손으로 부여잡고, 이제성의 머리카락 속으로 손가락을 집어 휘감은 채, 내 입술과 입 맞춘 그 아름다운 입술로 이제성의 입술과 입술을 포개고 농밀한 키스를 주고받으며 엉켜 있다. 쿵- 쿵- 쿵........쿵............................쿵............................ 미치도록 뛰어대던 심장의 박동이 점점 그 속도가 더디어 간다. 마치 지옥의 나락 속으로 끝없이 추락 하듯이. “ 쿡............쿠쿡.............. ” 반쯤 열린 문 사이로 등을 기댄 채 쓰러져 내린다. 얼굴 한쪽으로는 어두운 그늘이, 다른 한쪽으로 길게 드리워진 햇빛에 녹아 들 듯이 기묘한 웃음을 흘리고 있다. 큭... 결국........ 그렇지.... 그렇고 말고...... 이민영..... 뭘 기대한거냐?? 대체 뭘...? 덜덜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들어 폴더를 연다. 힙합음악으로 요란스럽게 장식된 컬러링 소리가 한참을 들려오다가 낮게 침체되어 있는 진연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 전화 끊을 때는 언제고- 이............ “ 언제 할 거냐? ” 진연준의 말을 끊으며 차가운 목소리로 묻는다. - 뭘-? “ 언제 죽일 거냐고- ” - 아- 하- 크큭- 기다려- 곧- 해 줄 테니깐......... 어제의 슬픈 진연준의 눈빛이 떠오른다. 눈을 감는다. 그냥 감아 버린다. “ 계획 변경이다- 이제성......... 그 새끼만 죽여- ” 입술 끝이 비튼다. 핸드폰에 울리듯 내 목소리가 들려온다. 눈을 뜬다. 굳게 감았던 눈을 부릅뜨며 차갑게 웃음을 흘린다. 형을 닮은 이제성이 처참하게 죽는 모습을 본다면 네 죽은 심장이 어떻게 조각나는지 내 두 눈으로 톡톡히 봐줄 테니깐.. 그럴 테니깐 채민준....... 내 심장을 찢어발긴 만큼 네 심장도 찢어 발겨주겠다. 일그러지고 비틀린 웃음을 흘리며 차갑게 앞을 바라보는 내 시야 사이로 어둡게 그늘진 한쪽 눈이 눈물로 맺혀 온다. 알 수 없는 그 눈물이 어두운 그늘 진 뺨을 타고 흐른다. 빛을 받은 한쪽 입술 끝은 묘하게도 유쾌한 웃음을 건 채. 삐에로 가면을 쓴 이민영은 그렇게 웃는다.. 한 쪽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느끼지도 못한 채......... * * * 아침 일찍 일어나 다린 교복셔츠를 몸에 걸치고 단추 하나 하나를 잠그는 손끝이 떨린다. 비릿하게 웃음을 흘리며 무표정하게 거울 속의 나 자신을 들여다본다. 길게 눈앞을 찌르는 앞 머리카락이 음침하게 얼굴 절반을 가리고 있다. 방금 감은 덕택에 물기를 머금고 있는 머리카락을 한쪽 손으로 쓸어 넘기며 다른 한쪽 손으로 단추를 다 잠그고 넥타이까지 맨 후 거울 옆쪽에 자리잡고 있는 서랍장 안의 서랍을 뒤진다. 서랍 안에 가위와 그 밖의 약봉지들이 뒤섞여 있다. 가위를 집어들고 다시 거울 앞에 선다. 웃음이 흐른다. 지겹도록 흐르는 비릿한 웃음에 묘하게 일그러진 얼굴 형상을 만들어 낸다. 서랍장 위에 구겨지듯 올려져 있는 담배 갑을 들어 올려 손으로 쳐내자 담배 한 개비가 올라온다. 담배 필터에 입술을 맞물리고 싸구려 300원 짜리 라이터에 불을 당기며 담배 끝에 댄다. 붉게 타오르는 담배 끝을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뜬다. 가위 양날을 벌려 앞 머리카락을 잡고 잘라낸다. 머리카락 잘려 나가는 서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묘하게 입술 끝이 비틀린다. 녀석과 닮아 버린 미소. 짧게 잘려나간 앞머리 사이로 가려져 있던 두터운 눈덩이가 들어 난다. 쌍꺼풀 없는 작은 눈을 더욱 좁히며 거울 속 나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내가 어떻게 웃었더라-? 아무리 웃음을 흘리려 해도 얼굴은 일그러지고 만다. 마치 지옥에서 올라온 악귀와도 같이 추악하고 잔인한 얼굴이다. 들쭉날쭉한 모양으로 잘려 나간 앞 머리카락을 가위로 다듬듯이 잘라내며 들어 난 얼굴을 무표정하게 한참을 바라 보다 시선을 내려 방바닥에 떨어져 내린 머리카락 잔해를 물끄러미 치울 생각 없이 물끄러미 바라본다. 쾨쾨한 방 공기에 숨이 막힐 듯 하다. 눈썹 끝을 치켜올리며 거울 반대편에 있는 창가 쪽으로 걸어나가 창문을 열어 재낀다. 차가운 공기와 바람이 방금 자른 머리카락을 스친다. 붉게 색을 머금은 단풍잎과 낙엽들이 거리를 장식하고 있다. 쓰레기 같이 고물 자동차가 파킹 되어있는 주차장 가운데로 유난히 고급스럽게 잘빠진 은회색 스포츠카가 세워져 있어 눈에 확 뜨인다. 자동차 관련 잡지에서 본 기억이 난다. 메르세데스 벤츠 CLK-GTR. 200억을 호가하는 가격이라며 침을 튀겨가며 붉게 상기된 얼굴로 잡지를 들이밀던 수영이 녀석의 얼굴이 떠오른다. 하도 많이 떠들어데며 보여준 덕택에 이름까지 똑똑히 기억이 나 버렸다는 자체에 피식 웃음이 흐른다. 그런 것 외에도 어디서인가 많이 본 기억이 나 웃던 인상에서 조금 일그러진다. 어지럽게 돌아가는 머리 속에 진연준의 얼굴이 떠오른다. 제길.... 진연준과 함께 바다를 가던 날 탔던 차와 같은 것임을 깨달으며 얼굴이 찌푸려진다. 눈살을 찌푸리며 몸을 돌려 가방을 메며 현관문을 열고 문을 닫는다. 열쇠를 꺼내 문을 잠근 후, 빠른 걸음 거리로 계단을 내려가고 있다. 구식 아파트인 덕택에 엘리베이터가 없기 때문에 걸어 내려가는 시간이 꽤 걸리고 만다. 아파트 계단에서 몇 분을 소모하고 내려가 진연준의 차가 세워진 주차장까지 성큼성큼 걸어 가 스포츠카 앞에 선다.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빼내 튕겨 내자, 스포츠카 문이 위로 올라가며 진연준이 운전대에 앉은 채 눈 꼬리를 내리며 싱긋 웃는 얼굴로 손을 들어올린다. " 여어- 달링- 머리 자른 건가? 흐음- " 눈살을 찌푸리며 진연준을 향해 차갑게 입을 연다. " 여긴 웬일이냐? " " 아- 웬일이긴- 달링 모시러 왔지- " 능글능글한 웃음을 흘리며 눈 꼬리를 내려 웃는 꼴이 짜증스러워 몸을 돌려 앞으로 걸어간다. " 씨발- 존나 튕기네- " 진연준의 웃음기 섞이면서도 유난히 짜증이 묻어나는 목소리와 함께, 곧장 내 쪽으로 달려와 어깨를 움켜잡고 거칠게 돌려세워 이를 가는 듯한 목소리로 외친다. " 이민영- 힘 빼지 말고 타라- 씨발- 좋은 말 할 때- 난 네 새끼 협력자야!! " 학교 전통의 대대로 바뀌지 않고 입어 오는 일본식 검은 교복을 입고 있는 진연준의 교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검은 교복과 삐쭉삐쭉 뻗은 회색 머리카락이 묘하게 잘 어울린다. 검은빛도 흰빛도 될 수 없는 혼탁한 회색이 마치 진연준 본인과 너무나도 잘 어울린 다는 생각이 들자 인조 적인 회색 눈동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피식 웃어 버린다. " 그렇군- 협력자지... " 일그러진 미소를 흘리며 스포츠카를 향해 걸어간다. 어깨에 닿았던 진연준의 따스한 온기를 뿌리치듯이 걷어 내며, 운전석 옆자리에 털썩 앉아, 진연준을 바라본다. 허해 보이는 미소를 흘리며 진연준이 눈꼬리를 더욱 내리며 건들거리며 걸어온다. 운전석에 앉아 무언가를 누르자 위로 올라가 있던 차 문이 닫힌다. 시동을 걸며 힐끔 나를 바라보는 진연준의 그 지겹게 처진 눈꼬리와 느물거리게 웃고 있는 면상을 마주 바라봐 준다. 인조 적인 회색 눈동자가 묘하게 이채를 띄우고 있다. 입 꼬리를 말아 올리며 생글거리는 낯짝이 가깝게 다가온다. 눈을 감아 버린다. 그래. 그 정도의 봉사 정도 못하겠어-? 그 새낄 죽여준다는데... 나의 뺨을 감싸는 따스한 진연준의 체온에 소름이 돋는다. 두꺼운 나의 눈두덩이를 어루만지는 녀석의 손길에 눈을 감으며 무표정하게 죽은 듯이 자동차 시트 등받이에 몸을 기댄다. " 흐음- 어린 시절 기억이 떠오르는데-? 이 가느다란 눈으로 눈웃음을 지을 때면 더 없이 빛나 보였었지... " 나의 눈두덩이를 더듬는 손끝이 떨려 온다. " 그래. 그 눈은 항상 다른 곳을 향해 있었지. 난 항상 네 새끼 뒤통수만 바라봐야 했고 말이야- " 감고 있던 눈을 뜬다. 인조 적인 회색 눈동자 안, 동공의 검은 색채가 점점 짙어지며 커져 나간다. 따스한 체온이 걷히며, 몸을 돌린 진연준이 거칠게 운전을 시작한다. 차는 달리고, 차 창 밖 나뭇가지에서 떨어져 내리는 나뭇잎을 무표정하게 바라본다. 바람결에 따라 춤추듯 팔랑거리며 서서히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는 그 모양이 묘하게도 내 모습과도 같다. 밑바닥. 저 밑바닥으로 추락하고 있는 말리 비틀어진 낙엽이 마치 환상처럼 나의 모습으로 바뀌어 비춘다. 말라비틀어져 피를 흩뿌리는 육신은 바람결에 따라 춤추듯 살랑거리며 바닥을 향해 추락해 나가고 있다. 손끝으로 그 모양을 더듬는다. 차가운 유리의 표면 느낌. 자조적인 웃음이 세어 나온다. 차는 달리고 있다. 저 밑바닥 끝까지 그 끝도 없는 길을 향해 진연준과 나는 달려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고개를 돌려 진연준의 얼굴을 바라본다. 아침 햇살이 부셔져 나가는 회색 머리카락, 녀석의 옆얼굴이 하얗게 부셔져 나가듯이 희뿌옇게 보인다. 그 모양을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바라보고 있다. 한참을 달리던 차가 멈추고 진연준이 고개를 돌려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연다. " 이봐- 달링- 도착이야- " 무표정하게 입을 달싹이던 녀석이 말을 끝마치자 눈꼬리를 내리며 느물거리는 미소를 보인다. 무표정하게 진연준을 바라보자, 내 쪽으로 몸을 기운 녀석의 입술이 나의 뺨에 와 닿는다. 정말로 죽어버린 건지 심장은 아무런 박동도 느낄 수 없다. 한쪽 손으로 나의 뺨을 어루만지며 진연준이 속삭인다. " 머리 자른 모습 킥- 예뻐- 내 눈엔 참 예쁘다 이민영. " " ......................... " " 달링...... 킥.... 곧 보자고- " 눈꼬리를 내리며 웃는 낯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문이 위로 올라가고 교문 앞에 줄줄이 들어서는 아이들의 물결을 들여다보며 자리에서 일어 선다. 가방을 다시 치켜 메자, 내려가는 문 사이로 눈꼬리를 내리며 느물거리는 미소를 흘리던 진연준이 손으로 입을 맞 추는 모양을 하며 후- 하고 부는 제스처를 마지막으로 문이 닫힌다. 고급스럽게 잘 빠진 메르세데스 벤츠를 무 감정하게 바라본다. 교문을 들어서며 흘끗 뒤를 바라보는 시선들이 이 스포츠카를 향해 꽂히고 있음을 느낀다. 뜨거운 눈빛 세례를 받으며 일그러진 표정으로 나를 훑는 수많은 아이들의 시선을 받으며 교문을 향해 걸어간다. 교실까지 걸어가는 내내 받아 내는 녀석들의 시선 속의 경멸을 읽는다. 제발. 빌어먹을 날 멸시해 달라고. 비틀린 웃음을 흘리며 그렇게 되뇌인다. 제발 내 목을 졸라 날 막아 달라고. 씨발. 나도 내 자신이 너무 두려워. 짧게 잘려 나간 앞 머리카락을 흐트러트리며 얼굴을 구긴다. 빌어먹을. 덜덜 떨리는 손으로 교실 문을 밀어낸다. 드르륵- 하고 오래된 나무와 나무사이의 마찰에서 생기는 불협화음이 귓가를 때린다. 아침 자습으로 열심이던 아이들의 시선이 문 쪽으로 향한다. 수 백 개의 검은 눈동자들 나에게로 꽂힌다. 하나 같이 더러운 이물질을 바라보듯이 일그러지는 그들의 표정을 바라보며 냉소적인 웃음이 흐른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나갈 때마다 교실바닥을 울리는 나의 발자국 소리가 신경에 거슬린다. 쓰레기통 옆쪽에 구겨져 있는, 의자 없이 덜컹거리는 책상은 분명 나의 책상이다. 책상에 가방을 던지듯 올려놓고 덜컹거리는 책상 위에 그냥 앉는다. 곳곳에서 나지막한 욕설이 흘러나오고 있다. 책상 위에 걸터앉아 욕설을 내뱉으며 시선을 돌려 다시 문제집으로 향하는 아이들의 뒤통수를 무표정하게 바라본다. 가방을 뒤적거려 게이 포르노 잡지를 꺼내 한 장 한 장 넘겨본다. 문이 열리고 들어서던 아이들의 욕설이 커다랗게 들려 오고 짜증스럽게 문제집을 넘기는 소리가 교실을 울리고 있다. 그래. 난 네 새끼들이 비웃는 호모새끼다. 마음껏 욕 하라구. 모든 것들이 그저 웃기기만 하다. 사람들의 반응. 이 세상의 이념들. 모두 엿 먹으라지. 돌아 버린 내 눈앞에 그 아무 것도 나를 막아서는 사회적 통념도, 이성적인 사고도 들어서지 않는다. 내 머릿속엔 오직 채민준 그 새끼 하나 뿐 이였고, 내 심장 속은 오직 채민준 그 씹새 하나 뿐 이였다. 지금은 내 머리고, 내 심장이고 모두 그 새끼를 파멸시킬 생각 하나 뿐이지. 나란 새낀 빌어먹게도 어쨌거나 모두 그 새끼 하나 만으로 가득 차 터져 버렸다 이 말이다. 나체로 성기를 들어내며 외설스러운 자세로 서 있는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 이.... 새끼가... 해괴망측하게!!! " 째지는 듯한 목소리와 함께 벌컥 열린 문 사이로 뛰어 온 수영이 녀석이 잡지를 빼앗으며 소리친다. 그런 수영이 녀석을 아무 말 없이 무표정하게 바라보자 어이없다는 시선으로 얼굴을 붉힌 채 소리 친다. " 이.. 이런 건 집에서나 봐!!! 이 변태 새끼야!! " 잡지를 빼앗아 자기 가방에 집어넣는 수영이 녀석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앞문이 열리면서 오랜만에 보는 담임이 들어선다. 후다닥 자기 자리로 돌아가 앉는 수영이 녀석의 날쌘 동작을 바라보고 있는데 담임이 짜증스러운 호통 소리가 들린다. " 이민영이- 너 이 새끼-!!! 지금 당장 책상 위에서 안 내려 와-? " 무표정하게 무감각한 목소리로 멍하게 선생을 바라보며 대꾸해 준다. " 의자가 없어서 말입니다. " " 의자가 없다고 책상에 앉았단 말이냐?? 어디서 배운 버르장머리야-? 이 새끼 너 이리 나와- " 지휘봉으로 오라는 손짓을 하며 붉어진 얼굴로 소리치는 담임을 바라보며 책상에서 내려와 어기적어기적 교단 위로 걸어 올라간다. 담임이 교탁 위에 뒹굴던 출석부를 들어 뺨을 내리친다. 힘없이 몸이 옆으로 뒹군다. 헐어버렸던 입안이 다시 터져 비릿한 향이 입안을 맴돈다. 교단 위에 쓰러진 몸을 느릿하게 일으킨다. 악에 받힌 듯한 욕설을 퍼부어 대는 담임의 툭 튀어나온 뱃살이 흥분에 따라 들썩이고 있는 모양을 멍- 하니 바라보고만 있다. 한참을 욕설을 지껄이던 담임이 겨우 흥분을 가라앉히며 몇 번 헛기침을 하더니, 고개를 돌려 아이들을 향해 소리친다. " 좀 특이한 케이스지만 이번에 우리 반에 전학을 오게 됐다. " 아이들의 수근거리는 소리가 교실을 울린다. 어기적 일어선 나는 칠판 쪽에 몸을 기대며 무표정하게 담임의 옆모습에서, 앞 문 유리 사이로 비추는 낯익은 삐죽 삐죽한 회 색 머리카락을 발견한 나의 얼굴에 조금의 경련이 일어난다. 설마....... 칠판에 등을 기대며 고개를 돌려 다시 그 쪽을 바라본다. 앞문이 열리고 눈 꼬리를 내려 능글거리는 미소로 들어서는 진. 연. 준 의 모습을 바라보며 일그러진 얼굴이 더욱 깊게 일그러져 나간다. 어떻게 된 일 이지? 머릿속이 어지럽게 돌아가고 있다. 교단 위로 올라선 진연준이 능글 거리는 낯으로 나를 바라보며 더욱 눈 꼬리를 내려 웃는다. 씨발!!!! 검은 일본식 교복을 입고 건들거리며 교탁 앞으로 다가서 웃음을 흘리며 입을 연다. " 뭐- 대충 내 소문은 들었겠지만, 알아서 기어 주길 바란다. " 생글거리는 낯짝으로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잘도 떠들어 대고 있다. 담임은 정말 못 들은 건지 안 들은 척 하는 건지 몇 번 헛기침만 하고 있다. 진연준의 시선이 아이들에게서 나에게로 향한다. " 가만히 있으려고 했는데요- "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담임을 향해 몸을 돌려 삐딱한 자세로 교복 바지에 손을 꽂고 선생의 앞으로 가깝게 다가선 다. 유들거리며 웃는 낯으로 한참을 내 얼굴을 바라보는 눈동자가 묘하게 빛이 난다. 나에게로 계속 시선을 둔 채 진연준이 건들거리며 선생의 얼굴에 얼굴을 가까이 대며 속삭인다. " 학교 잘리기 싫으면 당신도 알아서 기어- 앞으로 이민영이 손끝 하나 건드렸다간 학교 생활 오래 못 할 거란 각오 정도는 해두고 말이야-키킥- 알아 들으셨나-? 선생-? " 담임의 안색이 하얗게 질려 나간다. 담임의 뒤쪽에 서 있는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진연준의 회색 눈동자를 바라보며 더 없는 역겨움을 느낀다. 가볍게 속삭이는 녀석의 목소리가 아이들에게는 들리지 않았지만 가까이 있는 나에게는 똑똑히 들려 왔다. 역겹기 그지없다. 자신의 아비의 권력과 돈을 등에 엎고 자신이 잘난 양 떠들어 대고 있는 진연준에 대한 환멸을 느끼며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려버린다. 하얗게 질린 얼굴로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가누고 있던 담임이 교탁을 신경질적으로 쳐내며 자습들 하라고 호통치며 급하게 교실을 빠져나간다. 교실의 공기는 싸늘하게 얼어붙어 조용하기만 하다. 당황한 표정으로 문제집을 넘기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몸에 중심을 잡고 교단에서 내려선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나갈 때마다 등뒤로 따갑게 쏟아지는 진연준의 시선이 메스껍다. 등뒤로 나를 따라 서는 진연준이 나의 어깨를 잡고 돌린다. 돌아간 고개로 눈을 치켜 뜨며 진연준을 바라보자 눈꼬리를 더욱 내리며 역겨운 미소를 흘리며 입을 연다. " 달링- 내가 반갑지 않은 거야??- 네 계획에 제대로 장단을 맞춰 주려고 이렇게 전학까지 왔는데 조금은 반가워하는 척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 " 닥쳐- " 짜증스럽게 진연준의 위아래를 훑어보며 어깨를 잡고 있는 손을 쳐내며 교실 뒷문을 열어 재낀다. 등뒤로 나를 따라 오는 진연준의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자습시간으로 열심인 교실 덕택에 복도 역시 쥐죽은듯이 조용하기만 하다. 복도 끝 쪽을 향해 걷는 나의 발자국 소리와 나의 뒤를 건들거리며 따라 오는 진연준의 발자국 소리만이 조용한 공간 속에 울리고 있다. " 그만 따라와- 꺼져- " 나직하게 속삭인다. 조용한 복도에 나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조용하게 울려 퍼진다. " 킥- 이민영- 지금 네 새끼가 복종해야 할 상대가 누구일까-? 응-? " 음산하게 울려 퍼지는 진연준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다. 유들 거리는 웃는 낯짝과 어울리지 않은 독기 어린 시선으로 나의 등을 쏘아보고 있다. 무표정하게 그런 진연준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려 다시 걸어 나간다. 복도 끝 쪽에 자리잡힌 계단을 타고 성큼 성큼 걸어 올라가 옥상 문을 열어 재낀다. 열려진 옥상 문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에 눈을 더욱 가늘게 뜬다. 옥상 한가운데 한가로이 놓여져 있는 책상과 의자가 보인다. 그 위로 책상 위로 발을 올려놓고 의자에 등의 기대 헤드폰을 꽂은 채 나른한 자세로 앉아 있는 녀석을 발견한다. 칠흑 같은 검은 머리카락이 바람결에 따라 춤추듯이 흩날린다. 날카로운 턱 선이 바람결에 따라 보였다가 다시 감추어진다. 무슨 음악을 듣고 있는 거냐? 채민준............. 죽어 버렸던 심장이 쿵 쿵 거리며 뜀박질을 시작한다. 서글픈 미소가 흐른다. 웃음이 흐르는 얼굴은 일그러져 나간다. 나른한 자세로 앉아 있는 녀석을 쐬고 있는 햇빛이 녀석을 녹여 버릴 듯 하다. 햇빛에 부셔져, 그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눈을 내리 감고 음악을 듣고 있는 네 녀석의 머리 속에 무엇이 들었을까? 심장이 뛰어 오른다. 거칠게 숨을 몰아 내쉬며 햇빛을 받으며 녀석이 입에 물고 있는 담배 끝에서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가 바람결에 따라 흩어져 내린다. 나의 머리통을 끌어안으며 커다란 손이 그 모습을 서서히 가린다. 붉은 시야 속으로 차갑게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귀에 대고 속삭이는 진연준의 목소리를 듣는다. " 보지마- " " ........... " " 이민영... 네 새끼 눈을 도려내고 싶다. " " 크큭......... " 웃음이 흐른다. 그래. 네 새끼가 왜 그렇게 징그럽게 싫은지 알겠다. 넌 나와 닮았으니깐. 진연준 네 얼굴을 볼 때면 또 다른 나를 보는 것 같으니깐. 소름 돋도록 네가 싫어. 넌 나와 닮았거든. " 창고에 의자 가지러 온 거다. 손 치워- " 무감정한 목소리로 진연준의 손을 쳐내며 창고 쪽으로 다가간다. 녹이 슨 창고 문을 열어 재끼는 손이 가느다랗게 떨려 온다. 캄캄하게 어두운 창고 안에 이리저리 썩은 내를 풍키며 헝클어지듯 쑤셔 박혀 있는 책상과 의자들을 바라본다. 머리 속으로 예전 기억이 스치고 지나간다. 녀석의 처음 본 날의 기억. 내 어미와 나를 도와준 녀석의 모습. 그날 본 녀석의 그 질척하고도 검은 눈동자가 내 심장에 박혀 조각칼로 쑤셔 넣은 것처럼 항상 피를 흘리며 지워지지 않았다. 내 심장 속에서. 내 뇌에서. 넌 항상 내 심장 속에서 숨을 쉬고 내 뇌 속에서 살아 움직였어. 그래. 마치 환상처럼. 쾨쾨한 썩은 내와 어지럽게 주위를 떠다니는 먼지사이로 아무렇게나 박혀 있는 의자를 빼내어 들고 뒤를 돌아 슨다. 등뒤에 서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진연준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의자를 들고 걸어가자 옥상으로 들어서는 문 사이로 무언가를 멍 하니 서있다. 무엇을 보고 있는 걸까? 일그러진 울 듯한 표정으로. 의자를 들고 진연준을 바라보고 서 있자 진연준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진다. 그리고 얼굴을 한 손으로 가린 채 혼자 무엇이 그리 웃긴지 어깨를 들썩이며 웃는다. 입구 앞에 서서 진연준을 마주 본다. 어깨를 들썩이며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웃던 녀석이 속삭인다. " 이민영....... " 의자를 들고 진연준의 옆을 스치고 지나간다. " 꼭 죽일 거다.... 꼭.... 꼭.. 죽일 거야.. 크큭......크크크..... " 계단을 내려선다. 뒤를 돌아 진연준의 등을 바라본다. 격렬하게 웃음을 흘리며 들썩이는 진연준의 어깨를 바라본다. 다시 한 계단 더 내려가 고개를 돌린다. 빛 속에 부셔져 나가듯 나른하게 광합성을 즐기고 있는 녀석의 칠흑 같은 검은 머리카락이, 녀석의 조각 같은 옆얼굴이 작고 멀리 시야에 비춘다. 무슨 음악을 듣고 있을까? 이제성 그 자식을 위한 레퀴엠-? 큭. 아니면 죽어 버린 네 새끼 심장을 위한 레퀴엠인가...?? 역시 「Rainbow eyes」 일까? 고개를 돌려 계단을 따라 걸어 내려간다. 웃음이 흐른다. 메마른 웃음이 거칠게 입 밖으로 흘러나온다. 정말 우린 미쳐 버린 거야. 이게 사랑인지 집착인지 이제 정말 모호해져 버렸거든. 단단히 우린 미쳤어. 복도를 따라 걷는 내내 흘러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한다. 한숨과도 같은 메마른 웃음을 건조하게 흘려내며 교실로 들어선다. 내 자리였던 자리에 마치 처음부터 자기 자리였다는 듯이 자리잡고 앉아 문제집을 넘기고 있는 이제성의 모습이 보인다. 쓰레기통 옆에 자리잡고 있는 책상을 창가 쪽 자리로 끌어와 앉는다. 이윽고 문이 열리고 책상과 의자를 끌어안은 채 무테 안경을 쓴 한 녀석이 다가와 두리번거리다가 내 책상 옆에 책상을 가져다 놓고 툴툴거리며 교실을 빠져나간다. 멍- 한 표정으로 책상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 자습 시간이 끝나고 쉬는 시간인지 우당탕거리며 장난을 치던 아이들의 소란스러움이 뚝 끊긴다. 책상 표면을 쓸어 내리며 미지근한 책상의 감촉을 느끼며 뺨을 댄다. 흰빛 이였지만 한번도 빨지 않은 덕택에 누렇게 때가 탄 커튼이 바람결에 따라 나풀거린다. 눈을 감고 음악을 흥얼거린다. Radiohead의 Creep가사 한 부분을 흥얼거린다. " but i'm a creep 하지만 난 흉물스러운 놈이야. i'm a wierdo 미친놈이라구 what the hell am i doing here 빌어먹을, 도대체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거지? i don't belong here 난 이런덴 어울리지도 않는 놈인데 말야. i don't care if it hurts 상처가 된다고 해도 상관없어. i wanna have control 자제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i wanna perfect body 멋진 놈이 되고 싶어. i wanna perfect soul 속알맹이까지 완벽한 놈이 되고 싶다구. i want you to notice when i'm not around 내가 없을때 네가 그걸 눈치챌 수 있다면 좋겠어. you're so fucking special 넌 정말이지 환장하게 특별한 존재야. i wish i was special 나도 그래봤으면 좋겠어. but im a creep 하지만 난 변태같은 놈이야. im a wierdo 미친놈이라구 " 감은 눈을 뜨며 창가에 비추는 진연준을 바라본다. 어느새 옆자리에 앉아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는 녀석의 손가락을, 유리창에 비춘 진연준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 머릿속이 어지럽다. 토할 것만 같다. 나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는 진연준의 손을 끌어 잡아 나의 한쪽 뺨에 댄다. 따스한 온기가 뺨을 타고 전해진다. 유리창에 비추인 진연준이 눈 꼬리를 내리며 웃는다. 그래. 너는 나. 나는 너. 우린 둘 다 미치도록 흉물스러운 놈들이야. 진연준이 고개를 숙여 나의 귀에 그 입술을 가져다 댄다. " 이민영............ " " ................ " " 어쩌다......널 사랑하게 됐을까? " " ............... " " 정말 난 평범한 놈 이였는데....... 킥.. " " ............... " " 이게............. 아니였는데.... " 녀석의 입술이 나의 턱을 입 맞춘다. 고요한 교실 분위기 속에 아이들의 숨소리만이 주위를 울린다. 턱에서 뺨으로 그리고 입술에 녀석의 입술이 포개진다. 나는 거부하지 않는다. 조용히 녀석의 입술에 내 입술을 부비고 녀석의 혀를 받아들인다. 엉켜 나가는 녀석과 나의 혀와 뒤섞이는 질척한 침 소리가 교실을 울린다. 드르륵- 교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감은 눈을 뜬다. 유리창에 비춘 풍경은, 책상에 뺨을 댄 자세로 내 쪽으로 고갤 기울여 키스를 나누는 진연준의 감은 긴 속눈썹 그리고 열려진 뒷문에 서 있는 녀석의 얼굴. 눈을 감아 버린다. 깊고 깊게 키스를 나눈다. 나의 머리카락 속으로 손가락을 집어넣은 채 치열과 입천장 입안 모든 곳을 훑는다. 혀와 혀가 얽히고 진연준의 침을 삼킨다. 진연준의 입술을 핥고 빨아들이며 살짝 깨물기도 한다. 나의 아랫입술을 빨아 살짝 깨물던 진연준이 마지막으로 베이비 키스를 하며 입술을 뗀다. 아이들의 붉어진 얼굴이 시야로 들어온다. 웃음이 흐른다. 도전적으로 녀석을 바라보며 일어선다. 다른 때와 다르게 그 어느 욕설도 들려 오지 않는다. 권력이란 건 이런 걸까? 진연준의 침을 삼킨 속이 좋지 않다. 뒷문에 옆쪽에 교복 바지에 손을 꽂은 채 나른한 자세로 나와 진연준을 바라보고 있는 녀석의 옆을 스치고 지나친다. 녀석의 향기가 순간이지만 깊게 내 코끝을 자극한다. 심장이 쿵- 하고 밑으로 떨어지는 기분이다. 씨발. 빌어먹을... 욕설과 함께 묘한 흥분 감이 치밀음과 동시에 손목을 압박하는 아픔에 비명을 지르며 몸이 휙- 하고 돌려져 나간다. 나의 손목을 움켜잡은 녀석의 손을 바라본다. 그 예쁜 손가락 마디마디 하나 하나가 눈에서 나의 뇌로 그리고 심장으로 전해 들어가 미치도록 심장이 뛰어 오르고 있다. 녀석의 얼굴을 바라본다. 그 날카로운 턱 선을. 그 예쁘고 붉은 입술을. 그 아름다운 검은 눈동자를. 긴 속눈썹을 내리 깔은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그 검은 눈동자가 무 감정한 유리알처럼 투명하게 그 검은빛을 내며 번뜩이고 있다. 손목이 찢어질 듯 아프데 압박해 온다. 무표정하게 한참을 내 손목을 움켜잡고 있던 녀석이 손을 놓아 버리며 내 어깨를 치고 지나친다. 몸이 옆으로 기울어진 자세로 빨갛게 달아 오른 손목을 들여다보고 다시 녀석을 바라본다. 등을 돌려 이제성이 있는 자리로 걸어가고 있다. 녀석의 등을 바라보며 일그러진 웃음을 흘리며 몸을 돌린다. 눈물샘 역시 미쳐 버렸는지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 내려 복도로 떨어져 내린다. 비틀거리며 힘없이 화장실로 걸어간다. 한참을 용변을 보고 있던 아이들이 나의 등장으로 몸을 움츠리며 급하게 자크를 올린다. 화장실 제일 끝 칸 문을 열고 변기 위에 걸터앉는다. 주머니를 뒤적거려 담배 갑을 빼낸다. 담배 갑을 둘러싸고 있는 비닐을 어루만지며 눈을 감는다. 심장이 떨려 오고, 붉게 달아오른 손목이 후끈거린다.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어 불을 붙인다. 폐부 속까지 깊게 빨아들이며 피식 웃음을 흘린다. 어떻게 죽여줄까? 응? 이제성.. 이제성이 죽는 모습을 그 녀석에게 어떻게 보여 줄까?? 머리 속이 어지럽다. 미친 질투란 감정에. 미친 증오감에 휩싸여 몸이 떨려 온다. 정말 난 흉물스러운 놈이야.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고개를 숙이자, 눈물이 뚝- 하고 화장실 바닥으로 떨어져 내린다. 계속 울고 있었던 걸까?? 왜? 머릿속이 어지럽다. 다시 한번 담배 연기를 내 품으며 고개를 든다. 문이 열리고 내 앞에 마주 서 있는 녀석의 환영이 보인다. 나른한 자세로 교복 바지에 손을 꽂은 채 삐딱하게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그 검은 눈동자가 차갑게 질척거려 나의 심장을 녹여 버릴 것만 같다. 담배 연기가 어지럽게 녀석의 주위를 훑듯이 어른거린다. 나의 목을 움켜잡아 화장실 끝 칸 벽면에 밀어붙이는 그 환영에 의해 손에 잡고 있던 담배가 바닥에 툭- 떨어진다. 바닥에서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에 다가오는 환영의 얼굴이 더욱 희미한 느낌이다. 얼굴 가까이 다가오는 그 검고 질척한 눈동자에 빨려 들어 갈 듯 바라보며 눈을 크게 부릅뜬다. " 빌어먹을...... " 으르렁거리듯 낮게 속삭이는 목소리가 차갑다. 환영이 아니다. 녀석이다.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그 붉게 달싹이는 입술을 바라보며 침을 삼킨다. 알 수 없는 혼란스러움이 가득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던 녀석이 머리카락을 움켜잡으며 우악스럽게 나의 턱을 잡아 나의 입술을 포악스럽게 물어뜯는다. 희미한 웃음이 흘러나온다. 대체 뭐냐. 채민준. 대체 넌 뭐야? 물어뜯긴 입술이 녀석의 이에 찢어져 피가 흐른다. 입술을 떼고 나의 피로 물든 녀석의 입술을 바라보며 숨을 몰아 쉰다. 더 이상 너의 이런 모습에 속지 않아. 채민준. 난 너의 이제성을 죽일 거다. 그래 네 새끼가 파멸하는 모습을 봐주겠어. 아직도 울고 있는 건가? 눈물이 뜨겁게 뺨을 적신다. " 채민준..... " " ............. " " 네 마음은........대체 뭐냐......? " 피로 물든 녀석의 입술 끝이 비틀린다. " 죽어버린..... 그 심장 안에 이제성이 있는 거냐.....? " 아니라고 말해. 제발 아니라고 말해. 내 입술을 물어뜯듯이 내 심장까지 물어뜯지 말아. 제발.. 날 막아 줘. 제발. 날 돌아봐 줘. 그 심장이 죽어버려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해. 제발... 제발...... 입술이 떨린다. 눈물이 턱에 매달려 바닥으로 떨어져 내린다. 녀석의 비틀린 입술 끝이 달싹인다. " 이민영... " 내 이름을 속삭이듯 부르는 핏물로 얼룩져 달싹이는 입술이 묘하게 색스럽다. 쿵쿵거리는 심장의 박동에 따라 뇌까지 쿵쿵거리며 뛰는 기분이다. " 쿡............ " 나른한 표정으로 입술 끝을 비튼다. 알수 없는 눈빛으로 질척이던 검은 눈동자는 기다란 속눈썹에 가리워 그 빛을 가린다. 칠흑 같은 검은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녀석이 눈을 감는다. " 대답해........대답하라고!!! 대답....해..........줘......... " 녀석의 목을 움켜잡는다. 녀석의 차가운 체온에 정말 이 녀석은 죽어버린 시체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녀석의 목을 움켜잡지는 못하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목을 어루만진다. 가슴이 터질 듯이 아파 와 마칠 것만 같다. 악에 바친 목소리로 울부짖고 있다. 눈물이 자꾸만 흘러 뺨을 적셔 내린다. 질질 짜기나 하고 씨발. 이런 병신같은 찌질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데 자꾸만 눈물이 흐른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내 심장을 적셔 내듯이 뜨겁다. 눈을 감고 자조적인 웃음을 흘리던 녀석이 눈을 뜬다. 녀석의 검은 눈이. 그 검은 눈이 차갑게 빛난다. 입술 끝을 비튼 채 나의 턱을 움켜잡고 밀쳐 낸다. 녀석의 목을 부여잡고 있던 몸이 기우뚱거리며 화장실 벽으로 부딪쳐 쓰러져 내린다. 화장실에 고여 있던 구정물에 엉덩이를 박고 녀석을 올려다본다. 녀석이 발을 올려 나의 머리통을 걷어찬다. 머리통이 뒤흔들린다. 바닥에 머리를 쳐 박고 덜덜 떨리는 심장의 아픔에 몸을 떨며, 골통을 울리는 아픔에 인상을 찌푸리며 눈을 뜬다. 입술에서 흐르는 핏물을 손목으로 닦아낸다. 아물어 가던 손등의 상처 부위가 후끈거린다. 교복 바지에 손을 꽂으며 한 손으로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삐딱히 서서 나의 모습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녀석이 담배에 불을 붙이며 시니컬하게 속삭인다. " 그 딴 개소리에 대답해야 하나-? " 담배를 빨아들이며 눈썹 끝을 치켜올린다. " 몇 번 관심 가져 준 걸 가지고 너무 앞질러 나가는 거 아닌가? " 몸을 굽혀 나의 머리카락을 움켜잡고 들어올린다. 내내 울리던 골통의 아픔과 함께 두피가 찢어지는 아픔에 입술을 악문다. 심장이 갈기갈기 조각나 머릿속이 뜨겁다. " 네 새끼가 나에게 뭐라도 된다고 그런 개소리에 대답해줘야 할 의무라도 있나-? " 입술 끝을 비튼 채 담배 연기를 후 하고 얼굴에 내 품으며 나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녀석이 잡고 있던 나의 머리채를 놓아 버리며 몸을 돌린다. 띵동- 띵동- 수업을 알리는 종소리가 화장실을 울린다. 나른한 걸음 거리로 걸어 나가는 녀석의 등을 바라보며 주먹으로 바닥을 내리치며 소리친다. " 채민준!!! 네 새끼에게 난 ................................................ " 음산하게 소리치는 나의 목소리가 화장실을 울린다. 나른한 걸음 거리로 걸어나가는 녀석의 주위로 담배연기만이 공기 중에 흩날린다. " 난.... 난................... " 눈물이 흘러 앞을 가리운다. 딱쟁이 져있던 주먹 마디마디가 뜯겨져 피가 흐른다.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다. 녀석에게 있어 난 .... 난....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다. 친구라는 이름으로도 서 있을 수가 없다. 친구라는 이름으로도... 그냥... 단지..같이 옆에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행복했었는데... 그냥 가슴에 묻고 살아야 했던 걸까.... 그런 걸까... 채민준... 심장이 뜯겨져 피가 흐르는 기분이다. 멍멍해진 눈앞으로, 온 몸이 힘없이 축 쳐져 쓰러져 내린다. 화장실 바닥에 얼굴을 박고 오열을 하고 있다. " 난..... 난... 흐윽...........난.......................... " 짧아진 앞 머리카락이 화장실에 고인 물로 적셔져 나간다. 누구보다도 나에게 가장 잘 어울린 장소에서 나 자신의 실체를 발견해 버리고 만다. 난.... 난............... 난.............. 아무 것도............ 아니니깐..... 화장실을 울리는 멀어져 가는 발자국 소리와 멀어져 가는 담배연기의 여운을 남긴 채. 눈물과 화장실 구정물을 섞어 낸다. 네 심장에도. 네 기억에도. 네 뇌 속에도. 나란 놈은 없어. 중요 한 건 그거였다. 그래 아주 중요한 것을 망각하고 있었어. 네 새끼 심장 안에 이제성이 있든 말든 가장 중요한 건 네 심장 속에 나란 놈은 존재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 이유 불문하고 네 새끼에게 있어 난 아무 것도 아무 존재도 아니란 것. 그것을... 잊고 있었군.. 가슴이 아파 숨이 가쁘다. 몇 번을 심호흡해도 이 발작적인 가슴 아픔에 미쳐 버릴 것만 같다. 가슴을 부여잡고 화장실을 뒹군다. 동물처럼 소리 지르며 울부짖는다. 아파..... 너무 아파 죽어 버릴 것만 같다. 쿵 쿵 거리던 심장의 박동이 느릿해져만 간다. 온 몸이 뜨거운 열기로 돌아 버린다. 울부짖는 나의 몸을 누군가 들어올린다. 실신할 듯 덜덜 떨며 숨을 몰아 내쉰다. 아파서 소리를 내지른다. 갑작스러운 화장실의 소란 때문인지 수업 도중이던 선생 몇몇이 나에게로 달려오는 모습이 마치 느린 화면 재생하듯이 보이고 있다. 몸이 붕 떠오르는 느낌이 들지만 머릿속이 째지는 듯한 아픔과 심장의 고통 때문에 아무 것도 의식이 되지 않는다. 동물처럼 뒹굴며 놔 달라고 소리친다. " 그만.......... 그만.... 이민영........... " 울 듯한 목소리로 누군가가 속삭인다. 눈을 감고 소리친다. " 아아아아악- 아파.................. 아....파........... 아악.... " 따스한 온기로 누군가가 나를 감싸 안는다. 나는 그 존재를 외면하고 그 온기를 외면한다. 가슴이 터져 죽어 버릴 것만 같아 눈앞이 흐릿하다. " 으윽.....욱........ 흑.............. 난............... " 무언가에 꼭 끌어 안겨 몸을 뒤튼다. " 이 새끼 건드리지마... " 나를 껴안은 채 누군가를 향해 소리치는 울 듯 하면서도 독기 어린 목소리와 그 독한 향수냄새. 뿌연 눈앞으로 떨떠름한 표정으로 어색하게 서 있는 선생들의 모습을 바라본다. 가슴속이 찢어 뭉그러지는 아픔에 온 몸이 뜨겁게 열이 난다. 덜덜 떨리는 나의 몸을 더욱 거세게 끌어안는 느낌에 그 품속에 얼굴을 박고 흐느낀다. " 너...무... 아파............나.... 여기가... 너무 아파....씹... " 썩어 뭉그러진 심장부위를 어루만지듯 가슴 쪽을 우그러 잡으며 소리친다. " 그만... 쉿... 알았어... " 내 귓가에 속삭이는 나직한 목소리에 눈을 뜬다. 나를 끌어안고 내려다보는 진연준의 회색 눈동자가 차갑게 빛나고 있다. " 알았어 이민영....... " 다짐하는 듯한 얼굴로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녀석의 눈 꼬리가 밑으로 내려간다. 진정시키듯 나를 감싸 안고 등을 두드려 준다. 숨을 헐떡이며 몸을 뒤트는 나의 뺨을 어루만지며 진연준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눈 꼬리에 매달려 있는 눈물을 닦아 낸다. 냄새나는 화장실에서 격한 감정의 억눌러 내리며 눈을 내리 감는다. 긴 한숨이 입안에서 새어 나온다. 한숨을 앗아가듯이 진연준의 입술이 내 입술을 맞추어 온다. 찢어진 입술의 감촉이 욱신거린다. 진연준과 입술을 포개고 감은 눈을 뜬다. 진연준의 등뒤로 아까 떨어 졌던 담배가 담배 재를 길게 남긴 채 바닥을 뒹굴고 있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 담배의 모습을 뿌옇게 만든다. 역겨움과 당혹스러운 표정이 역력한 선생들은 아무런 제지 없이 뒤로 물러서고 있다. 눈을 내리 감으며 눈 꼬리를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의 감촉을 느끼며 몸을 축 늘어뜨린다. 아파...... 너무 아파.... 죽어 버리고 싶어.... 입술을 떼며 속삭이는 진연준의 목소리가 달콤하다. " 이제 곧 이야... 이민영....... " 등을 토닥이며 다시 한번 속삭인다. " 곧 이제성이 숨통을 끊어줄게- " * * * " 저 새끼들 반에서 키스했다며-? " " 씨발- 순호가 저 새끼들 반이잖아-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더라- 듣기로는 화장실에서 선생들 앞에서 그 짓하고 있었데.. 진연준 저 새끼 꽤 빵빵한 새끼라 그렇게 안 봤는데- 우왓- 씨발 토 나와- 호모라니... 존나 미친년들- " 나의 어깨에 손을 걸치고 있던 진연준의 손이 어느새 복도 귀퉁이를 스치고 지나가며 속닥이는 키 큰 녀석의 뒷목을 잡아 창가 쪽으로 밀어붙인다. 깜짝 놀란 표정으로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진연준을 내려다보는 녀석의 인상이 구겨진다. 진연준이 눈 꼬리를 내리며 웃는 낯으로 키 큰 녀석의 목을 우그러잡고 속삭이듯 외친다. " 키킥- 씨바알- 청각이 좋은 것도 존나 안 좋은 거야- 그치? " 옆에 같이 서서 험담하던 녀석 한 명이 놀란 얼굴로 굳은 채 서 있는다. 목을 우악스럽게 잡힌 채 얼굴을 붉히며 식은땀을 흘리고 있다. " 왜 떨고 그래- 씹새꺄- 키킥- 무섭냐-? 나보다 키도 큰 새끼가 존나 쫄았네- 왜 쫄고 그래- 그 주둥이로 떠들 배짱 정도 있었으면 나랑 맞짱 뜰 배짱 정도는 가지고 주둥이 놀린 거 아니였냐-? " 덜덜 떨던 녀석이 얼굴을 붉힌 채 소리친다. " 미... 미안하다... " " 킥- 이 새끼 존나- 골 때리네.... 미안하다라.... " 실실 웃는 낯으로 우악스럽게 목을 조르며 나이프를 빼내 떨고 있는 녀석의 아랫부분에 가져다 대며 진연준이 말한다. " 아- 이게 무서운 건가-? 왜- 고자 될까봐 존나 떨리냐-? 내가 말한게 그쪽까지 전파가 안 된 건가? 내 앞에서 알아서 기라고 말이야.. 그렇게 말한 거 같은데 네 친구 새끼는 그 것 까지는 말 안 해줬나 보군- 내가 다니던 전 학교에서 소문이 여기까지는 안 돌았나 보네- 응? " " 미... 미안해.. 용서해 줘... 잘... 잘못 했다!! " " 키킥- " 진연준의 눈 꼬리가 더욱 내려가며 칼로 깊숙이 허벅지를 찔러 누른다. 핏방울이 교복바지를 적셔 나가는 장면을 바라보며 인상을 구기며 진연준을 바라본다. 굳이 말리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는다. 마치 혼이 빠져나간 것처럼 멍한 상태로 그 모습을 방관하고 있을 뿐이다. 가슴을 억누르던 심장이 썩어 죽어 버린 건지 아무런 느낌도, 아무런 생각도 머물지 않는다. 양호실에 누워 있다 수업 다 끝났다며 양호실에 들어 온 진연준의 품에 안기는 자세로 복도를 걷고 있을 때도 아무런 느낌도 아무런 거부감도 들지 않았다. 멍하게 서서 진연준의 뒤통수만을 바라본다. " 이봐- " 옆에서 덜덜 떨던 녀석 한 명이 굳은 자세로 서 있는다. " 네 친구 새끼 고자 만들기 싫으면 3반에 이제성. 그 씹새끼 당장 끌고 와- " 덜덜 떨던 녀석이 급하게 복도를 따라 뛰어 간다. 이제성 이라는 이름에 죽어버렸다 생각했던 심장이 쿵쿵거리며 다시 뛰기 시작한다. 머리까지 물에 젖은 것처럼 식은땀에 젖어 있는 키 큰 녀석이 눈물을 줄줄 흘리며 몸을 덜덜 떨고 있고 그 모습을 재미있다는 듯이 웃으며 바라보고 있는 진연준 역시 제 정상으로 보이지 않았다. 선생은 어딨는 건지 아니면 진연준과 연관이 되어 일부로 방관하는 건지 나타나지도 않는다. 이 상황을 경악에 가득 찬 표정으로 복도를 지나치던 녀석들이 교무실 쪽으로 뛰어 들어 가고 있다. 어깨를 짓누르는 가방을 고쳐 메며 입술 끝을 비튼다. 헉헉거리며 뛰어오는 아까 녀석이 새파란 낯짝으로 소리 친다. " 헉... 헉.. .. 교실에도 없고.... 벌써... 집에 가 버린 거 같아..... 헉....... " 무표정하게 교복 바지에 손을 꽂으며 다음 진연준의 행동을 기다리듯이 등을 바라본다. 남자치고는 가녀린 체구이나 꽤나 날렵해 보였다. " 아- 그래-? 그럼 어쩔 수 없는 건가-? " 허벅지에 박아 둔 나이프를 빼내 울고 있는 녀석의 아랫부분을 향해 겨눈다. 주위에 구경하고 있던 아이들의 경악에 가까운 소리에 복도는 아수라장으로 변해 버린다. " ..... 그만!!! 그만 해!!! " 식은땀으로 범벅이 되어 복도 끝 쪽에서 뛰어 오고 있는 형체는 분명히 이제성 이다. 부드러워 보이는 갈색 빛 머리카락이 복도를 내 비추는 빛에 받아 윤기 있게 찰랑거리고 있다. 하얗게 질려 버린 얼굴로 헉헉거리며 내 코앞으로 다가선다. " 헉... 헉.... 여기 왔다구.......!! " 웃음이 흐른다. 나이프를 거두어 낸 진연준이 키 큰 녀석을 밀쳐 낸다. 복도에 힘없이 쓰러져 내린 녀석이 엉엉 커다랗게 울음을 터뜨린다.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본 진연준의 눈 꼬리가 더욱 내려간다. " 무.. 무슨 짓들이야.... 너희들... 미쳤어?? " 헐떡이는 숨을 몰아 내쉬며 이제성이 소리친다. 흐르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피식 웃어 버리며 이제성을 마주 보며 중얼거린다. " 아마도............ " 그래.. 아마도.. 미쳐 버린 거 같아. 이 미친 사랑의 열병에 단단히 돌아 버린 것만 같다. 사랑인지 집착인지 애증인지 씨발 이제 모호해져 버렸지만 결론은 단단히 돌아 버린게 확실하긴 해. 네 새낄 보기만 해도 구토가 올라와. 네 새끼 눈깔을 꼭 뽑아 버리고 말거야. 채민준 그 새끼 앞에서. 왜 나를 바라봐 주지 않았는지 그 잘못을 톡톡히 보여 주겠어. 그런데 씨발 참 웃기게도. 왜 자꾸만 빌어먹을 눈물이 흐르는 걸까? 메마른 눈가를 적시며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른다. 빌어먹을. 이제성의 목을 부여잡는다. 아까 채민준 그 새끼 목을 부여잡았을 때만 해도 조금이라도 힘을 주면 부셔져 버릴까봐. 환상의 신기루처럼 사그라져 버릴까봐 힘도 주지 못했는데 말이야. 이제성의 목 줄기를 부여잡은 손에 힘을 주며 웃음을 흘린다. 벌어진 입가에 짜디짠 눈물 맛이 느껴졌다. " 크윽.... 이민영....... 넌.... 정말.............. 인간 쓰레기야....... " " 알아- " 웃어주며 상냥하게 대꾸해 준다. 그래. 정말 난 제 정상이 아닌 더러운 인간 쓰레기야. 이제성 네 새끼가 말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지. 목 줄기를 움켜잡힌 채 눈을 커다랗게 소리치는 이제성의 눈을 바라본다. 맑고 투명한 그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다. 이제성의 아름다운 눈동자를 바라보며 싸늘한 미소를 흘리며 녀석의 머리채를 부여잡고 복부에 주먹을 꽂는다. 꽤 둔탁한 소리와 함께 힘없이 축 늘어진다. 등치도 있는 주제에 꽤 약골인 모양이다. 힘없이 쓰러져 내리는 이제성을 진연준이 받아 들어 어깨에 걸쳐 낸다. 가녀린 체구치고는 꽤 힘이 센 편인 것 같다. 흐르는 눈물을 훔쳐내며 진연준을 바라보자 빠른 걸음 거리로 복도 끝을 향해 걸어 나가고 있다. 교무실에서 선생들이 파랗게 질린 낯 색으로 복도를 따라 뛰는 걸음 거리로 다가오는 모습이 보인다. 진연준의 걸음 거리가 점점 빨라지며 뛰어 가고 있다. 그 흐름에 맞추어 빨라지던 내 걸음 거리 역시 뛰는 것으로 바뀌어 나가고 있다. 등 뒤로 선생들의 고함 소리가 들려온다. 아이들의 유난히 놀란 얼굴로 진연준과 나 사이를 비켜 준다. 쿵쾅거리며 계단을 내려서고, 겨울을 향해 치닫는 가을의 쌀쌀한 찬바람을 느끼며 학교 밖을 빠져 나가 운동장을 가로질러 달려 나간다. 핸드폰으로 누군가에게 급하게 전화를 걸던 진연준이 나의 손을 낚아채듯 잡는다. 진연준의 따스한 손아귀에 잡혀 끌려 나가 듯 달려간다. 교문 앞에 어느새 대기되어 있는 대형 승용차에 문을 열어 이제성을 떨구듯 싣고 문을 닫는다. 그 모양을 의아스럽게 바라보는 나의 손을 이 끌고 차도 건너편으로 뛰어 가 뒷골목으로 들어선다. 뒷골목 지하 주차장에 파킹되어 있는 진연준의 메르세데스 벤츠에 올라타기까지 일은 순식간에 진행 되고 있었다. 유난히 난폭하게 차를 몰고 있는 진연준의 옆얼굴을 바라본다. 눈 꼬리를 내리며 징글징글한 웃음을 흘리고 있다. 아까 전의 키 큰 녀석의 허벅지를 찌르던 모습이 떠오른다. 웃음이 비실비실 흐른다. 자조적인 웃음을 흘리며 창문에 이마를 박는다. 힘없이 쓰러진 이제성의 얼굴이 떠오르며 빠르게 녀석의 얼굴로 전환되어 간다. 화를 낼까?? 날 죽이려 할지도 몰라. 채민준 그 녀석이라면. 분명 그렇겠지. 왜 난 네 새끼를 생각하면 심장이 멍멍해지고 온 몸이 뜨겁게 열이 오르는지 모르겠어. 씨발- 왜 난 널 생각하면 머리가 돌아버려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네 새끼가 나에게 준 건 심장이 썩어 내리는 고통뿐인데 말이야.... 왜 난 아직도 네가 그리운 걸까. 왜 난 아직도 네 새끼에게 그렇게 목이 말라 있는 걸까? 네 숨결 하나 나 네 눈길 하나하나에 심장이 지끈 지끈 거린 다구. 빌어먹을 채민준...... 채민준... 채민준... 이름 하나 하나 되뇌일 때마다 심장이 다 뻐근 거린다. " 이민영- " 내 이름을 나직이 부르며 히죽히죽 웃는 얼굴로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는 진연준과 마주 본다. 알 수 없는 묘한 눈빛의 진연준을 바라보며 비틀린 웃음이 흘러 나왔다. 유난히 해맑아 보이는 미소를 보이며 진연준이 한쪽 손으로 내 머리를 잡고 끈다. 힘없이 녀석의 팔 안에 머리를 끌려가며 눈을 감았다. 진연준의 진한 향수냄새가, 녀석의 체취에 머리 속이 더욱더 어지럽게 헝클어져 나가는 것 같다. 한 쪽 손으로 핸들을 잡고 거칠게 운전하며 내 귓가에 입술을 댄다. 따스한 진연준의 입김에 짜증스럽게 감은 눈에 질끈 힘을 줬다. " 이민영... 이민영... 나의 이민영.... " 귓가로 닿는 진연준의 따스한 숨결에 소름이 돋는다. 끌어 오르는 거부감에 고개를 조금 돌려냈다. " 달링.... 기억 나-? 마지막 피날레를 위해 숨겨 놨다는 이야기 말이야- " 서늘한 목소리로 시니컬하게 속삭이는 진연준의 말에 머릿속이 더욱 복잡해진다. " 그 날 전화를 끊어 버려서 말해 주지 못했던 거 같은데... 킥- " 나의 뺨을 어루만지며 귓불을 깨문다. 질끈 감은 눈을 뜬다.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는 차와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는 진연준의 회색 눈동자. 눈 꼬리를 내리며 흘리는 그 진한 미소. " 뭐- 지금 중요한 말은 아닌 거 같군-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이제성이를 채민준 그 새끼 앞에서 어떻게 해 줄까 정도의 이야기가 맞겠는걸-? " 피날레의 말 따윈 궁금하지 않았다. 묘하게 심장이 두근거리며 알 수 없는 쾌감에 몸이 떨려 온다. 창가에 비춘 나의 얼굴을 확인했다. 눈을 빛내며 묘하게 즐거운 표정으로 웃음을 흘리고 있다. 창문에 비추어진 위로 치켜 올라간 입 꼬리를 어루만지며 입을 열었다. " 채민준......채민준 그 새끼에게 선택하게 만들어- " 비릿한 웃음이 자꾸만 흘러 나왔다.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큭큭 거리며 웃음을 흘리며 진연준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 " 이제성과 나 사이에 누굴 죽게 할지- " " 푸흡..... 큭....크크큭.......... " 긴 침묵과 함께 갑작스럽게 터져 나온 진연준의 웃음소리가 차 안을 맴 돈다. 나를 더욱 끌어당기자 갑작스러운 힘에 녀석의 목에 얼굴을 박은 자세로 녀석의 진한 향수 냄새에 고개를 돌려 버렸다. 허파에 구멍이라도 난 사람처럼 미친 듯이 웃어 재끼던 진연준의 쳐진 눈 꼬리로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다. 눈물을 닦아내며 진연준의 시선이 나에게로 돌아간다. " 멋진데- 이민영- 너무 멋져서 순간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씨발- 존나 멋지다 이민영 너란 새낀- 정말 당해낼 재간이 없구만- " " 이제성을 선택하면 망설임 없이 날 죽여 버려- " 녀석의 팔을 풀어 헤치며 무료하게 창가에 뺨을 댄 자세로 멍 하게 앞을 바라본다. 도로를 타고 달리는 차 번호판에서 도로 중앙에 길게 그려져 있는 흰 선. 불을 빛내며 번뜩이는 신호등까지. 그리고 항상 그 풍경 끝에는 빌어먹을 얼굴이 그려져 있다. 그립고 그리워 가슴에 사무쳐 썩어 버린 얼굴 하나가 있다. " 씨발............ " 끼이익- 타이어가 터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갑작스러운 차의 급정거와 동시에 몸이 강력한 속도로 앞으로 기운다. 앞 유리창에 머리통을 처박기도 전에 나의 멱살을 잡고 자신의 쪽으로 끌어 올리는 진연준의 표정이 일그러져 있다. 빵아아아앙----- !! 따라오던 뒤차의 급정거 소리와 함께 길게 늘어지는 클락션 소리가 고막을 찢어발기듯 귓가에 파고든다. " 이봐- 달링- " 일그러진 얼굴과 묘하게 쳐진 눈 꼬리로 기묘하게 웃는 듯한 표정을 연출한 진연준이 떨리는 목소리로 나직하게 말한다. " 내가 널 사랑한다 해서 널 죽이지 못할 거란 착각은 하지마- " " 알고 있다- " 희미하게 웃음을 흘리며 멱살을 움켜잡고 있는 진연준의 손을 감쌌다. 진연준의 따스한 온기가 손바닥을 타고 전해져 심장에 와 닿았다. " 결국 내 손으로 네 심장에 칼을 박으라 이 말인 거군- " 진연준의 손을 더욱 꽉 잡았다. 부들부들 떨리어 오는 녀석의 손을 부여잡고 맥없이 웃음을 흘리며 올려다보며 속삭인다. " 그래- 정확히 내 심장에 - 칼을 박아- " 가슴이 서늘해져 온다. 정말 녀석이 이제성을 선택한다면 일말의 망설임 없이 내 심장에 칼을 박고 울어주지 않겠어? 난 정말 빌어먹게도 잔인한 놈이니깐 아무도 날 위해 울어주지 않을거야. 그럴 거다. 그러니까 그런 나를 위해 진연준 네가 울어 주지 않겠어? 비릿한 웃음이 흘리며 진연준의 뺨을 대고 어루만졌다. 진연준의 인조적인 회색 눈은 알 수 없는 감정으로 격렬하게 빛나 오르고 있었다. " 그리고... 날 위해 울어 주지 않겠어-? " " 미친놈- " 속삭이듯이 흘러나오는 진연준의 한마디에 웃음이 났다. 그거만큼 날 표현할 만한 게 없을지도 몰라. 난 정말 미친놈이 분명하니깐. 뜨겁게 달아 오른 진연준의 뺨에 나의 손바닥이 대어 버릴 것만 같다. 너무나도 뜨겁다. 그래서 더더욱 차가운 녀석의 체온이 떠오른다. 아마 내 뇌 주름 구석구석 어느 한곳 빠짐없이 채민준으로 가득 할지 몰라- 그래서 진연준 네 녀석이 들어 올 틈 따윈 애초에 없었는지도 모르지. 인정하듯 미소를 지으며 진연준의 뒤통수를 끌어안았다. " 대답해- " 줄지어 뒤따라오던 자동차들은 욕설과 함께 클락션을 요란하게 울려대며 옆으로 지나쳐 간다. " 그러지.......네 심장에 칼이든 총알이든 박고 울어주겠다.......쿡... " 흔들리는 진연준의 웃음소리와 섞인 목소리를 들으며 입 꼬리를 치켜 올리며 웃음을 흘렸다. 눈물이 시야를 태울 듯 뜨겁게 차올랐다. " 그래도 나 혼자 죽진 않을 거야...... " 그래 바로 내가 사랑에 마지않던 그 입술로 이제성을 택하는 그 순간 내 손으로 이제성의 심장에 칼을 꽂을 테니까.... 눈앞의 모든 것도 나의 뇌 속도 태워버릴 것처럼 뜨거운 눈물이 뺨을 태우듯이 흘렀다. 뜨거워- 머릿속이 너무 뜨거워 제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그래. 정말 제정신을 차릴 수가 없어. * * * 주위를 둘러보았다. 섬은 고요했다. 어둑하게 몰아친 차가운 밤공기에 온 몸이 소름이 돋을 정도로 춥고 메마른 곳 이였다. 어둠 속에서 형형히 빛나는 진연준의 인조적인 회색 눈동자가 차갑게 빛을 내며 한 손으로 나의 어깨를 잡고 자신 쪽으로 끌며 주위를 훑고 있었다. 나는 그저 무표정하게 진연준의 품에 안긴 자세로 요트에서 내려 선착장에 발을 디뎠다. 울창하게 이루어진 대나무 숲 한가운대로 길이 뚫려 있었고 그 가운데 길을 타고 걸어가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꽤 맑은 공기 탓인지 깨끗한 하늘 가득 별이 쏟아질 것처럼 빛을 내며 섬을 비추고 있었다. 한국에 이런 섬이 있을 줄은 몰랐다는 생각을 하며 진연준을 바라보자 어깨를 으쓱하며 주머니를 뒤적거려 선글라스를 끼며 중얼 거렸다. " 내 소유의 섬이야- 꽤 멋지지 않나? 그 새끼랑 온 적이 있었지- 아마 이곳을 잘 알거다- 잊을 수 없는 장소 일 테니까- 키킥- 난 이 곳에 올 때는 선글라스를 끼는 버릇이 있거든- 꽤 어울리지? " 선글라스의 까만 알 때문인지 진연준의 쳐진 눈 꼬리는 보이지 않았다. 높은 콧대에 붉은 빛을 띄우는 입술 끝이 곡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유쾌하게 올라간 입 꼬리 사이로 하얗게 빛나는 이를 바라보며 머리 속이 어지러운 느낌 이였다. 달빛을 받아 회색 머리카락이 흰빛을 띠우고 있었다. 마치 마약을 하고 이 섬을 헤매는 것처럼 정신은 몽롱하다. 나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는 진연준의 따스한 체온에 알 수 없는 거부감조차 들었다. 하긴, 난 진연준을 처음 본 그 순간 이후로 단 한번도 이 녀석에게 거부감을 느끼지 않은 날이 있었던가? 난 진연준이라는 자체가 싫었다. 녀석의 장례식 날 웃고 있던 그 깊게 눈 꼬리를 내리며 웃던 서늘했던 미소가 머릿속을 맴돌고 놓아 주지 않았다. 마치 끝나지 않는 꿈속의 한 장면처럼. 말리 비틀어진 대나무 잎을 밟으며 버석거리는 소리가 듣기 싫게 신경을 자극했다. 한참을 걸어 선 눈앞에 대나무 숲을 둘러쌓고 있는 커다란 집이 보였다. 꽤 향토적이면서도 이색적인 느낌의 집이였다. 느물거리는 미소를 흘리며 나의 볼을 꼬집듯 잡으며 진연준이 귓가에 입술을 박고 속삭였다. " 어서 와- 이민영- 미친 섬으로 온 걸 환영 한다- " " ............... " 비릿한 미소가 흘렀다. 미쳐버린 섬이라.... 나와 어울리는 곳일지도 모르겠다. 계단을 타고 올라서 창호지로 발라진 동그란 모양의 미닫이문을 열었다. 겉으로 중국과 한국적인 느낌으로 혼합되어 있는 인테리와 다르게 안은 꽤나 서양식 이였다. 벽난로 안으로 가득 마른 장작을 태우며 일렁거리는 붉은 불덩이를 바라보며 그 가까운 곳으로 입이 막히고 손발을 포박당한 채 눈을 감고 누워 있는 교복차림 그대로의 이제성이 보였다. 입술 끝을 올리며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웃음을 흘렸다. " 큭... 후훗.....하....하하하하- " 커다란 공간 가득 나의 서늘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배를 움켜잡고 이제성의 몰골을 바라보며 웃었다. 미치도록 즐거운 장면의 하나였다. 잊지 않으려고 뇌 속에 새겨 넣듯이 바라봐 주었다. 그래. 이제성. 너의 죄가 무엇인 줄 알아? 내가 사랑하는 그 녀석이 널 바라보게 한 죄다. 날 미쳐 버리게 만든 죄야. 성큼 성큼 다가가 이제성의 코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내려다 봤다. 아직도 정신을 잃은 채 누워 있는 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제성의 머리카락을 움켜잡고 들어 올렸다. 힘없이 고개를 늘어뜨리며 내 손아귀에 따라 들어 올려 졌다. 긴 속눈썹을 내리깔고 한 없이 식은땀을 흘리며 누워 있었다. " 왜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는 거지-? " 고개를 돌려 진연준을 바라보며 묻자 진연준이 어깨를 위로 치켜 올리며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외쳤다. " 아- 친구를 시켜 마취주사 좀 놔 주라고 했거든- " 눈살을 찌푸리며 식은땀에 젖어 있는 이제성의 머리카락을 놓아 버렸다. 쿵- 하고 머리를 찍으며 이마가 찢겨져 나가 피가 흐르는데도 힘없이 바닥에 내동댕이쳐져 일어날 기미가 없어 보였다. " 친구-? " 눈썹 끝을 치켜 올리며 물었다. " 미안- 마침 친구 녀석이 이 섬에 놀러와 있다는 걸 깜박했지 뭐야- 키킥- 어쩔 수 없이 우리들의 잔치에 끼어들게 되어 버렸군- " 아까부터 뭐가 그렇게 즐거운 건지 연신 웃음을 흘리며 오버스러운 제스처를 취하며 몸을 돌리더니 쇼파에 누운 자세로 앉아 있는 한명의 어깨를 툭툭 치는 모습을 바라보며 그제 서야 이제성 외에 한명이 더 있다는 것을 깨닫고 더더욱 인상이 찌푸려졌다. 검은 비니 모자를 눌러쓰고 커다란 헤드폰을 한 채 음악을 들으며 고개를 까닥이던 한 녀석이 그제 서야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본다. 무표정한 얼굴에 꽤나 잘생긴 어디서나 확연히 눈에 뜨이는 타입 이였다. 나를 한번 바라본 녀석이 다시 눈을 감고 음악을 들으며 고개를 까닥인다. 주머니를 뒤적여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라이터를 꺼내 철컥이며 불을 붙였다. 이제성은 담배 냄새를 싫어했었다. 담배를 깊게 빨아들이고 찢겨진 이마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이제성의 얼굴에 대고 담배 연기를 후- 하고 내 뱉었다. 녀석의 형을 닮은 것이 죄일지도 모르지. 담배 연기에 눈살을 찌푸리며 무의식 속에서도 연신 콜록 이며 기침을 해대는 꼴을 바라보며 입술 끝이 비틀리고 가슴속 어딘가가 비틀려 비비꼬인 기분이 들었다. 입술 끝으로 담배를 물고 필터를 잘근 잘근 씹으며 눈썹을 치켜 올리고 고개를 뒤로 돌렸다. 의자 맞은편에 있는 유리 탁자 위로 다리를 올려놓고 음악을 듣고 있던 진연준의 친구 녀석이 무표정하고 서늘한 눈빛으로 나의 행동을 바라보고 있었다. 꽤나 큰 눈이 인상적 이여서 물끄러미 한참을 바라보고 있자 어느새 다가 선 진연준이 손으로 눈앞을 가리며 속삭인다. " 그만- 형민이 녀석 얼굴 뚫리 겠네- 그런 식으로 제발 날 좀 봐주면 안 될까 허니-? 응-? 네 녀석을 위해 직접 총대를 맨 이 불상한 중생을 말이야... " 뱀처럼 속삭이는 목소리가 귓가를 타고 소름을 전이 시켰다. 귓바퀴 쪽을 살짝 깨물며 진연준이 등에서 나를 안으며 낄낄거리고 있다. 소름과 함께 찾아온 짜증에 거칠게 진연준을 밀치며 몸을 돌려 이제성을 내려다보았다. 무의식중에서 눈물까지 흘리며 기침을 해대는 이제성의 입 사이로 침이 흐르고 있었다. 담배를 벽난로 쪽으로 튕겨 내고는 몸을 돌렸다. " 아- 소량의 엑스터시도 좀 먹여 놨지- 꽤 꿈속에서 즐거울 거야- " 미간에 와 닿는 차가운 감촉에 진연준을 바라보자 기묘한 미소를 흘리며 반질반질하게 윤이 흐르는 리볼버가 미간을 겨누고 있었다. 만화나 영화 같은 곳에서 러시아 룰렛 게임을 하는 장면이나 가끔 애니메이션에 킬러들이 들고 다니던 장면에 자주 등장하던 그 총기를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어디서 저런 물건을 구했는지 알 수 없다. 우리나라가 외국처럼 총기를 소지하고 다닌 다던가 가끔 총에 맞아 죽는 사고가 나는 것이 자연스러울 수 있는 나라가 아님을 되뇌이며 무표정한 얼굴로 총신을 잡아 가슴 쪽으로 끌어 내리며 입을 열었다. " 칼 대신 총인가-? 어디서 구했지? " " 킥- 무서워서 덜덜 떨어 줄 필요가 있다구- 난 이걸 구하느냐 꽤 힘들었거든- 그리고 달링- 난 굉장히 지금 화가 난 상태야- 지금 당장 네 새끼의 대갈통을 총으로 날려 버릴 만큼...!! " 유들한 미소를 흘리며 진연준의 입 꼬리가 위로 치켜 올라갔다. 들어나는 흰 이를 바라보며 마치 먹이를 노리는 사나운 짐승의 송곳니처럼 차갑고 날카로울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마치 그 이가 곧 내 목을 물어뜯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저절로 웃음이 흘렀다. 진연준이나 나나 단단히 미쳐 버린 상태가 분명했다. 이 섬이 우리를 더욱더 미치게 몰아가는지도 몰랐다. 총신을 손으로 잡고 가슴 쪽에 총구를 댄 채 한 손으로 진연준의 목을 끌어안아 입을 맞추었다. 내 대신 총대를 맨 불쌍한 중생을 어르고 달래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술을 맞대고 서로의 혀를 엉키며 타액을 주고받으며 눈을 떠 진연준 등 뒤로 헤드폰을 낀 채 무심한 표정으로 우리의 행위를 바라보고 있는 형민이라 불린 녀석을 바라보았다. 조금의 눈살이 찌푸려지고 미간에 약간의 주름이 잡히는 것이 보였다. 역겨울지도 모르겠다. 남자와 남자간의 행위가 충분히 역겹게 느껴질 테지. 그래서 저런 시선들 따위에 참고 참고 참았지. 이 세상의 이념 사상 모든 것에 반기를 든 행동일 테니까. 참고 또 참았다. 이 내 마음이 썩어 문드러지고 곪아서 치료가 되지 않도록 방치하며 외사랑에 가슴이 썩어 뭉그러져 내 뇌를 갉아 먹는 그런 동안에도 나는 참고 또 참았다. 그것이 내 사랑 법칙 이였다. 그것이 내가 녀석을 사랑하는 방식 이였다. 말없이 숨겨 묻어 버려야만 했던 벙어리 외사랑. 난 이미 나를 버렸고, 그것은 진연준 역시 마찬가지 인 것 같았다. 빌어먹을 외 사랑이 내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사랑이 우리를 미치게 만들었다. 빌어먹을 사랑 따위가-... 포개어진 입술을 떼어 내자 힌 줄기로 침이 이어졌다. 줄기를 타고 입술을 다시 포갠 진연준이 입술을 떼어내 나의 어깨를 살짝 밀며 쓰고 있는 선글라스를 위로 치켜 올리고 몸을 돌려 검은색 자켓 안 주머니에 총을 갈무리하고는 나의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머리 위로 얼굴을 박으며 실실거린다. 바지 주머니에 손을 꽂자 미지근하게 느껴지는 나이프의 손잡이 면이 매끄럽게 잡혀 왔다. 손잡이를 손끝으로 어루만지며 가슴 깊게 치밀어 오르는 쾌감에 몸을 떨며 미소를 지었다. 나의 미소에 맞은편에 앉아 있던 형민이란 녀석이 몸을 벌떡 일으키자 꽤 개성 있는 차림새에 눈이 갔다. 녀석은 나에게 시선을 맞추다가 고개를 돌리고는 2층 계단을 향해 올라 가 버린다. 킬킬거리며 웃던 진연준이 비어 버린 쇼파 쪽으로 걸어가 몸을 눕히며 탁자 위에 있는 담배 갑을 집어 들고 한 개비 빼어 입에 물고는 다시 나를 바라보며 유들거리는 미소를 흘렸다. 내가 지금 발을 디딨고 있는 공간이 늪처럼 저 밑바닥 끝과 같이 내 발목을 부여잡고 밑으로 끄는 기분이 들었다. 역한 기분에 고개를 돌리며 이제성을 내려다본다. 조금은 불쌍하군. 망가진 꼴이라니..... 이마에 난 찢긴 생채기가 그리 깊진 않았는지 곧 굳어 딱쟁이를 이루고 있었다. 경련을 일으키듯 덜덜거리며 침을 줄줄 흘리고 있는 꼬락서니가 영락없이 나의 즐거움을 배로 가져다주었지만 가슴 어느 한 구석 아래는 이상하리만치 기분이 좋지 않았다. 빌어먹게도 아이러니한 기분 이였다. 맞은편에서 담배 연기를 후- 내뱉으며 진연준이 입을 열었다. " 느낌으로 알고 있을 거다. 이제성이가 어디에 있을지- 채민준 그 새낀 여기로 찾아 올거야- 킥- 꽤 즐겁겠지? " 기묘하리만치 즐거우면서도 슬픈 느낌을 주는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였다. " 그래- " 이제성을 내려다보며 속삭이듯 외쳤다. 선글라스로 가리워진 진연준의 눈이 나를 바라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을 만큼 지겨운, 그 징그러운 눈 꼬리를 내리며 웃고 있겠지. 몸을 돌려 진연준에게서 등을 돌렸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등을 태울 듯한 시선이 느껴질 뿐 이였지만 그 시선을 무시 한 채 2층으로 향하는 나무 계단을 올라서자 2층은 꽤 단초로 왔다. 기묘하고 알 수 없고 매치가 되지 않는 인테리였다. 2 층 중앙 쪽에 위치되어 있는 테라스 사이로 달빛이 세어 들어와 투명하게 늘어져 있는 하얀 커튼 사이로 투영되어 바람결에 흔들리며 묘한 광경을 연출했다. 커튼을 젖히고 유리문을 밀어내자 테라스 난간 위로 등을 기대고 담배를 피우고 있는 형민이란 녀석이 보였다. 씌어진 모자 사이로 살짝 들어난 앞 머리카락이 달빛을 받아 결 좋게 윤이 났다. 희뿌연 담배 연기를 바라보며 문득 녀석의 눈빛이 떠올랐다. 울 듯한 눈빛. 누구의? 두통이 치밀었다. 관자놀이를 어루만지며 형민이란 녀석 앞에 마주서고 입을 열었다. " 이 섬을 떠나- " " ............... " 말없이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던 형민이란 녀석이 눈썹 끝을 치켜 올리며 무겁게 닫고 있던 입을 열었다. " 재미있어 보여서 구경 온 거 뿐, 끼어들 생각은 없어- 범죄자가 되고 싶진 않으니깐- 내 처신은 내가 알아서 한다- 신경 꺼 " 목에 걸려 있던 헤드폰을 다시 끼며 무표정한 일자 입매로 돌아 간다. " 쿡- 웃기는 군. 넌 벌써 이 일에 깊게 연관 되어 있다. 직접 이제성이에게 엑스터시와 마취까지 선사했잖아-? " 비웃듯이 피식 웃음을 흘리며 몸을 돌렸다. " 그만두는 게 좋을 거다- " 고개를 돌려 형민이란 녀석을 바라보자 녀석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잇는다. " 대충 네 얘긴 알고 있어- 연준인 어릴 적부터 정신과를 제 집 드나들 듯 하며 유년 시절을 보낸 놈이다. 그 녀석을 더 이상 괴롭히지 마- " " ................... " " 알고 있냐-? 연준이와 채민준, 그리고 그 녀석 형의 엿 먹을 인연은 정신과에서부터 얽히고 섥혔다. " 심장이 쿵 하고 밑바닥으로 곤두박질 쳤다. 눈을 내리감았다 뜨고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형민이란 놈을 바라 봤다. 어떻게 저 녀석까지 녀석도 그리고 그 녀석 형에 대해 알고 있는지에 대한 강한 의문이 머릿속을 휘몰아 쳤다. 대체 어디까지 알고 모르는 건지, 이 이외에도 내가 모르는 것을 얼마나 알고 있는 건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을 한 채 녀석이 말을 이었다. " 너희들 덕택에 그 녀석은 더 더욱 미쳐 가고 있어- 놔 줘- 지금 여기서 이 같지도 않은 게임을 끝내란 말이다. 네가 시작한 게임을 네 손으로 끝내- " 입 안이 바짝 말라갔다. 내가 시작한 게임이라- 그래. 이 지긋지긋한 이야기는 모두 나에게서부터 시작 되었다. 이 사랑도 이 이야기도. 이 마음도 모두 나에서부터 잘못되고 어긋났다. 형민이란 놈의 손에 끼워진 담배를 뺏듯이 손으로 채가 입에 물었다. 달짝지근한 초콜릿 맛이 느껴지는 필터가 입 안 가득 달달한 맛이 느껴졌다. 필터를 잇새로 깨물며 눈을 치켜뜨고 물었다. " 그 녀석 형을 알고 있나-? " " ............. " " 어떤 놈 이였지....? " 무표정하게 나를 바라보던 형민이란 녀석의 입가가 예쁜 곡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그 큰 눈이 예쁜 모양으로 눈웃음치며 예쁜 곡선을 그린다. " 궁금해? 그렇다면 여기에서 끝내- 다 말해주지..... " 가슴 저 밑바닥으로 쳐 박힌 심장이 지끈 거렸다. 알고 싶으면서도 알고 싶지 않았다. 녀석이 사랑한 존재 따위의 이야기를 듣느니 내 고막을 터뜨리리라. 형이라는 단어조차도 내 심장을 썩어 내리듯 심장 구석구석 쓰라리듯 아파 왔다. 형을 사랑한 녀석의 이야기 따위는 듣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알아야 할 것만 같았다. 허나, 이 게임을 끝 낼 수 없었다. 게임은 벌써 시작되었고 활시위는 이미 당겨졌다. 내 손에서 벗어난 활이 주위를 헤매다 내게로 다시 되 돌아와 내 심장을 박는다 하여도 이미 시작 된 것을 끝날 수 없었다. 이야기는 시작 됐고 통제 할 수 없을 정도의 깊고 깊은 저 수렁텅이 속 그 끝까지 나는 와 버렸다. 시간을 되돌리는 알 수 없는 힘으로. 내 미친 사랑으로. 모두들 미쳐 나가고 있었다. 담배를 깊게 빨아들이자 시원하면서도 가슴 가득 답답한 무언가의 감정이 휘몰아쳐 숨쉬기가 힘들 정도로 버거웠다. 눈을 감고 떴다. 내 두 눈앞에서 예쁜 웃음을 지으며 유혹하듯 모든 걸 끝내라고 말하는 진연준이 친구 녀석을 마주 바라보며 대답 대신 웃어 주었다. 녀석의 올라간 입 꼬리가 내려가며 일직선을 그리며 굳어진다. 그 큰 눈을 부릅뜨고 나를 바라보던 형민이란 녀석이 욕설을 중얼거리듯 내뱉는다. 다시 몸을 돌렸다. 심장이 콕콕 쑤시듯 지끈거리는 통증에 걸음걸이가 휘청 인다. " 밑에 꼴아 박혀 있는 녀석과 닮았더군.........그리고.... " 무감정하게 들려오던 목소리가 멈춘다. 눈앞에 어느새 올라 온 진연준이 달빛을 받으며 나의 뒤 쪽으로 서 있는 형민이란 녀석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다. 검은 선글라스 알이 달빛에 무감정하게 번뜩였다. 붉으스름한 입술 사이로 숨어 있던 희고 번뜩이는 이를 드러내며 소리친다. " 닥쳐- 거기까지야- 킥- 김형민이 이제 보니 존나 말 많은 새끼였구만- 크큭- 언제 그렇게 말이 많아 진 거지? 응??총알로 주둥이라도 뚫리고 싶은 모양이지-? " 형민이란 녀석은 그저 무뚝뚝한 표정으로 진연준을 바라 볼 뿐이다. 담배를 더욱 깊게 빨아들이며 눈을 감아 버렸다. 나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자신의 쪽으로 당기는 진연준의 어깨에 턱을 걸친다. 진한 진연준의 향수 냄새가 독소처럼 퍼져 내 온 몸을 지배해 간다. 머릿속은 어지럽고 구토감이 몰려 왔지만 담배 필터를 깨물며 감은 눈을 질끈 감는다. 진연준이 리볼버를 들고 있는 손을 내리는 옷의 사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흘러 버리는 듯한 속삭임이 들린다. " 영원히.... 벗어 날수 없어.... " 소름이 돋았지만 몸을 떼지 않았다. 그저 진연준의 어깨에 턱을 걸치고 나른한 동작으로 담배를 빼 들고 길게 담배 연기를 공중에 품어 낼 뿐이다. 나의 허리를 한손으로 으스러질 듯 끌어안으며 진연준의 얼굴이 내려와 내 목에 얼굴을 묻는다. 진연준의 숨결이 목에 닿아 등허리를 타고 온 몸이 소름 전이 되도록 굳어 나갔지만 입가에는 알 수 없는 미소가 감돈다. 지끈거리는 머리의 통증에 눈을 감았다 다시 뜬다. 언제 움직인 건지 진연준과 나 사이를 스쳐 지나가 버리는 형민이란 녀석은 헤드폰을 머리에 얹은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어 가 계단을 따라 내려가 버린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들었다. 마치 지금이라도 저 녀석의 어깨를 잡고 돌려 모든 이야기를 해 달라고 애원해야 하는 게 아닐까? 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너무 늦은 감이 들어 버린다. 담배 연기를 내 품으며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들 모두 어떻게 하든 영원히 벗어 날 수 없는 고리로 연결 된 것처럼, 반복되듯 이어져 있는 메비우스의 띠처럼. 벗어 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녀석에게서 진연준은 나에게서. 녀석은 형에게서..... 달빛이 나와 진연준을 비춘다. 그 빛조차도 나에겐 너무 눈이 부셔 눈을 가늘게 뜬다. " 시작인가-? " 웃음기 섞인 진연준의 목소리에 가늘게 떠진 눈을 뜨고 몸을 돌려 테라스 저 너머로 보이는 바깥 풍경을 바라본다. 짙푸른 어둠 속, 대나무 숲 사이로 나른한 동물의 움직임처럼 걸어오고 있는 검은 인형(人形)이 달빛을 비추고 있다. 손가락 사이에 걸쳐져 있던 담배가 툭- 하고 바닥을 향해 떨어져 내린다. 달려가 난간에 배를 기댄 자세로 떨어질듯 말듯 몸을 걸치고 몸을 숙인다. 달빛을 받으며 대나무 사이로 나른한 동작으로 걸어오는 '녀석'을 본다. 녀석의 한 손에 들려 있는 기다란 검 날이 달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저 검으로 누굴 찌르기 위해 오는 걸까?? 진연준이 아닌 자신의 손으로 내 심장에 직접 박아 주기라도 하려는 건지도 모르지. 네 녀석은 수 많은 행위와 말들로 몇 번이고 내 심장에 칼을 박아 왔으면서도 말이야... 심장이 쿵- 하고 내려서며 심장에 쐬기가 박힌 듯 따끔한 감각에 가슴을 들썩인다. 아- 채민준- 나의 채민준- 어둠 속에 아름다운 그 얼굴을 바라보며 침을 삼키고 가슴을 쓸어내린다. 손을 저 멀리 걸어 들어오는 녀석을 향해 뻗는다. 잡을 수 없는 먼 거리. 머나 먼 네 녀석과 나의 거리. 나의 목을 한 손으로 움켜잡고 자신 쪽으로 끈다. 총구 부근으로 이마에서 관자놀이 그리고 뺨으로 쓸어내리며 팔딱이는 나의 목을 겨눈다. 차가운 리볼버의 느낌에 왠지 웃음이 나온다. 웃음을 머금으며 진연준의 뺨을 쓸어 내렸다. 진연준의 품에 이끌리듯이 계단을 쿵쾅거리며 뛰어 내려와 쇼파에 앉아 있는 형민이란 녀석이 무표정하게 쓰러져 있는 이제성을 바라보다가 우리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진연준이 성큼 성큼 걸어가 바닥에 늘어져 있는 이제성의 머리채를 움켜잡고 들어 올린다. 힘없이 들어 올려진 이제성이 진연준의 품 안에서 늘어지듯이 안기어 있다. 이제성의 관자놀이에 총구를 겨누고 다른 한 손으로 나의 목 줄기를 움켜잡는 진연준의 따스한 체온에 가슴이 쓰리다. - 그만 두는 게 좋을 거다- ......... 머리 속으로 울리는 형민이란 녀석의 목소리가 귀 속을 후벼 파듯 맴 돈다. 그 무미건조한 음성이 귓가에서 심장으로 뇌 속에 벌레가 들어가듯 왱왱거리며 나를 놓아 주지 않는다. 그만-!!! 악을 쓰듯 눈을 부릅뜨고 아랫입술을 베어 물었다. 투둑- 하고 잇새로 찢겨진 아랫입술에 핏물이 베어 나온다. 다리를 꼰 자세로 관전하듯 바라보는 형민이란 녀석의 시선을 느낀다. 그 시선에 고개를 돌리고 중국식 문 모양의 빗장 문이 열린다. 타닥- 타닥- 밖에선 어느새 얇은 빗줄기가 내리는지 대나무에 떨어져 부딪히는 소리가 가깝게 들려온다. 귓전을 때리듯이 더욱 크게 들려오는 소리와 함께 열려진 문 사이로 번쩍이는 검 날을 바라보며 웃음을 흘린다. 입 꼬리를 타고 태어나 세상 처음 밝은 미소를 흘리며 속삭이듯 외친다. " Game Start- " 열려진 문 사이로 바람이 불어와 나의 몸을 훑는다. 그 차가운 감촉에 눈을 부릅뜨고 웃고 있는 얼굴로'녀석'을 쏘아 본다. 바람에 따라 흔들리며 부딪히는 대나무 소리와 타닥거리며 대나무에 떨어져 나는 요란한 빗소리가 귓가에 메아리친다. 붉은 칠을 한 문을 손으로 잡고 다른 한 손으로 달빛을 받아 번쩍이는 기다란 검 날을 바닥에 끌며 나른한 걸음 거리로 들어선다. 흑단 같은 검은 머리카락이 짙푸른 어둠을 머금고 차갑게 윤이 흐르고 있다. 그 머리카락에서 나던 향이 떠올라 온 몸이 흥분으로 끓어오른다. 날카로운 턱 선이 어둠 속에 유난히 도드라져 보인다. 녀석을 바라보는 그 한 순간 한 순간이 마지막만 같아서 목이 마르듯 훑어본다. 높은 콧대와 검고 검은 암흑 같은 눈동자가 질척이며 짙푸른 기를 돌며 빛나고 붉은 입술을 비틀어 올리고 있다. 차갑게 빛나 오르는 검은 눈이 칼날처럼 내 심장을 베어 거릴 것처럼 잔혹하게 빛나자, 떨리어 오는 나를 제압하듯 나의 목을 더욱 손아귀로 조이며 진연준이 슬프면서도 시니컬한 말투로 외친다. " 어서와 채민준. 보고 싶었다- 너무나..... 너무나도...... " 녀석의 무표정한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지는 것을 바라보며 심장이 양날이 달린 칼로 찢겨져 나가는 듯한 소름 돋는 아픔을 느끼며 찢겨져 피가 흐르는 쇳내 나는 입술을 더욱 깨문다. 나른한 동작으로 점점 가까이 녀석을 향해 다가오는 모습이 소름 돋도록 잔혹하며 아찔해 보였다. 바닥에 직- 직 거리며 끌리는 칼과 바닥의 마찰 소리가 요란하게 빗소리와 어울려 불협화음을 이루고 있다. 거친 숨을 몰아 내쉬며 녀석의 동작 하나 하나에 숨이 막힐 듯이 바라본다. 녀석의 희고 기다란 손가락에 감싸여 있는 검의 손잡이를 들어 올려 진연준 쪽으로 겨누자 직- 직- 거리는 소름 돋는 소리도 그와 함께 사라진다. " 자 봐. 이제부터가 재미있어 채민준. 자- 내 손 아귀에 지금 불쌍한 희생양 두 마리가 벌벌거리며 있다고- 재미있지 않아-? 난 항상 느끼는 건데- 네 새끼와는 정말 질긴 인연인 것 같다. 키키킥- 즐거워- 인생은 참 즐거운 거야? 그렇지? " " 내놔- 내걸 건드리는 건 질색이니깐... " 무표정한 얼굴로 그런 진연준을 무료하게 바라보며 시니컬한 어투로 외친다. 그 서늘하고 잔혹한 목소리가 차갑게 귓전을 메아리친다. 네 건 나였었잖아. 빌어먹을 새끼야 -!! 네 새끼 개새끼로 꼬리를 살랑이며 십 여 년을 함께 해 온건 이제성이 아닌 나란 말이다. 내가 네 거란 말이다!!! 그런데 넌 지금 누굴 바라보며 자기 거라고 소유욕을 들어내며 외치는 거냐- ? 여전히 이런 상황에서 저 무료한 표정은 가시지 않은 채 녀석을 바라보며 입가에 조소를 머금는다. 녀석의 눈은 이제성에게로만 온통 향해 있다. 옆에 있는 내 존재 따위는 보이지 않는 다는 듯이 녀석의 시선은 오직 이제성에게로만 꽂혀 떨어질 줄 모른다. 눈을 가늘게 뜨며 흘긋 이제성을 바라본다. 생채기 난 이마와 긴 속눈썹을 내리깔고 식은땀을 흘리며 늘어져 있는 모습은 역시 제 정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쓰라리게 아파오는 심장의 고통을 느끼면서도 아프게 바라보는 녀석의 시선이 이제성이 아닌 나에게로 향하는 거라고 상상한다. 단 한번이라도 네 녀석에게 그런 눈빛을 받아 보고 싶었다. 아프게 너무나도 아프게 녀석을 바라보지만 녀석의 시선은 조금도 나를 향해 머물지 않는다. 가슴이 아파서 돌아 버릴 것 같다. 미쳐버린 머릿속이 충돌하여 더더욱 어지럽고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다. " 흐음- 칼이 먼저일까? 총이 먼저 일까-? 네 새끼가 아무리 괴물 같은 녀석이라 해도 총의 속도는 따라 오지 못 할 테지- 조금이라도 그 칼을 움직였다간 이제성 머리통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을 테니까 말이야- 키킥- 자- 이제 시작할까? " 희극적인 웃음을 흘리며 진연준이 오버스럽게 몸을 움직이며 소리친다. 녀석은 그런 진연준의 행동에 미약하게 미간을 찌푸린다. " 난 이 게임에서 즐거운 게임 하나를 더 적용했다- 이 총에는 말이야- 총알이 단 한발 들어가 있어- 러시아 룰렛 게임은 알고 있겠지-? 물론 지금 네 새끼가 나에게 공격을 가 해 온다면 난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겨 이 새끼 대갈통을 날려 버릴 수도 있다- 지금 당긴 한 발이 총알이 들어 있는 한 발 일수도 있으니깐 말이야..... 더욱 더 스릴 있지? 키킥- " 입 꼬리를 올리며 웃음 짓던 진연준의 뜨거운 손이 내 뺨을 보듬어 내린다. 빌어먹을- 듣지 못한 게임 이야기에 놀라 짜증스럽게 눈썹 끝을 치켜 올리며 진연준을 바라보자 진연준이 귓가에 입술을 대고 속삭인다. " 더욱 더 즐거울 거다- 만끽하라고- 이민영... "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고개를 돌려 녀석을 바라본다. 검고 질척한 눈동자가 알 수 없는 감정으로 흔들리고 있다. 동요하는 녀석을 바라보며 묘한 쾌감이 들었다. 이상하리만치 진연준의 몸이 떨려 옴을 느끼고 있다. 비릿한 웃음을 흘리며 손가락으로 리볼버 가운데 부근의 원형 탄창을 돌린다. 드르륵- 소리와 함께 회전하던 탄창이 멈춘다. " 자- 정해라 채민준- " 진연준의 미묘한 떨림과 맞물린 서늘한 목소리에 몸을 굳힌다. 쿵쿵거리던 심장이 저릿하게 뜀박질을 해대고 있다. 힘없이 늘어져 있는 이제성을 바라보는 녀석의 시선에 가슴이 찢겨져 나간다. 얼마나 아파야 끝날 수 있을까 싶었어. 빌어먹을- 빌어먹을- 이제 끝낼 수 있을 거 같아. 널 향한 내 마음을... 끝 낼 수 있을 것만 같다. 네 녀석 말은 항상 독을 발라 놓은 칼끝처럼 차가워서 항상 그 칼날로 내 심장을 베어 버리고는 했지. 난 널 만난 이후로 단 한번도 편안히 눈을 감은 적이 없었다. 눈을 감으면 너의 환영이 날 사로잡아 날 유혹하고 날 고문했어. 난 어느새 너에게 미쳐 있었으니까. 독처럼 내 뇌 속에 파고들어 사라질 줄 몰랐어. 난... 이제 그만 해방 되고 싶다. 널 사랑하는 이 고통에서. 이 상황이 웃기면서도 가슴이 쓰렸다. 입가는 웃고 있는데 어느새 시야를 태울 듯 앞을 가리는 눈물이라는 액체가 내 뺨을 적시고 떨어져 내린다. 내 심장에 총알을 박고 내 눈을 파내고 내 귀를 도려내고 내 혀를 뽑아내고 내 뇌를 갈라줘. 너를 담았던 그 모든 것을 갈라내 찢어 발겨줘. 진연준. 그래 줘. 그리고.... 울어줘.... 덜덜거리는 손바닥으로 눈물이 톡- 하고 떨어져 적신다. 그 따끔한 눈물의 감촉에 눈을 부릅뜬다. 진연준의 입술이 벌어져 즐겁고도 잔혹한 한 마디를 꺼낸다. " 둘 중에 한명은 살아 나갈 수 없을 거 같군... 이제성이냐 이민영이냐? 응- 들 중에 하나만을 택해- 난 망설임 없이 탈락자의 심장에 방아쇠를 당길 거다- " 내가 요구하고 행하는 그 한마디가 묘하게도 웃음이 났다. 붉은 입술 끝을 비틀며 녀석이 칼을 들어 올린다. 그 아름다운 검은 눈동자가 검푸른 빛을 띠우며 서리와 같이 차가운 어조의 저음이 귓가를 파고든다. " 누굴 택할 거 같나-? " 더더욱 비틀리는 입술 끝을 비틀며 기다란 검 날을 빛내며 빠르게 다가서며 붉은 입술이 다시 한번 달싹인다. " 이제성이다- " 진연준의 입 꼬리가 내려가며 이제성을 떨어뜨린다. 마치 느린 화면 돌아가듯 머리가 바닥으로 향해 곤두박질치는 이제성의 몸을 끌어안는 녀석이 동작 하나하나를 바라본다. 머리 속 어느 한 부분이 툭- 하고 끊겨지는 기분과 함께 심장이 뜨거워진다. 거칠게 숨결을 몰아 내쉬며 웃음을 흘린다. " 흣..... 후훗....하하.....하하.... " 찢어진 아랫입술이 묘하게 시큰거린다. 아니. 이건 입술이 아파서가 아니야. 알면서도. 나는 알면서도 이 게임을 시작했어. 심장 어느 한 부분이 고장 난 것처럼 삐그덕 거린다. 뜨겁게 터져 버릴 것 같은 심장 아픔에 헉헉거리듯이 웃음을 흘리며 울음을 터뜨린다. " 으으윽- 흑..... 채민주우우우운-!!!!!!!!!!!! " 소리를 내 지른다. 아파. 씨발. 아파... 너무 아파... 알면서도.... 희망을 걸고 있었던 건가-? 목숨을 담보로? 알면서도.... 난 단 한순간이라도 네 심장 안에 내가 들어 가 있길 빌었어. 난.... 단지... 사랑 받고 싶었어... 사랑..받고 싶었어.. 오직 네 녀석에게. 그것 뿐 이였어. 단 한번의 망설임 없이 너는 그 녀석을 택하는 구나. 개 자식...... 이제성을 보듬어 안으며 다른 한 손으로 빠르게 다가서는 녀석의 동물적인 움직임을 바라보며 악에 바친 소리를 내지른다. 나의 목을 우그러 잡고 진연준이 속삭인다. " 어째서..............일까? " 나의 심장부근에 총구를 정확히 조준하며 진연준이 묻는다. " 어째서...... 우린.... 항상 버림 받는 걸까....? " 검은 선글라스 아래로 눈물이 툭하고 진연준의 뺨을 타고 떨어져 내린다. 한 줄기 두 줄기 떨어져 내리다 계속 떨어져 내리는 눈물을 바라보며 슬프게 미소 짖는다. 눈앞이 뜨겁다. 제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심장의 찢어져 내리는 고통에 헐떡이며 눈을 뜬다. 바지 주머니에 손을 뒤져 나이프를 꺼내 칼날을 들어내며 쓰게 웃는다. 칼로 이제성의 심장에 찌르기도 전에 빠르게 잡아 안아 버리는 녀석을 바라보고 아무 손수도 쓸 수가 없었다. 덜덜거리는 몸으로 눈을 감았다 뜬다. 진연준의 울듯하면서도 웃는 낯으로 속삭인다. " 마지막 피날레를 위해 말해 줄게 있다고 했던가-? 이민영...... " 덜덜 떨리는 몸으로 녀석을 바라본다.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온 몸에 힘이 빠져 제대로 서 있을 수조차 없다. 내 목을 움켜잡고 떨리어 오는 진연준의 손아귀에 몸을 의지한 채 눈을 감는다. " 난 말이야- 거짓말하기가 취미이자 특기이지- 크큭- 네게 말한 건 거의 다 거짓이거든... 난 마지막 피날레에 네 심장에 총알을 박고 마지막 피날레는 이거였다고 속삭여 주려고 했어- " 뜨겁게 떨어져 내리는 진연준의 눈물이 나의 뺨에 툭하고 떨어진다. 가슴이 뜨겁다. 심장의 어디 하나가 빠져 나가는 것처럼. 온 몸의 피가 다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어지럽고 역하고 아프고 슬프고 빌어먹을- 숨을 쉴 수가 없다. 진연준의 입 꼬리가 슬프게 올라간다. 진연준이 하는 말이 잘 접수가 안 된다. 머릿속은 어지럽고 몽롱하다. 찢어 발겨진 심장의 아픔으로 제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 그런데 내가 세운 멋진 작전에 오류가 생겨 버렸다- 처음에는 거짓 이였는데- 빌어먹을- 거짓이 진실이 되어 버렸어 키킥- 대단하지-? 이게 내 작전의 엿 같은 오류야- 네 심장에 총알을 박고 웃어 주려고 했는데.....키키킥.... " " 날 쏴- " 속삭인다. 썩어 내리는 가슴의 고통에 차갑게 속삭인다. 날 쏴. 날 제발 죽여. 날 죽여줘.... " 내가 원래 사랑한건 채민준... 저 새끼 였는데- 어느 사이엔가 그렇게 되어 버렸어- 키킥- "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머릿속은 어지럽고 역하다. 가슴이 찢겨져 나가 제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 사랑해- " 달칵- 방아쇠가 당겨지는 소리와 함께 핏물이 눈앞에 번졌다. 내 얼굴로 쏟아져 내리는 핏물을 바라보며 눈을 감았다. 편해 질 수 있을까? 아무런 아픔도 오지 않았다. 눈을 감았다 뜬다. 진연준이 복부 부근에 기다란 칼날이 꽤 뚫고 들어와 칼끝이 들어나 있는 것이 보인다. 등 뒤로 진연준을 찌른 채민준의 차갑고 무표정한 얼굴이 보였다. 진연준의 핏 방울 튀겨 녀석의 아름다운 얼굴에 수 놓였다. 잔혹하리만큼 아름다운 녀석은 그 붉은 입술로 속삭이듯 외친다. " 내 걸 건드리면 가만 두지 않겠다고 했다- 진연준 - " 차갑고 서늘한 저음. 붉은 입술 끝을 비틀며 칼을 빼낸다. 소름 돋는 살 속으로 칼이 가르는 소리와 함께 진연준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입가에 피를 울컥 이며 토해내며 몸을 비틀자 끼워진 선글라스가 떨어져 바닥 가득 흥건히 적셔져 나간 핏물 속으로 곤두박질친다. 들어난 진연준의 회색 눈동자가 흔들리더니 나를 바라보며 씨익 눈 꼬리를 내리며 웃으며 울컥 이며 피를 토하고는 내 쪽으로 쓰러져 내리는 것을 잡아끌어 안는다. 칼로 뚫린 곳에서 계속 해서 피가 흘러 나왔다. 무감정한 눈길로 쓰러져 내리는 진연준을 바라보던 녀석의 시선이 나로 향한다. 한참을 핏물로 적셔진 나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녀석이 무료한 표정으로 차갑게 진연준을 안아 들고 등을 돌려 걸어 나간다. 울부짖으며 진연준을 안아 올렸다. 나에게서 등을 돌이고 멀어지는 녀석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몸을 덜덜 떤다. 밖에서는 굵은 빗줄기가 바닥을 때리듯이 떨어져 내리고 있다. 스르륵 진연준의 안아 올린 손에 힘이 풀리며 몸을 일으킨다. 일그러진 얼굴로 진연준에게 달려와 진연준을 안아 올리는 형민이란 녀석이 신속하게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거는 모습이 보인다. 비틀거리며 바닥에 구르는 리볼버를 들고 바깥을 향해 뛰쳐나갔다. 길게 뻗은 대나무 숲 길 가운데로 녀석의 뒷모습이 보였다. 온 몸이 금세 빗물에 적셔 나가 핏물과 함께 바닥으로 흘러내린다. 녀석이 걸어 간 길 아래로 핏물이 빗물에 섞여 흐르고 있었다. 어지럽게 돌아가는 머릿속 가득 복수심만이 들끓었다. 타닥거리며 대나무를 때리는 빗소리가 지옥의 레퀴엠처럼 귓가에 어우러진다. 저 멀리 이제성을 끌어안고 걸어가는 녀석을 향해 뛰어가 녀석의 다른 한 손에 들고 있던 나이프를 목을 향해 들이 밀었다. 푹- 하는 소리와 함께 몸을 돌린 녀석이 어느새 칼날을 맨 손으로 잡아 제압한다. 나이프의 칼날이 녀석의 손으로 파고들어 찢겨져 나가며 피가 흐르는 모양을 바라보며 주저앉는다. 어디 한 구석이 고장 난 것만 같았던 심장이 더더욱 아프게 쓰리다. 녀석의 손에 상처를 낸 것 하나 만으로도 심장이 덜컥거리며 아파 온다. 덜덜거리며 손바닥에 얼굴을 박고 울음을 쏟아 내며 속삭인다. " 사랑해........... " 어째서.... 난 이 녀석에게 이런 말을 하고 있을까...? 녀석을 올려다본다. 비에 젖어든 머리카락이 푸른빛을 돌며 질척이듯 얼굴을 감싼다. 날카로운 턱 선을 타고 매혹적으로 빗방울이 라인을 타고 흐르다 바닥으로 떨어져 내린다. 그 붉은 입술은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다. 검고 검은 나를 반하게 만들었던 그 질척이는 눈동자는 무감정하게 나를 내려다본다. 긴 속눈썹이 비에 젖어 물방울이 맺혀 있다. 저 빗방울이 눈물이길.... 그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 ...............사.....사랑해..... " 빗소리에 무쳐 사무쳐질 나의 목소리가 들리지도 않는지 녀석은 돌아 선다. 바닥 가득 빗물에 녀석의 피가 점점이 떨어져 고인 물과 섞여 나간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바닥에 얼굴을 박으며 쓰러진다. 철퍽 이는 발걸음 소리와 타닥거리며 귓전을 때리는 대나무에 떨어져 내리는 빗소리가 구슬프게 내 귓가에 맴돈다. 온 몸을 적시는 차가운 빗물과 함께 너무나도 춥다. 녀석처럼.... 다른 한 손에 들고 있던 리볼버를 덜덜 떨리는 손으로 녀석의 등을 향해 겨눈다. 방아쇠 쪽으로 걸쳐져 있던 손가락을 덜덜거리며 아랫입술을 깨문다. 핏물이 죽- 하고 턱을 타고 흐른다. 죽어버려- 채민준.... 죽어버려라..... 씨발....씨발.....씨발.... 방아쇠를 당길 수가 없어.. 빌어먹을...빌어먹을.. 널 사랑해.. 사랑해서 죽일 수가 없어. 씨발. 빌어먹을- 나 아닌 이제성을 택한 저 새낄 죽일 수가 없어....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 쿡... 알고 있었어... 난 될 수 없다는 걸. 녀석을 가질 수 없다는 것..... 러시아 룰렛 게임에 승부를 걸듯이 녀석의 머리를 향해 총을 겨눈다. 덜덜거리는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눈물을 흘리며 총을 바닥에 박아 버리며 쓰러져 내린다. 쏠 수가 없다. 너무나도............. 네 녀석을 사랑해서........................ 날 보지 않아도. 날 생각 하지 않아도. 네 새끼에게 손끝 하나 때가 타거나 상처 입는 것이 싫으니까.. 그것이 더 아프니까...... 여전히 난 널 미쳐서는.. 여전히.... 난.. 널.. 바라보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미쳐 버리겠지. 그렇겠지? 채민준....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민준아... 울부짖으며 리볼버를 입에 문다. 덜덜 떨리는 손가락으로 방아쇠를 당긴다. 달칵- 달칵- 달칵- 시야를 잃을 정도로 뜨거운 눈물이 눈앞을 가리고 이 세상을 가리 운다. 떨리는 손으로 탄창을 빼내 안을 들여다본다. 탄창 안에는 총알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애초에 탄창 안에는 총알 따위가 없었던 거다. 빌어먹을.... 진연준.........!!! 이 빌어먹을 거짓과 아집으로 뭉친 개새끼.....!! 눈물과 빗물이 섞여 눈앞이 흐릿하게 흔들린다. - 왜..... 난 아직도 .... 네가 그리울까...? 응? 채민준...? 대답해 줘... 난 ... 왜 이렇게.. 널.... 사랑하는지..... 대답해 줘..... 채..민..준... 허공에 대고 속삭인다. 비에 부딪히는 대나무 소리 외에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는다. 사랑해.. 사랑해.. 채민준... 제발.... 내 눈을. 내 귀를. 내 혀를. 내 코를. 내 손가락을. 내 다리를. 내 뇌를. 내 심장을. 가르고 찢어 발겨줘. 더 이상. 널 볼 수도. 널 들을 수도. 널 맡을 수도. 널 만질 수 도. 널 향해 달려 갈 수도. 널 생각할 수도. 널 사랑할 수도 없게. 제발... 제...발..... 나의 동물적인 울부짖음이 대나무 숲의 빗소리와 함께 묻혀 버린다. * * * 머리 속 어느 한 곳의 핀트가 나가 버린 것 같다. 병원에 식물인간 마냥 누워 있는 진연준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운다. 말을 잃었다. 눈을 뜨고 무언가를 보아도 숨을 쉬어도 아무것도 와 닿지도 느껴지지도 않는다. 무감정한 표정으로 진연준을 한참 바라보고 있자 녀석이 눈을 뜬다. 파리한 입술이 꽤 아파 보인다. 렌즈를 뺀 녀석의 눈은 짙은 밤색의 눈동자 색을 가지고 있다. 회색 칼라렌즈가 아닌 원래 눈을 보는 건 처음이지만 아무런 감상 평도 느껴지지 않는다. 무표정하게 누워 나를 마주 바라보는 녀석의 입술에 물고 있던 담배를 물려준다. 병실 안 가득 희뿌연 담배 연기가 가득 찬다. 진연준은 무표정하게 창 밖의 풍경을 응시하고 있다. 희게 말라비틀어져 버린 손가락 사이로 끼워진 담배의 끝이 붉게 타오르고 있다. 까칠한 입술을 혀끝으로 적시며 나 역시 창 밖을 바라본다. 유난히 어두운 날이다. 회색 빛을 머금은 하늘과 검은 먹구름이 그닥 풍경을 바라 볼만한 것의 느낌은 들지 않는다. " 눈이 올 거 같아- " 파리한 입술이 열리며 중얼거리듯 말한다. 내려간 눈 꼬리를 내리며 눈을 가늘게 뜨고 하늘을 바라보던 진연준이 다시 입을 연다. " 이민영- " 무표정하게 고개를 돌려 진연준을 내려다본다. 파리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는 녀석이 피식 웃자 눈 꼬리가 밑으로 쳐진다. 예전과는 다른 처량한 느낌의 웃음이다. " 네가 이제성에게 했듯이 나도 그럴 거란 생각은 못한 건가-? 크큭..... 한심한 이민영- 남의 말은 그렇게 무작정 믿는 게 아니란 말이지- " " .................... " " 난 널 볼 때면 마치 거울을 바라보는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 " ................. " " 네가 정말 싫었어- 널 질투했다- 죽여 버리고 싶었어- 네가 이제성에게 다가갔듯이 나도 똑같이 다가가기로 했지- 녀석을 가지고 싶었어.... 너무나도 미치도록 .. 나 역시 녀석에게 목이 말라 있었다- 내 뇌 속에 벌레 한 마리가 들어가 웽웽거릴 때면 난 녀석을 생각하며 자위를 했다. 크큭- 그러면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녀석은 나에게 달짝지근한 증류수가 되어 메마른 내 목을 축여줬어- 그런 날은 언제나 마음 편이 잠들 수 있었다... " " ................ " " 그 섬에서 녀석을 처음 본 순간-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지- 녀석은 특별 했어- 항상 그랬지- 모든 사람들의 시선은 항상 그 녀석에게 꽂혀 헤어 나올 줄 몰랐다... 병원에서 녀석과 다시 재회 했을 때 어떤 기분 이였는지 알아-? 하느님 빌어먹을 내 인생에 기회를 주는 군요- 나도 .... 이런 나도 사랑이란 걸 할 수 있겠군요- 머리 속에 벌레들이 웽웽거리지 않게 편안하게 잠들며 편안하게 그 새끼를 사랑하며 살아 갈 수 있겠군요- 그 새끼가 남자이든 뭐든 말이야- 후후훗..... 크크크큭... " 격렬한 웃음을 흘리며 진연준이 눈을 감는다. 기다란 속눈썹이 바르르 떨리어 온다. 감은 눈 꼬리를 내리며 웃는 낯으로 담배를 깊게 빨아들이던 진연준이 담배연기를 내뱉으며 연기와도 같이 가볍고 짙으며 독한 이야기를 계속 쏟아 낸다. " 그런데 그 새끼 옆엔 빌어먹을 형이 있었어- 항상- 항상- 그 새끼 옆에 그 빌어먹을 호로 자식이 버티고 있었지. 그래서 어떻게 했는 줄 알아-? 크큭- 그 새끼 형이 사라지도록 동기를 부여해 줬지- 그랬더니... 크큭- 죽어 버리더군. 그리고 기회를 기다렸어- 녀석을 차지할 기회를 노리며 머리 속에 웽웽거리는 벌레들과 어울리며 세월을 보냈다- 녀석을 차지할 기회를 노리면서 말이야....." 진연준이 감은 눈을 뜬다. 희뿌연 담배 연기 사이로 번쩍이는 녀석의 제정상이 아닌 눈빛이 광기에 흔들린다. " 크크큭- 이렇게 될 줄 몰랐어- 계산 착오였다고...그랬던...내가 하필이면..... 정말 하필이면 왜 이민영이 널........원하게 되어 버렸을까-? " " ................... " " 널 가지고 싶어.... 널 원해....... 너라면 내 머리 속에 벌래 새낄 죽여 줄 거 같아- " " .............. " 진연준의 따스하고 파리한 손이 나의 손을 잡고 내 뺨을 쓰다듬는다. " 내 곁에 있어- 죽을 때 까지 내 곁에 있어줘.. " 진연준의 손을 쳐 낸다. 뺨을 녹일 듯한 따스한 온기가 가신다. 무표정하고 무감정한 눈으로 진연준을 내려다본다. 광기로 흔들리는 눈동자가 초점 없이 공허하게 맴 돈다 " 난 네가 혐오스러워- 널 보면 토할 거 같다- " 무감정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어디서 인가 내가 들었던 비슷한 어조의 비슷한 단어의 말을 쏟아내며 공허하게 창 밖의 반들거리는 유리 표면을 바라보며 눈을 감는다. " 왜..... 총탄에 총알을 넣지 않은 거냐-? " 긴 침묵만이 병실 안에 가득하다. 거칠어진 진연준의 숨소리를 느끼며 눈을 뜬다. 거칠게 숨결을 토해내며 머리를 감싸는 녀석을 무표정하게 내려다보며 입을 연다. " 넌 날 속였다- 이 빌어먹을 새끼야- 처음부터 끝까지 너의 모든 건 거짓투성이 였어- 그런 놈 곁에 있으라고-? 미친놈...... 이제성 티끌 하나도 건드리지 못 했어- 그 새끼 심장에 칼을 꽂아 보지도 못했다고- 넌 내 몸을 가졌고 그 대가로 하기로 한 약속 까지 엉망으로 찢어 발겨 났어. 내 마음까지도 죽여 버렸다-!! 지옥에 꼴아 박혀 머리통에 벌래 새끼와 웽웽거리며 놀든지 말든지 쿡- 그건 네 사정일 뿐이란 얘기다- " 머리 속이 어지럽다. 무감정하게 시작했던 나의 말들은 격렬하게 밀려오는 갑작스러운 분노의 감정에 몸을 떨며 거칠게 토해 내져 나갔다. 거칠게 숨을 몰아 내쉬자 녀석의 뒷모습이 떠오른다. 이제성을 들어 안고 사라져 버리는 녀석의 대나무 숲 속에서 비에 젖어 있는 그 뒷모습을 항상 마지막은 녀석의 뒷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는 나였지. 단 한번의 망설임 없이 나의 죽음을 고하는 나의 사랑을 바라보며 죽을 수조차 없었던 나의 고통을 아는가? 빌어먹을 심장이 뜯어 발기고 숨을 쉬는 자체만으로도 버거워 죽을 것만 같은 하루하루 였다. 진연준이 시체처럼 누워 있는 동안 나 역시 시체처럼 그 아픔과 함께 죽어 버렸다. 내게 남은 건 이제 비틀어져 버린 육체 밖에 없다. 영혼도 심장도 그 모든 것을 꼭꼭 봉인 해 놓고 숨만 쉬며 살아간다. 입가에 맴맴 도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꺼내지도 못 하고 숨 가쁘게 숨을 몰아 내쉬며 몸을 돌려 병실 문을 나서는 동작으로 문고리를 잡았다. 애써 묻어 두었던 감정이 폭발하자 가슴 속 깊게 죽어 버린 심장 저 구석에서 펄떡이며 일어서는 아픔이 밀려온다. 머리 속 가득 진연준이 말한 벌레와도 같은 말들이 웽웽거린다. 『 누굴 선택할 거 같나- 』 그만.. 제발!! 그만!!! 귀를 움켜 잡으며 이마를 병원 문에 박는다. 그만 웽웽 거려- 빌어먹을!! 『 이제성이다- 』 너의 목소리. 너의 향. 너의 눈동자. 너의 얼굴. 파노라마처럼 흘러 나가는 그 잿빛 영상 속에 유독 붉은 입술이 달싹이며 외친다. 이제성의 이름을 달싹이고 있다. 눈을 질끈 감고 들썩이는 가슴 부근을 어루만지며 속삭인다. 그만 이제 그만. 내 머리 속에도 벌레가 들어 간 것이 분명하다. 웽웽거리는 소리에 미쳐 버린다. 정말 미쳐 버리고 있다. 식은땀을 흘리며 이마를 박고 쓰러질 듯 비틀대는 나의 뒤로 서늘하면서도 즐거움이 역력한 목소리가 들리어 온다. " 이봐- 달링- " 문고리를 잡고 겨우 중심을 잡고 있던 몸을 획 돌려 진연준을 바라본다. 눈 꼬리를 내리며 짙은 갈색 눈이 광기로 빛나 오르며 눈 꼬리가 내려간다. " 진짜 게임은 지금부터다- " " 무슨..........소리냐? " 대답을 대신 하듯 빙그레- 웃음을 흘리며 내려간 눈 꼬리를 간사하게 더욱 내린다. 마치 진연준이 다시 회색 렌즈를 끼고 있는 듯한 징그러운 눈동자가 광기로 흔들리며 나를 바라본다. 그 뜨거운 시선에 눈을 감았다 뜬다. " 곧 알게 되겠지- 키키킥- " " .............................. " " 그래- 왜 총탄에 총알이 없었냐고 물었던가? 서글프게도 난 그 섬에서 모든 이야길 끝내고 싶었어- 잠시 제정신을 차렸던 거지. 나 역시 그 녀석의 마음을 알아보고 싶었으니까.... 과연 누굴 선택 할까 하고 말이야.... 그리고 모든 걸 원 상태로 돌려 낼 생각 이였다.훗- 그런데 말이야. 그 새끼가 찌른 칼의 감촉이 아직도 기억이나- 내 배속을 쑤셔 박아 들어오며 내 살이 찢겨 나가는 그 느낌을 말이야- 그제 서야 알겠더군. 되돌릴 수 없다는 걸 말이다. 진짜 게임을 시작해야 할 때란 것도 말이다-!! " " ..................... " " 네가 몸을 주지 않아도 난 꼭 이 게임을 시작했을 거다. 왠지 그런 기분이 들어- 심장이 두근두근 거리고 있어- 마치 이 날을 위해 태어난 것처럼- " 정말 기분이 좋다는 듯 눈 꼬리를 내리며 웃는 진연준을 바라보며 어느새 격정적으로 떨리던 몸이 제 상태를 되찾고 있다. 어지러운 머리가 기우뚱 밑으로 내려가는 기분이 들어 관자놀이에 손을 바치고 눈을 감았다 뜨기를 계속 한다. 어지러운 눈앞에 환영처럼 누군가의 모습이 보였다 사라진다. 그 유령 같은 형체에 심장이 쿵 내려 안는 그런 기분을 만끽하며 아래 입술을 깨물고 악물린 음성으로 소리 쳤다. " 미친 새끼- 이번엔 또 어떤 거짓 쇼를 벌이려고 하는 건지 몰라도- 난 더이상 너의 일에 끼지 않겠다. " 몸을 휘청 이며 문 꼬리를 돌렸다. 달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무료한 시선으로 병원 바닥에서 복도 건너편 창가를 멍- 하니 바라본다. 한걸음 내딛고 문을 열어 재끼자 진연준의 거친 목소리가 속사포처럼 쏟아진다. " 그 녀석이 정말 사랑하는 게 이제성이라고 생각하나-? " " ................ " 시니컬한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진연준이 대답하며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뜨거운 녀석의 체온이 등에 와 닿는다. 어느 사이에 링겔을 떼어 낸 건지 팔목에 찍힌 바늘 자국 사이로 핏물이 송글 송글 베어 나와 내 목에 와 닿는다. 뜨거운 입김과 함께 악마처럼 속삭이는 시니컬한 진연준의 목소리가 내 뇌를 갉아 먹듯이 속삭인다. " 그 새끼가 사랑하는 건 영원히 '형' 이다- 크크크큭- " " ................. " " 이민영.... 널 사랑하는 건 '나' 다- " " .......닥쳐............!! " " 이 이야기만 더 하고 닥쳐 주지- 키킥 이민영....그거 알고 있나-? " " ................... " 덜덜 떨리는 손으로 문 꼬리를 부여잡는다. " 채민준 그 새끼가 예전에 우리 자택에 달려와 개판을 치고 간 일이 있었지- 그래 너와 한판 한 걸 가지고 마치 제 것을 건드린 것 마냥 길길이 날뛰었었거든 그 새끼가- 참 아이러니 하지-? " "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냐? " 짜증스럽게 녀석에 외쳤다. 더 이상 녀석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빨리 듣고 이 역겨운 곳을 빠져나가고 싶었다. 웃음기 어린 진연준이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시니컬하게 속삭인다. " 이번에 내 배떼지에 칼까지 꽂았으니 아무리 거대한 가문의 후계자라도 말이지 우리 집안의 나를 건드린건그 녀석으로서도 무사한 일이 아니지- 며칠 후면 외국으로 내쫓김을 당한 다더군- 웃기게도 명목은 유학 가는 거라고 하지만 말이야....쿠쿡- 그런데 더 웃긴 건 말이야- 채민준 녀석 뒤를 쫄래쫄래 이제성이도 같이 따라 유학길에 오른다 이 말이지-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냐? 너와 날 버리고 녀석이 이제성과 이 나라를 뜬 단 말이다- 크크큭- " 거칠게 녀석을 진연준을 밀쳐 내고 복도를 빠른 걸음 거리로 걸어 나간다. 복도로 울리는 나의 발자국 소리가 요란하게 내 귓가에 파고들어 찔러 온다. 귀를 막고 엘레베이터 앞에 서서 버튼을 누른다. 환청처럼 머리 속에 벌레가 웽웽거린다. 알 수 없는 목소리가 나에게 무슨 말인가를 속삭인다. 알아들을 수 없는 그 소리에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돌아 버린 거다. 난 분명 돌아 버린 거다. 심장이 칼로 난도질 하듯 찢어 발겨지는 아픔에 몸을 떤다. 이 고통은 몇 번을 되새김질 하듯 겪어 내도 참아낼 수 없을 정도로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너무나도 아프게 만든다. 녀석이.... 녀석이 떠다니!!! 말도 안돼. 어떻게든 될 줄 알았다. 녀석에 대한 모든 것을 닫아 놓고 죽은 새끼 마냥 웅크리고 살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녀석이 내 손아귀에서 빠져나가 그것도 이제성과 함께 타국 생활을 한다는 자체에 미쳐 버릴 것처럼 온몸이 불타오르듯 뜨겁고 아프게 찢어 발겨진다. 안돼. 보낼 수 없어. 그 새끼와 함께 보낼 수 없어. 형을 닮은 그 새끼 얼굴을 바라보며 행복하게 웃음 짓게 하지 않겠어. 내 곁을 떠나게 하지 않겠어. 녀석을 볼 수 없다는 자체만으로도 지옥인 것을. 놓아 버릴 수가 없다. 안절부절 거리며 머리카락을 헝클인다. 귀를 틀어막고 속닥이는 소리와 웽웽거리는 벌레 소리에 참을 수가 없다. 안돼... 안돼.. 그건 안돼..... 날 이렇게 지옥의 구렁텅이 안으로 몰아넣고 떠날 수 없어. 띵- 소리에 발작적으로 고개를 든다. 괴물의 입처럼 벌려지는 엘레베이터 안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공허한 몸짓으로 열려진 엘레베이터에 들어가며 되뇌인다. 날 지옥 속으로 몰아넣고, 녀석의 말처럼 지옥 속에서 녀석을 향한 메마른 고통 속에 살아가게 만들어 버리고. 교묘하게 내 앞에서 사라져 버리겠다고? 마치 정말 환상 이였던 것 마냥!!! 그건 안돼!! 내 사랑을 짓밟아 버린 건 그 녀석이라고, 녀석의 향한 복수를 아직 끝마치지 않았다는 걸. 그 날 섬에서 녀석에게 하지 못한 일을 드디어 해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심장이 지끈거린다. 그 아픔을 무시해 버린다. 사랑 따위가 날 미치게 했다면 그 사랑으로 미쳐 버렸다면, 모든 것을 다 파멸로 밀어 넣어 주겠다고. 채민준 네 새끼 역시 파멸을 향해 걸어가야 한다는 걸 말이다. 이제성의 속삭이던 그 아름다운 입술이 고통으로 일그러지기를, 녀석의 팔딱이는 그 심장을 내가 겪은 것 이상의 고통으로 찢어 발겨 주리라. 입 꼬리를 치켜 올리며 닫혀져 가는 엘레베이터 사이를 급하게 빠져 나와 진연준의 병실 복도로 거쳐 문을 열어 재꼈다. 침대에 몸을 걸터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던 진연준의 입 꼬리 역시 나의 등장으로 치켜 올라간다. " 진짜 게임의 시작이군- " 담배연기와 함께 진연준의 목소리가 차갑게 울려 퍼진다. 진짜 게임의 시작을 고 하듯이. * * * 거울 속의 비추어진 나는 기묘하게 웃고 있다. 하얀 면 티 위에 가벼운 소제의 카키색 후드티를 걸쳐 입고 그 위에 하얀색 자켓을 걸쳤다. 물이 잘 빠진 힙합 스타일의 구제 청바지를 걸쳐 입고 짧아진 머리카락에 왁스를 발라 머리모양을 낸 뒤 향수 까지 뿌리며 마지막 피날레를 위해 꾸며 보기로 한다. 묘한 광기에 사로 잡혀 웃음이 났다. 실실거리며 웃음을 쪼개며 자켓 안에 이번에야 말로 이제성의 심장에 박히기 위해 반들반들 날을 갈아 놓은 나이프 손잡이가 매끄럽게 잡혀 온다. 기묘한 웃음을 흘리며 이어폰을 귀에 꽂자 음악이 요란하게 고막을 찢어 나가듯 울려 퍼진다. 고막을 두들기듯 쿵쾅거리는 드럼소리와 기타사운드, 울부짖는 듯한 보컬의 음성에 묘하게 흥겨워 진다. 바지 주머니에 손을 꽂고 주위를 훑어본다. 범죄자가 될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미쳐버려서 내 어머니의 전철을 밟듯이 정신병원에서 평생을 썩을지도 모른다. 아니 벌써 미쳐버려 병원치료가 요망 중일지도 모르지. 입술 끝을 비틀며 주변 환경을 정리하고 왼 손 손목에 시계를 채우며 방구석에 자리 잡힌 책상 위쪽에 걸려 있는 액자를 들여다봤다. 미치기 직전의 풋풋한 여고시절 모습의 어머니 사진이 나의 행위에 묘하게 동조하듯 웃는 낯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그래 미친 피는 미친 피겠지. 나도 내 어머니의 미친 피를 이어 받은 미친놈일 뿐이다. 책상 쪽으로 다가가 한참 어머니 사진을 바라보며 마음먹는다. 그 새끼의 심장에 이번에야 비로써 칼을 박아 주겠다고 말이다. 눈썹 끝을 치켜 올리며 몸을 돌리던 내 앞에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무엇인가가 발에 채이자 고개를 숙여 헐렁한 가방 입구 위로 반쯤 고개를 내민 다이어리를 발견한다. 아- 그래. 이 다이어리였다. 이 다이어리.... 빌어먹을 이 다이어리. 몸을 숙여 다이어리를 집어 들고 쌕 형식의 옆으로 메는 작은 가방 안에 쑤셔 넣었다. 이제성과 그 녀석의 심장에 칼을 박아 주고 나서 이 다이어리를 펼쳐 보며 낭독하리라. 채민준 네 녀석의 마음 따위가 어떤 파멸에 치 닿게 했는지 말이야. 입 꼬리를 치켜 올리며 검은색 캔버스 운동화를 구겨 신고 현관문 손잡이를 열고 돌린다. 끼리릭- 오래 되어 녹이 슨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뜨겁게 내비치는 봄볕을 느끼며 눈을 가늘게 뜬다. 만약 시간을 되돌리기 전으로 간다면 녀석과 나는 같은 대학에 붙어 좋아하고 있을 시기다. 하지만 녀석은 대학에 낙방한 듯 했고 나 역시 대학은커녕 그 사건으로 고등학교 졸업장도 따지 못하고 잘렸다. 녀석은 외국에 있는 대학의 졸업장을 따러 오늘 한국을 뜬다. 그러고 보면 어느 정도 나의 목표가 성공하긴 했다는 생각이 든다. 바꾸긴 바꿨다. 그것이 비록 엿 같긴 하지만. 겨울 날씨와 다름없는 초봄의 날씨는 더럽도록 추웠다. 마치 금방이라도 초봄기운을 몰아내듯이 혹한의 추위에 맞물려 눈발이 휘날릴 것처럼 말이다. 이어폰에서 울려 퍼지는 음악에 고개를 까닥까닥 거리며 계단을 빠르게 내려가 밖으로 뛰쳐나가듯 걸어가자 강한 바람이 불어와 옷깃을 여미며 무표정하게 주위를 훑는다. 빵- 빵- 자동차 클락션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세련되게 잘빠진 진연준의 메르세데스 벤츠 CLK-GTR 대신 검은색 투박한 무쏘가 주차장에 파킹되어 견적을 울리며 운전석에서 불쑥 고개를 내미는 익숙한 얼굴에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본다. 곱슬기 있는 머리카락이 결 좋게 바람에 흩날린다. 갸름한 턱 선에서 커다란 눈매를 바라보자 섬에서의 모습이 번쩍이듯 지나친다. 들것에 피를 흘리며 실려 나가는 진연준을 바라보던 하얗게 질린 낯 색이 떠오르자 그제 서야 김형민 이란 이름이 떠오른다. 그래, 저 녀석의 이름이 김형민 이라고 진연준이 불렀었다. 항상 애용품인지 헤드폰을 목에 걸고 고개를 내민 김형민의 쪽으로 다가가자 몸을 숙여 옆문을 열어준다. 옆 자리에 앉아 차문을 닫으며 묻는다. " 면허는 있냐-? " " 무면허다. " 그렇겠지. 자조적인 웃음을 흘리며 눈을 감자 차는 곧 출발한다. 무면허자 라기에는 웃음이 나올 정도로 고단수의 운전 실력으로 빠르게 차는 골목 도로를 질주 하고 있다. 대체 10대의 나날을 어떻게 보낸 건가?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어른 흉내를 내며 차를 몰고 술을 마시고 여자를 후렸겠지. 진연준처럼.......... 그리고 녀석처럼 말이다. 녀석을 떠올리자 또 다시 가슴이 지끈거린다. 밖은 금방이라도 눈이 내릴 것처럼 어둡고 추운 바람이 불어 왔지만 자동차 창을 연 상태로 바람을 그대로 맞고 있다. 칼 같이 매서운 바람이 코끝을 도려낼 듯 차갑게 얼굴에 몰아친다. 바람에 이리저리 머리카락이 흩날리며 한 손으로 운전하는 여유까지 보이는 김형민이 앞으로 시선을 고정한 자세로 높낮이 없는 어조로 말한다. " 이 일에 끼고 싶진 않았다- " 입 꼬리를 치켜 올리며 창 밖의 앙상한 벚꽃 나무의 가지를 바라본다. 초록빛을 조금 머금고 있는 것이 활짝 꽃 피울 날도 얼마 남지 않은 듯 하다. 차는 도로를 얼마 달리지 않아 옆 골목으로 들어간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를 벗어나지 않는다. " 하지만 지금 난 운전사 노릇까지 도맡아 하고 있는 빌어먹을 상황이야- " 골목 사이사이를 지나 꽤 고급스러운 자택 앞의 가로등 앞에 멈춰 선 녀석이 고개를 돌려 으르렁거리듯 입을 연다. " 그 새끼가 내 친구를 칼로 찌르지만 않았어도, 난 지금 이 상황을 되돌릴 수 있겠지. " " 되돌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개소리- 게임은 시작됐고 되돌림이란 없다. " 비웃듯이 입 꼬리를 올리며 대답 했다. 되돌릴 수 있다고? 어떻게? 벌써 시작된 게임이야. 오래전부터 말이야. 내가 시간을 거슬러 올라온 그 때부터 게임은 시작 되었고 되돌릴 수 없다는 거다. 김형민을 외면하고 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자택의 높고 격조 있게 건축 되어 있는 집 모양이나 대문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내가 저런 집안에 태어났다면. 녀석이 날 사랑했을까? 이제성을 바라보듯이. 아니, 아니겠지. 이제성에게서 녀석은 형을 보는 걸 테니깐. 형. 형. 형. !!! 빌어먹을 녀석의 형이 죽어 버린 것이 반가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담배를 입에 물자 김형민이 자신의 지포라이터를 열어 담배 끝에 대준다. 깊게 담배를 빨아들이며 후- 하고 차 창 밖으로 연기를 내 품는다. 담배 한 갑을 다 피우고 빈 갑을 움켜쥐며 초조하게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며 담배 연기를 내 품는다. 시계는 1시 1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인천 공항까지 가려면 대략 1시간은 잡아먹기 때문에 바지런한 성격답게 일찍 집안에서 기어 나올 것이라 믿었건만 11시부터 마냥 기다려도 저 놈의 대문은 열릴 낌새도 보이지 않는다. 한참 겨울방학 시즌이라 꼬맹이들이 골목길을 뛰어 다니며 부산스럽게 신경을 자극시키고 있다. 짜증스럽게 담배를 차 창 밖으로 튕겨내며 차문을 열어 재꼈다. 길바닥에 널려 있는 돌멩이를 걷어차며 신경질 적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는 순간 고급스러운 대문이 열리며 이제성의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모습을 들어 낸 다. 검은색 츄리닝 바지에 하얀 반팔 티 차림으로 검은색과 흰색 줄무늬가 들어간 쓰레빠를 직직 끌며 붉어진 얼굴로 뛰쳐나오던 이제성이 대문 앞에 비스듬히 서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나와 마주치자 얼굴이 석상처럼 굳어 버린다. 입 꼬리를 올리며 진연준의 목을 움켜잡자 이제성이 신경질 적으로 손사래 치며 소리친다. " 으윽-- 윽.....이. 이것...윽- 놔!!! " 거칠게 몸을 흔드는 이제성의 목을 더욱 움켜잡자 거리를 시끄럽게 장난치며 돌아다니던 아이들이 꽥꽥거리며 놀란 듯 소리를 치고 있다. 아이들의 시끄러운 소리에 신경질 적으로 이제성의 목을 더욱 조이며 웃음을 흘린다. 그 예쁜 갈색 눈동자의 동공이 크게 확장되며 웃고 있는 나의 얼굴이 비춘다.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두 손으로 있는 힘껏 목을 조이자 이제성의 입술이 벌어지며 혀가 나온다. 몸을 부르르 떨며 주먹으로 있는 힘껏 나의 어깨를 두드리며 발로 정강이를 차 내지만 힘이 빠진 탓인지 그닥 아픔을 주지는 못했다. 이제성의 커다란 눈에서 그렁그렁 눈물이 맺히며 눈 꼬리를 타고 눈물이 흐른다. 그 눈물이 목을 그러잡고 있는 나의 손등 위로 툭- 하고 떨어진 순간 알 수 없는 전율이 온몸을 훑고 지나 간다. 이 녀석의 눈물도 뜨거웠다. 나와 같이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 ㅇ.....윽...... 가야....해..... " 가야하겠지- 채민준의 곁으로. " 그 앨... 잡고 싶어...... 정말..... 사랑한단 말이다!! " 혀는 점점 더 길게 밑으로 축 늘어지고 있다. 정말 죽일 수도 있겠다 싶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다. 목을 그러잡고 있던 손을 풀어내자 뒤로 벌러덩 자빠지며 기침을 해댄다. 이제성의 머리카락을 움켜잡고 두 팔을 끈으로 꽉 동여 맨 후, 질질 끌어 이제성을 무쏘 짐칸에 실어 넣었다. 아이들이 소리를 치며 이제성의 집 대문을 두들기는 모습이 보였다. 김형민이 차에 시동을 걸며 급하게 차가 출발해 골목 사이사이를 빠르게 빠져 나간다. 피를 토해 낼 듯 마른기침을 토해내던 이제성이 쉬어 버린 목소리로 소리친다. " 이민영-!! 이 개자식!! " 웃음이 나왔다. 진심으로. 그 반듯하고 고고한 이제성의 입에서 욕설이라니. 즐겁게 미소를 흘리며 뒤로 고개를 돌리자 눈물을 줄줄 흘리며 빨갛게 충혈 된 눈으로 울고 있는 망가진 이제성의 몰골이 보인다. 공항과 정반대 방향으로 그날 그 미친 섬으로 가는 도로를 타고 무표정하게 창 밖을 바라본다. 지금쯤이면 진연준이 전화로 채민준을 협박 중일 것이다. 그리고 비행기를 타지 못한 녀석이 그 날처럼 헐레벌떡 섬을 찾아오겠지. 메마른 웃음을 흘러 나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다. 이번엔 정말 끝내 버리자. 이 사랑도. 채민준도. 나도. 이 빌어먹을 게임도. 시계는 1시 35분을 가리키고 있다. 창 밖의 풍경은 메마른 나무 가지가 거친 바람에 쓰러질 듯 휘청이며 흔들리는 풍경이다. 입 꼬리를 치켜 올리고 창 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자신의 레퀴엠처럼 슬프게 울부짖는 이제성의 울음소리와 한 쪽에만 꽂혀 있는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엉키어 나간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말라비틀어진 나무 가지에서 인도 쪽을 무심히 바라보던 순간 발랄한 걸음 거리로 걸어가는 여자의 옆얼굴을 들여다 본 다. 순간 이상한 기분이 머리 속을 내리 쳤다. 어디서 많이 본 여자의 얼굴 이였다. 한순간 스치고 지나쳤지만 그 얼굴은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얼굴이다. ' 윤진' !! 녀석의 마지막 여자이자 평범한 외모였던 그녀. 지독히도 나를 닮았던 미래에 녀석을 죽인 '윤진' 이 인도를 걸어가는 모습을 바라보게 된 것은 마치 운명의 어떤 외침과도 같은 기시감을 느낀다. 눈앞이 울렁거리듯 엉키어 나가고 머리 속이 깨질 것처럼 아파 온다. " 윽- " 머리를 감싸며 시선을 돌린다. 저 멀리 점처럼 멀어진 '윤진'의 뒷모습을 발견하는 순간 알 수 없는 심장의 쿵쾅거림이 아프게 울려 댄다. 가슴 가득 뜨겁게 몰아치는 이 지끈거리는 아픔에 숨을 몰아 내쉬며 고개를 돌려 이제성을 바라본다. 흐느끼는 녀석의 어깨. 집에서 막 튀어 나온 차림의 모습이다. 츄리닝 바지에 한 겨울에 반팔 티라니. 녀석과 같이 유학길을 떠나는 차림치고는 짐도 없고 너무나도 홀홀 단신의 모습이다. 거칠어진 목소리로 급박하게 소리 쳤다. " 이제성- " 눈물을 흘리던 녀석이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본다. 그러고 보니 윤진과 닮은 얼굴이다. 머리속이 울렁거린다. " 어째서.... 그런 차림인 거지...? " " 으윽... 그걸 지금 말이라고 묻는 거냐? 마지막 가는 민준이 뒷모습이라도 바라보고 싶었다!! 잘 가라고- 정말로...흑... 진심으로 사랑했다고 말하고 배웅하려 했었어.... 그 녀석은 너무나.....너무나 차가워서- 가슴이 아팠던 게 한 두 번이 아니 였지만, 그래. 날 단 한번도 사랑한 적이 없다는 거 알고 있지만 그래도 사랑한다고- 기다리고 있겠다고 말하려고 했다- 그래. 이민영 날 살리든 죽이든 네 마음대로 해!! 지금 나 역시 죽고 싶은 심정이니까!! " 눈썹 끝이 치켜 올라갔다. " 무슨 개 소리야? 녀석과 같이 유학 가는 거..................... 아니...였어..? " " .........무슨.....소리야...? "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제성이 묻는다. 아- 정말 윤진과 닮은 얼굴이다. 심장이 쿵- 쿵- 하고 이상한 박동으로 뛰어나가고 거칠게 숨을 몰아 내쉬며 고개를 돌려 김형민을 향해 물었다. " 설명해봐- 이게 지금 어떻게 흘러가는 내용인지.... " 김형민의 무표정한 얼굴로 차를 몰며 대답한다. " 내가 되돌릴 수 있었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 " ................. " " 연준이 녀석에게 속은 게 한두 번이 아닐 텐데... 어리석군- " " 차 돌려- " 심장이 쿵- 내려앉는다. 으르렁거리듯 외쳤다. 개새끼..... 진연준이 또 한번 내 뒤통수를 치는 순간이다. 알 수 없는 묘한 찌릿하게 몰아치는 안타까움과 묘한 슬픔이 내 머릿속을 지배 한다. 알 수 없는 감정이다. 아프면서도 왠지 모르게 슬프다. 슬프고 아프고 슬프고 아프고..... 이상했다. " 이미 늦었어- 지금 간다 해도..... " " 차 돌려!!!! 이 씹새야- " " 그렇게 원한다면-. " 끼이익- 불법 유턴을 하며 차가 반대 방향으로 달린다. 손톱을 물어뜯으며 차 창 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치고 속이 울렁거린다. 머리 속이 울렁거리듯 묘한 얼굴을 떠올려 낸다. 울 듯한 얼굴. 온 몸을 지배하는 벌레가 기어가는 기분. 머리 속에 벌래 새끼가 다시 발동한 듯 웽웽거리며 지껄인다. 『........... 해....』 빌어먹을!! 장대비가 쏟아지던 대나무 숲이 떠오른다. 울렁거리는 영상에 녀석의 뒷모습이 오버 랩 되어 그 모습이 점점 작은 아이의 형체로 변해 간다. 흐릿한 영상은 다시 바뀌어 어두침침한 지하실의 쾌쾌한 냄새와 섞인 정액의 비릿하고 역겨운 냄새에 몸을 떨던 기억. 머리 속이 어지럽다. 토할 것처럼 입 앞을 손바닥으로 억누르며 눈을 감았다 떴다. 감은 두 눈 앞에 알 수 없는 어릴 적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밑바닥에 위치한 지하실 벽면 위로 들어오는 낮의 따사로운 햇빛 한줄기가 지하로 내비치고 커다란 짐 박스를 가득 쌓아 올린 그 위로 기우뚱거리며 올라 서 발끝을 올리고 까치발을 선채 눈만 겨우 빼꼼이 내밀고 바라 본 창 밖의 모습은 푸르른 정원에 가득 흩날리는 벚 꽃잎. 그리고 커다란 벚나무 옆에 위치한 벤치에 앉아 흩날리는 벚 꽃잎 속에 그림책을 넘기는 아름다운 아이의 모습이다. 두근. 두근. 두근. 머리카락을 감싸며 차 앞 유리에 머리를 찧는다. 놀란 이제성의 목소리가 귓전에 메아리처럼 맴돈다. " 이민영-!! 왜 그러는 거야? 민영아-??!! " " 아악- " 귀를 떼어낼 듯 움켜잡고 당기며 눈을 감았다 뜨고 감았다 뜬다. 번쩍이며 이상한 기억들이 계속 스치고 지나간다. 빌어먹을- 머리 속에 벌레들이 웽웽거리기 시작한다. 『 결국......』 붉은 입술의 달싹임. 계속 되는 그 입술을 바라보며 고개를 도리질 친다. 눈을 부릅뜨고 창 밖을 바라보며 시계를 들여다 본 다. 1시 5분!! 빌어먹을!!! 차는 이리 저리 차를 교묘하게 세치기 해가며 전속력으로 달려가고 있다. 발작적으로 몸을 떨며 손톱을 깨문다. 정말 돌아 버린 거야. 머리 속에 웽웽거리는 목소리에 눈을 감고 귀를 막는다. 거칠은 바람이 머리카락을 헝클이며 내 뇌까지 헝클어 내는 것만 같다. 어느새 어두운 하늘 위에서 눈송이가 떨어져 내리고 있다. 시간은 가고 머리 속의 두통은 점점 심하게 나를 압박해 온다. 빌어먹을-!! 욕설을 되씹으며 눈을 감는다. 시계 바늘이 가는 짹깍 거리는 소리와 뒤의 짐칸에서 짐승처럼 울어 재끼는 이제성의 울음소리에 귀가 멍멍해질 정도다. 끼이익- 미치도록 질주한 차가 멈추며 급정거로 인한 고막을 찢어내는 듯한 타이어와의 마찰음과 함께 운전석에서 내린 김형민이 문을 열고 내 어깨를 움켜잡는다. 김형민의 큰 눈이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 “ 이민영- ” “ 으윽- ” “ 눈을 떠- 그리고 거울로 네 얼굴을 봐-! ” 눈을 뜬다. 나의 얼굴을 바라본다. 백밀러에 비추어진 기묘한 표정의 나의 얼굴은 기묘하게 일그러져 있다. 왜 거울을 보라고 한 걸까? 이해 할 수 없다. 창 밖으로 굵어진 눈송이가 인천공항을 뒤 덮고 있다. 일그러진 얼굴로 허탈한 표정의 김형민 어깨를 밀치며 짐칸에 박혀 있는 이제성을 끌고 복잡하게 짐을 끌며 오가는 사람들을 밀친다. 시계는 2시 10분을 가리키고 있다. 손이 묶인 채 눈물로 젖은 얼굴로 멀뚱하게 이제성은 포기를 한 듯이 힘없이 끌려간다. 2층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에 올라 타 이제성의 등에 나이프를 들이밀며 소리 쳤다. “ 같이 유학을 가든 안가든 간에 채민준 그 새끼 앞에서 네 심장에 칼을 박아 줄 거다- 기대해- ” 기묘한 웃음이 흘러 나왔다. 큭큭 거리며 웃음을 흘린다. 굳은 얼굴로 눈물 한 방울 떨어뜨리는 이제성의 처연한 얼굴로 속삭인다. “ 이민영- 난 네가 참 좋았어. ” “ ................. ” “ 하지만 지금의 넌 최악이야. 불쌍한 새끼. ” 웃음을 흘리며 이제성의 뒷머리카락을 움켜잡고 중얼거리는 어조로 말해 준다. “ 알아- 난 최악에 불쌍한 새끼지.... ”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려서자 수많은 사람들이 바쁜 걸음으로 짐을 끌며 어디론가 걸어간다. 이리 저리 사람들에 부딪히고 밀며 주위를 둘러본다. 수많은 사람들 속의 시끄러움 웅성거림이 머릿속에 멍멍해 지도록 울린다. 아직까지 끼고 있었는지 한쪽 이어폰에서는 음악이 바뀌어 구슬픈 김애라가 해금으로 연주한 아베마리아가 울려 퍼지고 있다. 몽롱한 정신 속으로 눈을 감았다 뜨며 고개를 돌리고 사람을 밀친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저 멀리 표를 내밀고 있는 흰색 긴 코트 형식의 옷을 펄렁이며 걸어가는 삐죽 삐죽한 회색 머리가 보인다. 심장이 쿵쿵 격렬하게 뛰어 오른다. 심장을 뒤흔드는 고통에 몸을 떨며 알 수 없는 예감에 이제성의 목을 끌고 뛰기 시작한다. 가까워져 가는 진연준의 뒷모습과 함께 기다란 몸수색을 하려는 직원의 관자놀이에 익숙한 리볼버를 겨누는 장면이 느린 화면 재생되듯이 펼쳐진다. 공항 안은 아수라장으로 뒤바뀌고 직원을 인질로 삼은 진연준이 비행기 타는 곳을 향해 여유로운 걸음 거리로 걸어 나간다. 이제성을 잡고 진연준의 뒤를 쫓아 그 쪽을 향해 뛰어간다. 리볼버를 직원의 관자놀이에 겨눈 채 출국장을 향해 걸어가는 진연준의 등을 따라 출국 심사하는 곳을 지나친다. 진연준의 행동에 아수라장이 된 공항은 그 곳을 지나치는 나의 행동의 제지할 생각도 못하고 빠르게 무전기로 어딘가를 향해 긴박한 목소리로 지껄이고 있다. 출국장을 향하는 계단을 내려서자 어느새 굵은 함박눈이 비행기가 대기 되어 있는 터미널 바닥을 흰 눈으로 덮어 내고 있다. 사람을 태워 비행기 있는 쪽으로 운송하는 차에 올라탄 진연준이 운전기사의 머리통을 발로 깐다. 사람들은 소리를 내지르며 올라타던 차에 내려가고 그 아수라장에서 나는 나오는 웃음을 참아낼 수가 없다. 진연준이 제대로 일을 치고 있다. 제대로 나와 진연준은 돌았다고 생각했다. 진연준의 말처럼 서로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뼛속까지 닮은 것이다. 우리 둘은. 비릿한 웃음을 흘리며 차에 올라타자 어느새 운전석을 차지해 차를 몰아가는 진연준이 고개를 돌리며 나를 바라보며 진하게 미소를 흘린다. 밑으로 쳐지는 눈 꼬리가 징그럽게 소름이 돋게 하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흰 코트에 브이넥이 들어간 흰 니트에 유로스타일의 흰 바지 차림으로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송이와 어울리는 마치 백의의 천사와 같은 차림으로 살인을 계획하고 있는 모양이다. 누굴? 이제성이 아닌 녀석을? 누구라도 좋았다. 미칠 듯한 복수심과 이 심장의 아픔에서 벗어 날 수만 있다면. 그래. 내가 가질 수 없다면 아무에게도 주지 않을 테니까. 차라리 뼛속까지 빨아 먹어 버릴 테니까... “ 여어- 달링- 역시 눈치 챈 건가-? ” “ ................. ” 눈 꼬리를 내리며 진하게 웃는다. 다시 착용한 회색 렌즈가 인조 적으로 빛나고 있다. 가슴 속이 싸늘하게 내려앉는 기분이다. 어느새 칼을 찔러 넣은 건지 직원은 운전 석 옆자리에 구부린 자세로 피를 흘리고 있었다. 인질로 잡혀 있던 직원의 옆구리 깊숙이 붉은 상처가 벌어져 있는 것을 바라본다. 다시 앞을 향해 운전을 하며 고개를 돌린 진연준이 서늘한 목소리로 즐겁게 말했다. " 매번 나에게 속아 넘어가는 너의 모습은 사랑스러워- 달링- 그거 알아? 키킥-" " .............. 개 자식....!! " 덜덜거리는 이제성의 몸의 떨림에 나 역시 떨리는 건지 몸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격렬하게 떨려 온다. " 너희들 둘다.... 미... 미쳤어...!! " 이제성이 울먹이셔 절규한다. 그래. 미쳤어. 우린 미쳤다. 제정신이 박혀 있는 건 이제성 네 새끼 이외에 아무도 없겠지. 입술 끝을 치켜 올리며 나이프로 이제성의 심장 부위를 겨눈다. 덜덜 떨며 침을 꼴깍이는 이제성의 목울대를 바라보며 해맑게 웃는다. 죽어라- 이 불쌍한 어린 양아. 차는 격렬하게 커다란 비행기 앞에 다달은다. 탑승을 위해 비행기 계단 위로 올라서려는 사람들 틈새에 녀석의 모습을 금방 찾아냈다. 검은색 말쑥한 캐주얼한 모양의 슈트 차림이 모델 같은 녀석의 몸을 위해 태어난 것처럼 잘 어울리고 빛이 나서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유난히 눈에 띈다. 녀석의 주위로 검은 오로라가 핀 것처럼 항상 녀석은 깊고 우울하며 색 기 있는 묘한 매력으로 사람들을 끌어 잡았다. 그래. 비 오는 날 버스 안에서 창 밖을 내다 본 어둠 속의 비에 젖어든 거리처럼. 녀석은 검은 유화를 칠해 놓은 듯한 번들거리며 깊고 알 수 없이 묘한 우울한 눈을 가지고 있었다. 날카로운 턱 선과 칠흑처럼 검은 머리카락 위로 굵은 눈송이가 떨어져 내린다. 마치 그 눈들도 녀석의 색의 동화되듯 검어 지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차가서고 비행기로 들어가는 계단에 오르지 않은 녀석이 삐딱하고 무료한 자세로 발을 내딛던 녀석이 순간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다. 눈 속에서 그 예쁜 눈매를 가늘게 뜨며 그 검고 우울한 눈이 처음으로 나를 꽤 뚫듯 바라보고 있다. 가슴이 철렁 밑으로 곤두박질친다. 죽어 버려라. 채민준. 네 새끼 역시. 죽어 버려- 잔인하게 웃음을 흘리며 녀석을 바라본다. 녀석의 예쁜 입매 끝이 비틀린다. 묘하게 나른하고 시니컬한 표정으로 녀석이 담배를 꺼내 입에 문다. 항상 보던 유려한 몸짓으로 지포라이터로 담배 끝을 대는 그 동작에 홀린 듯 바라본다. 몸을 벌떡 일으킨 진연준이 리볼버를 들고 차에서 뛰어 내리고 나 역시 이제성을 끌어안은 자세로 따라 내린다. 핏물이 흘러 나올듯한 붉은 입술 끝을 비튼 채 묘하게 무감정한 눈으로 녀석의 시선은 오직 나에게만 향한다. 처음으로 녀석의 시선 안에 내가 붙들려 있었다. 처음으로. 가슴이 지끈거리며 묘한 감동의 여운이 돌았다. 그래. 날 보는 거다. 이상하게도 웃고 있는 나의 얼굴 가면 안으로 튀어 나온 다른 내 얼굴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뜨겁기도 하고 차갑기도 한 눈물의 감촉에 몸을 떨며 웃음 짓고 울상을 짓는다. 마치 중국 변검의 한 장면처럼 얼굴이 시시각각 바뀌어 나가는 얼굴 근육이 느껴진다. 가슴이 찢겨질듯 아프면서도 묘한 통쾌감에 몸이 떨린다. 아아- 빌어먹을. 나의 사랑. 죽여 버려야 할 나의 사랑. 채민준... 언제나 목이 마르던 너의 이름. 점점 더 굵게 쏟아져 내리는 눈발을 맞아가며 녀석이 길게 담배 연기를 불어 내자 녀석의 주위로 담배 연기가 흩날린다. 혼미하고 몽롱한 정신으로 머리 속에 벌레가 다시 웽웽거리기 시작한다. 한 쪽 귀에 꽂혀 있는 애닮은 해금 소리가 멍멍 한 가슴에 울린다. 이상해. 무언가. 가슴 한구석 어느 곳에 숨겨 놓은 묘한 감정이 울렁거린다. 심장 한 구석을 긁어내리듯 머리 속의 두통에 구토감이 몰아친다. 진연준이 손을 들어 리볼버를 녀석을 향해 겨누며 소리친다. " 이제 진짜 게임을 시작해 볼까-? 채민준! " " ................. " 무표정하게 녀석이 담배 연기를 내 뱉는다. " 그래 러시아 룰렛 게임을 다시 시도해 봤다- 하지만 총알 한 개가 아닌 두 개를 집어넣어 놨지-!! 크큭- 나머지 한 발은 이민영 대갈통에 나머지 다른 한 발은 네 새끼 대갈통에 박아 주기로 마음먹었다 키킥- " 불쾌한 웃음소리를 흘리며 진연준이 서서히 나를 향해 다가와 내 머리카락을 움켜잡는다. 이제성을 잡고 있던 손이 힘없이 풀려 나가며 내 손에서 힘없이 들고 있던 나이프가 바닥으로 곤두박질친다. 빌어먹을 무슨 소리야!!! 이제성 대갈통에 총알을 박고 절규하는 녀석의 심장에도 총알을 박아 줘야 하잖아. 눈살을 찌푸리며 진연준을 마주 본다. 내 머리카락을 움켜잡고 관자놀이에 총구를 겨누며 진연준이 비릿한 웃음소리와 함께 속삭인다. " 이제 눈을 뜨고 깨어나 이민영- 아니 채찬영. " " 무슨..... 소리냐...? " " 가질 수 없다면 둘 다 죽여주겠다. 크큭- " " 미친놈.............!! " " 정말 사랑해...... 민영... 나의 달링... " " ............ " " 그러니까- 죽어-!! " 몸을 비튼다. 녀석의 손가락에 끼워진 담배가 툭- 하고 눈 바닥 밑으로 박힌다. 흩어지는 담배 연기 속으로 채민준의 일그러진 얼굴을 바라본다. 그 예쁜 미간을 찌푸려지며 아름다운 얼굴이 굳는다. 처음으로 녀석의 동요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알 수 없는 환희를 느낀다. 끼리릭- 총탄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고 마치 느린 화면 재생되듯이 저 멀리 서 있던 녀석이 뛰어오는 장면이 보인다. 나를 향해-. 두근. 두근. 두근. 두근. 굵은 눈송이가 마치 어느 봄날의 흐드러지게 떨어져 내리는 벚 꽃잎 마냥 춤을 추며 낙하(落下) 하는 듯한 착시 현상을 일으킨다. 그 속에서 녀석이 흑단 같은 머리카락을 찰랑이며 나를 향해 다가와 밀치는 동작 그 하나하나를 바라보며 미소 짓는다. 진연준이 눈 꼬리를 내리며 방아쇠를 당긴다. 탕------------------ !! 뜨거운 피가 얼굴에 튀겼다. 녀석이 안에 받쳐 입은 흰 셔츠가 핏빛으로 물든다. 눈으로 뒤덮인 바닥이 파편 튀기듯이 핏방울이 점점이 뿌려진다. 뜨거운 피가 눈에 떨어져 내리자 연기가 피어오른다. 차가운 눈을 녹이듯이-. 어째서?? 어째서?? 머리 속 가득 의문에 심장이 썩어 내린다. 녀석의 피를 바라보며 가슴이 찢어져 내린다. 멍한 얼굴로 녀석의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보았다. 입술 끝으로 내장이 터진 건지 핏 조각 같은 것이 섞인 핏물이 흘러나온다. 핏물이 흘러나오는 입술 끝을 비틀며 녀석의 검고 질척이는 눈이 나를 향해 꽂혀 있다. 쿵- 쿵- 비틀거리며 녀석 쪽을 향해 다가간다. 녀석이 손을 뻗어 나의 뺨을 어루만진다. 차가운 녀석의 체온. 녀석의 향. 녀석의 눈동자. 녀석의 얼굴. 가슴이 찢겨져 내린다. 비틀린 입술 끝을 타고 계속 핏물이 흘러나오고 있다. 빌어먹을- 내가 무슨 짓을 벌인 거지? 단지... 단지 사랑한거 뿐인데. 그런데 왜 난 웃고 있는 걸까? 웃음을 흘리며 눈에선 눈물이 떨어져 내리고 있다. 기묘한 얼굴로 녀석을 올려다 본 다. 차가운 녀석의 체온이 내 뺨에 와 닿고 녀석의 피로 뺨이 뜨겁게 젖어 든다. 핏물을 흘리며 녀석의 붉은 입술이 달싹인다. " 몇 번을 되돌려도. 끝은 이거군. " 녀석이 음울한 눈으로 시니컬하게 속삭인다. 무감정한 얼굴의 유리인형이 깨지는 듯이 슬프게 울듯이 일그러지는 녀석의 아름다운 얼굴과 핏물을 흘리며 시니컬하게 속삭이는 입술. 무슨... 소리냐-? 시간을 되돌린 건 나야.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거냐? 머리 속이 아파 온다. 머리카락을 움켜잡고 머리 속에 웽웽거리며 하나의 목소리와 영상이 스치고 지나간다. 진연준과 처음 마주쳤던 나이트 룸 안에서 나를 내려다보며 속삭이던 녀석의 입 모양이 하나의 목소리가 되어 귓가에 울려 퍼진다. 『 형- 나의 형-. 』 " 아.... 아니야..... " 말도 안돼 .. 아니야. 녀석의 형은 죽었어! 나를 괴롭히던 울 듯한 얼굴이 떠오른다. 머리 속이 혼잡스럽게 움직인다. 얼기설기 설켜 있던 머리 속 가득 몽롱한 어딘가가 깨져 나가는 소리와 함께 기억이 흐린 화면 돌아가듯이 머리 속에 펼쳐진다. 내 몸을 억누르며 울 듯한 얼굴을 짓는 아이. 내 몸 안에 자신을 박아 내며 흔들리는 내 몸뚱이. 벌레가 기어가는 듯한 고통. 나의 절규. 울듯이 사랑한다고 속삭이는 녀석의 목소리. 녀석의 목소리가 나른하고 색 기 흐르는 저음으로. 그리고 녀석의 목소리로 바뀐다. 손등에 이를 박고 여지없이 몸뚱이가 흔들리며 악에 퍼부은 저주를 퍼붓고 있는 나의 모습. 화면이 뒤바뀌고 불덩이로 가득한 불타오르는 방문을 열어 재끼고 혼자 숨죽여 울고 있는 나를 향해 달려 오는 녀석의 모습이 비춘다. 불로 활활 타오르는 방 안에서 나를 끌어안는 녀석의 모습. 그 아름다운 어린 얼굴이 점점 채민준, 녀석의 얼굴로 바뀌어 간다. 심장이 찢어 발겨지는 고통에 몸이 떨린다. 아니야. 아니야. 고개를 도리질 친다. 갑자기 비밀(秘密)로 꽁꽁 막아둔 어떤 하나의 틀이 깨어져 무너지듯이 떠올리고 싶지 않은 모든 것들이 머리 속에 흘러넘치듯 떠오르고 떠오른다. 내 안의 또 다른 나가 웃음 짓고 있다. 다른 한 쪽의 가슴은 찢고 다른 한 쪽의 가슴은 승리로 웃음을 흘리고 있다. 녀석의 형으로서의 나를 죽인 기억들. 또 다른 인격을 만들어 내 이민영이란 이름도 지었다. 녀석의 고통스럽게 일그러진 얼굴을 바라보며 즐겼다. 그리고. 사랑했다. 단 한 순간도 녀석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녀석에게 범해지며 내 자신을 죽이는 그 순간 까지도 나는 사무치도록 녀석을 사랑했다. 기억을 지우고 또 다른 나로 녀석을 다시 사랑하고 싶었을 뿐 이였다. 그랬을 뿐 이였다. 사실은 정말 그랬을 뿐 이였다. 동생을 사랑한 비밀(秘密)의 마음(心)을 품었다. 머리 속에 웽웽거리던 소리는 하나의 영상이 되어 머리 속에 펼쳐진다. 진연준의 등에 업혀 병실 안에 들어 왔을 때의 장면으로 바뀐다. - 결국 #$%#%$#% 웽웽웽- 머리를 깨어 버릴 듯한 웽웽거림에 역함을 느끼며 고개를 도리질 친다. 웽웽거리는 소리는 붉은 입술의 달싹임으로, 공허하고 슬픈 나른한 녀석의 저음으로 변모한다. 슬픈 떨림의 공명이 심장을 울린다. 시니컬하게 속삭이는 녀석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귓가에 조각칼로 찍어 내리듯 파고든다. 『결국.....................................형이 사랑한건 환상일 뿐인 거군. 아무리 시간을 되돌려도 결국 형은 날 사랑하지 않아. 몇 번을 시간을 되돌리며 빌어먹을 마음을 비밀에 묻은 채 동생으로 죽었고, 친구로 죽었고, 이번엔 내 심장을 죽이며 외면했어도 역시 난 죽을 거다. 그게 내 운명이자 형을 사랑한 죄의 代價(대가)겠지-.』 아니야. 환상이 아니야.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기다란 속눈썹을 내리깔고 검고 질척이는 눈동자에 비춘 내 얼굴은. 이제성과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다. 이제성과... 비슷한 얼굴. 핏물을 토해내며 녀석의 붉은 입술이 달싹인다. 핏물과 함께 쏟아지는 시니컬한 말투가 슬프게 울린다. " 고백 성사 타임이군---. “ “ 흐윽.............. ” 그만. 말하지 마. 자꾸 네 입에서 피가 흘러. 그럼 내 가슴이 찢겨져 너무 아파. 아파. 민준아-. 그만. 듣고 싶지 않아. “ 빌어먹을 하느님-. 제 마음(心 )의 秘密(비밀)을 고하노니-. " 흔들리는 음울한 눈동자. 피에 젖어든 입술 끝이 비틀린다. " 으윽................ " “ 형을................. ” 녀석의 한쪽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려 나의 이마에 떨어진다. 그 눈물 줄기가 나의 이마에서 나의 눈꺼풀로 그리고 나의 눈물과 섞여 뺨을 타고 떨어진다. 이 감촉을 알 고 있다. 처음 녀석에게 이 빌어먹을 사랑을 고백한 날 이마에 뜨거운 화인(火印)을 찍듯이 느껴지던 감촉. 그 날. 너 역시 울었던 거냐? 검고 질척한 눈동자가 슬프게 흔들리며 처연하게 입술 끝을 비튼다. 핏물이 주륵- 하고 흐른다. " 사랑했노라....................... " “ 흐윽........ ” 탕--------------------------!! 나를 밀치는 녀석에 의해 뒤로 쓰러져 내리며 녀석의 미간에 박히는 총알과 함께 뒤통수가 조각나는 것을 바라본다. 녀석의 아름다운 머리가 박살이 나며 뇌수가 쏟아져 나의 얼굴에 튀긴다. 팔딱이던 나의 심장 역시 비행기 터미널에 울리는 총소리와 함께 멈춘다. 과거의 잿빛 기억 속에 녀석이 나를 태우고 바이크를 몰던 날 의 속삭임. 저릿하고 애닮은 속삭임. 『 사랑해....』 눈을 감는다. 얼마나... 얼마나 널 사랑하는데.. 채민준!! 이 새끼야-!! 널 너무 사랑해서 미쳐 버린 건데. 널 너무 사랑해서 심장이 다 찢어 발겨졌는데. 널 너무 사랑해서 ... 또 다른 나를 만든 건데. 형제가 아닌 날 만든 건데. 널..... 널... 너무... 사랑해서... 눈을 뜬다. 하얀 옷이 피로 젖어든 진연준의 기묘한 웃음을 보이며 나에게 다가 오는 모습이 보인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웃는 얼굴로 울고 있다. " 이민영인 널 잃고 싶지 않았다............... 너무나.... 가지고 싶었어.... 널...... " 역한 화약 냄새가 코를 찌르며 공허하게 울려 퍼지는 진연준의 목소리에 정신을 놓고 머리가 부셔진 녀석의 시체를 내려다본다. 내가 사랑하던 녀석의 향도. 결 좋은 흑단 같은 머리카락도. 날 바라볼 때면 언제나 비틀리던 붉은 입술도. 그 음울하고 질척이던 검은 눈동자도. 내 사랑의 뇌는 동물의 고깃덩이처럼 부셔져 눈밭을 구른다. 녀석의 뜨거운 피가 온통 뜨거운 김을 일으키며 눈밭에 스며든다. 아... 아... 아...... " 아아아아아아아악---------------!!!! " 안돼!!!!!!!!!!!!!!!!!! 안돼!!!!!!!!!!!!!!! 채민준................ 안돼... 내 사랑....!! 안돼...... 나의.........나의.............. 동생...!! " 사랑하니까.................. 죽인 거다- " 진연준이 울 듯한 목소리로 속삭인다. 등 뒤로 터미널 가득 진을 치며 달려오는 특수대가 총을 겨누어 나를 끌어안을 듯 다가서는 진연준을 쏜다. 탕---------------------!! 총에 맞아 흔들리며 쓰러져 내리는 진연준이 나를 바라보며 웃는다. 쳐진 눈 꼬리를 내리며. 절망으로 가득한 진연준의 눈 꼬리를 타고 굵은 눈물이 떨어져 내린다. 눈송이와 함께 쓰러져 내리는 진연준의 모습과 쏟아져 내리는 핏물. 흰 백의의 천사와 같은 옷은 빨갛게 변해 간다. 이제성의 절망에 가득한 비명소리. 귓가에 울려 퍼지는 처절한 해금 소리와 함께. 심장이 멎는다. 아비규환으로 변해 버린 지옥이다. 사람들의 구토 소리와 나와 이제성의 안전을 묻는 특수대 복장의 어느 이가 괜찮냐고 묻는 목소리가 웽웽거린다. 빠르게 고개를 숙여 진연준이 쓰러지며 떨어뜨린 리볼버를 입에 물고 방아쇠를 당긴다. 달칵- 달칵- 달칵- !! 총성은 울리지 않고 빈 총탄에서 터져 나오는 달칵임 만이 울린다. 빌어먹을 정말로 총알은 단 두발 이다. 진연준의 러시아 룰렛 게임의 승리다. 어느 누군가의 제압에 힘없이 리볼버는 손에서 빼앗겨 지고 눈을 감는다. 흔들리는 시선이 조각난 뇌가 피와 함께 눈 바닥을 스며들며 피로 얼룩진 아름다운 녀석의 시신으로 비친다. 녀석의 시신을 끌어안는다. 핏물로 가득한 입술에 입을 맞추며 속삭인다. " 환상이................ 아니야............ 사랑해........ 환상이... 아니라고 했잖아.... 여기... 존재 한다고 말했잖아.... 채민준.....민준아... 민준아......!! 그렇게 내 곁이... 힘들었냐...? 심장을 죽일 만큼.... 힘들고 지쳐 버렸어? 응-? 채민준... 대답해... 대답해......" 죽어버려 들을 수 없는 녀석의 입술에 대고 속삭인다. “ 사.....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 사랑해... 사랑해... 내가 잘못했다.. 미안해. 널 사랑하는 나를 외면해서 미안해. 시간을 되돌리며 몸부림치는 너를 괴롭혀서 미안해. 너무 사랑해서 .... 미안해. 그러니까 일어나. 그 예쁜 눈을 뜨고 나를 바라봐. 너의 향으로 나를 유혹해. 너의 입술로 나를 뒤흔들어줘. 너의 달콤하고 나른한 저음으로 내 심장을 녹여줘. 제발... 제발... 난 널 제대로 사랑해 보지도 못했어. 채민준. 나의 동생. 내 사랑... 제발.. 눈물이 흘러 부셔진 녀석의 시체에 툭- 떨어져 내린다. 내가 어떻게든 시간을 되돌릴게. 어떻게든. 내가 되돌린 게 아닌 네가 돌린 시간 이였다면. 이번엔 내가 되 돌려 볼게. 그러니까. 그 땐 사랑해. 서로 같은 성(性)을 떠나서. 형제임을 떠나서. 사랑해. 그 땐 사랑하자.... 네가 죽을 때 까지 행복하게 사랑하자...... 눈이 벚 꽃 잎처럼 녀석의 시신에 떨어져 내린다. 녀석의 시신에 입을 맞춘다. 누군가가 혐오감 섞인 말투로 나를 끌어 내린다. 미쳤다고 고함친다. 이제성의 하얗게 질린 얼굴을 바라보며 웃음 짓는다. 시간을 되돌리면 되는 거야. 그런 거다- 그렇지-? 응-? 절망 섞인 웃음과 울음이 한꺼번에 터져 나와 막을 수가 없다. 하얀 봉고차에 실려 가며 생각 했다. 시간을 되돌리면 돼. 그렇지?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져 귀가 멍멍 하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메고 있던 가방의 지퍼를 내려 다이어리를 꺼낸다. 의사로 보이는 가운 입은 놈이 내 손의 다이어리를 낚아채려 하자 거세게 거부하며 가슴에 부여안는다.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리는 앞의 의사 놈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내 두 손을 포박하자 툭- 하고 다이어리가 차 바닥으로 쳐 박힌다. 의사 놈이 다이어리를 집어 연다. 몸을 비틀며 동물처럼 소리를 질렀다. 나를 제압한 한 놈이 주사를 들고 와 나에게 찌른다. 몸을 떨며 눈을 부릅떴다. 열려진 다이어리를 여러 장 넘기며 인상을 찌푸리던 의사 놈이 끝 장을 바라보며 감탄 어린 표정으로 내 옆에 있는 다른 한 놈에게 보이며 숙덕인다. 머릿속이 돌덩이처럼 무거워 진다. 최면에 걸린 것처럼 눈이 무겁게 내려앉는다. 끼익- 소리와 함께 차가서고 문이 열린다. 의사 놈이 들고 있던 다이어리 바닥에 떨어뜨리며 나를 잡는다. 무겁게 내려앉는 시야 사이로 바닥에 쳐 박힌 다이어리가 사람들의 발에 밟혀 뭉개진다. 안돼............ 안돼.............. 무겁게 감기어 오는 눈꺼풀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관자놀이를 타고 낙인처럼 흘러내리는 뜨거운 눈물이 맺힌 시야의 마지막엔 사람들 발에 밟혀 찢어 발겨진 다이어리를 담으며 눈을 내리 감는다. * * * 남녀의 교성. 귀를 막는다. 역한 정액 냄새와 찢어지는 비명 소리가 가득한 지하실 안에서 몸을 떨었다. 너무 춥고 무서웠다. 한참의 행위가 끝난 아름다운 남자가 시큰한 정액냄새가 물씬 풍기는 손으로 내 뺨을 어루만지며 입술 끝을 비튼다. 그 잔인해 보이는 미소가 섬뜩해서 바짝 긴장한 꼴로 쥐가 언제 튀어 나올지 모르는 시멘트 바닥을 내려다본다. 『찬영이- 학교 다니고 싶니?』 야수와 같은 남자가 다정하게 묻는다.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아는 세상은 이 쾌쾌한 지하실 공간과 이 남자, 그리고 내 어머니란 미친 여자. 그리고 어른의 키보다도 높은 높이의 창가 위의 햇빛이 들어오는 세상 속의 아름다운 여자와 아이가 전부이다. 비릿한 웃음을 흘린 남자가 기괴한 웃음을 흘리며 지하실에 빠져 나간다. 찰칵거리는 자물쇠가 잠기는 소리를 듣는 것을 마지막으로 익숙하게 주위 짐들을 높이 쌓아 올려 위에 올라 서고 까치발을 서서 창 밖의 세상을 구경한다. 무표정의 아이는 언제나처럼 벚꽃 잎이 산산이 흩어 져 떨어지는 벤치에 앉아 책을 보고 있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얼굴과 그 예쁜 눈동자에 심장이 다 두근거린다. 남자가 그 아이가 내 동생이라고 했다. 내 동생. 저 아름다운 아이가 내 동생이라고 했다.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생긋 웃어 보인다. 날 봐줘. 항상 지하실에서 너를 올려다보고 있단다. 날 모르는 아이야. 웃으며 창가에 둘러져 있는 철창을 어루만진다. 가슴은 서늘한데 심장이 두근거린다. 그 보드라워 보이는 결 좋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는 흰 손가락이 책장을 넘기고 갸름한 얼굴을 갸우뚱거리며 책을 바라볼 때면 기다란 속눈썹에 고 예쁜 눈동자가 가려져 갈증이 생길만큼 그 눈이 더 보고 싶어진다. 두근. 두근. 두근. 이상해-. 난 동생을 보면 심장병을 앓는 환자처럼 심장이 이상해져 버려.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했다. 2살 뒤늦게 학교에 입학해 처음으로 세상에 나섰을 때의 그 따사로운 햇빛의 느낌보다 불어오는 시린 봄바람의 감각 보다 더 나의 심장을 뒤흔든 것은 김 기사 아저씨가 부산스럽게 움직여 지하실 문을 열고 나를 등교 길에 내보내며 학교를 향하는 길 가로등 뒤에 멀찌감치 숨어서 승용차에 올라타 학교를 등교하는 아이를 훔쳐보는 거였다. 바람에 흩날리는 벚 꽃잎 사이로 아름다운 아이의 머리카락에 스쳤다 바닥에 떨어진 벚 꽃잎을 끌어안고 코를 박았다. 아이의 향기가 묻어나는 것 같다. 심장이 미칠 듯이 두근거린다. 단 한번도 같은 반이 되지 않았다. 쉬는 시간이 되면 난 항상 아이의 반 교실을 몰래 훔쳐본다. 이리저리 실실거리며 다니는 게 나 자신을 보호하는 보호 장비처럼 가면을 쓰고 다닌다. 학교로 돌아가면 계속 이어지는 동물과도 같은 행위와. 대화 나눌 상대가 없는 생활 때문인지 오히려 나는 가면을 쓰고 아이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서 여러 명의 아이들과 어울릴 수 있다. 무표정한 아이를 훔쳐보며 아이들이 귀가한 시간에 몰래 빈 교실에 들어가 아이의 자리에 앉아 책상에 뺨을 비빈다. 좀 더 가깝게 아이를 느끼고 싶다. 느끼고 싶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비가 내렸다. 비를 맞으며 집을 향해 뛰었다. 커다란 저택은 지옥과도 같은 곳 이였지만 몰래 아이를 훔쳐볼 수 있기에 참을만했다. 철퍽 이며 바닥에 고여 있는 빗물이 이리저리 바지에 튀긴다. 신이 나서 쿵쿵 바닥에 고여 있는 물 위로 몸을 튕겼다. 물방울이 크게 바깥을 향해 튕겨 나간다. 신이 나서 뛰다가 빵빵- 거리는 클락션 소리에 놀라 고개를 돌렸을 때 번뜩이는 불빛과 함께 차가 나의 쪽을 향해 돌진한다. 놀래서 몸을 뒤로 움직이다 쾅- 하고 빗물 구덩이에 얼굴을 박으며 쓰러졌다. 차 문이 벌컥 열리고 그 안에서 아이가 나왔다. 김 기사가 당황한 얼굴로 우산을 받치고 아이 위에 씌웠다. 아이의 검은 눈동자가 나에게 향했다. 한번도 나에게 꽂힌 적이 없던 그 눈이 나에게 꽂힌다. 빗물에 얼굴을 처박고 흙탕물로 얼룩이 진 얼굴로 헤벌죽 웃어 버렸다. 무표정하게 그런 나를 내려다보며 손을 내민다. 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 아이의 손이 더러워 질까봐. 나 같은 애 때문에 그 아이의 하얀 손이 더러워 질까봐 두려웠다. 잡을 수가 없었다. 그 손을-. 아이의 작은 손이 점점 커지며 어른의 손으로 변한다. 아이의 얼굴이 점점 더 아름다운 형상으로 변해 간다. 아름다운 어른 채민준의 얼굴로 손을 내민다. 감히 잡을 수 없는 손을 바라보며 심장이 지끈거린다. 탕--------------------!! 아이의 머리통이 박살이 나 주위에 파편처럼 튀겨 나간다. 아까의 그 빗방울처럼 튕겨져 바닥을 구른다. 소리를 내 지르며 눈을 뜬다. 무겁게 짓누르던 눈꺼풀을 들어 올리자 온통 주위는 하얀 공간이다. 온 몸이 포박당한 채 침대 위에 누워 눈을 뜨고 소리 지른다. 눈 꼬리를 타고 눈물이 흘러 새하얀 침대시트를 적신다. * * * 3년-? 4년-? 글쎄. 얼마나의 시간이 흘렀는지는 모르겠다. 의사와 대화를 나누고 주사를 맞고 약을 먹고 병실에 눕고 밥을 먹고 똥을 싸고 몸을 닦는다. 메말라 버린 심장은 죽어 버렸다. 의례적으로 묻는 의사의 말에 대답한다. 오늘은 의사가 환하게 퇴원을 고했다. 퇴원? 무표정하게 뇌까린다. 익숙한 병원냄새와 환자복, 걸을 때면 직직 끌리는 쓰레빠 소리. 미친 사람들의 웃음소리 울음소리. 비 오는 날이면 유독 비명을 내지르며 웃어 재낀다. 일직선 모양의 담담한 입 모양으로 무표정하게 철창이 쳐져 있는 창 밖의 풍경을 바라본다. 비인가-? 검푸른 하늘에서 연신 빗줄기를 쏟아 붓고 있다. 어린 유년시절과 지금의 생활은 같은 맥락의 비슷하다면 비슷한 생활 일 수도 있겠다. 다른 점이라면, 지금의 내 삶에 녀석이 없다는 거다. 녀석의 뇌가 조각나고 심장이 멈춘 그 순간 모든 것이 심장이 찢어 발겨지는 아픔과 함께 The End 자막이 올라간 것처럼 숨을 쉬고 있으나 아무것도 아무런 의미도 아무런 것도 없는 무(無)가 되어 버린다. 밥을 먹으나 밥맛을 느낄 수 없고 향기를 맡으나 향을 느낄 수 없다. 사람을 보나 그 형체의 아무런 것도 머리 속에 와 닿지 않는다. 메마른 뇌 조각이 엉겨 붙어 버린 것처럼. 내가 빌었던 대로 뇌를 가르고 심장을 찢어발기고 코를 없애고 눈을 없애고 팔 다리를 없앤 격이다. 이상하게도 그러면 행복 할 줄 알았는데 그런 일말의 감정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행복도 무료함 까지도 느껴지지 않았다. 숨을 쉬고 있는 시체와 다름없다. 가슴 깊은 곳에 뭉클하고 슬픈 비슷한 감정이 느껴지는 것이 전부이다. 침대 위로 잘 개켜져 있는 옷은 세탁을 했는데도 피의 얼룩이 밋밋하게 묻어나 지워지지 않은 모양이다. 환자복을 벗고 피 얼룩이 진 옷을 입고 그 날의 소지품이 고스란히 들어 있는 가방을 들쳐 멘다. 진갈색으로 응고되어 있는 피딱지가 가방에 스며들어 있다. 지워지지 않을 자국이다. 죽어 버린 심장이 갑작스럽게 펄쩍 뛰듯 지끈거린다. 핏자국을 어루만지며 창 밖의 비 오는 풍경으로 시선을 돌렸다. 주간호사가 살며시 웃으며 병실 문을 열고 다가와 내 손을 잡으며 말한다. " 친구 분이 찾아 오셨어요- 퇴원하시기 전에 잠깐 만나 보시겠어요? " 동그란 눈을 빛내며 주간호사의 손에 이끌려 접견실로 들어갔다. 작은 휴게실 같은 분위기에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마주 앉는 의자 한쪽에 나이 먹은 수영이 녀석의 얼굴이 보인다. 검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고뇌에 찬 표정으로 손톱 주변 군살을 뜯어내며 접견실에 들어선 나를 바라본 녀석이 벌떡 일어서 나를 마주본다. 무표정하게 맞은 편 의자에 앉자 녀석이 곧 따라 앉으며 어색한 미소를 흘린다. " 오랜만.......... 이지 ? " 떨리는 목소리로 얼굴을 붉힌 채 묻는 수영이 녀석을 마주보며 무표정하게 쳐다봤다. " 오늘 퇴원한 다는 말 전해 들었다. " " ........................ " " 알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진연준. 지금 살아서 외국에 가 있다. 그 사건 이후로 언론으로 그 새끼 아버지 고생 좀 하더니 조용해지니까 돈 쓰고 뭐 하고 해서 외국 쪽 정신병원으로 빼돌렸다고 들었다. 정산상태로 인해 구치소에 들어가진 못한 모양이야-. 그렇게 미친놈으로 안 봤는데 말이야 " 세월의 흐름이 묻어나는 말투로 녀석이 힘없이 말한다. 어린 치기에 섞인 욕설과 섞여 있던 말투는 안 본 세월동안 사라진 모양이다. 눈을 내리깔고 말없이 바닥을 보던 녀석이 가방에서 부스럭거리며 꼬질꼬질한 갈색 다이어리를 내밀어 내 손에 쥐어 준다. 무기질한 눈으로 다이어리를 내려다본다. " 이걸 전해 주고 싶었다-. 몸 건강하고- " " ......................... " 어색하게 웃음을 흘리며 몸을 일으킨 수영이 접견실 문손잡이를 잡다가 뒤를 돌아 선다. " 지금은 회사일 때문에 빨리 가봐야 하거든. 아- 그리고. 퇴원하고 우리 자주 보는 거다. 넌 내 친구니까- 그 동안 못 나눈 우정 덤으로 나누어 보자-. " 어색한 목소리와 어색한 웃음. 손잡이를 열고 어색하게 걸어가는 발자국 소리. 무표정하게 닫쳐진 문을 바라보다가 멍- 하게 손에 잡혀진 다이어리를 내려다본다. 사람들의 발자국 모양이 미세하게 찍혀져 있다. 손으로 표면을 쓸어 본다.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는다. 다이어리를 열고 한 장을 넘긴다. 하얀 종이가 펄럭이는 소리에 기분이 묘해진다. 또 한 장을 넘긴다. 여러 장 넘기며 들려오는 종이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나의 시선은 오랜만에 보는 녀석의 글씨에 꽂힌다. 떨리는 손끝으로 글씨를 어루만진다. 과거와 똑 같은 글귀들. 일직선으로 그려진 입술 끝이 어색하게 올라간다. 몇 년간을 죽어 버렸던 심장 어느 한 부근이 지끈거리기 시작한다. 한 장을 넘기고 또 한 장을 넘긴다. 눈을 감고 마지막 장을 펼쳤다 뜬다. 하얀 백지 위로 검은 선들이 하나의 형상을 그려 내고 있다. 물끄러미 바라보다 그것이 그림임을 알아채며 무표정하게 내려 보던 나의 동공이 크게 벌어진다. 가슴 한 귀퉁이를 내리누르던 지끈한 통증에 몸이 떨린다. 실제 사람처럼 생동감 있게 그려진 얼굴은 제성의 큰 눈매가 아닌 작은 눈매의 내 얼굴과 비슷한 형상이 그려져 있다. 예쁘게 웃음 짓고 있는 그림의 모습은 어딘가 이제성과도 닮아 있다. 툭- 하고 그림위로 물방울이 떨어져 그림의 유려한 선이 종이 위로 물과 함께 번져 나간다. 안타깝게 그림을 어루만지자 툭- 하고 그림의 눈 부위에 물이 떨어진다. 눈 부위에 떨어진 물방울에 의해 검은 잉크가 번져 검은 눈물을 흘리듯이 번져나간다. 아-. 아-. 손을 들어 뺨에 댄다. 뜨거운 눈물을 감촉. 그림 속의 나는 검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지저분하게 얼룩진 모양으로-. 끼이익- 문이 열린다.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수많은 빗방울을 바라본다. 친절하게 다가선 주간호사가 분홍빛 3단 우산을 내 손에 쥐어 준다. 그저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병원 밖으로 나선다. 비에 금세 온 몸이 젖어 들었다. 주간호사가 지어준 우산을 앞으로 향한 자세로 활짝 펴 머리 위로 올렸다. 분홍 우산으로 위로 올라가며 시야를 가리던 앞의 풍경이 걷히는 동시에 희뿌연 연기를 내 품으며 누군가 서 있다. 검은 슈트를 멋들어지게 차려 입고 바지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검은 우산을 쓰고 있다. 그가 피우고 있는 희뿌연 담배 연기가 비의 비릿한 내음과 섞여 구토 감을 치밀게 만든다. 검은 우산 밑으로 검은 머리카락의 사내의 파충류 같은 회색 눈동자에 이채를 띠우며 처진 눈 꼬리가 내리며 웃는다. “ 안녕- 달링- ” 징그럽게 귀속을 파고드는 벌레의 소리. 훅- 하고 느껴지는 독한 향수 냄새. 분홍 우산을 바닥에 떨어뜨린다. 나를 끌어안는 따스한 체온에 심장이 차갑게 얼어 버린다. 귓가에 파고드는 목소리가 벌레처럼 계속 웽웽거린다. “ 나를 잊고 있었다면 곤란하지. 안 그래-? ” 빌어먹을-. “ 영원히 나에게서 빠져 나올 수 없어-. 그게 네 운명이니까-. 키킥- 응? 대답해 봐-. ” 무표정한 얼굴로 힘없이 진연준의 품에 안긴다. 우악스럽게 진연준의 품에 붙잡힌 채 몸을 덜덜 떤다. 탕-------------!! 환청처럼 떠오르는 총 소리에 몸을 팔딱이며 채민준의 피가 번져 나가는 영상이 머릿속에 어지럽게 굴러 간다. 안돼-!!! 안돼-!!! 진연준을 밀치며 뒷걸음질친다. 밀쳐진 채 입술 끝을 치켜 올리며 진연준이 다가온다. 무작정 달렸다. 어디로인가 뛰고 있었고 내 뒤로 진연준이 나를 쫓고 있었다. 한 치 앞을 바라 볼 수 없는 장대비속을 뚫으며 어디론가 뛰어 들었다. 빵- 빵-!! 환한 차의 헤드라인 불빛에 순간 눈앞이 새 하얗게 변색 되어 간다. 이리저리 하얀 실같이 생긴 얽히고설킨 빛 속에 끌려가는 묘한 착각과 함께 몸이 무언 가에게 강하게 부딪친다. 쾅-------!!! 몸이 공중으로 붕 떠오르다 빠른 속도로 걸레조각 마냥 도로 바닥에 곤두박질쳐 뒹군다. 덜덜거리는 몸이 심한 충격으로 발작처럼 흔들린다. 나를 향해 달려와 나를 끌어안는 진연준의 독한 향수 냄새. “ 안돼......................... 널 가지려고..........사랑했던 녀석을 죽였어...!! ” “ ...................... " " 아직도 내 머릿속에 벌레 새끼가 웽웽거리고 있단 말이다- ” “ ..................... ” “ 너... 너만이 날.... 날 구 할 수가 있어.... 너만이........ 아직도..... 이렇게...... 사랑해...... ” 울부짖는 소리가 쿵쿵거리며 느리게 들려온다. 너무나도 졸립고. 나른했다. 진연준의 눈물이 뜨겁게 내 얼굴을 적셔 나가는 느낌이 빌어먹게도 가슴 한 구석이 쓰렸다. 하얗게 눈앞의 모습이 일그러지며 눈을 감는다. 너무나 채민준... 그 녀석이 그립다. * * * “ 야- 이 새끼야 눈을 떠-!!! ” 씩씩거리는 숨결이 코앞에 와 닿는다. 힘없이 내리 감고 있던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나의 뺨을 큼지막한 손바닥으로 내리치던 솜털로 가득한 어린 수영이 녀석이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소리 지른다. “ 너 뭐하는 새낀데 내 앞에서 갑자기 픽- 하고 쓰러지고 지랄을 떨어서 이 몸이 학교 갓 입학한 입학식 날 네 새끼를 들쳐 업고 양호실에서 입학식을 치루게 만들고 지랄인데-? ” 분한 듯 통통한 아랫입술을 깨물며 수영이 녀석이 휙 하고 고개를 돌리고 가방을 던지며 소리친다. “ 받아-. 네 가방이다. 입학식 날 하루 종일 뻗어 있다니- 신기한 새끼. 너 나랑 같은 반이더라-. ” 뇌 속이 멍- 하다. 무표정한 얼굴로 주위를 훑는다. 소독약 냄새와 약 냄새. 허브향이 조금 섞여 조금은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과 함께 진연준의 절규가 귓가에 맴돈다. 하얀 커튼이 주위로 쳐져 있어 커튼을 젖히자 양호선생이 흰 가운을 입은 채 부드러운 미소를 흘리며 말한다. “ 저 아이 저렇게 말해도 굉장히 걱정 하더구나-. 일사병이라니. 이런 봄날에 일사병으로 쓰러진 아이는 우리학교 개교 이례 네가 처음일 거야- ” 설마-. 눈을 감았다 뜬다. 손을 들어 올려 이마를 어루만진다. 담배로 짓눌러진 상처가 느껴지지 않는다. 덜덜 턱을 떨자 이와 이가 딱딱거리며 부딪히는 소리가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 이수영- 지금이 몇 년 도냐-? ” “ 어라-? 네가 내 이름을 어떻게..... ” “ 대답해-! ” 떨떠름한 표정으로 수영이 입을 연다. 방금 봤을 때와 너무나도 다른 싱싱할 정도의 어린 얼굴로. “ 1997 년-. 무식한 새끼- 그걸 몰라 질문 하냐-? 그나저나 너 내 이름 어떻게 알았어?? ” 웃음이 흐른다. 건조한 입술 끝을 치켜 올리며 눈을 감고 웃음을 흘렸다. 1997년. 처음 시간을 되돌렸을 때 보다 2년 전이다. 몸을 벌떡 일으켜 양호실 문을 열어 재꼈다. 등 뒤로 당황한 수영이 녀석의 욕설이 들려 나왔다. 복도를 지나쳐 학교 건물을 빠져나와 운동장을 향해 달려 나갔다. 밖은 굵은 장대비가 퍼붓고 있었다. 운동장은 빗물로 질퍽였고 질퍽인 물 위로 떨어져 내린 벚꽃이 떠 다녔다. 그 위를 찰팍이며 뛰자 빗물이 교복바지 위로 튀겼다. 울고 있었다.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고 흘렀다. 너를 볼 수 있어. 널. 널. 널. 채민준. 널...!! “ 하하하하하-- ” 큰 소리로 웃음을 흘리며 팔을 벌리고 뛰었다. 빗물로 온 몸이 적셔 나갔다. 운동장 한 가운데를 뛰고 뛰고 또 뛰었다. 한참을 뛰던 몸을 이동해 숨을 헐떡이며 버스 정류장에 앞에 섰다. 빗소리와 차가운 빗물의 감촉에 소름이 돋았다. 저 멀리서 눈부신 헤드라인 불빛을 키고 버스 정류장을 향해 달려오는 버스가 내 앞에 선다. 빗물을 뒤집어 쓴 상태로 몸을 떨며 무작정 버스 위에 올라타 물로 젖어 흐물거리는 버스표를 집어넣고 맨 뒷자리 창가 자리에 앉았다. 버스가 덜컹이며 출발하고 버스에서 나오는 뜨거운 히터 바람에 떨리던 몸이 조금은 훈훈한 기운이 돌았다. 창 밖의 풍경은 새카만 유화를 칠해 좋은 듯한 거리에 빗물이 달빛에 받아 유화의 기름처럼 번질번질 거리고 있다. 되돌리기 전의 기억의 한 조각의 풍경처럼 내가 사랑하는 풍경이다. 빗물이 창을 때리는 소리에 기분 좋게 눈을 감았다. 버스는 달렸고 몇 정거장을 섰다 출발한다. 눈을 감고 빗소리를 들으며 몸을 떤다. 치이잉- 버스 앞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나도 모르게 감은 두 눈을 뜬다. 빗물에 교복이 젖어든 모델같이 키가 큰 녀석이 나른한 걸음 거리로 버스 위로 올라선다. 심장이 쿵- 하고 바닥으로 곤두박질친다. 한 걸음 두 걸음 녀석이 나에게로 다가오고 있다. 빗물에 젖어든 결 좋은 앞 머리카락을 털어내듯 쓸어 올리자 조각 같은 턱 선이 들어 난다. 그 깊고 음울하고 질척한 검은 눈망울을 단 한시도 잊지 못했지. 그래 지금의 거리의 풍경처럼 검은 유화를 칠해 놓은 듯한 깊고 음울한 모든 것을 초월한 눈동자. 채민준 내 사랑의 눈동자를 단 한시도 잊어 본적이 없다. 기다란 속눈썹을 내리 깔고 주머니를 뒤적거려 유려한 손동작으로 담배를 붉은 입술에 물며 마치 CF의 한 장면의 머리 속이 어지럽고 몽롱한 한 영상 장면처럼 나에게로 걸어오는 동작 하나하나에 심장이 아릿하다. 나른한 걸음 거리로 걸어와 내 옆에 앉는 모습 그 하나 하나에 숨이 막혀 온다. 창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음악처럼 들려온다. 아-. 눈물이 흘렀다. 내 시야를 불태울 듯한 뜨거운 눈물이 눈앞에 맺혀 뺨을 타고 계속 흘렀다. 훅- 하고 느껴지는 담배 향과 섞인 달콤한 녀석의 향에 심장이 흥분으로 쿵쿵거린다. 덜덜거리는 입을 주먹으로 악물며 눈을 감았다 뜨고 내 옆에 앉는 녀석의 얼굴을 홀린 듯 바라본다. 조각 같은 옆얼굴이 빗물에 젖어 묘하게 색 기가 흐른다. 기다란 속눈썹이 빗물에 젖어 물기를 머금고 있다. 물기로 번들거리는 붉은 입술에 담배를 물고 지포라이터로 불을 붙이는 무료해 보이면서도 멋들어진 동작 하나하나를 바라본다. 네가................ 살아 있어-!! 내 사랑이 살아 있어. 숨을 쉬고 향을 내며 그 아름다운 눈으로 날 바라 볼 수도 있고 지금 이렇게 팔이 닿아 가끔 차가운 너의 체온을 느낄 수도 있어. 빌어먹을- 좋아서 날아가 버릴 것만 같다. 그런데 심장 한 부근이 씨발스럽게 지끈거린다. 아-. 젠장-!! 젠장-!! 알고 있어. 빌어먹을. 실은 알고 있었다. 시간을 되돌린 것이 더 큰 화(禍)를 불러일으키리란 거 따윈. 그래. 사람은 원래의 운명에 순응하며 살아야 하지. 그것을 되돌린 것이 더더욱 가혹한 지랄 같은 운명으로 변해 버려 더더욱 묘하게 꼬여 들겠지. 신호에 걸린 버스가 잠시 멈추자 시선을 돌려 창가를 내다본다. 정 반대 반향으로 향하는 건너 편 도로에 느리게 스치고 지나가는 차는 진연준의 메르세데스 벤츠다. 이리저리 뻗친 회색 머리카락과 진연준의 회색 눈동자가 잠시 나를 바라본다. 스치고 지나가는 사이 그 회색 눈동자와 마주친다. 담배를 입에 물고 있던 진연준의 입 속에서 희뿌연 담배 연기를 내 품으며 입술 끝을 치켜 올리며 눈 꼬리를 내리고 웃는다. 데자뷰 현상을 일으키듯 머리 속에 커다란 총성이 울린다. 탕-------------------!! 눈을 꽉 감는다. 심장이 찢어 뭉그러진다. 이 심장은 얼마만큼 아파야 하는 걸까? 메마른 웃음과 섞인 오열과 같은 눈물을 흘리며 생각한다. 얼마나 되돌리기를 반복하고 반복 하고 반복해야 할까? 알고 있었다. 시간을 되돌렸다 해도. 녀석은 나로 인해 내 두 눈앞에서 죽어 갈 거란 걸. 녀석은 죽음을 반복하고, 반복하고 반복한다. 내 심장은 죽고, 죽고 죽기를 반복 한다. 꼬여 버린 운명의 바퀴는 꼬이고 꼬이기를 반복하고 있다. 엉망으로 부셔진 굴레 속에 놀아나고 있다. 비상구 없는 챗바퀴 속에 돌고, 돌고, 돌고, 돌고 돈다. 녀석이 되돌린 시간과 내가 되돌린 시간이 헝클어지고 설켜 재앙처럼 죽고 죽는다. 죽이고 죽인다. 거만한 자세로 담배 연기를 내 품는 녀석을 향해 눈물 어린 얼굴로 앞을 바라 본채 뇌까리듯 지껄인다. " 버스 안에서 담배는 안돼 " 어느 날 이였던가 말했던 기억이 나는 대사를 흘리며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른다. 내가 조용히 말하자 녀석은 방금 내가 바라본 밤거리를 떠올리는 그 새까만 눈동자로 나를 묘하게 쳐다본다. 담배를 피우던 움직임을 멈추고 붉은 입술 끝을 살짝 들어 올려 피식 웃어 버린다. 희뿌연 담배 연기가 우리 사이를 감싼다. 몽환적인 눈빛으로 창가에 비친 녀석의 메마른 눈을 바라본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의자에 놓여져 있는 녀석이 차가운 손등 위로 손을 덮는다. 차가운 녀석의 체온이 손바닥에 와 닿는다. 어린 시절 잡지 못했던 그 손을 잡는다. 그 하얀 손이 더러워 질 거란 생각에 감히 잡을 수 없었던 그 손을 조심스럽게 잡는다. 녀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앞을 바라본다. 처절하게 울려 퍼지는 레퀴엠처럼 창가를 때리는 빗소리가 들려온다. 서로 손을 마주잡은 채 공허한 시선으로 앞을 향해 바라본다. 계속해서 흐르던 뜨거운 눈물이 툭- 하고 뺨을 타고 흘러 마주 잡은 손등 위로 떨어진다. - The End -